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자폭(자살)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우주 작성일12-09-28 21:17 조회10,892회 댓글11건관련링크
본문
저는 실전 경험이 전무한 일반인이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북괴 특수군이 혹시 자폭(자살)했던 것은 아닐까요?
전국적으로 공수부대가 투입된 후,
북괴군들은 퇴로가 차단되었을 가능성이 클 겁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집단 자살을 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투입된 북괴 특수군은 많지만, 되돌아간 인원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집단 자살의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목록
우주님의 댓글
우주 작성일
5.18 당시 실제로 광주에 투입되었던 534부대의 타격대장 안창식 대위의 아내가 탈북한 바 있는데,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광주에 투입되었던 북괴 특수군은 자폭서약을 한 후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폭한 사건들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suicide.htm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저는 그랬었을 가능성은 zero에 가깝다고 여깁니다. 북괴는 자살을 반동으로 규정합니다.
포위망을 둟고 빠져나가기는 如反掌(여반장)입니다!
솔직히, 당시 작전참가부대들; 공수부대, 제이십사, 제삼십일사, 전교사 예하의 步校.砲校.機교.化學校!'
공수부대 : 와각 포위부대는 아니었으며;
이십사 : 포위부대이겠지만 형편없는 부대! ,,.
삼십일사 : 형편없는 부대! 평소 예비군 훈련이나하고, 초급 장교들은 C급 예편 대기 무능 장교들뿐? ??
전교사 예하 교도대대의 차출부대들 : 정에이었지만, 외각 차단 임무를 미 수행! 학교 주변 경비 및 교도 임무 수행에 제한을 주므로. 학교 교도대대들은 전쟁이 나도 기본 임무{교도 임무}를 수행!
따라서; 북괴 특수부대들은 외각 탈출은 아주 쉬웠었고 볾! ,,. 20사, 31사! ,,.///
제 개인 생각입니다만,,. 삼십일사 같은 곳에 근무하면 장교 기록 카드 경력 버린다고 질색하는 간부들이 많! ,,. 실제로 후방 향토사단 근무타가 전방에 가ㅑ면 구박이 자심함! 무능이 몸에 배게 됨! 그래서 ,,.
제가 육대 졸업후 보교로 갔었는데 삼십일사 간부들 ,,. 作計를 검토하면서 검렬할기회가 있었는데, 보니 한심! 쯧쯧쯧,,,.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그렇게 하지 않앗을 겁니다, 원천적으로요! 왜? ↙
말은 600명이지만, 이들 600여명이 동일 부대에서 온 병력이 아니고, 서로 다른 부대들에서 선발, 끌어 모아 온 600명이며; 따라서, 서로 소속을 잘 모른다고 봐야!
즉; 같은 부데에서 온 병력들은 많아야 8~ 9명 이하로 볾!
그러므로 많야 10명으로 가정하면, 600여명을 구성코져, 북괴군 전국{全軍}에서의 특수부대 60여개소에서 정예들로만 차출해 온 자들로 조직된 급조 부대 TF{특수임무부대, Task Force}이므로,
그들은 복귀할 때도, 60여 개 부대들이, 각자 자기 원 소속 부대별 약진식으로, 복귀했었을 것임! ,,.
우주님의 댓글
우주 작성일
북괴군들은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의 용맹성을 잘 알았을 겁니다.
때문에, 전국에 공수부대가 쫙 깔렸다면,
퇴로를 뚫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자폭을 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우주님의 댓글
우주 작성일
소속별 부대원이 각각 따로 따로라고 하더라도,
북괴 수뇌부로부터의 명령은 동일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자폭하라 !!! ...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탈북자들의 증언에서 자폭서약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북괴가 자살을 반동으로 규정한다고 하셨는데,
이 경우는 특수한 경우라서 해당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칼기 폭파범 김현희도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공수부대'는 외각 포위부대가 아니었었으니, 그런 가능성은 없!
보병학교 교도대대, 포병학교 교도대대, 기갑학교 교도대대, 화학학교 교도중대!
이들은 자체 방어 및 \피교육자 장교들 기본 교육 임무 수행에도 벅차므로 외각 차단 임무 부여는 절대 있을 수 없! ,,. 31사, 20사! 형편없는 사단들! ,,.
단; 각급 교도대대들은 전군에서 최강의 훈련 수준을 자랑하므로, 쏘면 100발 100중!
그래서 공수부대도 보병학교 교도대대가 쏜 공용화기에 명중되어 손실이 있었! 폭도 차량으로 오인해서,,.
우주님의 댓글
우주 작성일
"11명의 침투요원들은 잠수함에서 내리기 전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바치며 적들의 손에 잡히면 무조건 자폭을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였다고 한다" (76쪽). "소부대작전에서 특이한 것은 죽은 시체도 적에게 내어주지 않는 엄격한 원칙이고 어느 조와 개인을 떠나서 각기 자기 분야에 특수하게 부여된 임무에만 충실 하고 작전내용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비밀을 사수하는 것이 기본적인 룰이고 성질이라는 것이었다" (82쪽) [82쪽 주: 북한군이 광주에서 벌인 작전은 게릴라 작전이었는데, 이것을 소부대작전이라 칭한듯 하다]
전 보위부 반탐부장은 1980년 4월 김대중이 서울에서 지휘하던 민중시위를 지원하기 위해 서울로 침투했던 조가 자폭훈련을 받았음을 증언한다. "그들이 남조선침투 훈련을 받으면서 가장 집중적으로 받은 훈련은 정신적인 훈련, 다시 말하면 자폭훈련이었다고 한다. 부득이한 경우로 적들에게 잡힐 상황이 조성되었거나 잡히면 신분을 노출시키지 말고 무조건 자폭해서 시체도 남기지 말라는 것이 첫 번째 임무사항이었다고 하였다" (317쪽). 그는 북한군이 실제로 자폭을 실천한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
<<그는 아마도 자기들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까지는 상대가 몰랐다고 해도 머리를 기른 사람들이 군복을 입고 시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의심스러운 행동으로 보여서 공수부대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순간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중상자가 생겨나자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버린 조장이 대원들에게 수류탄을 모두 꺼내서 부상당한 사람의 몸에 전부 매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조원들은 조장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결심했다는 것을 간파하고 각자가 휴대하고 있던 수류탄을 목숨 시퍼렇게 붙어있는 전우의 몸에 매달아 놓고 현장을 탈출하였다고 하였다.>> (321쪽)
전 북한 3·13공장 지배인도 북한군 자폭 사실들을 이렇게 증언한다. "밥을 먹던 일행 중의 한사람이 광주인민봉기에 갔다가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느냐고 묻자 그 친구는 자기도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공화국영웅이 말하는데 의하면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시체로 돌아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대부분 전투현장에서 죽은 즉시로 남조선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처리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380쪽). 전 남포시 농촌경영위원회 지도원도 이것은 북한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임을 이렇게 증언한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북한으로 돌아와서 영웅칭호를 받았다는 상세한 내용들과 어떤 사람은 중상을 당해서 움직일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정체가 노출될 것을 염려한 동지들이 그를 사살하고 시체를 불태워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하는 등 광주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들이 터져 나왔다" (418-419쪽).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극도로 위험한 순간에도 전우들의 시체를 수습하였으며, 전쟁이 끝난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껏 참전용사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북한군은 부상당한 전우를 자폭시킬 수 있으며, 시체도 남지 않을 정도로 자폭시킬 수 있는가? 그런데, 그런 북한군 자폭 사건이 1996년 9월, 즉 문민독재자 김영삼 대통령이 여론몰이로 5.18(인민)재판을 마무리해가던 때에도 있었다. http://cafe.daum.net/issue21/5304/110 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아래의 동영상은 1996년 9월의 강릉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18일 16시30분 청학산에서 11명의 북한군이 자폭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우주님의 댓글
우주 작성일
위의 글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북괴 특수군 각각의 침투조는 모두 자폭서약을 했습니다.
자기들 부대원의 정체가 발각될 우려가 있거나, 부상을 당했거나 하면 자폭(또는 살해)했다고 나옵니다.
시체조차도 발각되지 않도록 처리했다고 나옵니다.
탈북자들의 증언입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예! 물론 '자폭한 경우를 想定(상정)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리 납득되지 않읍니다! 그들은 매우 자유스러웠으며, 작전의 주도권은 아군이 아닌 그들에게 있었으니, 더 더구나 쪼들리면서 후퇴타가 체포되는 경우는 없었을 거로 여겨야! ,,.
고로; '지'박사님께오서 거론하신 바대로;
《당시 우리 정보당국은 북으로부터 내려오는 지령문을 수신했다. 교도소를 점령하라는 것이었다. 계엄당국은 교도소 방어가 참으로 급해졌다. 그래서 부랴부랴 5월 21일 오전에 31사 병력을 빼내 교도소를 방어하도록 지시했고, 오후 4시부터는 10개 공수대대를 광주에서 빼내 교도소를 방어하도록 배치했다. 북한 지령을 받은 북한 특수군은 장갑차 등을 몰고 5월 21일부터 22일까지 총 6회에 걸쳐 총공격을 감행했다.
그들은 교도소를 감제할 수 있는 교도소 뒷산인 설탕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6.25전쟁 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던 고지쟁탈전을 벌였다. 특수군은 설탕고지를 반드시 점령해야만 했고, 공수대원들은 미리 배치되어 참호를 파고 방어전을 폈다. 공격자인 특수군은 총구에 노출이 됐지만 공수부대원들은 땅속에 몸을 숨기고 사격을 가했다. 참으로 치열한 전투였다. 》
북괴군 특수부대원들의 많은 죽엄에 대한, 가능성 있는 죽엄의 원인은! → '특수부대를 '보병'들처럼 '고지 쟁탈전'에 투입시킨 결정적 과오에 있다고 볾이 가장 타당. '특수부대'라 하더라도 보병들처럼 '高地 爭奪戰'에 개입되면 별 수없음! 數多히 죽어가야만 함! ,,. 아마 그게 가장 큰 원인일 터. 다량으로 죽은 이유! ///
우주님의 댓글
우주 작성일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박사님의 말씀처럼, 교도소를 습격하다가 죽은 북괴 특수군도 꽤 있을 것이고,
또한, 여러가지 상황에서 자폭(살해)한 북괴 특수군도 꽤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교도소를 습격키 위하여는; 중요지형지물인 '설탕 고지'가 교도소를 감제하는 고지이므로,
피아 공히 확보해야만 하는 '전술적 요지!' 피아간에 필사적이었을 것입니다.
고로, 이 과정에서 數多히 죽어갔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수긍이 갑니다! ,,.
자폭은 많은 중상을 당한 경우에만일 것이겠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