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반역자와 실패한 애국자, 그리고 오늘의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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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종오 작성일12-06-26 10:23 조회17,864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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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정(市井)에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는 흔한 얘기로는 '대한민국 위상이 개판 5분전'이란다.
민족이 분단되고 국토가 분단된지 60년이나 되어도 아직까지 남북이 주적(主敵)관계로 버티고 있는판에, 친북 좌경의 김대중- 노무현이 10년 동안이나 대통령을 해 먹었는가 하면, 반공하라고 대통령에 뽑아준 이명박은 또 '이념의 시대는 가고 실리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딴 소릴 하고 있었으니 나랏꼴이 제대로 됐겠는가?!
거기다가, 임수경인가 뭔가하는 야당 친북녀는 탈북한 반공인사를 두고 배신자라고까지 하다 보니 이젠 '국기 게양'도 '애국가 제창'도 거부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됐나보다.
나라 꼴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옛 반역자와 애국자의 글귀들이 다시 떠 오르기에 여기 되새겨 봤다.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ㅡ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칡드렁이 얽혀진들 그어떠리
우리도 이같이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태종 이방원'이 조선(朝鮮) 개국을 반대해 온 '포은 정몽주'를 달래느라고 이와같이 지었다지만, 정몽주는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ㅡ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님향햔 인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그리하여, 태종은 뒷날 정몽주를 선죽교로 불러내어 머리통을 박살내 죽이고 말았으니 이를 역사는 '정몽주의 선죽교 참살(慘殺)'이라며 기록해 두고 있다.
백범 김구(金九)의 선죽교 헌시(獻詩)ㅡ
선죽교두혈(善竹橋頭血 / 선죽교에 낭자한 핏자국보고)
인비아불비(人悲我不悲 / 사람들은 슬퍼하나 나는 울지 않았노라)
장부당국위(丈夫當國危 / 대장부가 나라의 위급함을 당함에)
불사갱하위(不死更何爲 / 죽지않고 할 일이 뭐란말인가)
8.15 광복후 귀국한 백범(김구)은, 뒷날 전국 순회길에 개성을 들렸다가 선죽교를 바라보며 정몽주의 위국충정을 이렇게 극찬 했다고 백범일지(白凡逸誌)에 기록해 뒀다. " 위대했다고 존경하고 슬퍼만 해서 뭣하느냐? 국가 존망의 위급사태를 당했으면 대장부로서 당연히 목숨을 던져야하지 않겠느냐?!" 며......
12.06.26.
김종오.
댓글목록
proview님의 댓글
proview 작성일김종오님 말씀에는 김구가 실패한 애국자라고 표현하는군요 저는 김구를 애국자라고 판단하지 않읍니다. 당시에 김구는 완전한 자주독립? 공산세력 앞에서 그것이 가능한 현실이던가요? 김구가 대통령 되었다면 김일성에게 먹혔을 것입니다.
금강인님의 댓글
금강인 작성일
프로뷰님 말씀에 공감.
김구는 실패한 애국자라기 보다는 멍청한 애국자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
김구는 김일성에게 이용당한 또 하나의 인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애국의 마음은 진하게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빨갱이한테 이용당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구에 대해서 김종오 선생님과 의견을 달리합니다만, 김종오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김종오님의 댓글
김종오 작성일
Proview 님!
저는 김 구 선생을 '실패한 애국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방원은 고려 왕조(王朝)를 엎어버리고 이조(李氏朝鮮)를 건국한 선친을 따라 태종이란 왕위에까지 오른 '성공한 반역자'라고 봤고, 정몽주는 고려 왕조를 지키려 끝까지 버티다가 선죽교에서 참살을 당했으니 그를 '실패한 애국자'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금강인 님!
김구는 누가 뭐라든 독립지사임에 틀림 없습니다. 저는 그런 김구를 '멍청한 애국자'라거나, '김일성에게 이용당한 인간'으로 비하하기를 거부하는 편입니다. 오히려 김일성을 설득해서 남북통일을 이루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던 민족지도자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위에서는 3인의 각기다른 처지에서의 그 명시(銘詩) 세수(三首)를 옮겨 시스템클럽 동료들과 함께 감상해 보고자 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