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 수렁에서 건져낸 내 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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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12-08-22 00:26 조회5,68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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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으로 출국하다[4]
미동건설은 회사 창립이래 사상 최초로 미, 지중해 건설공병단의 도움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쥬 베일 현장에 약 4700만 불짜리 해외 공사를 수주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쥬 베일 산업 항, 현장공사를 감독 할, 감독관들이 입주할 주택을 건축하는 공사였다.
미동건설 기계사업소 중기 기사들과 정비사들은 사우디아라비로 출국하기를 주저했다. 너무 무덥다는 이유였다. 같은 사우디아라비아지만 쥬 베일 현장은 바닷가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무덥다는 것이다. 서로들 눈치를 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투투 파 이브(225) 굴삭기 기사 준호는 더위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그는 월남 전선에서 그 무더운 날씨에도 배낭을 짊어지고 작전을 수행하였다.
때문에, 무더위에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신 만만하였다.
이때, 미동건설 기계사업소 김 영 주 운영과장은 자신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쥬 베일 현장으로 가서 일하자고 준호에게 권유하였다. 준호는 망 서립 없이 좋다고 하였다. 준호의 이 같은 시원시원한 대답에 김 영 주 운영 과장은 조카사위인 준호를 신임하고 무척 좋아 했다.
때문에,
준호는 아내와 결혼 한지, 3개월 만에 사우디아라비아 쥬 베일 현장으로 출국하게 되었다.
그 때 바레인으로 가는 대한항공 전세기를 탑승하기 위해 아내와 장모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김포 공항으로 나갔다. 공항로비에서는 공항의 이별이란 문주란의 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환송 나온 수많은 친지 가족들 중에서 아내 혼자만 울고 있었다.
그는 유난히 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울고 있었다.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이란 말인가?”
5년 전에는 물도 설고 낮도 설은 이역만리 월남 전쟁터로 출국하면서 부산 제3부두, 미 해군 수송 함 바 레트 호 배갑판위에서 어머님의 편지를 받아 들고 한없이 울지 않았던가?
오늘은 사랑하는 아내를 홀로 남겨 두고 중동으로 출국해야 하는 준호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준호는 중동에서도 실력을 발휘하였다.
처삼촌 운영과장 권유로, 콘크리트 을 배합하는 배차 푸 랜 터 꼭대기에 설치되어 있는, 골재를 끌어 올리는 크레인을 조종하게 되었다.
그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했다.
그 덕분에 몇 천 명 되는 전, 기능공 중에서 급료가 제일로 많았다. 운영과장인 처삼촌보다 급료가 훨씬 많았다.
“때문에, 이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자리를 노리고 본사의 지시로 대단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왔다. 준호는 어쩔 수 없이 이 좋은 자리를 그에게 물려 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석산으로 올라가서 그의 직종인 굴삭기를 다시 조종하게 되었다.
그는 결혼 3개월 만에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출국하였다. 준호는 아내가 무척 보고 싶었다. 얼마 전에 태어난 지민이도 보고 싶었다. 지민이 이름은, 딸이라 생각하고 준호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출국하면서 미리 지어놓고 온 이름이었다.
준호는 아내가 그립기도 했다.
“드디어 고대하고 기대 했던 귀국 날짜가 다가왔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지금 귀국하지 말라고 하였다. 일 년만 더 연장 해 달라고 준호를 설득하였다.
이 현장에서 필요한 인원의 비자가 만료되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서는 비자를 더 이상 발급해 주지 않기 때문에 굴삭기를 조종하는 권 기사가 귀국하게 되면 이 현장은 올 스톱 된다는 것이다.
그는 참으로 난감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사랑하는 아내와 딸 지민이가 보고 싶었다.
지금, 이곳 석산 현장은 관리자와 주방장까지 포함해서 14명의 인원으로 본 공사에 필요한 골재 생산은 마무리하고 지금 생산하는 골재는 판매를 하고 있었다.
골재를 생산하기 바쁘게 팔려 나갔다.
회사에서는 막대한 이익이 생겼다. 본 공사에서 몇 천 명의 인원을 투입하여 50억 원의 이익금이 났다. 하지만, 이곳 석산에는 인원 14명을 투입하여 본 공사에 필요한 골재를 다 생산하고도 20억의 이익금을 남겼다고 하였다.
“때문에, 회사에서는 돈은 달라는 대로 줄 테니, 연장을 하라고 설득했다!”
준호는 돈도 싫다고 하였다.
불도저와 페로 더, 덤프차는 현지 기사 채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굴삭기를 조종할 줄 아는 현지 기사가 없다는 것이다. 준호는 참으로 황당하였다. 왜? 하필이면 굴삭기를 조종할 줄 아는 현지 기사가 없단 말인가? 그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준호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 지민이가 하루 빨리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 현장을 올 스톱시키면서 까지 귀국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 덤프차 운전기사의 하소연이 생각났다. 고국에 있을 때, 굴삭기 기사의 횡포에 나도 언제가, 굴삭기의 조종법을 배워 굴삭기 기사가 되어 보겠다던 그 덤프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어이, 이 월 재 기사!
“이 굴삭기 조종법 한 번 배워 보지 않겠나?”
그는 두 말 없이 좋다고 하였다. 그는 배워만 준다면 귀국할 때 준호의 아내에게 명품 손목시계를 하나 선물해 주겠다고 하였다. 준호는 작업이 끝나는 시간을 이용해 굴삭기 조종법을 그에게 교육시켰다.
이렇게 약 1개월 동안 굴삭기 조종법을 교육시켰다.
하지만 그는, 제일 쉬운 상차 작업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준호는 관리자에게 이야기 하였다. 작업 능률이 좀 오르지 않더라도 이 기사를 굴삭기에 태우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석산 관리자 정 대리는 상차 시간이 조금만 지연 되어도 지프차를 몰고 현장으로 달려 와서 작업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준호는 관리자 정 대리가 쥬 베일 본사에 돈을 입금 시키러 가고 없으면 이 기사를 굴삭기에 태워 강도 높게 집중 교육을 시켰다. 이렇게 2개월 더, 덤프, 이 월 재 기사를 굴삭기 조종법을 교육시켰다.
준호가 그에게 물었다.
이제 내가 없어도 이 기사 혼자서 작업을 잘 할 수 있지?
그는 도저히 혼자서는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한 달은 더 배워야 되겠다고 하였다.
준호는 어이가 없었다.
3개월간이나 교육을 받았으면, 제일 쉬운 이 상차 작업은 못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내가 사무실 관리자, 정 대리한테 이 기사가 작업을 잘 한다고 이야기 할 테니, 정 대리가 물으면 잘 할 수 있다고 대답하라고 그에게 강요를 하였다.
만일,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면, 내가 귀국을 포기하고 일 년 더 연장을 하겠다고 그를 윽박질렀다. 한국에서는 3년을 조수로 따라 다녀도 함부로 굴삭기 조 종대 맡기지 않는다. 이 기사는 지금이 정말 좋은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굴삭기를 배울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귀국하고 나서 관리자 정 대리가 작업 능률이 오르지 않는 다고 말하면 그때 가서 지금 배웠는데 무슨 작업능률이 오을 것이 나고 배짱을 내 밀어라고 말하였다.
그는 권 기사 없어도 혼자서 작업을 잘 할 수 있다고 관리자 정 대리에게 말하겠다고 준호와 굳게 약속을 하였다. 그는 또, 권 기사에게 약속한 와이프 시계를 준비하지 못 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귀국하게 되면 서울 장안에서 알아주는 요리 집에서 근사하게 술을 사겠다고 하였다.
준호는 와이프 시계고, 술도 다 싫으니 나, 욕 안 먹게 작업이나 열심히 잘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 월 재 덤프기사에게 굴삭기를 인계하고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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