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독선과 변절의 政治決算(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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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하 작성일12-05-04 19:42 조회3,657회 댓글16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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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독선과 변절의 政治決算(II)
(I) 앞부분 재록-
김영삼 정부부터 지금까지를 거쳐오면서 한국 정계는 사상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다. 이 기간 동안 容北은 從北을 낳았고 從北은 ‘유력 정치인’이라는 ‘이명박 박근혜 중도’를 낳았으며 그나마 임기 말 무렵부터 간신히 대북 중심을 어느 정도 잡아가는 이명박 대통령과도 또 달리 훨씬 더 좌측으로 기운 “박근혜 중도”가 마침내 눈 앞에 다가오는 중이며 이는 곧 국가적 재앙과 파멸을 예고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한다.
지난 1997년 대선 무렵, 애국세력들이 당시 선거 연설문에서 “이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끄는 김대중! 당신을 반드시 심판하겠다”던 애국자들은 이제 어느새 다 사라지고 세상은 이미 좌경세력들에게 장악되고 말았다.
지난 18년간의 이 시기는 권력만을 탐하는 표퓰리즘 정치꾼 무리들과, 마땅한 代案에 눈을 뜨려 하지 않는 유권자들에 의해 이 나라가 현대사에서 분명코 가장 큰 체제변동의 결정적 목표점을 향해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우울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깨어있는 이 시대 소수 知性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매우 비극적인 현실이라 믿는다. 이제 별 다른 대안 없이 망국적 시류에 휩쓸리며 놀아나는 국민성에 의해 이대로 간다면 이 나라에는 조만간 ‘연방제’라는 국체파괴(國體破壞) 행위가 ‘민족’과 ‘통일’의 이름으로 당당히 등장할 것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현실’이 된 것이다.
어둠 속의 變節
사상적 신념 변화에 의해 선택을 바꾸는 경우 우리는 이를 ‘전향’, ‘귀순’, 또는 반대편 입장에서는 ‘배신’ 등으로 부른다. 어떤 표현이든 그것은 당사자가 다른 한쪽으로의 분명한 정치적 소신변경을 의미하는 것이겠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전향도 아니고 신념의 변화도 아닌 듯이 포장하면서 양쪽을 다 아우른다는 궤변이 한국정계에 ‘중도’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으면서 시대를 농락해왔다. 이는 스파이 세계에서 ‘이중 간첩’이라 불리고 정계에서라면 ‘기회주의자’, ‘변절’ 등으로 불리어 무리 없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에게 있어서 “원칙”이란 祖國 대한민국으로부터 벗어나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되돌아보면 2002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는 박근혜 때문에 속앓이를 무척 많이 했음을 볼 수가 있으며 박근혜가 처음부터 김대중 정권으로부터의 정권교체를 진정으로 염원했다면 대선이 있던 그 해, 부질없는 분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고 불과 50만 여 표로 낙선한 이회창 후보를 볼 때 결과는 또 다를 수도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무엇으로부턴가 의도된 듯한 집요한 분란과 흠집내기가 끼친,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상처들이 모여 죽음을 부르는 법이다.
이미 다들 아는 이야기이나, 새삼 다시 돌아봄은 그만큼 이 시국이 위중하다는 이유이기 때문이며 보수에서 느닷없이 ‘중도’라는 좌익적 이념으로 변절한 박근혜가 필요에 따라 자신의 말을 자주 번복했음도 볼 수 있다. 한 개인의 정치적 욕심이 ‘원칙’이라는 修辭로 포장되어 온 왜곡의 정치사 그 가운데 한 명인 오늘의 박근혜가 있음을 볼 수 있음이다.
또다시 대선을 앞둔 2012년, 한국정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치인물 중 하나가 박근혜
의원이며 따라서 보수우익에서 어느 날 보수를 버리고 변절한 그의 지난 날 기록을 간단
하나마 이렇게 다시 되돌아 봄은 미래 선택을 위해 매우 유용한 일이라 여긴다. ‘정치인
박근혜’에 관한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던가를 독자 나름대로 판단함은
도움 되는 일일 것이다.
시작을 최태민 사망일로부터 한 것은 최태민 스토리는 박근혜 청장년기 사고형성의 단면
과 배경을 해석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기에 빼놓을 수 없는 일임을 밝
히며 시리즈는 그때부터2002년 대선까지를 (I)과 (II)로 우선 나누었다.
(이상 시리즈 I 서문 재록)
산하
<2002>
대선 여론조사 한나라 경선땐 이회창 88.4% 박근혜 5.3%/2002.1.1
한나라당 전당대회 대의원(7684명) 중 표본 추출한 5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이회창(이회창) 총재와 경선출마를 선언한 박근혜(朴槿惠) 부총재의 1대1 대결로 치러질 경우, 이 총재가 압도적 승리를 거둘 것으로 조사됐다
한나라당 경선방식 싸고 갈등/2002.1.10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내연하고 있다.
9일 총재단회의에서 전당대회 준비위원회 성격의 ‘선택 2002 준비위원회(선준위)’가 구성됐고, 위원장에 박관용(朴寬用) 의원이 선임됐지만 핵심 쟁점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첫째는 선준위에 외부인사를 참여시키는 문제다. 박근혜(朴槿惠) 부총재가 “공정 경선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이부영(이부영) 부총재가 “한 사람이라도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거들었지만 이회창(이회창) 총재는 “일단 당내 인사로 출발하자”고 했다.
선준위에서 추후 논의해보라는 것이지만 “선수가 심판까지 볼 수는 없다”(양정규·양정규 부총재)는 분위기가 주류측의 대세다.
박 부총재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당내 인사는 공천권을 가진 총재한테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이라며 “당내 인사 추천에는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권·당권 분리 등 정당 개혁 문제도 마찬가지다. 박 부총재는 총재단회의에서 “경선과 정당 개혁은 연계돼야 한다”고 말해 선준위가 대권·당권 분리 문제까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총재는 “혁신위에서 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박 부총재가 “혁신위는 공천권 갖는 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이 총재를 겨냥하자, 이 총재는 “혁신적인 내용 많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박 부총재는 기자들에게 “정당 개혁은 한나라당이 살 길로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손학규(孫鶴圭) 김원웅(金元雄) 의원도 이날 당무회의에서 선(先) 개혁을 주장했다.
선거인단 확대 등을 놓고는 더 근본적인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 이 총재측은 현재 8000명 수준인 대의원 수를 1만5000명 정도로 확대한다는 복안이지만, 박 부총재는 민주당과 같은 방식으로 국민을 참여시킨 대규모 선거인단 구성을 희망하고 있다. 선거인단 구성은 경선 후보의 득표율과 직결되는 문제로 이 총재측도 쉽게 양보할 태세는 아니다. 따라서 선준위가 구성된다 해도 이 문제를 놓고 주류·비주류간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등 “한나라 총재직 폐지” 공식 요구/2002.1.13
한나라당 이부영(이부영) 박근혜(朴槿惠) 부총재와 김덕룡(金德龍) 의원이 13일 대통령후보 경선을 위한 전당대회 이전 ‘당 쇄신’을 공식 요구했다.
이 부총재는 이날 세 사람을 대표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방선거 전에 당 지도부를 먼저 선출하고, 대선 후보는 지방선거 후에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들까지 참여시킨 가운데 선출해야 한다”고 ▲2단계 전당대회와 ▲(민주당식) 국민경선제를 요구했다.
이 부총재는 또 ▲총재직 폐지와 단일성 집단지도체 도입 ▲대선후보의 당 지도부 중복 출마 금지 ▲대의원들에 의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선출 ▲당 운영 투명화 등 모두 6개항을 요구했다. 이 부총재는 이를 전당대회 개최 방식 등을 다룰 ‘선택 2002 준비위’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총재는 이 같은 요구가 이회창(이회창) 총재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의 대책에 대해서는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에 대해 당 선준위 김문수(金文洙) 간사는 “세 분의 주장도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 총재측의 한 핵심측근은 “기술적으로도 어려움이 많고 시일도 촉박하다. 특히 지방선거를 후보 없이 치르자는 주장은 당을 무력화시켜 승리를 민주당에 헌납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총재 ‘박근혜 포용책’ 시동/2002.1.17
한나라당 이회창(이회창) 총재가 박근혜(朴槿惠) 부총재에 대한 ‘포용정책’에 나섰다.
이 총재측은 박 부총재가 대통령후보 경선 출마선언 이후, 선택 2002 준비위원회에 후보 직접 참여, 경선 출마선언과 동시에 총재직 사퇴 등을 요구한 데 대해 부정적 반응을 나타냈었다. 비공식적으로는 ‘탈당 명분 쌓기’, ‘당력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라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박관용(朴寬用) 선준위원장의 중재 아래 이 총재측은 박 부총재측 주장을 상당폭 수용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 총재는 17일 연두회견에서 경선 출마와 동시에 경선 종료 때까지의 ‘총재권한대행 임명’을 밝힐 예정이다. 이 총재는 집단지도체제 문제는 선준위의 협의에 맡기겠다는 방침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박 부총재가 요구한 ‘총재직 사퇴와 집단지도체제 채택’에 가까운 것이다. 이 총재는 또 ‘선수가 룰을 정할 수 없다’는 논리로 불가 방침을 밝혔던 후보의 선준위 참여도 받아들였다. “현실적으로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는 박 부총재 주장을 인정한 셈이다. 이에 대해 이 총재의 한 측근은 “앞으로 제기될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박 부총재와 협의해서 해결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등 비주류 3인방 “이회창 총재 정당 개혁의지가 없다”/2002.1.18
한나라당 이회창(이회창) 총재의 17일 연두기자회견에 대해서는 당 안팎으로 찬사와 비난이 엇갈렸다. 한나라당 박관용(朴寬用) ‘선택 2002준비위’ 위원장은 “차기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이 총재가 당권·대권 분리를 선언한 것은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비주류 3인방인 박근혜(朴槿惠)·이부영(이부영) 부총재와 김덕룡(金德龍) 의원은 이 총재 회견 후 긴급 회동, 이 총재의 회견에 정당 개혁의지가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공동 대응키로 했다.
한나라당, 주류·비주류 정면충돌 조짐/2002.1.19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경선제 도입, 집단지도체제 도입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한나라당 주류·비주류 간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이회창(이회창) 총재는 18일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찬회에서 “정권교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상목표”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간혹 정권교체가 중요하지 않다,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나 말이 있는데, 이는 절대로 안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총재가 전날 연두회견에서 국민참여경선제·집단지도체제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데 대해 박근혜(朴槿惠) 부총재 등 비주류가 “개혁 의지가 없다”고 반박하자, 직접 답을 준 것이다. 이 총재의 이 같은 언급에 대해 측근들은 “비주류에 대한 경고(警告)”라고 설명했다.
연찬회에서 주류측의 유한열(柳漢烈) 충남도지부장은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는 “중진들이 말을 자제해야 한다. 분란도 없는데 분란이 있는 것처럼 비친다”며 “박 부총재는 선대(先代)에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험 없는 집단지도체제는 나눠먹기식에 불과하고, 국민경선제는 난센스”라고도 했다.
비주류의 김덕룡(金德龍) 의원과 박근혜·이부영(이부영) 부총재 등은 이에 맞서 논평을 냈다. 이들은 “대통령 당선 뒤에 총재직을 이양하겠다는 것은 대리인을 총재로 지명, 공천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나라당이 어느 개인의 사당이 아닌 만큼, 이 총재는 국민과 당원의 정당 민주화와 개혁 요구를 무시하지 말라”고 말했다.
실제 이 문제를 논의한 선택 2002 준비위원회는 국민경선제 도입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국회의원과 지구당위원장을 상대로 한 선준위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122명 중 83명(68%)이 국민경선제에 반대해 앞으로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설문조사 결과, 지도체제는 현행의 총재·부총재 단일지도체제 선호가 77명(63.1%), 집단지도체제가 32명(26.3%)으로 나타났다.
큰소리 박근혜 “합의제운영 안되면 선준위서 빠지겠다”/2002.1.22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부총재는 21일 기자들과 만나 “정치개혁과 변화를 위해 국민경선제 도입과 공정하고 공명한 경선을 요구했는데도, 당이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경선을) 간다면 경선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박 부총재는 또 전당대회 시기와 방법 등을 논의하는 ‘선택 2002 준비위원회’(선준위) 운영방식과 관련, “합의제가 관철되지 않으면 (선준위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야 간의 선거법 협상도 합의제로 처리하는데, 경선의 룰을 정하는 선준위를 합의제로 운영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주류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선준위에서 3분의 2 찬성식으로 한다면 결과가 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민참여 경선’ 합의, 야, 비주류요구 일단 수용/2012.1.23
한나라당 전당대회 준비기구인 ‘선택 2002 준비위원회’(선준위)가 22일 ‘국민참여’ 대통령후보 경선 원칙에 합의한 것은 당내 비주류들의 끈질긴 요구 때문이었다. 비주류인 박근혜(朴槿惠) 부총재 등은 국민경선제 도입을 강력히 촉구했다. 특히 박 부총재는 ‘선준위 탈퇴’라는 배수진을 쳤고, 선준위도 이 같은 주장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현실적 고려 끝에 ‘국민참여’ 원칙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선준위가 국민들의 경선참여원칙에는 합의했으나, 그 방식을 둘러싸고 주류·비주류간의 힘겨루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총재 “국민경선제 수용 검토” 연찬회서 도입 논의
박근혜부총재 퇴장사태/2002.2.2
한나라당은 1일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찬회를 열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대의원 외에 일반 국민을 포함시키는 국민경선제 도입 문제를 논의했다.
모두 21명이 발언에 나선 연찬회에서 이성헌(李性憲)·김홍신(金洪信) 의원 등 5명이 지지 기반 확대, 시대적 요구를 이유로 국민경선에 찬성했을 뿐 16명은 경비 과다, 기존 당원의 반발을 들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박근혜(朴槿惠) 부총재는 연찬회 도중 “정당개혁의 핵심 사항인 국민경선 도입을 세몰이식으로 부정하려는 모임에는 더이상 참여의 의미가 없다”며 퇴장했다. 박 부총재는 ‘이 총재에 대한 선전포고로 봐도 좋은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봐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발언을 경선 포기, 나아가 탈당과 연결시키는 시각에 대해서는 끝내 가부(可否)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
박근혜 “이총재 이달내 경선안 밝혀라” 선준위·총재단회의 불참/2002..2.4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부총재는 4일 경선 문제를 다루는 당 공식 기구인 ‘선택 2002준비위원회’에 불참했다. 박 부총재는 이날 오전 총재단회의에도 선약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박 부총재는 기자들과 만나 “선준위에는 내가 제안하는 안(案)에 대한 찬반토론밖에 없다”며 “이회창(이회창) 총재도 경선에 나갈 것이 확실한 만큼, 정당개혁과 경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여론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부총재는 “무작정 끌 수 없는 만큼 이 달 안으로 이 총재가 안을 내야 한다”며 “선준위에는 그 때 다시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한나라 경선방식 확정 “당무회의 통과 지켜볼것” 박근혜 불참할 뜻 내비쳐/2002.2.16
한나라당 전당대회준비기구인 ‘선택 2002 준비위원회’(선준위)는 15일 대통령선거 후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고, 대선후보 선거인단을 모두 4만5000명으로 하되 대의원·일반 당원·국민을 각각 1만5000명씩 참여시키기로 최종 확정했다.
박근혜(朴槿惠) 부총재는 “선준위 안이 총재단 회의와 당무회의를 통과할 때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기다리겠다”며 “경선에 들러리를 서지는 않겠다는 입장은 확고하다”고 말해 자신의 입장이 끝내 반영되지 않을 경우 경선에 불참할 뜻을 강력히 내비쳤다
박근혜부총재 ‘이총재 양보안’ 수용거부 /2002.2.20
한나라당 이회창(이회창) 총재가 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으로 박근혜(朴槿惠) 부총재를 찾아가 30여분간 단독으로 만나 대선후보 국민경선제에 관한 자신의 양보안을 수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총재는 이어 이부영(이부영) 부총재와도 만났다. 직접 비주류 설득작업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이 총재는 이날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선거인단을 대의원 1만5000명, 일반당원 1만명, 일반국민 중 모집한 당원 2만5000명 등 5만명으로 구성하고 ▲대통령 선거 후~대통령 취임 전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한다는 양보안을 마련한 뒤 박 부총재를 찾아갔다. 선거인단 중 일반 국민 비율을 50%로 확대한 것은 박 부총재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고, 집단지도체제 조기 도입도 박 부총재 주장에 다가간 것이라, 일응 박 부총재의 ‘수용’을 기대한 것이다. 이 총재는 이날 한나라당 전당대회 준비기구인 ‘선택 2002 준비위원회’의 박관용(朴寬用) 위원장으로부터 박 부총재 주장을 거부하는 안(案)을 보고받았으나, “박 부총재의 안을 최대한 수용하는 선에서 마무리하자”며 양보안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박 부총재는 “대선 전에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해야 하며, 당장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와 총재의 중복출마를 금지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 총재의 양보안도 거부했다.
박 부총재는 “이 총재는 일사불란한 지도체제를 갖춰야만 대선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다며 경선참여를 부탁했지만, 이는 정당개혁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서로의 입장차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박 부총재는 이 총재의 양보안에 대해서도 “당 선준위안을 하루 만에 뒤집은 ‘제왕적 총재’의 모습”이라고까지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20일 총재단회의와 당무회의를 잇달아 열어 선준위안을 최종 추인할 계획이지만, 박 부총재는 “선약이 있다”며 회의에 불참할 뜻을 내비쳤다.
이 총재측은 “최선을 다해 설득한 만큼 일단은 박 부총재의 태도를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부영 부총재 역시 이 총재의 양보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총재는 김덕룡(金德龍)의원과도 만나자고 요청했다.
“
박근혜, 한나라당 탈당/2002.2.28
요것도 가지고갑니다
commonsense님, 글 더 올리기도 귀찮아서 그냥 둡니다^^
그럼 3으로해서 더 올리면 되지 않겟습니까
더 올려봤자 찬밥일테고,,여기 박빠님들 겁이나서 도무지,,,^^
산하님! 오랫만에 글로 뵙게 됩니다! 존경하는 산하님! 박근혜에 관한 두건의 게시글, 사실에 근거한 글로 동의 합니다. 저는 산하님과 논쟁을 하고싶은 맘은 없습니다 .제가 아는 자료와 상식선에서 한 말씀 드립니다. 사람을 평가할땐 특히 정치인이나 위정자 같은 인물을 평가내지 검증의 사실을 밝힐땐 한 단면만을 보고 편협적으로 단죄하는게 옳은 일은 아닌줄 압니다.
시스템클럽에서 들이댈 수 있는 功過의 잣대는
보수우익의 운명을 좌우할 주요 인물에 대해서는
나는 나스스로를 극보수로 자부한다 1992년 대선에는 김영삼에게 걸었다. 1997년 대선에는 이회창에게 2002년대선에도 이회창에게 2007년에는 이명박을 찍었다. 2012년에 박근혜는 절대 안찍는다 타당은 물론이고 대권이 좌쪽으로 넘어가도 안찍는다
ㅋㅋㅋ... 제대로 웃고 갑니다.... 보수도 독이 오르면 무서워질 수가 있지요...
저는 우일하게 대통령 만든 사람이
common sense1님.
장학포님, 거북선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산하님, 자장면 좋지요...
아 그러시군요, 무슨 '정치모임'으로서 의미한건 아닌데,,
산하님 알겟습니다
댓글목록
산하님의 댓글
산하 작성일
이 다음 부분부터가 글이 오르질 않습니다.
아마 내용이 너무 길어서인듯.. commonsense1님의 댓글
commonsense1 작성일
산하님의 댓글
산하 작성일
commonsense1님의 댓글
commonsense1 작성일
산하님의 댓글
산하 작성일
별 의욕이 안납니다. 장학포님의 댓글
장학포 작성일
이승만대통령과 박정희대통령의 공과도 있듯이 형평에 맞는 평가가 우리 국익에 맞는 일이라 믿습니다.박근혜의 단점만을 고르겠다면야 할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곳 시스템클럽이란 곳에 님과 제가 함께 몸을 담고 있지만 글 게시의 형평성과 적절성이 아쉽군요!
제가 박근혜를 마냥 두둔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박근혜가 님이 게시한 글대로 매우 적절치 못한 처신을 한것은 동의합니다.그러나 "과(過)"에 못지않은 공( 功)도 부인할수 없지 않습니까?
박근혜의 공(功)은 대권욕심의 발로에서이건 뭐건간에 당역사상 의 사건인 "천막당사"에서 당을 구한것이고 그리고 이번의 "4.11총선승리"라는 사실관계는 부정할수가 없지 않습니까? 두 공과를 한꺼번에 올려놓고 게시헸으면 더욱 좋았을것입니다.
저의 소견입니다만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경기병님의 댓글
경기병 작성일
역시 보수 강화냐 보수 해체냐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글의 흐름으로 보아 산하님은 박근혜라고 하는 정치인을
보수 해체 쪽으로 평가의 관점을 잡으신 것 같습니다.
보수인으로서의 신념을 가지고 올리는 글에 반론의 글이라면 몰라도
이래라 저래라 불필요한 간섭은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명색이 토론방인데...
더욱이 아이들이 글 장난 노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경기병님의 댓글
경기병 작성일
보다 날카롭고 심도 있는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거북선님의 댓글
거북선 작성일
경기병님의 댓글
경기병 작성일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노태우 한사람 뿐입니다
그 당시에 소위 양김이라는 사람들의
서로 먼저 해야겠다고 다투는 게 싫어서....
영삼이 때는 정주영이를 찍어줬구요
대중이 때는 이회창이를 찍어줬지요.
그 이후로는 쭈욱 역시 이회창씨를 밀어줬더랬지요
그 전에야 요즈음 하는 시쳇말로 체육관 대통령이었으니
드릴 말씀은 없구요 산하님의 댓글
산하 작성일
전체를 보시고자하면 폴리뷰에 올렷으니 보시도록 하시고요^^ 산하님의 댓글
산하 작성일
경기병님의 댓글
경기병 작성일
하지만 저는 사조직(?) 활동은 하지 않습니다...^^
건필을 바랍니다. 산하님의 댓글
산하 작성일
저는 좋은 분들과 인간적 교분 가지는걸 좋아해서,,
어쨌건 그럼 위에 저 글은 삭제할께요^^ commonsense1님의 댓글
commonsense1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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