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공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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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기사 작성일13-03-04 15:10 조회4,02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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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진로가 봉쇄됐을 때다.
1960년 5.16 이 그랬다.
공동체의 질식은 오래 가지 못한다.
어떤 식으로든 반동이 일어나는 것이 필연이다.
문제는 반동의 질이다.
집단지성의 자기수정 통로가 막혀버리면 반동의 질은 떨어지고 이는 결국 재앙으로 현실화된다.
한국사회는 지표상으로 또다시 혁명공간에 진입했다.
근대화 이전에는 소수 군 엘리트를 중심으로 혁명역량이 분출되었다.
민간의 체질이 약하고 자본이 결핍된 상태에서 국가, 그 집단지성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5.16은 박정희라는 초인의 절대적 역사인식과 세계관에 바탕을 둔 혁명이었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반동의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을 바로 우리는 "혁명" 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질투인가,
그 박정희, 5.16 혁명을 추종자들조차 적 세력들의 이빨이 두려워 제대로 된 주장을 못하고 있다.
붉은 대통령 두명을 거치는 동안 한국사회의 단상 주도권은 압도적으로 좌익들이 지배하게 되었다.
좌익들이 그 소유권과 운영권을 장악한 포탈이라는 이름의 신 매체는 강력한 창검이 되어
민주당이라는 종북 반역당을 중심으로 국가의 진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거기에 조선, 중앙, 동아로 대변되는 보수 기득권 언론집단들 조차 이에 동조하는 현상은 가히
혁명이 아니고서는 국가의 확인과 진로설정이 불가능할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배가 부르면 혁명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지금 한국사회는 정부를 능가하는 거대한 공룡집단 언론 마피아가 철저하게 자신들의
기득권 울타리로 무장하고 있다.
한반도 지성의 역사는 치욕 그자체이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과 담론의 본질은 세속의 쾌락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저자거리 천한 일본 하급 낭인한테 국모가 참살당하는 모욕을 겪은 것이었다.
국가의 성장과 더불어 사회의 혁신기제도 진화되어야 하지만 한국사회의 본질은 지난 조선시대의
악습이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다.
더 많은 물질은 더 많은 탐욕과 더 강한 쾌락으로 재편되고 민주와 언론의 자유는 그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장마당 가짜 약장수의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국가와 정부라는 제도권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미래의 영역을 선제적으로 어젠다화 하고
공동체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언론 본래의 기능은 처음부터 없었다.
식민지 시절 일본제국주의에 기생하여 가문을 유지하고
3공화국 시절은 독재라는 위장 선동 하나로
참으로 편리하게 부와 권력을 계승해 온 것이 지금 한국 주류 언론의 본질이다.
국가반동은 반드시 일어난다.
문제는 그 반동의 질이다.
신의 메타포는 그래서 제사장 박근혜를 유념하는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박근혜가 유의하다면 국민은 미래를 가질 것이다.
반대의 경우ㅡ 제사장 박근혜는 국민의 실종이라는 끔찍한 대 재앙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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