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8 때 북한 특수부대는 왜 광주를 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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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족도 작성일12-08-28 07:34 조회4,1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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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때 북한특수부대는 왜 광주를 택했을까?
5.18때 북한특수부대는 왜 광주를 택했을까?
1980년 5월 18일
광주사태의 진실이 지만원박사의 노력으로
그 베일이 벗겨졌다.
북한 특수부대 600명( 1개 사단규모)이 침투하여
광주를 유린하고 많은 광주주시민들을 죽이면서
무장폭동을 일으켜 그석을 전국에 확산시켜
대한민국을 끝장내려 했던...
6. 25이후 최대의 북한의 테러 전쟁도발이었다
김일성은 많는 도시를 두고 왜 광주를 택했을까?
부마사태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 5,000여 명은 "유신정권 물러가라",
"정치탄압 중단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내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저녁에는 부산시청 앞에 집결하여 부산시내 중심가까지 진출,
애국가 등을 부르고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10월 17일 저녁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시위가 지속적으로 확산되어
충무파출소·한국방송공사(KBS)·서구청·부산세무소 등이 파괴되고
경찰차량도 전소 내지 파손되었다.
경찰력만으로 진압이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10월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투입하여
1,058명을 연행하고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이 부마사태 때문에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
이 혼란으로 정국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이때,
군부에서 정권을 쥐고 흔들자....
이를 반대하는 정치꾼들이 정치공세가 시작되어
학생들이 길에 나서서 데모를 하게된다.
북한 김일성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호재다.
이 혼란을 잘만 이용하면 남한을 적화 통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기회를 놓친다면 남한을 적화 통일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김일성은 지령을 내린다.
남한에 침투해 있는 모든 간첩들이나
북한을 지지하는 반정부세력들은 전부 광주에 모여라...
그럼 왜 광주를 택했을까?
허구 많은 도시중에 광주를 택한 이유가 뭘까?
이것에 대한 답을 꼭 글로 써야만 하나?
그리고 김일성은 지시했다.
특수부대 1개사단을 광주로 보내라.
광주를 거점으로 시민들이 무장봉기 한것처럼 하여
극도의 혼란을 가중시켜 혼란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판문점을 치고 내려가서 남한을 적화통일 한다.
이런 시나리오가 있었을 것이다.
왜 광주를 택했을까?
당시 경상도에는 공장이 여기저기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취업을 하여 경제여건이 좋아졌는데
전라도에는 그것이 배제되었기에,
이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았던 지역이 전라도였다.
김대중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다.
박정희는 경부고속도로의 필요성이 경상도만을 살리기위해서만
아니라
제 2의 도시 부산, 그리고 부산항이 수출의 전진기지로 삼기 위해서
고속도로를 전라도로 하지 않고 부산으로 했기에,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경상도 지방을 산업기지로 발전 시킬 수 밖에
없었는데,,
전라도 사람들은 경상도만 살리고 전라도는 외면한다면
불만, 불만, 정부에 대한 반 감정이 극히 심했다.
그 불만을 이용하려는 정치세력.
반골의 도시 광주에는 누가 있었는가?
김대중 그가 있었다.
김일성은 동생이라고 여기고 정치자금을 대주어 기른 김대중을 이용하여
적화통일을 성공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광주는 희생양이 되었다.
그래서 164명이 죽었는데
이 164명의 죽음으로서,
김대중은 대통령이되었고,
전라도는 30년간이나 타 지역에 비해 출세가도를 달렸고,
잘먹고 잘살고 있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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