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넘기는 예비역의 고뇌(苦惱)에 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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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강 작성일13-04-05 20:22 조회5,1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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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65주년에
밑으로 내려가 보이지 않던 글을 rokfv.com 인강칼럼의 Headline Top으로 올려놓으면서 표현하지 못했던 고뇌 몇 가지를 22번째 답 글로 남깁니다.
(1)4.3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각종 과거사 위원회가 생겨 난 것은 1997년 5월 26일의 노동신문 특집보도 이후였음에도 이 사실에 우리의 언론과 애국시민들의 관심을 끌 수 없었던 무능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2) 6.25발발 직전까지 진행되었던 김일성 특사(성시백)의 대남공작활동을 공식인정하고 찬양했던 북한 노동신문 특집보도가 15년 전에 즉각 공론화되지 않음으로서 그동안 각급 과거사 위원회의 활동에 일체의 제동이 걸리지 않았던 것을 통탄합니다.
(3) 4.3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저는 4.3무장폭동의 진압과정에 무고한 국민들의 억울한 희생이 있었음을 인정하며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는 적절한 보상을 실시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명예의 회복과 정부차원의 보상을 받은 경우에는 대한민국에 대한 감사의 애국심이 생겨나기를 기원하는데 오히려 집단적 적개심으로 바뀌는 현상을 감지하며 무한한 상념에 빠집니다.
(4) 이렇게 된 배경에는 북한이 공식인정 찬양함으로서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 분명한 대남공작에 대해 침묵하면서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을 조건도 없이 북송했던 대통령 김대중과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고 주장했던 대통령 노무현이 있었음을 통탄하면서 대통령들을 보좌했던 대공기관장들과 국민들의 알권리에 침묵했던 언론들의 직무유기에 무한반성이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라도 1997년 5월 26일자의 북한 노동신문 특집보도에 대한 공론화의 계기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013.4.2.
10년을 넘기는 예비역 장교의 고뇌(苦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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