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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건뭐지 작성일12-08-28 11:09 조회3,527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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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히 적기에는 너무 길어질 것 같네요.
일단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폭동 또는 반란이 맞습니다.
북한군에 속아서 군인과 민간인 등을 죽인 사건이 무슨 민주화 운동입니까.
그저 반란, 폭동 사건입니다.
2012년 8월 23일 지만원 박사님과 5.18단체와의 기나긴 재판이 끝났습니다.
5.18단체가 고소하였습니다. 고소한 내용입니다.
“모든 기록들을 보면서 필자는 5.18은 김대중 등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하며,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되어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다. 불순분자들이 시민들을 총으로 쏘는 것은 물론 제주 4.3사건에서처럼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러 놓고, 좌익들이 이를 군인들에게 뒤집어씌우는 소위 모략전을 반복적으로 구사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으로 굳혀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심리적 내전’이 바로 5.18이라고 생각한다.”
이글 보시면 김대중 내란, 북한의 특수군 파견. 군인들에게 뒤집어씌우기 등이 나옵니다.
이 짧은 글에 5.18 허구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5.18단체로써 명예 훼손으로 고소한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역사를 규명하는 일이지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시킨 것이 아니라 하였고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북한 특수 군이 와서 광주시민을 선동하였고, 그와 부화뇌동하였던 일부 대학생들이 선량한 시민을 거짓말로 선동하여 시위하게 하고 광주지역을 점령하였고 그곳에선 대한민국의 법이 아닌 자기들 법으로 광주를 다스린 대한민국 내 다른 국가였던 겁니다.
한 국가 안에 또 다른 법을 만들고 통치하며 선동하는 행위를 반란이라 합니다.
군인들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웠습니다.
대표적인 거짓말인 5월 21일 공수대원이 발포입니다.
화려한 휴가에서도 나오는 장면으로 군인이 시위시민을 향해 마구 발포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5월 21일 사망자 중 군인에 의해 사망한 자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수사결과에 나와 있습니다.
이 기록은 1996년 재판에서 나온 것이며, 민주화 운동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1996년 재판을 신뢰한다고 합니다.
5월 21일 총사망자는 모두 61명이며 이 중 칼에 의해 죽은 사람이 20명입니다.
공수부대와 시위자와의 거리는 50m 이상이 거리를 항상 유지하였는데 어떻게 칼에 의해 죽은 자가 20명씩이나 나올 수 있나요.
칼에 의한 죽은 자는 시위자 중 누군가가 시위자를 죽인 것입니다.
총기에 의해 사망한 사망자는 13명입니다.
그중 10명은 카빈총에 의해 죽었습니다.
카빈총은 시위자만 들고 발포한 총기입니다.
카빈총에 의해 죽은 10명 또한 시위자가 시위자를 죽인 것입니다.
또 총기에 의해 사망한 13명 중 3명은 총기 미상입니다.
어떤 총에 의해 죽었는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M-16에 의해 죽었다면 누가 봐도 M-16에 의해 죽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군에 갔다 온 분께 직접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M-16의 위력은 엄청납니다. 그러기에 3명 또한 군인이 죽였다고 보기 어렵다 봅니다.
28명의 사망자는 시위장소와 전혀 무관한 장소에서 죽었습니다.
공수부대는 시위 장소에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장소에서 죽은 사람까지 공수부대가 죽였다고 뒤집어씌울 수 있습니까.
이것 또한 시위자가 시위자를 죽인 것입니다.
5.18~5.27일까지 사망자 중 민간인 사망자는 166명입니다. 이중 총기에 의해 사망한 사망자는 116명입니다. 그중 69%는 카빈총 등 시민군 총에 의해 죽었습니다.
나머지 M-16에 의해 죽은 사망자 또한 전적으로 군인만이 책임도 아닙니다. 시민군에도 M-16이 있었습니다.
제가 쓴 이 모든 건 1996년 재판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군인이란 집단은 단체행동을 하며 그 당시에도 단체행동을 하였고 단독행동을 할 수 없는 사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시내 곳곳에서 강간 사건이 나올 수 있고 그런 강간사건 또한 군인이 하였다고 거짓말을 합니까. 만약 군인이 단독으로 광주시를 돌아다녔다면 그 군인은 맞아 죽었을 겁니다.
그러기에 강간 사건 또한 시위자가 강간하였던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북에서 오는 인사들은 현충원은 안 가도 5.18 묘역은 갔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민주화운동이 북한과 무슨 연고가 있길래 거기 가서 머리 조아리는 것은 뭔가요.
즉 광주의 민주화운동이란 것이 북한과도 연관이 있음을 나타내는 간접적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진정 민주화운동이라면 북한 놈들이 왔을 때 참배를 거부해야 맞습니다.
북한 공산주의와 자유 민주주의는 상반된 이념입니다.
공산주의는 자유 민주주의를 싫어하고 자유 민주주의 또한 북한 공산주의를 배척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민주화의 성지라 말하는 곳에 북한 놈들이 와서 참배하게 허락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5.18을 민주화라 말하며 그 당위성을 찾는 첫 번째를 반독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심한 독재 정권이 어디입니까. 북한입니다.
한마디로 독재 정권이고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북한놈들에게 참배를 허락하는 자체가 민주화의 성지라는 곳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겁니다.
북한에도 5.18묘지가 있습니다. 그 묘지엔 12구의 시체 없는 무덤이 있습니다. 1980년 5.18 이후 만들어진 무덤이며, 우리나라에도 신원 미상의 시체 12구가 있었습니다.
1980년 ~ 2002년까지 신원미상이던 6명이 갑자기 신원확인 되었다고 합니다. 전 이 기록 믿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1994년부터 유골 감식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8년이 지난 2002년에 12명 중 6명이 갑자기 신원 확인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보통 상식이라면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정도 나오다 최종 6명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라는 식으로 전계 되는 것이 보통 상식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6명이나 신원확인 하였다 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도 5.18이면 대대적인 행사를 합니다.
1980년 5월 18일 이후 북한 내에선 갑자기 영웅으로 칭호 받은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지만원 박사님 재판은 2012년 8월 23일 2심 재판 무죄 판결이고, 1심에서도 무죄였습니다.
댓글목록
신생님의 댓글
신생 작성일
북한에도 12구의 시신없는 무덤이 있었나요?
시신없는 영웅묘지가 있다는건 알았지만
12기였다는건 오늘 첨 알았군요...감사합니다..꾸뻑
그건뭐지님의 댓글
그건뭐지 작성일
신생님께서 몰랐다면 제가 다시 한번 자료를 찾아 봐야 겠습니다.
제가 잘못 보고 올린 자료 일수 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