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들이 깽판친 제주4.3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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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개나리 작성일13-04-02 09:21 조회3,379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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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 오후 2시부터 제주학생문화회관에서 제주4.3, 화해와 상생의 길은 없는가?라는 단일주제로 좌우익에서 2명씩이 발표를 하였는데, 거기에 제가 우익측 인사로 선정되어 40여분간 발표를 하였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동아방송(인터넷방송)제주방송국이 주관하고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후원하는 행사이며, 4.3보고서 채택시 헤어진 후로 10여년만에 좌우익 인사가 한자리에서 4.3을 논하는 최초의 자리였습니다.(보고서 내용문제로 4.3위원인 김점곤 장군이 먼저 사퇴했고, 보고서가 채책되는 날인 2003년 10월 15일 한광덕 장군과 경찰출신 이황우 위원이 보고서에 부동의란 표시를 하고 사퇴하였다. 그리고 본인도 동일 조선일보에 '4.3보고서는 반쪽짜리 보고서'라는 칼럼을 게제하고 다음날인 16일 사퇴하였다) 방청석에는 200여명이 있었는데, 좌익측 뿐만 아니라 우익측 인사도 경우회 회원 등 상당히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제주사회에서는 정부에서 만든 진상조사보고서(정부보고서로 약칭) 때문인지 4.3은 폭동이나 반란이 아니라 봉기나 민중항쟁이며, 당시의 정부가 무조건 잘못했으므로 대통령 사과로는 부족하고, 4.3추념일을 정부에서 지정하고, 국정교과서(초, 중, 고교)에 정부보고서 내용대로 4.3을 수록하여야 하며, 희생자에게 정부보상(개인당 2억원씩 4조원을 청구중)을 해 주어야 화해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4.3을 폭동이나 반란으로 말하면 왕따를 당해 배겨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금년에도 4월 3일을 전후해서 요란한(?) 행사(작년에는 37개 행사를 했음)를 계획하고 있으며, 4월 3일 실시하는 단일행사인 4.3위령제에만 1만여명 참석에 2억3000만원이란 거액을 들여 준비하고 있으며, 다른 행사에도 거액을 쏟아 부을것으로 예상됨니다. 이런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긍금해 짐니다. 지금 제주도는 4.3으로 집단 최면에 걸려 있는 느낌입니다.
저는 화해를 하려면 잘잘못을 따져 잘못한 측에서 사과를 해야 화해가 이루어 지므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남로당이 잘못을 했고, 그쪽에 가담했던 희생자측(좌익)이 사과를 해야 정부측(우익)도 마음의 문을 열고 화해를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으며, 정부보고서가 진상이 은폐되고 왜곡되었다고 했고, 그 실례들을 조목조목 짚었으며, 지금 제주에서 행하고 있는 여러가지 행사들도 정부보고서에 영향을 받아 4·3이 민중항쟁이라는 인식하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발언 도중에 '정부보고서를 부정하는 것이냐?' '이 따위 발표자를 누가 선정했느냐?' 등의 고함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한쪽에서는 '제대로 발표를 하는데 왜 그러느냐' '끝까지 들어보아라'고 하면서 고함친 자를 주저 않히는 등 옥신각신 하는 바람에 발표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여성 한분은 발표자 앞에 붙여논 종이에 크게 쓰여진 나의 이름표를 찢어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어서 나는 원고의 마지막 부분은 발표도 하지 못한채 중단을 했고, 한참 후에서야 겨우 사태가 수습되었습니다. 만약 우익인사들이 없었다면 큰 봉변을 당할 뻔 했습니다. 저들은 한마디로 깽판을 부렸습니다.
입에 '화해와 상생'을 물고 다니는 좌파들이 화해의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자기들이 생각하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발표한다고 해서 공식 토론회에서 토론자가 발표도 하지 못하게 난동을 부리는 짓으로 보아 화해는 물 건너 갔으며, 상당한 시일이 흘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 일로 저들(희생자측, 남로당측)은 정부에 선전포고까지 해서 일을 저질러 놓고 이제는 정부로 하여금 사과도 하고, 정부차원의 4·3위령일도 지정해 주며, 초·중·고 교과서에 자기들이 써 놓은 내용으로 수록할 뿐 만 아니라 거액의 배상을 하는 등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다 받아주고 싹싹 빌어야 화해를 받아주겠다는 심뽀를 들어냈습니다.
이는 적반하장으로서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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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강님의 댓글
인강 작성일
개나리 님의 대한민국을 위한 진정한 용기에 높은 경의를 표합니다.
내일이 마침 4월 3일이라 4.3위원으로 활동했던 책임감에서 별도의 글을 올리려고 시도했으나
여의치 못한 상태에서 귀하의 글을 발견하고 외로움을 덜며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부족하지만 과거에 이미 기고했던 글 하나를 귀하의 글에 대한 답 글 삼아 올립니다.
제목은 "10년을 넘기는 예비역 장교의 고뇌"입니다.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전문이 나타납니다.
http://rokfv.com/jboard/view.php?code=23&uid=6406
rokf.com의 인강칼럼을 여시면 제일 먼저 보이도록 위로 올려 놓았습니다.
추신:
아래의 글은 4월 3일을 기해 "10년을 넘기는 예비역 장교의 고뇌"란 제 글에
제가 붙여 놓은 답 글입니다. 읽어 주시고 관심을 주시면 생애의 보람이 될 것입니다.
아래
4월 3일 하루를 앞두고 밑으로 깔려서 보이지 않던 글을 headline으로 올려놓으면서 몇 자 기록으로 남깁니다.
(1)4.3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각종 과거사 위원회가 생겨 난 것은 모두 1997년 5월 26일 이후였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상기해야만 합니다.
(2)"인민공화국 영웅1호”의 대남공작을 공식인정하고 찬양했던 북한의 노동신문 특집보도가 당시에 공론화되었었더라면 그렇게 많은 과거사 위원회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3) 그 과거사 위원회의 위원들도 북한의 무한독재와 인권박탈에 침묵하며 대한민국 정부의 과거사만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고 공격할 수는 없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4)이제라도 15년 전의 노동신문 특집보도가 온 국민들에게 알려져야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희생을 당했던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도 국군과 경찰에 대한 일방적 적개심을 버리게 되고 대한민국에 대한 새로운 충성을 다짐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5) 우리 월남 참전 전우들은 구수정이란 한겨례 신문의 여기자가 우리 참전 용사들이 월남양민을 학살했다는 월남발 소설을 기사화했던 것도 1997년 5월 이후에 있었던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4.3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저는 4.3무장폭동의 진압과정에서 억울한 희생이 있었음을 인정하며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과오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뜻에서 제주 4.3사건 무장폭동에도 “인민공화국 영웅1호”의 대남공작이 있었던 사실이 증명되는 노동신문(1997.5.26.)의 특집보도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면서 대통령 김대중은 63명의 비전향 장기수 (간첩)를 조건도 없이 북송했고 대통령 노무현은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는 주장을 했던 사실도 금년의 4월 3일을 기해 온 사회에 전파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대공기관과 언론들도 지난 15년의 오랜 침묵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하고 국민들의 알권리도 충분히 회복되어야만 대한민국의 튼튼한 안보가 보장될 것임을 믿으며 줄입니다. 총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