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대통령각하께 보고를[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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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12-05-07 00:20 조회5,533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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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대통령각하께 보고를
전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앙케 전투를 하루빨리 종결시키라는 독촉이 빗발쳤다.
주 월 사령관 이 세 호 중장은 물론,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도 앙케 전투 상황을 1일보고를 받으시고 아군의 피해와 희생에 크게 우려하였다.
이 전쟁을 하루빨리 종결시키라는 명령에 맹호사단장은 전전긍긍하였다.
맹호사단장 정 득만 소장은, 지난 밤 한 잠도 못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번 작전은 실패 없이 꼭 성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앙케 패스 638고지를 탈환하여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할 텐데 하였다.
그는 오직!
”그 일념 하나로 앙케 전투 승전보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새벽 06시 정각에 앙케 패스 638고지를 재공격한다는 보고를 기갑연대장 김 창열 대령으로 받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06시가 다 지나가고, 07시도 다 지나가고 있는데도 왜, 아무 소식이 없는 거야?”
“이번 작전도 실패한 것 아니야?”
혼잣말로 중얼중얼 연신 손목시계를 쳐다보며 앙케 전투의 승전보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였다.
상황 병 이 순구 병장이 오늘(4월24일)07시10분 경, 앙케 패스 638고지를 탈환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앙케 패스 638고지 현지에서 기갑연대 제4중대 3소대장 이무표 중위가 무전으로 타전하여 왔다고 보고를 하였다.
그는 무전기 수화기를 사단장에게 건네주었다.
사단장 정 득만 소장은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얼굴이 벌개 지며 매우 고무되어 있었다.
“귀관이 오늘 아침에 앙케 패스 638고지를 탈환한 제4중대 특공대장 이무표 중위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정말! 용감하고 장하구나!”
“귀관이 638고지를 제일 먼저 올라가서 탈환했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귀관! 이무표 중위야말로 진정 앙케 의 영웅이야!”
“그럼! 본관이 약속한대로, 638고지에 제일 먼저 올라간 귀관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상신하겠다.”
“앙케 의 영웅!”
“용감하고 늠름한 귀관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구나.”
사단장 정 득만 소장의 이 한마디 언급이 기갑 제4중대 3소대장 이무표 중위를 갑자기 앙케 전투의 주역으로 급부상시켰다.
이른바,
‘앙케 의 영웅’ 으로 등극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맹호사단장 정 득만 소장은 만감이 교차되었다.
무려 15일 동안 단일전투로는 월남 전사에서 최대격전지인 앙케 전투를 오늘(4월24일) 07시10분경에 천혜의 요새와 같은 벙커 속에서 638고지 방어 작전을 펴고 있는 월맹군들을 일망타진하고 638고지를 전격 탈환하였다.
앙케 전투를 아군이 승리로 이끌었다고 이무표 중위로부터 보고를 받은 정 득만 소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앙케 전투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상심해 있던 주 월 사령관 이 세 호 중장에게 이무표 중위가 이끄는 제4중대 특공대가 638고지를 탈환하여 앙케 전투는 주 월 한국군 맹호부대가 승리했다고 보고를 했다.
주 월 사령관 이 세 호 중장은 즉시 고국에 있는 국방부를 통해 청와대에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 월남 앙케 전투에서 월맹군들을 물리치고 주 월 한국군이 승리했다고 보고를 하도록 했다.
한편!
1972년 4월 24일 07시 20분경이었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전선의 아침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 06시에 도착 한다더니, 왜 이렇게 늦었냐?”
갑자기 침묵을 깨고 누군가가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1중대 소속 박 태 균 하사의 길안내를 받아 638고지 뒤쪽 8부 능선에 도착하였다.
적정을 살피며 대기하고 있었다.
이때였다.
2-3명의 적병들이 638고지 뒤쪽 후사면 쪽으로 도주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때문에,
약 한 시간정도 지연되었다고 했다.
똥줄 빠지게 도망치던 월맹군들은 638고지 벙커 속에서 위협사격을 해 대던 바로 그 적병들이었다.
독 안에 든 쥐처럼 벙커 속에 갇혀 숨죽이고 있던 월맹군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은 이른 아침을 틈타 도망쳤던 모양이었다.
사실은,
1972년 4월22일 밤에 앙케 패스 638고지 9부 능선에서 수색중대가 인해전술 작전으로 638고지를 공격해 올라 왔을 때, 월맹군들은 더 이상 638고지를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때 주력 부대는 다 후퇴하였다.
그러면서 그 들은, 월맹군 주력본대가 안전하게 멀리 후퇴할 수 있도록 벙커 속에 2-3명만 남아서 제1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최대한 시간을 벌어주는 지연작전을 펼치다가 무사히 도망친 것 같았다!”
월맹군들이 도망치고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적들의 벙커를 수색중대와 제4중대가 앞 뒤 협공으로 적들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싱겁게 638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앙케 전투는 그 수많은 어려움과 희생을 치른 끝에 주 월 한국군이 승리로 장식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처럼 이무표 중위가 이끄는 제4중대 특공대는 불과 몇 시간 작전으로 희생과 피 해 하나 없이 고지를 탈환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수색중대는 무려 14일 동안이나 피 범벅과 눈물 속에서 엄청난 희생과 피의 대가를 치우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638고지를 탈환할 수 있도록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이번 앙케 전투를 승리로 이글은 주역이었다.
그러함으로, 수색중대가 명실상부한 승리의 주역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정말!
‘일일이 필설로는 다 옮길 수 없을 만큼 가슴 벅차고 감동적인 드라마틱한 일이었다.’
이처럼 전쟁터에서 난공불락과 같은 고지를 탈환해서 승리의 기쁨을 맛 본 것은 생애 처음이었다.
꼭!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였다.
마치!
전쟁 영화 속에서 전쟁영웅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냉정을 되찾고 쑥밭이 되어버린 주변을 돌아보는 그들의 마음은 씁쓰레했다.
놈들의 속셈도 모르고 무작정 주먹구구식 작전으로 아까운 희생자를 내면서까지 공격을 감행했던 것이 보기 좋게 적들의 농간에 빠져 농락당한 꼴이 되었으니 어쩐지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화약 냄새와 피 비린내가 진동하고 숲은 시커멓게 다 타 버렸다.
고지의 곳곳에서는 그 때까지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처절했던 전쟁터는 인간이 발 디딜 수없는 폐허 그대로였다.
이 때였다.
수색중대장 한 종석 대위는 서북쪽 방향 경계 및 방어 작전은 이무표 중위가 이끄는 제4중대 특공대원들에게 맡겼다.
수색 중대원들은 동남쪽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신속히 임시참호를 구축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수색중대원들은 638고지 9부 능선에 동남쪽 방향으로 산개 하였다.
항공폭격과 포사격으로 인해 생긴 구덩이를 신속히 선정해서 구덩이 앞에다 마대를 대충 쌓아다.
임시 참호를 엉성하게 대충 구축하였다.
한 종석 대위는 어제(4월23일 17시경), 기갑연대장 명령에 따라 638고지 뒤쪽에서 공격해 오는 이무표 중위가 이끄는 제4중대 특공대원들과 약 20-30m거리를 두고 앞쪽에 있던 수색중대원들이 앞뒤 협공작전으로 적과 교전 한번 없이 638고지를 무혈 탈환했다고 상부에 보고를 하였다.
그 리고, 보이지 않는 중대원 부하들을 찾아다니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638고지 서북쪽 방향 경계 및 방어 작전을 맡고 있는 제4중대 특공대원들은 참호구축 작업은 하지 않고, 특공대장 이무표 중위는 어디가 초조하게 무전교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는 “사단장 정 득만 소장이 누구든지 638고지에 먼저 올라가는 사람에게 태극무공훈장이 약속되어 있다는 말에,” 혹한 나머지 중대, 대대, 연대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사단장 정 득만 소장에게 직접 무전교신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 계속 -
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제가 1974.7월에, 전방 제Ⅴ군단 휘하의 제3사단에서 소총중대장을 19개월 마치고, 전남 광주 고등군사반에 학생 장교 피교육자 신분이 되어 입교하니; 육군보병학교장님이 '정 득만'소장이시었었읍니다. 육사교 # 8기생으로 알고 있읍니다. 아마도 1950.6.25 동란 기간 중 소대장.중대장 시절에 겪으셨었던 고지 쟁탈전을 사단장 장군이됭러 다시 치루시느라고 큰 고통이 따랐었을 겁니다. ,,.
제가 본 느낌으로는 매우 온화하신 분인 듯하던데,,. 하기야 뭐 보병학교장이야 명예직이니,,.
역대 보병학교장들은 거의가 2star에서 진급, 3star 로 군단장 나가는 게 통상이었죠. 아마 지금도 그럴 터인데,,. 그 후 어찌되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만,,. 간부 후보생 # 230기 맨 마지;막 기수 ㅡ ㅡ ㅡ '나 민하'중위님의 고지 탈환이 기폭제가 되었을 겁니다. '이 무표'중위도 공로자고, 물론요! ///
안케님의 댓글
안케 작성일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타깝게도 정득만 전 맹호사단장님께서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월남 전사에서 최대격전지 앙케 전투에 참전한 지휘관 중에서 장군으로 승진한 분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정 득만' 장군님도 작고하셨군요. ,,. 명복이나마 비는 바이옵니다. 시간 내서 유택에 찾아봐야하겠읍니다. ,,. 고맙읍니다. ,,. 여불비례,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