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입’으로 통하는 이정현 의원이 충성스런 ‘입심’을 또 한 번 여지없이 발휘했다. 대선출마 선언 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정몽준 전 대표를 향해 "2002년 노무현 정권의 탄생을 위해 했던 역할과 기여를 당원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대선에서 국민통합21의 대선후보였던 정 전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단일화를 추진해 결과적으로 옛 한나라당에게 대선 패배를 안겼다는 것이다.
이 의원의 이 주장은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당시 자신의 높은 지지율을 믿고 정 전 대표는 가능성이 희박한 한나라당이 아닌 새천년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를 시도했고,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노 정권 탄생에 일조했다. 연거푸 정권창출에 실패한 한나라당과 지지자들로서는 뼈아픈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정 전 의원의 당시 판단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비록 노무현 세력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성급한 판단과 욕심으로 노 후보와 손잡고 결과적으로 일을 (보수우파적 관점에서) 그르쳤지만, 대권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당시 대중의 높은 지지를 받았던 정 전 대표가 정치인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었을 것이다. 이런 그의 선택을 국민들은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지만 그러나 박 위원장만큼은 비판하기 어렵다고 본다. 한나라당 소속도 아닌 다른 당 소속 대권후보였던 정몽준 후보의 정치공학적 판단으로 막판 노 정권 탄생에 기여했다면, 박근혜 위원장은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면서 내부에서 끊임없이 이회창 총재를 흔들어대며 경쟁력을 약화시켰던 주범이었기 때문이다.
2002년 박근혜 ‘제왕적 부총재’로 이회창 ‘제왕적 총재’ 이미지 낙인찍어
좀 더 냉정하고 직설적으로 얘기해보자.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 중 과연 어느 쪽이 정당하지 못한 비열한 행태인가? 당시 정몽준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 지지율 선두를 다투는 경쟁자였다. 당연히 ‘외부의 적’이었다. 2002년 대선 패배의 책임을 당시 ‘외부의 적’ 위치에 있던 정 전 대표에게 몽땅 뒤집어씌우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당시 대세론에 안주하며 무능과 나태함의 극치를 보여주던 한나라당 내부자들과 또 대선보다는 이회창 이후 당권을 노리며 끊임없이 昌 흔들기에만 주력했던 박근혜 부총재 등 일부 계파세력의 권력다툼, 이런 ‘내부의 적’들의 책임을 먼저 묻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제왕적 총재는 제왕적 대통령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총재체제 때문에 권력형 비리가 난무하고 민생의 정치가 아니라 투쟁의 정치가 되고 있다” “이회창 총재가 제왕적 프리미엄을 그대로 갖고 나머지는 들러리를 세우겠다는 것” “제왕적 총재 폐지 등 개혁 요구가 당장 수용돼야 한다” 2002년 당시 언론보도에는 박 위원장이 이렇듯 이회창 총재를 ‘제왕적 총재’로 낙인찍었던 증거가 무수하게 많다. 당시 동아일보 2월 4일자 기사 ‘박근혜 경선불참설 양론 "제왕적 부총재냐" "탈당 안돼"’를 보면 박 위원장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강창희 부총재는 “소수 의견이 너무 강하게 반영된다”며 박 부총재를 비롯해 당내 반이회창 세력의 과도한 요구조건을 지적했고, 한 당직자는 “제왕적 총재를 없애자면서 정작 자신은 제왕적 부총재처럼 행동한다”면서 이회창 총재를 압박하는 박 부총재의 기세를 이처럼 표현해 비판했다. 끌려다니던 이 총재가 국민참여경선 조건 등 박 부총재의 요구조건을 상당히 받아들였는데도 그해 박 부총재는 아랑곳없이 탈당해버렸다. 대선의 해에 당내 민주화 명목으로 대선주자를 실컷 흔들어놓고, 게다가 자신의 요구가 100%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선 코앞에서 탈당하고 신당을 차린 것이다. 이런 것이 해당행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해당행위라 불러야 하나?
박 위원장의 당시 위세에 대해 세계일보는 3월 23일자 칼럼에서 ‘제왕적 이사장’이란 표현도 썼다. 당시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겸직하며 거액의 보수를 받았던 행태를 지적하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박 의원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를 ''제왕적 총재''라고 비난했다. 그런 박 의원은 2000년 직원 상여금을 절반 삭감하면서 자신의 보수는 연간 2억5350만원으로 두배 인상했다 한다. 자칫 ''제왕적 이사장''이란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이사장 보수는 불우학생 100명에게 매년 장학금을 줄 수 있는 규모"라는 직원의 개탄이 들린다.”
97년 이인제 경선불복 탈당 해당행위, 2002년 박근혜 탈당 행위 사실상 똑같아
2002년 당시 약간의 언론보도만을 살펴봐도 당시 박근혜 부총재의 이회창 총재 흔들기는 과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전력을 가진 박 위원장이 현재 정몽준, 김문수 등 다른 대선주자들의 몇 마디 비판에 발끈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회창 총재를 ‘제왕적 총재’로 낙인찍는 것은 좌파세력, 반대세력만이 아니었다. 내부에서 이 총재 이마에 ‘제왕적 총재’ 라는 이미지를 낙인찍고 고착화시키는데 앞장선 것은 다름 아닌 박 위원장이었기 때문이다. 실체보다 과장된 이런 이미지는 그가 2002년 대중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한 주요 원인이 되었고, 이회창 정치 인생 내내 따라붙었던 이미지다. 이회창은 일종의 피해자인 셈이다.
현재 친박지지자 일부가 정몽준 전 대표, 김문수 지사를 이인제 의원에 비유하는 것 같다. 이인제 의원이 97년 당내 경선에 불복해 탈당, 결과적으로 김대중 당선에 기여했던 사실을 들어 두 사람의 박근혜 비판행위를 꼬집은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처럼 박근혜 위원장이야말로 당시 이인제 의원의 경선불복 탈당 행위보다 더 정밀하고 교묘한 해당행위로 내부분열을 주도해 결과적으로 이회창 낙선, 노무현 당선에 기여했다.
‘박근혜의 입’이란 사람들과 지지자들이 과거 한나라당 실패를 정몽준 등 ‘외부’로 돌리는 것은 염치가 없는 짓이다. 더더군다나 이인제의 경선불복 탈당 사례를 현 다른 대선주자와 비교하는 것도 당치 않다. ‘내부의 적’ 역할을 톡톡히 하며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권 탄생에 일조한 2002년 박 위원장이야말로 97년 대선실패의 한 원인이 됐던 이인제 의원의 사례와 똑같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을 아끼는 이들이야말로 이런 명확한 역사적 진실을 알고 박 위원장에게 충언해야 한다. 과거의 한나라당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보다 넓고 깊게 다른 세력을 포용하고 아끼라고 말이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hanmyoung@emaps.com) - 트위터 주소 : https://twitter.com/phm56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