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상보를 차아라[12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안케 작성일12-05-11 05:10 조회6,131회 댓글1건관련링크
본문
전투상보를 차아라
월맹군들은 퇴각을 하면서도 계속 82mm박격포탄을 날려 보내고 있었다.
아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적들은 아군이 탈환한 638고지를 교란작전을 펼칠 목적인 것으로 추측되었다.
도주하는 적들이 쏘아대는 포탄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이윽고, 638고지 정상에 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과!~광!” 하는
폭음소리를 내며 포가 여기저기 무차별 떨어졌다.
퀴논에서 플레이쿠 쪽으로 통하는 19번 도로 쪽 638고지 앞쪽에 대기하고 있던 제2중대가 제4중대와 임무교대를 하기 위해 638고지를 막 넘어 내려오던 순간이었다.
제2중대장 진 무 웅 대위가 적들이 날려 보낸 82mm박격포탄 파편에 귀밑 턱을 맞았다.
그는 아주 큰 부상을 당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여왔다.
앙케 전투는 아군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판단하였다.
수색중대장 한 종석 대위는 승리의 주역이 수색중대에서 제4중대로 뒤바뀐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는 전투상보를 작성하는 담당자인 교육계 이 병장을 급히 찾아다.
수색중대가 앙케 작전의 주역이란 것을 전투상보로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혀 행방이 묘연했다.
수색중대장은 크게 낙담을 하였다.
그러면서,
‘전투상보가 있어야 수색중대의 전공을 입증할 수 있을 텐데 하였다.
그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러면서 그는,
제1분대는, 제1연대 8중대 공격루트 지역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또, 제2분대는, 제2, 3중대 공격루트 지역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제3분대는 수색중대 공격루트 지역을 찾아보라고 명령하였다.
중대장 자신의 전령을 통해 지시하는 등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였다.
그는 중대 교육계 이 병장의 행방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였다.
그러나,
적들의 포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투상보를 작성했던 이 병장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 638고지 일대에 M-14 대인(발목)지뢰가 곳곳에 수도 없이 매설되어 있었다.
이곳저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직!
전투상보 찾는 데만 몰두하였다.
이 같은 중대장의 지시에 중대원 모두는 잔뜩 볼이 부어 있었다.
중대원 모두들 불평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잠시 후, 적들의 포 공격이 뚝 멎었다.
이제!
“적들의 포가 멈추었으니 나와 같이 전투상보를 작성하는 교육계 이 병장을 빨리 찾아보도록 하자”
중대장 전령 김 병장의 재촉이 성화같았다.
“그까짓 전투상보가 부하들의 안전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제 3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퉁명스럽게 무안을 주었다.
지금,
“이 일대 638고지 주변에는 미군들이 주둔해 있을 때, M-14 대인(발목)지뢰를 공중에서 비행기로 비료 뿌리듯 마구 뿌려, 엄청나게 많이 매설되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중대원들의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없으면 없는 그대로 중대본부로 철수해서 재작성하면 될 것을 ……”
“여태까지 정글화를 벗지 않고 계속 신고만 있었더니, 발이 불어터져 한 발짝도 못 걸을 지경이야”
그는 이렇게 투덜거렸다.
전령 김 병장은,
제3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전투상보 찾는데 비협조적이라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 옆에 있는 부분대장인 권 병장을 부추겼다.
자기와 같이 교육계 이 병장을 찾아보자고 애원하였다.
그는 꼼짝달싹도 하기 싫었다.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천근 같이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그는 마지못해 분대장 대신 김 병장을 따라 나섰다.
그 둘은 638고지 수색중대 공격루트 지역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파리 떼와 구더기가 버글거리고 있는 시신들을 코를 틀어막고 일일이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이 병장의 시신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한강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수색중대 공격루트를 이 잡듯이 다 뒤져도 이 병장의 행방은 묘연하였다.
그 둘은 어쩔 수 없이 시신 확인하는 수색작전을 포기하였다.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이때, 밑에서 무전병이 힘없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 있다가 이제와!”
“교육계 이 병장 못 봤어?”
김 병장이 애매한 무전병에게 화풀이하듯 쏘아댔다.
그는 이 병장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병장 배낭만 근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김 병장과 권 병장은 무전병 심 상병이 보았다는 곳으로 가서 이 병장의 배낭을 수거하여 중대장 앞에 내려놓았다.
“제1연대 공격 루트에서 교육계 이 병장을 찾았던 제1분대장 송 하사와 부분대장 강 병장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교육계 이 병장은 어디에 있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그러면서 그 둘은, 여기 이 병장 배낭만 발견되어 수거해 왔다고 하였다.
모두들 초조한 심정으로 이 병장의 배낭 속에 전투상보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이 병장 배낭 속에서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던 수색중대 전투상보가 발견 되었다.
수색중대장 한 종석 대위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만연의 미소를 지으며 흐뭇해하였다.
그런데,
전투상보는 4월12일에서 4월15일까지만 작성되어 있었다.
그 이후 진행된 전투상보는 미처 작성되어 있지 않았다.
교육계 이 병장과 친하게 지내던 김 병장은 교육계 이 병장이 처음부터 전투상보를 열심히 작성하는 것 같더라고 증언하였다.
그런 반면, 무전병 심 상병은 처음 며칠은 전투상보를 열심히 작성하더니 그 이후부터는 전투상보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했다.
수색중대장은 무척 당황해 하였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주위를 돌아보며 물었다.
“다른 중대같이 작전기간이 4-5일, 아니 한 일주일 정도면 전투상보를 재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색중대의 경우는 작전 개시 14일이나 지났고, 중대장님도 작전 도중에 부임하여 오셨다.
때문에,
전투상보 재현하기는 어려움이 많다”고 하였다.
어제,
적의 벙커를 공격하자고 돌출행동을 했던 제1분대장 송 하사가 아주 불만스런 표정으로 불쑥 내뱉었다.
수색중대장 한 종석 대위는 지금 많은 후회가 되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전투상보 작성병사에게 많은 배려를 하여 2-3명을 더 지정해 놓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에 탈기를 하고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러나,
그때의 상황으로서는 그리 녹녹치 않은 일이었다.
첫날, 1개 분대 정도가 전사했고 물 한 방울 없이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를 출발해 불속을 헤치고 올라 올 때, 전 중대원이 다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다.
때문에,
전투상보 작성할 여유가 없었다.
상황이 다 끝나고 지금이니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지만, 뒤늦게 챙기는 사후 약방문은 사태 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총알이 소나기 퍼붓듯 쏟아지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작열하는 포화 속에서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나드는 아찔한 전쟁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마주 보고 공동의 운명체라는 결의를 다지며 교감을 했던 전우가 순식간에 불귀의 객이 되었다.
아비규환의 절규가 귓전을 때리는 절박했던 그 당시로서는 오직 638고지 탈환에만 정신을 쏟아 사투를 벌이며 운명을 걸었다.
또, 수색중대의 존망이 걸린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여유만만하게 전투상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중대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수색중대 전투상보를 재작성해 보겠습니다.”
“여기 첨병을 섰던 권 병장과 무전병 심 상병이 살아있고, 중대본부에 있는 중대서무 김 병장과 서로 협의하면 전투상보를 재작성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전투상보 때문에 무척 난감해 하는 중대장의 모습이 보기에 너무 안쓰러웠든지!’
전령인 김 병장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수색중대장 한 종석 대위는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
우리 수색중대도 오늘, 아니면 내일쯤이면 연대전술기지에 있는 중대본부로 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철수하는 즉시, 김 병장이 책임지고 중대 서무와 무전병, 권 병장과 서로 협의해서 수색중대 앙케 작전 전투상보를 재작성하라고 책임을 맡겼다.
전투상보를 찾는다는 것은 아예 틀렸다고 일찌감치 포기해야한다고 판단되었다.
그리고 중대본부로 철수하면 중대장 전령 김 병장이 책임지고 무전병 심 상병과 첨병인 권 병장, 서무 김 병장과 함께 재작성하기로 결정을 지었다.
그러나,
고의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수색중대장의 계획대로 잘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어제 앙케 작전에 투입되어 오늘 아침에 638고지에 올라온 제4중대는 고지 점령의 공로를 인정하여 3시간도 지나지 않아 철수를 명하였다.
또, 4월20일에 투입되어 제4중대와 임무 교대했던 제2중대도 하루 후에 철수를 명하였다.
그러면서도,
4월12일 투입된 수색중대는 귀국자들만 철수시켰다.
백마로 가는 병력이 앙케 패스 638고지로 올라왔다.
그 병력을 지원받았다.
나머지 남은 중대원들과 함께 중대 재편성을 하였다.
그리고
638고지 뒤쪽, 월맹군 제3사단 12연대 본부 상황실을 설치했던 천연동굴 일대를 약 한달 간 더 탐색 및 수색작전을 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때문에,
수색 중대에게는 전투상보 재작성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전투상보 재작성하는 것도 물 건너가고 말았던 것이다.
- 계속 -
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보병사단 편성 및 장비표 T/O & E 7-ROKA {군사┃┃┃급비밀} 에 있었던 수색부대들은;
보병사단직할 사단수색중대{지금은 사단수색대대},
보병연대직할 연대수색중대{지금도 마찬가지일터?}의 딱 2가지 뿐이었었는데,,.
당시 Viet-Nam 에서의 1950.6.25 동란 시, 1953.7.27 휴전을 앞두고 치렬하게 밀고 밀리는 중공 동뙤롬들과의 '고지 쟁탈전'을 방불케했었던 그 Viet-Nam 19번 도로를 연하는 ANKHE 638 고지 쟁탈전에서, 보병연대 수색중대;
자세한 單隊號{단위부대호칭}를 말하자면; 第수도師團[맹호} 제△{기갑(機甲)}연대 수색중대'는, 그 기능.임무 ㅡ ㅡ ㅡ 경전투, 매복 정찰, 습격 정찰, GOP 전방, FEBA 전방의 COP 또는 측방 지경선, 후방 지경선을 연하는 遮障(차장, screen), 특정시설 경비' 등의 전술적 임무.기능은 무시되어져진 채;
보병대대 산하의 소총중대처럼 운영되어져서, 수다한 악전 고투를 감내하면서도 부여된 작전 임무를 80% 까지나 성공리에 진행 중이었었다는 점은, 마땅히 이제라도 당시 '第기갑연대 수색중대' 대원들 및 '第기갑연대장'님, 그리고 '제수도사단', '군단{주월사}'; 본국의 합참, 국방부 전사편찬위 및 부관참모부, 인사참모부 사제 상전과에서는 재고하여, 늦었지만, 보상이 정당히 치뤄져야만 할 것이라고 봅니다. ,,.
억울하고 원통해서 이거 어디,,. 여불비례,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