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 수렁에서 건져낸 내 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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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12-08-23 06:22 조회5,39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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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시내를 관광하다[5]
준호는 우여곡절 끝에 약 14개월 만에 귀국 길에 올랐다.
그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일이면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딸 지민을 만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의 마음은 한없이 설랬다.
“준호는 아내와 친척들에게 선물 할, 오메가 손목시계와 카세트, 카메라, 프랑스제 화장품, 18K 금으로 된 박하75 만년필, 기타 등등 선물을 준비하였다. 그는 가방 무게의 20키로 그램의 오 바 차지을 물지 않기 위해 007가방에다 손목시계와 카세트, 박하 만년필을 넣었다.”
‘그리고 카메라는 목에 걸었다!’
‘알고파 에 있는 다란공항으로 나갔다!’
“태극마크가 선명한 대한항공 DC-10기를 보는 순간 가슴이 찡하였다. 비행기 터 랩 앞 양쪽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 승무원들이 허리를 약간 굽혀 어서 오십시오 하였다. 그리고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기내는 아주 시원하였다!”
“기내 방송은, 물도 설고 낮도 설은 이역만리 열사의 땅, 모래 바람 속에서 외화를 획득 하시느라 그 얼마나 수고가 많았습니다. 라는 멘트가 반복적으로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행기는 손님들이 탑승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이륙하였다.
“준호가 탑승한 대한항공 DC-10기는 사우디 다란 공항을 이륙하여 태국 방콕 상공에 이르러 을 때였다. 방콕 상공에는 천둥 번개가 아주 심하게 치고 있었다.”
이때였다.
“기내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기상이 좋지 않아 비행기가 많이 흔들릴 것 같으니,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비행기 바깥에는 시커먼 먹구름 속에서 천둥번개가 아주 심하게 치고 있었다. 비행기가 아주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비행기는 갑자기 아래로 약 50m 정도 급강하였다가 다시 급상승을 반복하고 있었다.”
‘무서웠다!’
기내 손님들은 바짝 긴장을 하였다. 이러다가 추락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와 걱정이 되었다. 비행기는 계속 심하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손님들을 공포에 질렸다.
“기장은 기내 방송을 통해 손님들에게 안심하라고 하였다!”
기상이 좋지 않아서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고 하였다. ‘이 지점만 빠져 나가면 안전 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안심하라는 안내 방송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때였다.
“기장은 천둥 번개와 비바람 속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고 방송하였다!”
그렇게 심하게 흔들리던 비행기는 갑자기 조용해 졌다. 그는 곧, 돈 무 앙 국제공항에 착륙할 것이라고 하였다. 비행기는 우여곡절 끝에 천둥 번개와 비바람 속을 빠져 나와 방콕 돈 무 앙 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을 하였다.
“착륙 예정시간 보다 약 30분 정도 늦게 착륙하였다!”
‘ 때문에,
오늘은 이륙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일까지 비행기 정비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
‘준호는 한 시라도 바삐 사랑하는 아내와 딸 지민이가 보고 싶었다.’
‘그는 참으로 난감하였다!’
“대한항공 태국지사 직원은 손님들에게 바깥으로 나가자고 하였다. 대한항공이 지정해 놓은 호텔로 자신이 안내를 하겠다고 하였다. 그 호텔에서 숙식을 하면 된다고 하였다. 숙식비 일체는 회사 측에서 부담한다고 하였다. 늦어도 내일까지는 비행기 정비는 끝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비행기 정비가 끝나는 되로 곧바로 이륙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내일은 충분히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대항항공 지상군 태국지사 직원의 설명이었다.
“기내 손님들은 그들의 안내를 받아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니까. 태국 세관에서는 전자제품은 바깥으로 반입할 수 없다고 하였다. 태국 내에서도 일제 전자제품은 아주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전자 제품을 세금도 물지 않고 고가로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내 손님들은 물표를 받고 대한항공 태국지사 직원들에 그 전자제품을 맡겼다. 준호도 카세트가 들어 있는 007가방을 물표를 받고 대한항공 태국지사 직원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들이 마련해준 버스를 타고 지정 호텔로 갔다. 비행기 고장으로 인해 손님들은 본의 아니게 방콕 시내 관광을 하게 되었다.
호텔 측에서는 손님들에게 방콕 시내 관광을 하라고 권유를 하였다. 딸 라를 좀 쓰고 가라는 프로그램 같았다. 마이크로 미니버스를 타고 시내를 관광하는 비용은, 1인당 미화 1딸라 라고 하였다. 승용차로는 4인 기준으로 10딸라 라고 하였다.
준호는 석산에서 함께 근무하다 귀국하는 두 명과 정비반장으로 있던 김 반장과 나, 우리 일행 4명은 승용차로 시내 관광에 나섰다.
“제일 처음으로 간 곳이 큰절이 있는 곳 이었다!”
‘태국은 불교의 나라답게 시내 한 가운데 절 사원은 참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건축이 되어 있었다.’
“꼭, 우리나라 서울 한 가운데 있는 덕수궁 같았다!”
“여기에도 거지들이 많았다. 우리 일행에게 돈을 구걸하였다. 정비 반장이 1불을 주었다. 일본인 관광객도 많았다. 정비 반장은 일본어를 잘 구사하였다. 일본인 관광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도 우리 일행에게 아주 친절이 맞아, 반겨주었다. 서로가 기념으로 사진 찰 영도 하였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는 여행 자유화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여행 자유화 정책으로 태국에 관광하는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이때, 관광 안내를 하는 운전기사가 승용차에 타라고 하였다.
그가 안내하는 대로 우리 일행은 승용차에 올랐다. 그는 승용차를 몰고 어디론가 한 참을 달려가더니 뒷골목 으슥한 곳에 차를 세웠다. 내리라고 하였다.
“우리 일행은 그가 안내하는 대로 그를 따라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약 16세 정도 되는 소녀들이 일 열 횡대로 서서 우리 일행에게 윙크를 하였다. 알고 보니, 여기는 3류 급 창녀촌이었다. 1불이라고 하였다. 그 당시 환율이 480대 1이었다. 한국 돈 480원이었다.
“우리 일행은 손을 내 저었다!”
그는 다시 승용차에 타라고 하였다. 그는 또 어디론가 승용차를 몰았다. 한참을 달려가더니 차를 세웠다. 따라 오라고 하였다. 우리 일행은 그가 안내하는 대로 또 다시 그를 따라 들어갔다. 여기도 창녀촌이었다. 여기는 2류 급 창녀촌이라 했다. 예쁜 아가씨들도 제법 있었다. 2불이라고 하였다. 우리 일행은 또 다시 손을 내 저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그 운전기사는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화를 내었다. 준호가 잽싸게 그에게 1불을 쥐어 주었다. 그는 금방 환하게 웃으며 (땡 큐) 고맙다고 하였다.
그는 또다시 차에 타라고 하였다.
“그는 또 다시 우리 일행을 차에 태우고 차를 몰았다. 차가 멈춰 선 곳은 휘황찬란한 네온 불빛이 번쩍이는 아주 웅장한 건물 앞이었다. 건물이 너무 웅장한 것에 압도되어 우리 일행은 주저주저 하고 있었다.”
이때 준호가 건물 안을 살짝 들어다 보았다. 건물 안에는 한국말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준호가 말했다. 한번 들어가 보자고 하였다. 저 건물 안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였다. 저 한국인들은 우리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일행들이었다.
우리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큰 대형 유리벽 속에 쭉쭉 빠진 미녀들이 큰 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앉아 있었다. 마치! 미녀들을 전시해 놓은 것 같았다!”
대형 유리벽 바깥쪽에는 쇼 파가 길게 놓여 있었다. 그 쇼 파에 앉아서 유리벽 속에 있는 아가씨 가슴에 달고 있는 번호를 지정하면 그 아가씨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는 20불이라고 하였다!”
“3류 급과 비교하면 약 20배가 차이가 났다!”
“이곳은 외국인만 출입이 허용이 된다고 하였다!” 때문에 여기에는 동양인들보다 서양인들이 몇 배나 더 많이 와 있었다. 그들은 쇼 파에 앉아서 만연의 미소를 머금고,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있는 아가씨들을 고루고 있었다.
“반면에, 내국인은 이곳에는 출입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때문에, 우리 일행을 태우고 온 안내원 운전기사는 저 바깥에서 우리가 나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이국에서 생전 처음으로 구경하는 것이라, 넉 을 놓고 신나게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때 준호가 말했다. “빨리 나가자고 하였다. 제들과 잠자리를 하다가는 큰 일 난다고 하였다!”
“국제 매독에 걸릴 수도 있다고 하였다!”
월남 전 때, 미군이 바로 여기에서 휴가를 보낸 곳이라고 하였다.
때문에,
세계에서 성병이 제일 많이 전염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하였다. 이제 월남도 패망하고 미국들이 오지 않으니, 이 사업도 잘 되지 않는다고 업주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고 하였다. 때문에 업주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대폭 활인을 해 준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고 하였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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