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대는 썩는 곳도, 공백기도, 고문 당하는 곳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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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성령 작성일13-02-09 18:02 조회3,864회 댓글7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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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군대문제로 골치를 썩이는 나라다.
개병제(皆兵制)인 나라에선 남자는 모두 군대를 가야한다.
그런데 身體에 이상이 있으면 불가피하게 군대를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얼마 전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본인 및 두 아들의 병역미필로 결국 사퇴했다. 이로써 박근혜 당선자의 새 정권 人選작업에 初場부터 스타일을 구겼다. 그런데 고르고 고른 그 후속 후보자 정홍원의 아들도 병역미필? 지금 야당은 好材를 만난듯이 벼르고 있다.
그러면 대한민국 총리후보 物望자의 아들들은 모두 병역미필인가?
이명박대통령의 병역미필이 정권 내내 힘들게 하더니 새 정권 시작부터 싹수가 노랗다. 천안함폭침 시 안보관계장관회의 참석자의 90%가 병역미필로 국민은 어지간히 맘이 상했다. 그것은 矛盾이고 코메디이며 해외토픽 감이다.
이회창 씨가 두 아들 중 하나만이라도 군대를 갔으면 그는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다. 그랬으면 잃어버린 십 년 종북좌파정권이 탄생하지 않았고 지금 나라의 理念地圖는 건강한 애국보수일 것이다. 북한에게 뜯어 먹히지도 않았고 그들은 핵무기 개발도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이회창 개인의 불행이자 나라의 불행이기도 한 것이다.
왜 고위 공직자들은 본인과 아들들의 병역미필이 많은가?
그들은 왜 하나 같이 그렇게 虛弱한가?
군대는 苦生하는 곳이다.
여차하면 생명도 내 놓아야한다. 그래서 그곳에 가고 싶은 남자는 아무도 없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나는 군대에서 배운 것이 많고 얻은 것도 많다.
가장 큰 이득은 나라를 위해서 헌신했다는 自負心이다. 마음에 負債가 없다.
이것은 미필자들이 전혀 느낄 수 없는 소중한 資産이다. 고생은 했지만 얼마나 멋진 일인가?
미필자들이여!
그들은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많다. 직장 예비군훈련 때 다들 나가고 없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있는 고독감. 술자리 같은 회식모임에서 군대 얘기가 나오면 그들은 쥐구멍이 그립다. 누리는 혜택도 많지만 마음고생도 만만찮다. 남자라는 自尊感을 평생 누리지 못하고 산다.
나는 군대로 인해 바뀐 것이 많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 6시면 잠을 깬다.
입맛이 까다롭던 나는 무엇이든 잘 먹는다. 반찬도 남기지 않는다. 그 당시 군대에서 일요일 점심은 라면이다. 취사반 동기에게 열 개들이 포장라면을 얻어 뒷산에 올라 몰래 들통 가득 끓여서 동료와 셋이 다 먹었다. 그리고 양지 바른 곳에서 한숨 자는 맛이란 천국이 따로 없었다.
성격도 변했다.
내성적이던 나는 조직생활에서 적응하는 방법과 남을 配慮하는 것이 나를 위한다는 것을 알았다.
배운 것도 많다.
행정반 근무에서 사무능력을 배웠고 그것이 직장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군대행정이 사회행정의 기초가 되었음을 알았다. 거기서 배운 기계식打字가 컴퓨터를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마도 그 때 타자기를 접하지 않았으면 지금 나는 컴맹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실력도 그 때 익힌 것이 기초가 된 것 같다.
공수낙하훈련으로 비행기를 네 번 탔다. 비록 輸送機였지만 내 생애의 첫 비행기라 감개(感慨)가 無量했다. 훈련이 고달펐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가장 큰 소득은 인간交流이다.
군대는 조선 8道에서 다 모인 집합체이다. 군대가 아니면 어떻게 각 지역민을 골고루 만나겠는가? 그들을 통해서 지역情緖를 알았고 그것은 人文地理를 공짜로 배운 것이다. 나는 사람의 말을 듣고 그의 고향을 대충 郡 단위까지 맞춘다.
한 번은 동네 어느 사과장수 아저씨의 말씨를 듣고
"아저씨 혹시 고향이 경북 선산이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그는 펄쩍 뛰다시피 놀라며
"혹시 나를 압니까?"
"아니 전혀 모릅니다."
"내가 객지에 나와 사과장사 8년을 했는데 고향을 알아 맞추는 사람 처음 보았습니다."라며 내 손을 잡고 반가워했다. 나는 그와 친구가 되었다.
각 지역의 사투리를 많이 안다.
예를 들어 "부추"라는 채소는 중부지방에서는 "정구지", 경상도에서는 "소풀", 전라도에서는 "솔"이라고 한다.
전직 막말 대통령은 군대를 "썩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의 資格이 없는 자이다.
지금 미국으로 위장亡命한 알쏭달쏭 전 대통령 후보는 그의 책에서 군대를 "空白期"와 "拷問"이라고 했는데 그는 주말이면 비행기로, 나중에는 아예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그는 거기서 專攻의 論文 작성과 컴퓨터 硏究를 하는 등 우리와는 다른 別天地를 살았다. 그것이 그에겐 공백기고 고문이었다면 우리는 地獄에서 살아남은 別種들인 것이다.
고위공직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병역미필은 合法이고 適法이며 遵法이라고.
틀린 말이 아니면서 또 맞는 말도 아니다.
우리는 그렇다.
제발 존경할 수 있는 肉身이 건강한 공직자가 그리운 것이다.
우리는 바란다.
대통령이나 고위공직자의 꿈이 있는 자는 최소한 병역을 畢하라.
건강이 부족하면 공직자 말고 다른 靑雲의 뜻을 품어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어느 기업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굳이 공직자가 되고 싶다면 병무청에 뇌물을 써서라도 병역을 마쳐라.
나에게 군대는
썩는 곳이 아니고 蘇生하는 기회였고
공백기가 아니고 所重한 경험이었으며
고문이 아니고 단련(鍛鍊)하는 아픔이었다. 끝
댓글목록
자동차님의 댓글
자동차 작성일
우린 그 시절 팬티를 벗고 화장실에 앉으면 팬티 가운데 실밥에 "이"란 놈이 살이 통통이 쪄서
얼마나 피를 빨아 먹었는지 푸른색이 함께했고,
빈데란 놈이 자다가 불을 켜면 총알 갖이 달아나는 추억이 생각납니다.
빼치카 무연탄 물에 버물려 만들던 쫄병 시절, 그래도 제대 무렵이면 뿌듯한 기분이 절로 나는게 군대 입니다.
지금이야 속된 말로 호시 뺑뺑이 아닙니까? 캬~~~아 정 말
海眼님의 댓글
海眼 작성일
공직자는 반드시 군대 생활을 한 사람이 하는 건전한 분위기가 돼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군에서 얼마나 많은 경험들을 했습니까?
젊어서 고생은 돈주구도 사지 못한다는 말, 틀림없는 말입니다.
저도 여지껏 나름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 다 군대 생활을 한 덕으로 생각됩니다.
쫄병 때는 녹아대, 중,고참 때는 서무계,전령,딱까리 안 해 본게 없어요.
대대급이래도 군단 직할 포병이라 손님들도 많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수 있었고.
미국 소년교도소(18세 이하, 살인급 흉악범)에 가 본적이 있는데, 얘들 군복 입혀 완전 군대식으로
가르칩니다. 20명당 교도관 두명,선생님 두명,심리학 박사 한 명 딸리지요.
워낙 쓰레기 같은 놈들이지만, 상당한 발전을 하는걸 봤습니다.
최성령님의 댓글
최성령 작성일
해안 님!
반갑습니다.
저도 포병입니다. 사단포병 155mm 대대 삼과 상황계 교육계를 했습니다.
공수훈련은 위탁교육으로 기본점프 4회 했습니다.
이렇게 같은 병과라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것은
병역미필자들은 알 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저 눈 딱 감고 군대 갔다오는 것이
본인이나 가문의 영광입니다.
海眼님의 댓글
海眼 작성일
최성령님.
저도 많이,많이 반갑습니다.
작전과 근무 하셨으면 최소한 대대에서는 탑 브레인 입니다.
평소 님의 장문의 달필을 읽으며서 나도 이런글을 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었습니다.
저희도 155mm 였지만, 잘 아시다시피, 본부포대는 행정,서비스 요원들이라 포는 안 만졌지요.
저희는 공수부대에 가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점프는 못 해 봤지만,
이만 때쯤 혹한기적응훈련, 이거 사람 직였지요. 영하30도에 강가를 찾아다니며 하는거.
그리고 여름에 유격훈련, 구보 나가서 저는 낙오를 했다 아닙니까?
그늘에서 딱까리만 하다 열외 읍씨 전원 집합하라는 바람에,
앰브란스 돌려 타고 되 돌아오는데 참 쪽팔리데요. 쫄병들은 부러워 하고. 에이 참말로 챙피해서리....
당시 제가 모셨던 대대장님이 여기 시스템크럽에 글 쓰신걸 딱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제 짐작에 지박사님과 같은 포병 동기 이실겁니다.
투 스타 다셨고, 행정학 박사도 하셨더군요.
군대 얘기하니까 옛날 생각이 많이 나네요.
우리 심심하면 또 군대얘기 하십시다.
최성령님의 댓글
최성령 작성일
해안 님.
제가 부대근무 중 공수훈련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대대 8명 차출이 내려왔습니다.
각 포대 2명씩 배분했는 데 본부에서는 아무도 지원하는 병사가 없었지요.
그래서 통신과에 있는 동기생을 꼬셔서 저와 지원을 했습니다.
교육계 선임자와 삼과장이 난리났었지요.
그래도 저는 고집을 부려서 끝내 점프 4회를 마쳤습니다.
김포에 있는 공수1여단에서 위탁교육으로 4주간 훈련을 받았습니다.
갔다오니 포상휴가 1주일을 주어 청주의 고향을 내려가던 중
서울에 있는 누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가 방광수술로 우석대병원에 입원 중 이었습니다.
고향은 포기하고 일주일 휴가를 어머니 병간호하고 귀대했습니다.
제가 졸병 때 행정반에 있으면서
수송부 차량검열 때 작업지원을 나갔습니다.
차량시다바리 청소를 했고 타이어에 구두약을 칠했습니다.
마침 그 때 부모님이 면회를 왔지요.
부랴부랴 나가느라고 작업복 차림에 얼굴에 묻은 구두약 세수도 못했습니다.
그 때 군복은 세탁하면 물이 빠져 색깔이 허옇게 변했습니다.
내 행색을 보신 어머니 한참을 우셨습니다.
나도 울었지요.
이렇게 군생활은 추억거리가 많습니다.
해안 님의 이메일주소 부탁합니다.
海眼님의 댓글
海眼 작성일
관리자님께 쪽지로 일러드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가만히 님에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성령님의 댓글
최성령 작성일
해안 님!
쪽지 보았습니다.
저의 이메일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