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씨와의 만남
김현희씨는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남산 지하실에 있으면서 체포된 간첩이나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인사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대표적인 인사는 현재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 된 임수경씨다.
임수경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하기 위해 밀입북했다가 그해 8월 15일 판문점을 통해서 돌아왔다. 이 밀입북 사건으로 임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때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이다.
기자: 임수경 씨와 만난 때를 기억합니까.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남산 지하실에 오래 있다가 건강이 안 좋아져 거처를 옥상 쪽으로 옮겼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화 내용이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는 북한에도 좋은 아파트가 있고 인민들이 잘산다는 식으로 얘기했죠. 저는 겉으로만 그럴 뿐 실상은 다르다고 했지만, 잘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어요. 자기는 자기대로 저는 저대로 얘기를 해 대화가 잘 안 됐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기자: 그때 말이 통하지 않는 임수경씨를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솔직히 철없어 보였죠. 남한 젊은이들이 정말 환상에 젖어 북한 실상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은 '쇼의 나라'에요. 실상을 절대 보여주지 않습니다. 환상에 젖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기자: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그런 걸 보면서 혹시 남산 지하실에서 만났을 때의 그 광경이 다시 떠오르지는 않던가요.
"얼마 전 탈북자에게 배신자라고 해서 논란이 된 것으로 압니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왔는데, 그들을 도와주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지는 못할망정 잘못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듯해서 여전히 안타까움을 느꼈죠.대부분 탈북자가 그의 '배신자'란 발언에 분노하지만, 사실 저는 누군가가 저를 배신자라고 해줬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저는 '배신자'도 되지 못해 '가짜'라는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까. 북한이 제게 배신자라고 한 번만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안기부 지하실에서 임수경씨 외에 만난 사람은 없었나요.
"수사 중엔 이상규와 전충남(1983년 다대포에서 생포된 북한 간첩 2명)을 만났습니다. 이후 '부부 간첩'으로 유명한 최정남, '신세대 간첩' 김동식 등을 만났는데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만난 자리였습니다. 남한이 어떤 곳인지 얘기했지만, 긴 대화는 나누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황장엽 선생도 망명 후 만났죠."
- 월간조선 2012년 12월호 기사 <사건 25주기 맞는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