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전국계엄령 관련 질문드립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그건뭐지 작성일13-01-23 13:57 조회4,029회 댓글8건관련링크
본문
5.17전국계엄령은 TV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알려졌나요?
19일 신문을 통해 전국민이 알게 된건 알겠는데 18일에는 어떻게 국민에게 알렸는지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5.17비상계엄전국확대란 5월 17일 24시, 즉 18일 0시를 기해 발효된 전국확대를 말합니다. 18일 라디오로 발표되었겠지만 국민은 모르고 있었으며 광주시민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도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었었다는 사실을 2003년에야 알았습니다. 설사 1980년 5월 18일에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안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때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 용어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때 비상계엄이 시민생활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었기 때문에 국민은 비상계엄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5.18이 그토록 큰 이슈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국민은 비상계엄전국확대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초보자님의 댓글
초보자 작성일
광주사태 당시 시민들의 참여는 초기에는 없었죠.
광주에서는 사전 시위를 확산시키기위한 사전의 구상이 있었고, 여기에 시민들을 선동하기 위한 유언비어를 유포시키고, 이를 더욱 확산시킨 세력이 있었다는 겁니다.
결코 계엄 확대가 광주 시민들의 참여 이유가 아닙니다.
그건뭐지님의 댓글
그건뭐지 작성일
당시 5월 18일은 일요일 이기에 라디오든지 아니면 TV를 통해 전국민이 알수 있는 방법으로 발령했을거란 추측은 있지만 확실한 정보가 없기에 질문을 드린것입니다.
전국계엄령은 굉장히 중요한 국가적 사건인데 TV방송등, 라디오는 몇시쯤방송했을까요?
초보자님의 댓글
초보자 작성일
..........................그때 인제 그 미스 월든가? 여자들 수영복 입고 왔다 갔다 하고 그럴 때인데 아니 후보를 선발할 땐가 하여튼 그거 비슷한 거였어 하여튼. 그래가지고 그거 보고 있는데 밑에 자막에서 계엄정국확대, 의회해산, 휴교령, 이게 나온 거에요. 그런데 그 전에 인제 전국 각 대학들이 만약에 휴교령이 내리면 그 다음날 몇 시까지 돌멩이 들고 그 앞에 모인다 약속들을 다 했었지. 그런데 이제, 딱 자막이 나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리는 거예요. 열두시 되기 전이여.........
윤한봉의 구술록에 나오는 군요.
그건뭐지님의 댓글
그건뭐지 작성일
그럼 17일 12시 전에 TV자막을 통해 모든 국민에게 알렸다는 말씀이네요.?
라디오도 같은 시간에 나왔겠네요?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비상계엄령이란 서울에서나 곳곳에서 학생들이 대모를 하니까
분단국가인 남한의 국민의안전을위하여 내려진 것이었다
박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 하셨고 임시 대통령이 게셨다하나 불안한 상태였음
TV는 물론 라디오 신문을통해 전 국적으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 시절 Tv있는 자가 얼마나 될것이며 라디오도 귀하던 시절이라
계엄령이란 단어 조차도 이해 못하는 자들이 많았다
광주에도 비상 게엄령이 내렸으니 바깥에는 될수있는한 나다니지말고
방송이나 언론에 귀를 기우려 정부의 뜻을 따르라고 들은것같다
우주님의 댓글
우주 작성일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틀리면 지적해주세요.)
비상계엄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즉후인 1979년 10월 27일 발령되었습니다.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것이 1979년 10월 27일 새벽 4시입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음과 동시에 비상계엄령(제주도제외)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 5월 17일 밤 24시 정각에 비상계엄 전국확대(제주도 포함)가 발령되었는데,
이는 김대중이 내란음모를 획책하고 정부를 향해 최후통첩(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한 것입니다.
제주도를 포함하는 것과 안하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계엄사령관이 국방장관 및 국무총리에게 보고하지 않고 곧바로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김대중은 국민회의라는 빨갱이단체를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었는데,
북악파크에서 빨갱이들이 3차에 걸쳐 모임을 갖고는, 혁명내각을 구상했습니다.
서울역시위에 고무된 김대중은 '민주화촉진선언 국민대회(2차)'라는 것을 발표합니다.
정부를 향해서 여러가지 요구사항을 주장함과 동시에 관철되지 않을 경우,
전국적으로 봉기를 일으키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따라서, 정부에서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한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공수부대를 전국 각 주요 시설에 투입을 했습니다.
전라도에만 투입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전라도는 상대적으로 적게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폭동은 전라도에서만 발생했습니다.
때문에, 공수부대가 추가로 투입된 것입니다.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
우주님의 말씀이 상당히 정확한데, "당시 김대중은 국민회의라는 빨갱이단체를 설립하여"에 약간의 정정이 필요합니다. 저의 책에서 상세히 다루는 문제이므로 여기서 간단히 설명드립니다.
1980년 4월 김대중이 국민회의라는 재야단체를 장악하여 사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국민연합 행동대장들은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로 구성된 민청협 간부들이었습니다. 문익환 목사의 지휘 하에 있던 민청협 간부들은 복학생협의회를 통해 전국 규모의 시위를 조직하고 있었으며 아주 과격한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혁명내각도 민청협의 발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