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제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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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여사 작성일12-12-27 05:39 조회4,985회 댓글9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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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5.18대 법원 판결이 있다기에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 보았더니
서 석구님의 홈 페이지에 잘 정리 해 놓으셨더군요
[지식]5.18 민주화운동.
[날짜 별 상세일지]
21일 장갑차 운전자가 조 사천씨였음
이 분이 도청앞에서 장갑차타고 목에 구멍이 뻥뚫려서
돌아가셨다는것을 그 분의 처에게 직접 전해줌
이분이 죽은후 진압군과 시민군은 과격한 사격이오고갔으며 큰 희생자가났다
호남인들은 발포명령에 이분이 사망한줄 알았으나
수사기록에 카빈총 사망으로 되어있었음
그러니 시민군이 죽인것아닌가 호남인들은 가족에게 통보만하고
시신을 감추었는지 모르나 훗 날 pc가 나와 홍보용으로 사용했다는것은
산 자중 이분을 기억 했다는것과 어떤식으로든 표시를 해두었다는것
진압군과 기자들은 이분을 알고있었는지 그 처란 여자는 왜 거짓 증언을 했는지 조사해야한다
댓글목록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을 제조명해 마무리짓지않고서는 대통합이란 무의미하다
남남갈등 해소와 이념싸움도
5.18을 정리하여야 해결되는것이지
멍청한 진보[좌파]들은 끝없이 트집을 잡을것이다
그들에게 역사왜곡 시켰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도록 독촉해야한다
이반데니소비치님의 댓글
이반데니소비치 작성일장여사님 서변호사님 홈페이지를 못찾겠네요. 미안하지만 홈피주소 좀 올려주시겠습니까?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
조사천씨 부인 증언 증에 "전날 저녁에 어떤 아가씨가 헌혈하고 나오다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박금희 양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5.18측이 대대적으로 선전해 온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헌혈하고 나오다 죽은 것이 아니라 시민군 차를 타고 다니다가 죽은 사실을 그녀의 모친 및 지인들의 증언과 사진으로 제가 확인하고 http://www.facebook.com/photo.php?fbid=530260190320561&l=c306ed8d05 에 그 사실을 밝혀 놓았습니다.
제가 장갑차 운전자 사진을 몇 장 확보해 놓았는데 그 중 한 장이 http://www.facebook.com/photo.php?fbid=530669740279606&l=7936139741 에 있습니다. 혹시 여기가 어디쯤인지 아시는지요.
그리고, 앞 글에서 지 만원.....12.12와5.18[231쪽]이라고 하셨는데, 제2권인가요?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재단 에서는이미 pc의 내용을 대부분 바꿨음
조 사천 씨의 부인은 사장댁에 가다가 진압군의 쏜 총에맞았다고 증언 하였음[처]정동순
5,18재단의 갓난아기가 들고있는 사진을 확대 해보십시요
지금이라도 언론에 부탁해서 광주에가면 확인할수 있을것임
광천동에 살던 모나미 문구 아저씨가 장갑차 운전자였다는것은
속일수없다 내가 그분의 처에게 직접 전해 주었음
나중에 도청앞에 시신을 줄지어 놓았을때 그여자는 무서워서 먼거리 서있었고
시숙이란분이 봄 잠바 입은것을 보고 확인했다고함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도청앞에서21일1시경 진압군이나 기자들중에 장갑차운전자를
목격한 사람이있는가 알아보면 빠르겠군요
없었다면 시민군이 시신을 감춘것이고
목격자가있었다면 카빈총에 맞아 사망한것을
발포명령에 진압군이 쏜 총에맞은줄 오해했던것이지요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
제가 제가 보유하고 있는 사진들을 활용하여 그 사건을
http://cafe.daum.net/issue21/3IBb/738 에 구성하여 놓았습니다. 상세한 자료 정리는 뒤로 미루고 오늘은 핵심 포인트를 보여주는 자료들만 올려 놓았습니다.
장여사님 덕분에 이제 광주사태의 진실이 한층 더 명확하게 규명되어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물론 기자들도 계엄군도 시민군도 장갑차 운전자를 목격하였으며 그 증언과 기록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도청 앞에서 기자 카메라에 찍힌 시민군 장갑차 사진을 http://www.facebook.com/photo.php?fbid=501087643237816&l=fad38af96c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 공원묘지에있는 자들도 참고로 알려 주고싶소
5.18이 일어난곳은 광천동 이었습니다 주동자인 김 영철씨도 그곳에 살았고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한분도 김 영철씨였습니다
광천동은 빈민촌 이었으며 화정동과 광천동 사이에 공업단지가 있었으므로
타 지의 젊은이들이 공장에서 기숙사에 거주하는 자들과 자치하는 자 들이 많았습니다
김 영철씨가 운영 하는 야학에 다니는 자들도 있었지요
우리나라 그시대 사람들은 대부분 허름한 옷 차림이었으며
그 시절엔 주민등록을 사용하지않았다는것도 알려드리고 싶군요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
들불야학 청소년들이 동원된 것도 사실이지만 차량 및 무기 탈취에는 목포의 깡패 조직이 대거 동원되었었습니다. 신용협동조합 이사장 장두석이란 이름을 들어보셨는지요. 장두석이 빨치산 출신이었는데 무장봉기를 배후 지원했습니다.
광주운동권 김영철의 동지로서 신용협동조합 관계자였던 박형선이 바로 부산저축은행 대형금융비리 사건의 장본인이었습니다.
여기 아래 사이트 윗 사진에서 아주 우중충하여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시민군 복장이 있는데 이런 허름한 옷 차림이 흔했었나요?
http://www.facebook.com/photo.php?fbid=530654013614512&l=e47d69e27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