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해질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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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리조나걸 작성일12-05-20 02:06 조회6,459회 댓글1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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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개씩만 올리는 一日 一 作 으로 나가고 있는데 글이 많이 올라와서 반갑고 마음이 편하다.
아리조나는 한국보다 16시간 늦게 달려가고 있어 오전 8시가 되어야 한국 날자가 변경되는고로 새벽에 일어나도 글 올릴 시간을 기다려야한다.
어제는 아무 생각없이 올리고나니 시스템 클럽 선배님들보다 먼저 글을 올려서 아차했다. 오늘부터 선배님들의 글이 한개라도 먼저 뜬 다음에 올려야겠다.
"내래 고향이 페안북도 덩두외다."
엄마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다.
엄마가 이북에서 가지고 내려온 재산은 아들 둘, 딸 하나 그리고 철저하게 발음되는 평안도 사투리 뿐이다.
큰오빠(1936년생)
작은오빠(1941년생)
언니(1947년생)
막내오빠(1952년생)
막내딸(1957년생)
엄마와 막내딸과의 대화는 1981년도 ...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된다.
(엄마는 1919생으로 만 예순 둘, 막내딸은 만 스물네살 되던 해)
"혜선이 너 아바디와는 니북 눈산 북딘 같은 동네에서 다랐다. 오남일네둥에 너 아바디래 세번때 아들이라 내래 '세때야''세때야' 하멘서 따라댕기딜 않았갓네? 우리 아바디래 니씨 딥안에서 너 아바디래 데일 탁하다고 나를 그 딥으로 시딥 보냈디."
(혜선이 너 아버지와 나는 이북 운산 북진 같은 동네에서 자랐지. 5남 1녀중에 아버지가 세번째 아들이라 내가 '세째야' '세째야' 하면서 따라다니질 않았겠니? 우리 아버지가 이씨 집안에서는 너의 아버지가 제일 착하다고 나를 그 집으로 시집 보냈지.)
"후후~ 기래도 오마니래 그 옛날에 연애 결혼하셨수다래?"
"기때야 년애가 뭔인디 알기나했네? 거더 부모래 딱디어 두는대로했디. 눈산 북딘서 혜선이 너 큰오빠와 닥은 오빠를 낳고, 딘남포로 나가 너 언니를 낳았디. 8.15 해방 됐을 때 얼마나 기뻤는디 몰라야.
(그때야 연애가 뭔지를 알기나했니? 그저 부모가 짝지어 주는대로 했지. 운산북진서 혜선이 너의 큰오빠와 작은오빠를 낳고, 진남포로 나가 너의 언니를 낳았지. 8.15 해방이 되었을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야.)
니덴 살았구나 하는데 로스께놈들이 김닐성을 앞세워 밀고 들어왔디. 디금이야 쏘련이라고 하디만 기때는 로스께라고 불렀다. 로스께놈들은 아두 무서웠시야. 동네 테네들을 보는대로 답아가고 시계란 시계는 모두리 빼앗아 한 팔에 닐곱네덜개씩 타고 다녔디."
(이젠 살았구나 하는데 로스께놈들이 김일성을 앞세워 밀고 들어왔지. 지금은 소련이라고 하지만 그때는 로스께라고 불렀지. 로스께놈들은 아주 무서웠지. 동네 처녀들을 보는대로 잡아가고 시계란 시계는 모두 빼앗아 한 팔에 일곱여덟개씩 차고 다녔지.)
"세상에~ 정말 무식한놈들이였네?"
"무식한거야 말해 뭐하갓네? 니북 빨갱이들은 더 무서웠시야. 우리야 워낙 가딘게 없었디만 기때 땅 가디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리 반동분다로 몰아서 둑였디. 혜선이 너 큰외삼톤 따라 니남으로 내려갔던 아바디래 우리를 데리러 왔디. 기때는 돈을 두고 삼팔선을 몰래 건네두는 사람이 있어 밤에 넘어 올 수 있었디."
(무식한거야 말해 뭐하겠니? 이북 빨갱이들은 더 무서웠지. 우리야 워낙 가진게 없었지만 그때 땅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반동분자로 몰아서 죽였지. 혜선이 너의 큰외삼촌 따라 이남으로 내려갔던 아버지가 우리를 데리러 왔지. 그때는 돈을 주고 삼팔선을 몰래 건너게 해주는 사람이 있어 밤에 넘어 올 수 있었지.)
"그럼 우리 아바지래 삼팔선을 세번씩이나 넘나드셨네? 와~ 대단하시다."
"거럼 거럼~ 얼마나 혼이 났갓네? 너 닥은오빠는 아바디래 어깨에 둘러메고 언니는 내래 업고 살팔선을 넘었디. 혜선이 너 큰오빠래 깜깜한 밤둥에 더수디에 빠뎄는데 기때 너 아바디래 얼런 안건댔으면 둑었을께야."
(그럼 그럼~ 얼마나 혼이 났겠니? 너의 작은오빠는 아버지가 어깨에 둘러메고, 언니는 내가 업고 삼팔선을 넘었지. 혜선이 너 큰오빠가 깜깜한 밤중에 저수지에 빠졌는데 그때 아버지가 얼른 건지지 않았으면 죽었을꺼야.)
"그때 큰오빠래 죽었으면 우리래 미국 구경도 못할뻔했수다래?"
"기래띠. 모든게 하나님 은혜디. 혜선이 너 큰외삼툰이래 녕어를 달해서 룡산 미군 부대에 튀딕해서 서소문에 있는 커다란 딥에 살았디. 기때는 와기러케 미데통도림이 맛있었는디 몰라야. 아마 먹을게 없어서 더 기랬을꺼야. 디금은 먹기 싫어서 안먹딜 않네?
(그랬지. 모든게 하나님 은혜지. 큰삼촌이 영어를 잘해서 용산 미군 부대에 취직해서 서소문에 있는 커다란 집에 살았지. 그때는 왜그렇게 미제 통조림이 맜있었는지 몰라야. 아마 먹을게 없어서 더 그랬을꺼야. 지금은 먹기 싫어서 안먹질 않니?)
니북서 매일밤 불려나가서 김닐성 노래를 배웠디. 기래서 너 닥은오빠래 니남에 와서도 '김닐성 당군 만세'를 부르고 다녀서 "야~ 야~ 녀기서 기딴 노래 부르면 순사가 답아가야. 다신 기딴 노래 부르디 말라우.. 했더니 기댐부턴 안불렀디.
(이북서 매일밤 불려나가 김일성 노래를 배웠지. 그래서 작은 오빠가 이남에 내려와서도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르고 다녀서 '야~ 야~ 여기서는 그런 노래 부르면 순사가 잡아가니까 다시는 그런 노래 부르지 말아라. 했더니 그다음부터 안불렀지.)
"그때 작은오빠가 몇살이였는데?"
"기때 아마 녀섯살뜸 됐을끼야."
(그때 아마 여섯살쯤 됐을꺼야.)
"후후~ 우리 작은오빠가 아직도 이북에 있었으면 김일성 아바이가 예뻐했겠수다. 우리집이 그때 이북에서 안내려왔으면 나도 지금쯤 이북 여성들처럼 김일성 아바이 만세나 부르고 있겠다. 그런거 생각하면 아찔해."
"거럼 거럼... 서울 와서 다리답고 살만하니까 니번엔 뉴기오 사벤이 터뎄디. 기때는 서울 냑수동에 있는 교회에 나가고 있었는데 낮녜배를 드리고 딥에 오는 길에 멀리서 펑 펑 소리가 들리는기야. 기때만 해도 대포 소리라는걸 어디 들어나봤네? 데게 뭔 소린고 하고 서있는데 던댕이 났다는기야."
(그럼 그럼... 서울 와서 자리잡고 살만하니까 이번에는 6.25 사변이 터졌지. 그때는 서울 약수동에 있는 교회에 나가고 있었는데, 낮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 펑 펑 소리가 들리는거야. 그때만 해도 대포 소리라는걸 어디 들어나봤니? 저게 무슨 소리일까? 하고 서있는데 전쟁이 났다는거야.)
"세상에~ 그때야말로 정말 아찔했갓수래?"
"아띨한거야 말해 뭐하갓네? 군인들은 부대로 돌아가라는 방송이 나오고 오후가 되멘서 피난민들이 밀려오는기야. 우리도 딤보따리를 둘러메고 나갔디만 한강 다리가 끊어댔다며 딥으로 돌아가라는기야. 할 수 없이 딥으로 돌아와 가만 업데있었디.
(아찔한거야 말해 뭐하겠니? 군인들은 부대로 돌아가라는 방송이 나오고 오후가 되면서 피난민들이 밀려오는거야. 우리도 짐보따리를 둘러메고 나갔지만 한강 다리가 끊어졌다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서 가만 엎드려 있었지.)
기때 한강 다리가 끄너댄둘 모르고 다동타 타고 건네던 사람들 수태 둑었디. 니승만 대통령은 발쎄 피난을 갔넌데 서울에 있는 것터럼 방송을 해대니 그 말만 믿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서울에 갇힌거디."
(그때 한강 다리가 끊어진줄도 모르고 자동차 타고 건너던 사람들 엄청 죽었지. 이승만 대통령은 벌써 피난을 갔는데 서울에 있는 것처럼 방송을 해대니 그 말만 믿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서울에 갇힌거지.)
"세상에~ 너무했다. 대통령이란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거지? 그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통령을 믿지 못했나봐. 지금도 대통령만 됐다하면 밀어주기는 커녕 끌어내리지 못해서 난리잖우. 그런 것보면 대한민국도 참 딱한 나라야."
"대통령은 사람 아니가? 대통령이라도 살았으니 다행이디. 며틸 있으니까네 닌민군들이 들어와서 남다들은 보는대로 답아갔디. 기래도 혜선이 너 아바디는 동네 사람덜하고 수테구녕 밑에 널판디를 깔고 숨어서 무사했디.
(대통령은 사람 아니니? 대통령이라도 살았으니 다행이지. 며칠 있으니까 인민군들이 들어와서 남자들은 보는대로 잡아갔지. 그래서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수체구멍 밑에 널판지를 깔고 숨어서 무사했지.)
기때 동네 부인들이 순번을 덩해 밤둥에 밥을 해서 날랐디. 9.28 수복이 되고 국군들이 닙성했는데 기때 많은 사람덜이 나와서 태극기를 흔드는데 어드메서 기러케들 숨어있다 나오는지 신기했시야.
(그때 동네 부인들이 순번을 정해 밤중에 밥을 해서 날랐지. 9.28 수복이 되고 국군들이 들어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태극기를 흔드는데 어디에 그렇게들 숨어있다 나오는지 신기했지.)
하루는 닌민군복을 입은 사람이 뛔들와서는 "아두마니~ 아두마니~ 옷 한벌만 날래날래 내두시라요." 하는기야. 내래 기때 얼마나 놀랬는디 몰라야. 얼런 덩신을 타리고 너 아바디 옷을 내두멘서 "날래날래 도망 가시라요." 했더니 옷을 갈아입고는 "아두마니 ... 고맙수다래." 하멘서 뛔 도망 갔디. 닌민군이라고 다 나쁘갓네? 할 수 없이 끌려나와 싸움을 한거디."
(하루는 인민 군복을 입은 사람이 뛰어 들어와서는 '아주머니~ 아주머니~ 옷 한벌만 빨리 꺼내주시라요... 하는기야. 내가 그때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얼른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 옷을 내주면서 빨리 빨리 도망 가시라요 했더니 옷을 갈아입고는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하면서 뛰어나갔지. 인민군이라고 다 나쁘겠니? 할 수 없니 끌려나와 싸움을 한거지.)
"동포끼리 비극이지뭐."
"세상에 그런 비극이 또 어드메 있갓네? 니덴 살았구나 한숨을 돌리는데 니번엔 뙈놈들이 밀려 오는기야. 1.4 후퇴였디."
(세상에 그런 비극이 또 어디 있겠니? 이젠 살았구나 한숨을 돌리는데 이번엔 뙈놈들이 밀려 왔지. 1.4 후퇴였지.)
"세상에~ 쪼끄만 땅에 로스께놈들, 뙈놈들이 번갈아 내려왔수다래?"
"기래띠."
(그랬지.)
"오마니 세대는 정말 수난 투성이였수다. 그런 것 보면 우리 세대는 행복한거야."
"너덜이라도 행복하게 살으야디. 뙈놈들은 더 무식했시야. 커다란 빵을 한개씩 배급 받아 기걸 뜯어먹다 달 때는 베고 닸디."
(너희들이라도 행복하게 살아야지. 뙈놈들은 더 무식했지. 커다란 빵을 한개씩 배급 받아 그걸 뜯어먹고 잘때는 베고 잤지.)
"세상에 너무했다."
"너무한거야 말해 뭐하갓네? 무기도 안두고 내려 보냈으니 기게 어디 사람이가? 기래서 니번엔 아예 기타 꼭대기에 올라앉아 부산까지 내려갔디. 눈보라래 어띠나 티던디 아덜은 니불로 덮어 씌우고 갔디. 기타래 멈투면 내려가서 밥도 딧고 오둠도 싸고 기타가 움딕이면 얼런들 올라 탔디.
(너무한거야 말해 뭐하겠니? 무기도 안주고 내려 보냈으니 그게 어디 사람이니? 그래서 이번엔 기차 꼭대기에 올라앉아 부산까지 내려갔지. 눈보라가 어찌나 치던지 아이들은 이불로 덮어 씌우고 갔지. 기차가 멈추면 내려가서 밥도 짓고, 오줌도 싸고, 기차가 움직이면 얼른 올라탔지.)
기때 굴속 디나다 떨어데 둑은 사람덜 많았시야. 부산에서 다시 김해로 가서 혜선이 너 막내오빠를 낳고 휴던이 되멘서 서울로 올라와 혜선이 너를 낳았디."
(그때 굴속 지나다 떨어져 죽은 사람들 많았지. 부산에서 다시 김해로 가서 혜선이 너 막내오빠를 낳고, 휴전이 되면서 서울로 올라와 혜선이 너를 낳았지.)
"후후~ 오마니는 쬐그만 땅을 끝에서 끝으로 누비고 다니멘서 아덜을 낳았수다래?"
"기래띠... 혜선이 너 큰오빠 갸는 어래서부텀 하는게 달랐시야. 눈산 북딘서 살때 내래 밭 메다 늦게 들어오면 닥은오빠를 개울가에 데리고 나가 깨끗이 씻기고 더녁까지 디어놓고 기다렸디.
(그랬지. 너 큰오빠는 어려서부터 하는게 달랐지. 운산 북진 살때 내가 밭 메다 늦게 들어오면 작은오빠를 개울가에 데리고 나가 깨끗하게 씻기고 저녁까지 지어놓고 기다렸지.)
김해로 피난 갔을 때였디. 하루는 너 큰오빠래 목판을 만들어 달라고해서 뭬하려고 기러네? 물었더니 엿이라도 팔아 쌀을 사오겠다는기야. 너 아바디래 워낙 약골인데다 먹딜 못해 아파 누워 있으니 어린 눈에도 한심했을끼야. 기래서 아바디래 목판을 만들어 목에 매달아뒀더니 더녁에 쌀을 사가지고 들어왔디."
(김해로 피난 갔을 때였지. 하루는 큰오빠가 목판을 만들어 달래서 뭐하려고 그러니? 물었더니 엿이라도 팔아 쌀을 사오겠다는거야. 아버지가 워낙 약골인데다 먹질 못해 아파 누워 있으니 어린 눈에도 한심 했을꺼야. 그래서 아버지가 목판을 만들어 목에 매달아 주었더니 저녁에 쌀을 사가지고 들어왔지.)
"그때 큰오빠가 몇살이였는데?"
"기때가 아마 녈세살이였을께야."
(그때가 아마 열세살이였을꺼야.)
"세상에~ 열세살? 너무 심했다. 그때부터 큰오빠가 우리 식구들을 먹여 살렸수다래?"
"기래띠... 갸래 부모 달못 만나서 고생 수태했디. 내래 무식해서 어드메 학교래 도은딜 알기나 했네? 기때는 룡산둥학교래 데일 도타고 했디만 기독교 학교인 대광둥학교엘 넣었디. 너 닥은 아바디래 손대두래 도아 펜물 공당을 타려 우리도 같이했디.
(그랬지. 큰오빠가 부모 잘못 만나서 고생 엄청 했지. 내가 무식해서 어디 학교가 좋은줄 알기나 했니? 그때는 용산중학교가 제일 좋다고 했지만 기독교 학교인 대광중학교에 들여보냈지. 너 작은아버지가 손재주가 좋아서 편물 공장을 차려 우리도 같이 했지.)
기때 기걸 계속 했더라면 우리도 달 살았을께야. 하디만 너 아바디래 위 수술 받고 다리에 누우니 무슨 일이 되갓네? 내래 공당 아덜 밥해두멘서 혼다 꾸려나가기래 너머 힘들어서 구멍가게를 냈디.
(그때 그걸 계속 했더라면 우리도 잘 살았을꺼야. 하지만 아버지가 위 수술 받고 자리에 누우니 무슨 일이 되겠니? 내가 공장 아이이들 밥해주면서 혼자 꾸려나가기가 너무 힘들어 구멍가게를 냈지.)
하루는 혜선이 너를 갖고 딤을 니고 언덕 위를 올라오는데 녚딥 사는 경상도 녀다래 '니덴 배래 많이 불렀네요." 해서 내래 "쉬잇~ 도용하시라요. 우리 큰아들이 듣습네다." 하는데
(하루는 혜선이 너를 임신하고 짐을 이고 언덕 위를 올라오는데 옆집에 사는 경상도 여자가 이젠 배가 많이 불렀네요 해서, 쉬잇~ 조용하시라요. 우리 큰아들이 듣습네다." 하는데...
방에서 공부하던 큰오빠래 문을 열멘서 "오마니~ 애기래 또 있어요?" 하는데 내래 뒤구녕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시야. 아바디는 누워있디 동생들은 둘둘이디 얼마나 한심했갓네? 기때 큰오빠래 혜선이 너를 받아서 목욕 시켜 두었디."
(방에서 공부하던 큰오빠가 문을 열면서 '어머니~ 애기가 또 있어요?' 하는데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들어가고 싶었지. 아버지는 누워있지 동생들은 줄줄이지 얼마나 한심했겠니? 그때 큰오빠가 혜선이 너를 받아서 목욕 시켜 주었지.)
"그때 큰오빠가 몇살이였는데?"
"대광 고등학교 돌업반이였디."
(대광 고등학교 졸업반이였지.)
"세상에~ 남자가 그것도 고등학생이 어떻게 애길 받아서 목욕을 시켜줄수가 있었지?"
"와아? 느이사래 되갓다더니 아두 달했시야. 내래 탯둘을 따르고 기댐부터는 시키는대로했디. 혜선이 너를 목욕 시켜두멘서 고녀석 달 생겼다 해서리 내래 아들인둘 알고 속으로 도아했디."
(왜에? 의사가 되겠다고 하더니 아주 잘했지. 내가 탯줄을 짜르고 그다음부터는 시키는대로 했지. 혜선이 너를 목욕 시켜주면서 고녀석 잘 생겼다고 해서 내가 아들인줄 알고 속으로 좋아했지.)
"오마니는 아들이 셋이나 있었는데도 또 아들을 좋아하다니 욕심도 많았수다래? 아~ 그래서 큰오빠가 나에 대한 사랑이 유별난가봐. 그땐 외할머니도계셨잖아?"
"기때 너 닥은 외숙모래 텃아들을 낳아서 거기메 가 계세띠."
(그때 너 작은 외숙모가 첫아들을 낳아서 거기에 가 계셨지.)
"그럼 아버지는 뭐하시고?"
"더녁이면 통당딥에서 놀음판이 벌어댔는데 거기메 가 계세띠."
(저녁이면 통장집에서 놀음판이 벌어졌는데 거기 가 계셨지.)
"우리 아바지래 끝내주셨구만기래."
"기게 무슨 말이가?"
(그게 무슨 말이니?)
"요즘 아이들 말로 대단하셨다는 뜻이외다. 오마니 말씀 계속 하우다."
"기러디. 기때 돈 많은 사람덜은 다식이 공부를 못해 속이 상한다는데 나는 돈이 없으니까네 타라리 큰오빠래 공부를 못했으면 했디. 하디만 공부를 달해 년세 의과 대학 기때는 세브란스 대학이라고 했디. 거기를 구두 시험만 보고 들어가딜 않았갓네?
(그러지. 그때 돈 많은 사람들은 자식이 공부를 못해서 속상하다는데 나는 돈이 없으니까 차라리 큰오빠가 공부를 못했으면 했지. 하지만 공부를 잘해서 연세 의과 대학 그때는 세브란스 대학이라고 했지. 거기를 구두 시험만 보고 들어가질 않았겠니?)
하디만 입학금 걱덩에 기뻐할 새가 없었디. 닙학금 마련하느라 어둑할 때 돌아오는데 가만 생각해보니까네 혜선이 네 텃돌인게야. 기래서 내래 시당으로 도로 가서 고기 한근 사다 미역국을 끊여먹었디."
(하지만 입학금 걱정에 기뻐할 새도 없었지. 입학금 마련하느라 어둑할 때 돌아오는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혜선이 너의 첫돌인거야. 그래서 시장으로 도로 가서 고기 한근 사다 미역국을 끊어먹었지.)
"엄만? 돈도 없는데 그냥 넘어가지 애기가 뭘 안다고 미역국을 끓여 먹우?"
"기래도 안기래야. 혜선이 네래 어려서 툭~ 하면 넘어데서 무릎팍이 성할 날이 없었디. 기럴 때마다 엄마래 텃돌 안해둬서 기런다고 앉아서 울디 않았네?"
(그래도 안그래. 혜선이 네가 어려서 툭~ 하면 넘어져서 무릎팍이 성할 날이 없었지. 그럴 때마다 엄마가 첫돌 안해줘서 그런다고 앉아서 울지 않았니?)
"후후~ 내가 그랬나? 나는 기억 안나는데..."
"기래띠. 내 텃돌은 니북서는 먹을게 더 없었시야. 도밥 기때는 황덩미쌀이라고 했디. 우리 오마니래 기걸 한그릇 떠놓고 앉아 우니까네 우리 아바디래 '이 바보야~ 애기래 뭘 안다고 우네?' 기랬데더라. 세월 마니 도와뎄디. 니덴 미국 와서 먹기 싫어서 안먹딜 않네?"
(그랬지. 내 첫돌은 이북에서 먹을게 더 없었지. 조밥 그때는 황덩미쌀이라고 했지. 우리 어머니가 그걸 한그릇 떠놓고 앉아 우니까 우리 아버지가 이 바보야~ 애기가 뭘 안다고 우니? 그랬데더라. 세월 많이 좋아졌지. 이젠 미국 와서 먹기 싫어서 안먹질 않니?
"그렇긴해. 요즘 아이들은 옛날에 쌀이 없었다고 하면 라면 끓여먹지 그랬냐고 한다는데뭐."
"기럴끼야. 내래 너 큰오빠 등록금 마련하느라 계라는걸했는데 어떤 녀다래 계를 타막고 도망가는 바람에 빚만 단뜩 안았디. 믿을만한 녀다였는데 오둑하면 기랬갓네?
(그럴꺼야. 내가 큰오빠 등록금 마련하느라 계라는걸 했는데 어떤 여자가 계를 타먹고 도망 가는 바람에 빚만 잔뜩 졌지. 믿을만한 여자였는데 오죽했으면 그랬겠니?)
거기다 우리 가게래 달되니까네 바로 녀페다 돈 많은 사람이 가게를 커다랗게 타렸디. 그 가게는 부부가 맞답고 하니까네 물건이 도아 우리 가게로 오던 손님들이 다 그리로 갔디."
(거기다 우리 가게가 잘되니까 바로 옆에다 돈 많은 사람이 가게를 커다랗게 차렸지. 그 게가는 부부가 맞잡고 하니까 물건이 좋아 우리 가게로 오던 손님들이 다 그리로 갔지.)
"하여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가 좀 잘된다고 하면 바로 옆에다 차리는데 뭐 있어. 미국 와서 까지 마켓 잘된다고 하면 마켓 차리고, 세탁소 잘된다고 하면 세탁소 차리고 , 비디오 가게 잘된다고 하면 비디오 가게 차려 서로 잡아 먹잖우."
"다들 먹고 살래니 벨 수 있네?"
"그렇긴해. 아~ 그래서 큰오빠가 의과 공부를 계속 못했구나? 하긴 큰오빠가 의사가 됐으면 우리가 미국에 오지 않았을꺼야. 모든게 하나님 섭리지뭐."
"거럼 거럼... 하루는 너 큰오빠래 동상덜 옷을 단뜩 사가디고 왔길래 무슨 돈이 있어 옷을 사왔네? 물었더니 의과 택을 모두 팔았다는기야. 내래 너머 돈 단련을 하니까네 돈이 덜 드는 상과로 편입한거디.
(그럼 그럼... 하루는 큰오빠가 동생들 옷을 잔뜩 사가지고 왔길래 무슨 돈이 있어서 옷을 사왔니? 물었더니 의과 책을 모두 팔았다는거야. 내가 너무 돈 단련을 하니까 돈일 덜 드는 상과로 편입한거디.)
기때 내래 안다서 한탐을 울었디. 가게는 안되고 빚 갚을 길이 망막해서
큰오빠와 언니만 공부하라고 서울에 남겨두고 평택 안덩리로 내려갔디.
(그때 내가 앉아서 한참을 울었지. 가게는 안되고 빚 갚을 길이 망막해서 큰오빠와 언니만 공부하라고 서울에 남겨두고 평택 안정리로 내려갔지.)
미군 부대서 건물 딧는 인부들 밥해두멘서 돈 돔 벌었디만 공사가 끝나멘서 닌부들이 떠나고 당사래 안됐디. 디금이야 세월이 도아데서 국데결혼이라고 하디만 기때는 양색씨라고 불렀디.
(미국 부대에서 건물 짓는 인부들 밥해주면서 돈 좀 벌었지만 공사가 끝나면서 인부들이 떠나고 장사가 안됐지. 지금이야 세월이 좋아져서 국제결혼이라고 하지만 그때는 양색씨라고 불렀지.)
양색씨들이 와서 외상 술을 먹고 도망 가니 뭐이래 남갓네? 누구래 기러는데 강원도 묵호에 가면 돈을 마니 번다고 하는기야. 기래서 다시 보따리를 쌌디.
(양색시들이 와서 외상 술을 먹고 도망 가니 뭐가 남겠지? 누가 그러는데 강원도 묵호에 가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다시 보따리를 쌌지.)
묵호 가서 고생 수태했디. 교회 딥사라는게 돈만 따라 댕기니 하나님이 너 어디 한번 실컷 고생 돔 해보라우 하멘서 내태둔거디.
(묵호 가서 고생 엄청 했지. 교회 집사라는게 돈만 따라 댕기니 하나님이 너 어디 한번 실컷 고생 좀 해봐라 하면서 내버려 둔거지.)
묵호 가서 길바닥에 안다 돌도 까고 , 강냉이 당사도 했디만 쌀밥 먹기래 어디 그리 쉬웠네? 하루는 보리밥을 해두었더니 혜선이 네래 '엄마~ 나 내일 니런 밥 또 해달라우' 해서 내래 어띠나 기가막힌디 한참을 안다 울었디.
(묵호 가서 길바닥에 앉아 돌도 까고, 강냉이 장사도 했찌만 쌀밥 먹기가 어디 그리 쉬었니? 하루는 보리밥을 해두었더니 혜선이 니가 '엄마~ 내일 이런 밥 또 해줘... 해서 어찌나 기가막힌지 한참을 않아 울었지.)
어떨땐 보리도 없어서 밀기우리 둑을 쒀놓고 먹으라고 하면 혜선이 네레 안먹겠다고 투덩해서 속이 상해 한바탕 때려두고는 또 한탐을 안다 울었디.
기래도 너덜 키우면서 고생할 때가 가당 도았던 것 같다. 그때가 그립다."
(어떨땐 보리도 없어서 밀기우리 죽을 쒀놓고 먹으라고 하면 혜선이 니가 안먹겠다고 투정해서 속이 상해 한바탕 때려주고는 또 한참을 앉아 울었지. 그래도 너희들 키우면서 고생할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그때가 그립다.)
"아~ 눈물나라. 오마니는? 그리울 것도 많수다. 이젠 천국이나 그리워하시구래. 나는 오마니래 부럽수다. 오마니는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이제 천국 갈 일만 남았지만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외다."
"기래. 우리 망낭딸 말이 맞다.
니북서부터 시닥해
서울로
김해로
평택으로
묵호로
때골 때골 굴려
하나님이 니덴 미국꺼덩 데려다 노으셌구나 .
닌생살이 일당툰몽이라더니 내래 오래 살았다. "
(그래... 우리 막내딸 말이 맞다.
이북서부터 시작해
서울로
김해로
평택으로
묵호로
때굴때굴 굴려
하나님이 이젠 미국까지 데려다 놓으셨구나.
인생살이 일장춘몽이라더니 내가 오래 살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눈물이 글썽해서 하시는 말씀은 이랬다.
"내래 녈녀섯에 너 아바디한테 시딥 와서 사랑 한번 못받아보고 늙었구나."
(내가 열여섯살에 너 아버지한테 시집 와서 사랑 한번 못받아보고 늙었구나.)
마음은 쓰라렸지만,
"기래도 아바지래 계셔서 오마니래 과부 소리 안듣고, 우리래 애비 없는 자식들이라는 소리 안듣고 자랐으니 감사하우다."
"기래... 우리 망낭딸 말이 맞다. 내래 또 괜한 소리를 했구나."
(그래... 우리 막내딸 말이 맞다. 내가 또 괜한 소리를 했구나.)
댓글목록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아리조나 걸님!!!
그 어머님의 이북사투리가 재미있네요????
아리조나걸님의 댓글
아리조나걸 작성일
5월 18일, 19일, 20일 오늘까지 세개의 글을 올렸는데 심심도사님께서 처음으로 덧글을 주셨다.
어머님이란 존칭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동향이 아니면 읽어내기 힘든데 재미있다 하시니 다행이다
심/
심지가 깊고 정의로우셨던 분으로 기도나 텅산뉴수(청산유수)로 달하면 뭐하노? 마음을 옳게 쓰야디...
요즘 크리스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잘못됨을 정확하게 꼬집으며 실천(?) 신학을 강조하셨다.
심/
심성이 착하다하여 외할버지께서 오마니를 시집 보내셨다는 아버지가 오남매의 효도를 받길래 더 넝감이래 아이덜에게 해둔거이 하나도 없는데 와 데레케 효도를 받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북에서 친할머니가 떡이 먹고프다하면 아버지가 십리길을 멀다하지 않고 떡을 사다드렸다네.
도/
도망치듯 이남으로, 미국으로 돌아치시던 오마니는 1994년도에 우리 아이들까지 보시고 돌아가셨다.
사/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서로에게 이로움과 해로움을 주기 마련인데 이왕이면 정겹고 따스한 덧글들을 주고 받으면 좋으련만, 위에 강력통치님의 울분을 하나님이 받아주시길 기도 드린다.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저한테 그렇게도 좋으신 댓글을 주시니...
저두 댓글로 화답해 올리지요
고맙고 감사한 마음만 받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1811년 '홍 경래'의 란! 평북 정주성에서 시작되었었죠. 안타깝게도 진압되어졌지만,,.
民亂(민란)의 효시(嚆始)! ,,.
'홍 경래'린이 발발 시, 영조.정조시대 때; 그 유명한 암행 어사 '박 문수'의 아들은, 서울 한양에서 임금이 먹는 '김치.된장.간장' 등의 장독 ㅡ ㅡ ㅡ 부식(副食)을 담당하는 '司甕院(사옹원)'의 봉사(奉事)였었죠. ,,. 한양에서 내응키로 했었는데,,.
Perphaps! Are your mother KOREAN, I presume?
미국계 한국인이시고 육사교에서 피교육 중이오신 것 같은데,,. ^*^
Isn't it? Sir? ^^*
여 불비 례{I am, sir, yours truly. 餘 不備 禮} 총총{Hastedly, 悤悤}
Be good days continue, Sir! Over! ///
아리조나걸님의 댓글
아리조나걸 작성일
오호~ 평북 정주성에 대해 오늘에서야 자세하게 알았네요. 땡Q
아이디처럼 미국 아리조나주에 살고있는 평범한 가정 주부이옵니다.
정성어린 3개국어 덧글에 감사 감격합니다....!!!
아리조나걸님의 댓글
아리조나걸 작성일
탈북 동지회 자유통일님!
제가 부탁한 글을 삭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작 삭제되어야할 덧글은 그대로 있어서 슬프네요.
저의 모녀의 대화를 아름답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여, 그 글에 또 욕설이 올려지면 삭제 부탁드립니다.
탈북자도 서러운데 사이트에서까지
온갖 황당한 욕설을 다 읽어내야 하는
탈북자님들이 너무 가엽다는 생각이 들고
한국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그렇게 저질이라는 것이
너무 너무 챙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최고봉님의 댓글
최고봉 작성일아리조나걸님 탈동회에도 좋는분들 많이 계십니다 악성댓글 다는 이는 극소수일뿐이고 요며칠 몇몇 지저분한 인간들이 들어와 장난질 하느라 그런거니 넘 맘 상하지 않으셨음합니다 모친께서 돌아가셨다하니 마음이 좀 그렇네요;; 암쪼록 이국땅에서 몸건강하시고 지만원 시스템에 자주들어오시어 좋은글 많이올려주시고 애국하시느라 애쓰시는 존경하는 지만원 박사님께 작은힘이나마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음하는 바램입니다.^^
아리조나걸님의 댓글
아리조나걸 작성일
최/류탄개스가 서울 하늘을 뒤덮던 1980년도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고국을 떠나왔지요.
고/통과 멍에를 육신에 담고 살아오신 어머니는 매달 용돈까지 주는 미국을 참 좋아하셨답니다.
봉/사 정신이 큰 미국 땅에 살지만 고개는 언제나 대한민국을 향해 있지요.
아~ 그렇군요. 역시 최고봉이십니다. 그런 악플을 왜 그냥 두는지 안타깝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욕을 평생 한번도 입에 담아본적이 없는 분들로, 어렸을때 다섯살 위인 막내오빠가 기지배라고 놀려서 그것도 욕인줄 알고 발 뻗고 울었고,
30년 세월을 고상하게(?) 교회 반주자만 해와서 그런지, 탈동회에 가서 글을 읽고는 가슴이 후루룩 떨리고,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더 이상 여기에도 머물수 없음을 통감하고 지난 글들은 삭제했는데 이 글은 삭제가 안되어 그냥 놔두었네요.
여자... 그것도 평범한 아낙이 큰 뜻을 품은 대한의 남아들이 힘찬 글을 올리는 이곳에서 머무는 것이 온당한건지 몰라서 갈등이 크답니다.
최고봉님의 댓글
최고봉 작성일훌륭하신 부모밑에 훌륭한 자식 나오는법이지요 아리조나걸님의 두모녀님의 사진과 대화의 내용을 보면서 바른심성을 가지신 분들임을 알수있었고 비록 물질적으로나마 힘드셨을지언정 사랑이 충만한 따뜻한 가정임을 느낄수 있었답니다 시스템 클럽엔 여성분들도 많이 들어 오시고있고 남녀노소 구별 없이 나라사랑는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대환영이며 참여할수있는 곳이랍니다 전 그분들에게 발가락 때만큼도 못따라가지만 그분들의 애국심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1인입니다 앞으로 아리조나걸님도 자주뵈었음하는 바램입니다.^^
아리조나걸님의 댓글
아리조나걸 작성일
최고봉님!
저 같은 평범한 아지매가 뭐라고 이렇게 정성어리게 잡아주시는지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자유게시판에는 심오한 글들이 많이 떠서 한가로운 네티즌 칼럼 방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시스템 클럽의 선배님으로서 많이 가르쳐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아리조나에서 써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