5.18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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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여사 작성일13-04-13 06:27 조회3,902회 댓글1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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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나 검찰자료는 둔갑을시킨것이기에 왜곡된것임.
그 자료가 맞다면 민주화 운동이 될수가없었겠지요.
5.18을 제조명하여 후손에게 역사를 옳바로알려주어야하는것이 그 시대를 살아온
어른들의 의무이자 도리이다.
댓글목록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타향살이님의 댓글
타향살이 작성일
교육을 철처히 해야 한다.
1.역사교육을 부활 시켜야 한다.
2.도덕 교육을 부활 시켜야 한다.
3.3.1독립선언문,5.16혁명공약,국민교육헌장,새마을 헌장을 되새겨 보자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제가 인터넷 초보라 유능하지를 못하지만 법적 책임이라도질 의향이 있으니 조사해주세요.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강 준만교수"한국현대사 산책'을 펴낸 이런 분들이 대한민국 남한에서 교수란 신분으로 인재를 양성한다는 직책으로 버티고있으니 후손인 젊은이들이 역사를 제데로 인식할수없다는것이다.본인 스스로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자부할것이다.그런데 어찌 5.18을{학살]이란? 용어를 쓸수있단말인가?
국민이라면 자신들도 자식을키워 군인[의무]과정을 거쳤을것이고 대한민국 남아라면 어느 누구나 거쳐야할 과정이 군 생활인것이다.그런데 그 군인들이 광주 시민을 학살 시켰다는것인가?그렇지않다.그 당시 정부에서는 방송이나 언론으로 될수있으면 바깥에 나다니지말라고[경고]그렇다면 이웃에서 인척이 죽었다해도 나다니지않았어야지[개인사정]집안 에있는 자 들까지끌어다죽이진않았다.전쟁중에 국방임무 중 살인을했다하여도 죄가될수없듯이 그때는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그때 그 상황.국방임무[의무]중 인 군인이 시위대에 당하고있다면 어찌 나라를 지킨다는 국군이라할수있겠는가?민주화 시대란? 지금도 그런행동하면 당장 구속된다.더구나 카빈총으로 시민군이 시민군을 쏴서죽이고 숨겨버린 호남인들.주동자들은 죽지않았다.약자인 시민군만 사망하게만든 멍청한 호남인들/
시민군이 시민군을 쏴서 죽인것은 오발인가? 살인인가?그러기에 5.18은 제조명하여야함.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했던가? 미로 게임음 종착지에서 머문다고했던가?5.18때 신군부가광주 시민을 학살시켰다는 강 준 만 교수의 "설화"한 가지.
언젠가 아주 오래된 일이었다.우리가게가 잘되어 문전성시를 이루던어느날.우리 아저씨에게 사정을해서 서류봉투를 맡겨놓고 돈[소액]을 빌려간 자 가있었으니 강 준만 교수다.고의적이든 타의 적이든 본인께서는 불쾌하겠지만 사실인것이다.며칠이 지나도 아니 한달 두달 몇개월이 지나도 찾아가지않기에 도데체 무엇이 들었길레찾아가지않는가.띁어보았디"인물과 사상" 이라는 책 3권이 들어있었다. 대강 훑어보니 별것도 아니기에 그냥두었건만 영 찾아가지않았다 한참 세월이 흐른후 호남인에게 당하고.박 정희. 김 대중.....운운하는 생각이나 그 책을 꺼내 상세히 읽어보니사상과 사 생활의 기록들이실린 책이었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내가 김 대중 전직 대통령에게 관심을 두었던것도 그때부터다.5.18을 뒤집었다는것을알고 제일 먼저 고발한곳도 ㅇㅇㅇㅇ이다.그러나 그 분 들은 힘이없다고하여 나혼자 5.18을 진단해보기로하였다.그 이후 10여년의 세월이 흐른지금.5.18의 정보는 다 쏟아져나왔으나 진행형이다 둔갑을시켜 뒤집어 대한민국 역사를 왜곡 시켰다면 제조명하여 후손에게 옳바로 알려줘야한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교수의 직책을가진 자들이 허다하다.
한 나라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학자로서 자격 미달인 자는없는지국민 모두는
상세히 지켜보며 관찰해야할것은 아닌지......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
조씨 사고 소식을 인부들이 전해주었다는 조씨 처의 증언은 거짓임이 시사저널 1990년 5월 27일자 기사로 입증됩니다. 아래는 조금 전 새 책에 추가된 내용입니다.
남편이 동구청 근처에서 총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인부들이 전해 주었다는 정동순씨 증언과 그것이 아니라 이웃집 사람이 전해준 것이었다는 이웃집 사람 증언이 다를 때에 어느 증언을 따라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하여 1990년 5월 27일자 시사저널은 이웃집 사람 증언이 맞음을 밝혀준다. 점심식사 후 공사 임금을 받으러 동구청 뒤에 산다는 사장집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는 정동순(당시 38세)씨 증언과 달리 시사저널은 아들 조천호씨 증언을 인용하여 조사천(당시 34세)씨는 아침식사 뒤에 "시내 소식이 궁금하다"며 밖으로 나갔다. 김당 기자가 조천호씨 말을 인용하여 보도한 동기사를 그대로 인용하면 “천호의 어머니 정동순(38)씨는 그날 오후 2시쯤 이웃집 사람에게서 억장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가 금남로 동구청 근처에서 총을 맞은 것 같다는 것” (시사저널 1990년 5월 27일자).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시사저널 분의 전화번호를 비밀로 알려주십시요.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지금도 광주 광천동에는 그분을 알만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있으니 외국기자가 찍어놓았다는사진으로명확한 답이 나올것입니다.아니 호남인들이 인구수가 얼마인데 5.18에 관련된 자들은 일부입니다.그리고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대한민국 역사를 왜곡시켜서 이득 될것이 무엇입니까?
또한 후손인 자식들이 서을이나 각 지역에서 떳떳하게 살아가려면 5.18의 진실을밝혀 마무리하고
남남갈등의 해소를하여 대 통합을 하여야한다는 것입니다.조 사천씨 문제는 지난번 글이 사실이니
호남인들 의견은 법적처리를하던지 제조명하는식으로 해결하는것이 옳지않을까요.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역사학도[시사논객] 분의 전화번호를 알고싶으니 비밀로 알려주실수는없으신지요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조 사천 그 분의 처는5.18당시에는 28세겠지요.그여자는 남편이 어제 나가서 안들어왔다고했어요.그리고5.18이 민주화 운동이라면 이런 분들이 1순위인것이지 정 상용[국회의원] 도망다닌 자들이 어찌1순위가된단말인가요? 호남인들은 불리한것은 숨기고 먼 훗날 누가 따질것인가?둔갑을시켜 뒤집었던것임.그러기에광주사태로 끝난 문제를 둔갑을시켜 기록된 민주화 운동의 기록은 고위 공직자가 썼다하여도 왜곡된 역사의 잘못 기록한것이 아닐까요.역사란? 감정으로나 다수결로 기록되는것이아니라 사실이 중요한것이며 어느 누구의 억울함이없이 편에 서서가아닌 공정함의 평가가있어야한다고봅니다.현명하신 분들의 옳 바른 해결책을바랄뿐입니다.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시사저널 1990년 5월 27일자에는 38세로 되어 있던데 28세였던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