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이 흘러 5. 18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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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족도 작성일12-05-20 08:53 조회15,066회 댓글3건관련링크
본문
5. 18이 발생한지 32년이 흘렀다.
5. 18
5. 18은 민주화운동으로 포장되어 왜곡되어 가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의 아킬레스건이다.
이 아킬레스건을 끊어 버리지 못하면 왜곡된 역사가
천년만년 후대에 잘못 전해지는 우를 범한다.
대한민국민 4,800만명중에 몇명이나 5. 18의 실체를 알고
관심를 가지고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인구의 1/10인 480만명 ?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작은 숫자의 국민들이 진실을 알려하고
알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2년전에야 시스템클럽을 들어와서 그 진실을 알았다.
1980년 나는 경찰관에 들어온지 1년밖에 안되는 햇병아리 순경이었다.
1979년 서울 제1기동대에서 10.26 박통이 서거 하는 날 박통의 헬기를
보았고. 12. 12사태 때 기동대 순찰차가 한강 다리를 가로 막아서
정승화와 전두환의 내전을 멈추게 하였다. 한강 다리를 막아버린것은
경찰 제1기동대의 순찰차량이었다.
5. 18이 뉴스를 통하여 광주사태를 듣게되었다.
언론이 통제가 되었겠지만 생생하게 전해지는 라디오 뉴스를 통하여
경찰관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걱정하는 바는 다른 사람과 같았다.
당시 생각하기를
부산 마산 사태의 진압은 공수부대의 알철모에 진압봉의 봉의 힘으로
경상도 사람들은 집압되었는데,
전라도 광주의 거칠고 지독한 새끼들은 공수부대의 알철모에 진압봉으로도
진압을 시키지 못하고,
경찰지서의 무기고에 있는 예비군 무기 칼빈과 실탄이 폭도들에게 털림으로
발생한 폭동으로 생각하였고...
전라도 놈들 지독한 놈들이라는 생각을 30년간 가졌었다.
그후 5월 18일만 되면 경찰은 긴장을 하여 일주일전에 전국에 있는
기동대 방순대 60개중대 이상 전라도 광주로 내려가서 데모진압을 했다.
죽창으로 질러대는 전라도 광주시민들의 폭거 수없이 많은 전의경과 경찰관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렇게 부상당한 전의경 경찰관들이 전라도 광주 사람들에 대하여 지금도
좋은 생각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지독한 놈들.....
이렇게 30년이 지난 뒤에야 지만원 박사님의 책을 읽고서야
북한 특수부대 600명의 침투.. 등등의 진실을 알게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5. 18행사에 4년간 참석을 하지 않았다는 보도에서
정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5. 18의 실체를 알고 있다는 생각과
5. 18은 대한민국의 아킬레스건이기에 건드려서는 안되는 핵폭탄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지난 30년동안 왜곡되어서 마치 진실로 굳어버린 전두환의 책임론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당시 전두환은 북한 특수부대의 침투를 몰랐을까?
첨엔 몰랐다가 나중에 라도 알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 왜 당시 북한에 대하여 전쟁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았다...
나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국가의 최고 책임자가되면 많은 생각을 가져야 하기에 우리같은
일반 국민들보다 많은 정보를 접하여 폭넓게 판단할 수 있기에
전두환은 전쟁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0.26 박통시해사건후 8개월동안 국내 경제상태는 엄청난 어려움을
격게되어 박통이 이루워놓은 잘살아보세가 무너지 누란의 위기에
놓였었다.
그래서 전두환은 첫째도 경제요, 둘째도 경제요, 셌째도 경제
오직 경제를 살리는데 온 힘을 쏳았고 북한에 책임을 물어 전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우선 살고나서 너를 죽이든지 해야지 너죽고 나죽자는 식의 전쟁을
하지 않고 경제를 살리는데 심혈을 기우렸다고 생각한다.
32년이 지난 오늘
전두환이 5. 18의 실체를 밝힌다면
국민들은 전두환에게 그런사실을 알았다면 북한에 책임을 물어서
전쟁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겠냐고 또 전두환을 질책하였을것이다.
말하기 좋은 인간들이 그런 질책을 전두환에게 할것이 뻔하다.
당시 남한이 북한보다 전쟁능력이 앞섰겠는가?
정치는 혼란하지 경제는 어지럽지 그렇다고 전투장비가 북한보다
월등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1972년까지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가 뒤떨어졌었는데
9년이 지났다고 하여 국방력이 북한보다 월등했다고 할 수가 없다.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서 전두환은 김일성과의 대결보다는
우선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만약 민주화. 민주화를 외치는 김영삼이나 김대중이가
이때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했을까?
대한민국은 상갓집 개꼬리지 났을것이다.
전두환의 철권통치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경제는 살아났지
김영삼, 김대중 이런 인간들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끔찍한 상황이
오늘날 모든 국민을 괴롭힐 것이다.
누구에게 돌을 던질것인가?
그러나 32년이 지난 뒤에도 전두환에게 계속 돌을 던진다.
경찰관이던 나도 몰랐는데
일반국민들이 5. 18의 진실을 알리가 없다.
이제 세월이 지나서 30-40대가 된 사람들은 왜곡된채로
알려진 5. 18의 이야기를 들어서 영화를 보고 알고있다.
그리고 전두환에게 돌을 던진다.
현재도 500만명도 않되는 사람들만 5. 18의 진실을 알고 있다.
500만명도 않되는 국민들만 그 진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32년이 흐르도록....
5. 18
5. 18은 민주화운동으로 포장되어 왜곡되어 가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의 아킬레스건이다.
이 아킬레스건을 끊어 버리지 못하면 왜곡된 역사가
천년만년 후대에 잘못 전해지는 우를 범한다.
대한민국민 4,800만명중에 몇명이나 5. 18의 실체를 알고
관심를 가지고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인구의 1/10인 480만명 ?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작은 숫자의 국민들이 진실을 알려하고
알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2년전에야 시스템클럽을 들어와서 그 진실을 알았다.
1980년 나는 경찰관에 들어온지 1년밖에 안되는 햇병아리 순경이었다.
1979년 서울 제1기동대에서 10.26 박통이 서거 하는 날 박통의 헬기를
보았고. 12. 12사태 때 기동대 순찰차가 한강 다리를 가로 막아서
정승화와 전두환의 내전을 멈추게 하였다. 한강 다리를 막아버린것은
경찰 제1기동대의 순찰차량이었다.
5. 18이 뉴스를 통하여 광주사태를 듣게되었다.
언론이 통제가 되었겠지만 생생하게 전해지는 라디오 뉴스를 통하여
경찰관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걱정하는 바는 다른 사람과 같았다.
당시 생각하기를
부산 마산 사태의 진압은 공수부대의 알철모에 진압봉의 봉의 힘으로
경상도 사람들은 집압되었는데,
전라도 광주의 거칠고 지독한 새끼들은 공수부대의 알철모에 진압봉으로도
진압을 시키지 못하고,
경찰지서의 무기고에 있는 예비군 무기 칼빈과 실탄이 폭도들에게 털림으로
발생한 폭동으로 생각하였고...
전라도 놈들 지독한 놈들이라는 생각을 30년간 가졌었다.
그후 5월 18일만 되면 경찰은 긴장을 하여 일주일전에 전국에 있는
기동대 방순대 60개중대 이상 전라도 광주로 내려가서 데모진압을 했다.
죽창으로 질러대는 전라도 광주시민들의 폭거 수없이 많은 전의경과 경찰관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렇게 부상당한 전의경 경찰관들이 전라도 광주 사람들에 대하여 지금도
좋은 생각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지독한 놈들.....
이렇게 30년이 지난 뒤에야 지만원 박사님의 책을 읽고서야
북한 특수부대 600명의 침투.. 등등의 진실을 알게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5. 18행사에 4년간 참석을 하지 않았다는 보도에서
정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5. 18의 실체를 알고 있다는 생각과
5. 18은 대한민국의 아킬레스건이기에 건드려서는 안되는 핵폭탄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지난 30년동안 왜곡되어서 마치 진실로 굳어버린 전두환의 책임론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당시 전두환은 북한 특수부대의 침투를 몰랐을까?
첨엔 몰랐다가 나중에 라도 알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 왜 당시 북한에 대하여 전쟁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았다...
나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국가의 최고 책임자가되면 많은 생각을 가져야 하기에 우리같은
일반 국민들보다 많은 정보를 접하여 폭넓게 판단할 수 있기에
전두환은 전쟁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0.26 박통시해사건후 8개월동안 국내 경제상태는 엄청난 어려움을
격게되어 박통이 이루워놓은 잘살아보세가 무너지 누란의 위기에
놓였었다.
그래서 전두환은 첫째도 경제요, 둘째도 경제요, 셌째도 경제
오직 경제를 살리는데 온 힘을 쏳았고 북한에 책임을 물어 전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우선 살고나서 너를 죽이든지 해야지 너죽고 나죽자는 식의 전쟁을
하지 않고 경제를 살리는데 심혈을 기우렸다고 생각한다.
32년이 지난 오늘
전두환이 5. 18의 실체를 밝힌다면
국민들은 전두환에게 그런사실을 알았다면 북한에 책임을 물어서
전쟁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겠냐고 또 전두환을 질책하였을것이다.
말하기 좋은 인간들이 그런 질책을 전두환에게 할것이 뻔하다.
당시 남한이 북한보다 전쟁능력이 앞섰겠는가?
정치는 혼란하지 경제는 어지럽지 그렇다고 전투장비가 북한보다
월등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1972년까지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가 뒤떨어졌었는데
9년이 지났다고 하여 국방력이 북한보다 월등했다고 할 수가 없다.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서 전두환은 김일성과의 대결보다는
우선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만약 민주화. 민주화를 외치는 김영삼이나 김대중이가
이때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했을까?
대한민국은 상갓집 개꼬리지 났을것이다.
전두환의 철권통치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경제는 살아났지
김영삼, 김대중 이런 인간들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끔찍한 상황이
오늘날 모든 국민을 괴롭힐 것이다.
누구에게 돌을 던질것인가?
그러나 32년이 지난 뒤에도 전두환에게 계속 돌을 던진다.
경찰관이던 나도 몰랐는데
일반국민들이 5. 18의 진실을 알리가 없다.
이제 세월이 지나서 30-40대가 된 사람들은 왜곡된채로
알려진 5. 18의 이야기를 들어서 영화를 보고 알고있다.
그리고 전두환에게 돌을 던진다.
현재도 500만명도 않되는 사람들만 5. 18의 진실을 알고 있다.
500만명도 않되는 국민들만 그 진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32년이 흐르도록....
댓글목록
경기병님의 댓글
경기병 작성일
5.18 진상규명은 기울어진 건국 초석을 바로 세우는 일과 같지 않을까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훼손, 지역감정, 교육, 경제, 역사 등등...
금강인님의 댓글
금강인 작성일
지만원 박사님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참 역사의 등불이신 지만원 박사님께서 늘 건강하셔서
개 좌빨의 역사인 5C8이 광란으로 기록되는 것을 꼭 보셨으면 합니다.
정보가 넘치는 현대 사회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 통하는 곳은 이 한반도 밖에 없을 것입니다.
허절또님의 댓글
허절또 작성일은근히 광주폭동을 미화시키는 느낌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경찰서장 양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