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특수군이 교도소를 점령하려던 사실을 왜 공식화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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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view 작성일12-09-29 12:55 조회4,234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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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군 지휘계통을 보면 한명의 탈영병(대부분 밤에 탈출함)이 이탈했을때 불침번을 서는 근무병과 그시각에 담당하고 있던 주번사관 포대장이나 중대장 주번사령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까지 명예가 회손되면서 해직당하고 물러나야 하는 체제였읍니다.
제가 이런말씀 드리는것은 강원도22사 뇌종부대(전선의 최북단,철책부터 주문진까지가 22사단)에서 훈련병으로 사단입대 했을때 커다란 사건이 있었읍니다. 철책근무하던 병사가 소대장한테 잔소리를 듣고 앙심을 품어 실탄을 훔쳐내어 야간에 잠자고있는 병사들을 총으로 드르륵 갈기며 아수라장이 되자 내무반에서 뛰쳐나오는 병사들까지 마구 시살하고 월북한 병사가 있었읍니다.
이사건 이후 야간에 근무를 섯던 병사와 간부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까지 보임 해직되고 물러나야 했읍니다. 85년부터 88올림픽시절 22사단에서 군생활 했던 병사들은 이 사건을 모두 알고 있읍니다.
제가 이런말씀 드리는것은 북한 특수군이 광주까지 내려왔다면 경계태세에 실패를 한 결과가 되기 때문에 책임추궁 당했다가는 엄청난 인사이동이 단행 되었을 것이고 군법에 따라 처벌받는 군장성도 있을 것입니다. 맥아더가 이야기한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수 없다.
사람이라는것이 인정에 끌려서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우가 많읍니다. 당시의 군법은 엄하다 보니 공론화 시켰다가는 많은 사람들이 다칠것이고 후폭풍이 엄청났을 것입니다. 또한 북한 특수군이 몇백명 침투 했다면 아군 병사들에게는 사기를 저하시키려는 우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이 있었기에 공론화 할수 없지 않았는가? 생각해 봅니다.
제가 이런말씀 드리는것은 강원도22사 뇌종부대(전선의 최북단,철책부터 주문진까지가 22사단)에서 훈련병으로 사단입대 했을때 커다란 사건이 있었읍니다. 철책근무하던 병사가 소대장한테 잔소리를 듣고 앙심을 품어 실탄을 훔쳐내어 야간에 잠자고있는 병사들을 총으로 드르륵 갈기며 아수라장이 되자 내무반에서 뛰쳐나오는 병사들까지 마구 시살하고 월북한 병사가 있었읍니다.
이사건 이후 야간에 근무를 섯던 병사와 간부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까지 보임 해직되고 물러나야 했읍니다. 85년부터 88올림픽시절 22사단에서 군생활 했던 병사들은 이 사건을 모두 알고 있읍니다.
제가 이런말씀 드리는것은 북한 특수군이 광주까지 내려왔다면 경계태세에 실패를 한 결과가 되기 때문에 책임추궁 당했다가는 엄청난 인사이동이 단행 되었을 것이고 군법에 따라 처벌받는 군장성도 있을 것입니다. 맥아더가 이야기한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수 없다.
사람이라는것이 인정에 끌려서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우가 많읍니다. 당시의 군법은 엄하다 보니 공론화 시켰다가는 많은 사람들이 다칠것이고 후폭풍이 엄청났을 것입니다. 또한 북한 특수군이 몇백명 침투 했다면 아군 병사들에게는 사기를 저하시키려는 우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이 있었기에 공론화 할수 없지 않았는가? 생각해 봅니다.
댓글목록
서양돼지님의 댓글
서양돼지 작성일
공감가는부분이있네여.그리고 교도소 공격할때 치열한 공방전이있엇을텐대,교도소쪽은 무시하고
시청앞에서있었던일만 침소봉대하는까닭이 느껴짐니다.
시청앞에있었던 폭도들은 진성빨갱이일 확율이높고,치열한 총격전의 소리를들었다는사람들은 무고한
사람들일 확율이높고, 앞잡이 선동꾼들은 미리알고 시청앞에서의총격이라 흘리고,듣기만한 시민은 또
그럴꺼라 그대로믿고,참~~누군가에의한 연출이 아니고는있을수 없는일이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