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좋은 머리를 이렇게 써 먹는구나[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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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12-04-08 02:14 조회6,7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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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은 머리를 이렇게 써 먹는구나
1972년 4월20일
수색중대는 638고지를 2차 공격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았다.
지난 4월16일 새벽 특공대로 차출되어 638고지로 올라갈 때,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거추장스럽다고 버렸던 불필요한 보급품과 638고지 1차 공격할 때, 불가항력으로 소모된 보급품을 다시 지급 받았다.
그리고 “물을 지급받기 위해 물을 공수해 오는 보급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물 보급 헬기는 끝내 오지 않았다.
항공폭격을 638고지에 무지막지하게 하였다.
적들이 점령해 있었던 638고지는 초토화 되었다.
한시 바삐 638고지를 공격해 올라가서 점령해야 된다.
시간이 없다.
상부에서는 638고지를 공격하라는 독촉이 득달같았다.
그러면서 상부에서는,
“물 보급 없이 그냥 출동하라는 명령이었다.”
수색중대장 이하 중대원들은 물 보급 없이는 죽어도 출동할 수 없다고 하면서 버티었다.
아무리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이지만 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정하고 매정한 지휘관, 자신들은 상황실 벙커 안에 햇빛 피해 앉아있으면서 이 무더운 열대야 날씨에 물 보급도 없이 전쟁터로 내 몰다니!
“자기 목숨 아니라고 우리를 마치 파리 목숨취급하다니!”
중대원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원망을 쏟아내었다.
한창 원망스런 얼굴로 부어있을 때였다.
‘이때 어디서 물을 구입했는지?’
상황실에 있는 상황 병이 20리터짜리 물 한통을 가지고 왔다.
이 물은 상황실에 있는 지휘관들이 비상용으로 사용하려고 아껴 두었던 물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엄청나게 생색을 내었다.
수색중대장은 어쩔 수 없이 출동준비 명령을 전 중대원들에게 내렸다.
수색중대장은 이 물 가지고는 전 중대원들에게 나누어 주기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첨병 분대에게만 지급한다고 하였다.
638고지 1차 공격 당시, 맨 후미에서 두 번째로 나갔던 권 준 병장은 순번에 따라 부 첨병이었다.
맨 후미에 따라왔던 최 지원 병장은 첨병을 설 차례였다.
그런데, 막상 첨병을 서야 하는 최 지원 병장이 첨병을 설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숨 막히는 치열한 전투 중에서도 언제 준비했는지!’
위생병의 소견서를 제출하면서 몸이 많이 아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첨병은 다음 작전으로 미루어 달라는 것이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와 똑똑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최 지원 병장은 한때 학생운동에 빠져들어 동지들로부터 배신자와 중정 프락치로 의심을 받고 월남으로 오게 되었다.
지금 이 치열하고 처절한 앙케 전투에서 살아남아 홀어머니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고국으로 돌아 갈 수 있을지?
아니면!
여기에서 전사하여 뼛가루로 화장되어 동작동 현 충원 국립묘지에 안장 될지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 당시 638고지 큰 바위 밑에서는, 권 병장도 눈시울을 적시며 숙연해져 동정을 하였다.
하지만,
오늘 이 결전의 순간에 미꾸라지처럼 혼자 궁색한 방법으로 모면하려고 하는 비열한 모습을 보니 메스꺼워져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 똑똑하고 명석한 머리를 이렇게 비굴한 방법으로 써 먹는구나 생각하니까.
총으로 쏴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자,
분대장 김 종일 하사도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권 병장이 첨병을 서야 되겠다고 했다.
권 병장은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권 병장은 너무나 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에 더욱 더 마음이 무겁고 불안하여 견딜 수 없었다.
문득, 어떤 전쟁영화 한 장면이 머리에 떠올랐다.
전쟁 중에 한 병사가 손목시계를 손목부터 어깨까지 양 쪽 팔에 꿰어 차고 전사하는 장면이 불쑥 생각났다.
전쟁터에서도 남의 물건에 욕심을 부리거나 비굴하게 혼자만 살려고 꽁무니를 빼면 죽는다는 교훈처럼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했다.
권 병장은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며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절망감으로 두려움과 공포감이 밀물처럼 엄습해 왔다.
첨병은 적들이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에 전사하거나 전상당할 위험이 가장 높고, 정글 속을 헤치고 제일먼저 전진해 나가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관계로 피보다 귀한 물 세 수통을 지급 받았다.
이번 2차 공격코스는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후문과 638고지 사이 능선을 따라 직진하여 638고지로 진격해 들어가서 좌측에 있는 무명고지로 공격해 들어갔던 1차 공격 때와는 다른 공격코스였다.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후문과 638고지 사이에 있는 능선에서 좌측에 있는 깊은 계곡으로 내려간 다음, 다시 무명고지로 올라가서 공격목표지점인 638고지로 올라가는 퍽 고된 작전이었다.
좌측에 있는 작은 무명고지 목표지점을 향해 정글 속 가시덤불을 헤치며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는 작전으로 앞으로 전진 하였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였다.
이때 저 밑에서 불길이 타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그 푸른 울창한 숲이 포탄을 맞고 불이 붙어 저 밑에 있는 19번 도로 쪽에서 638고지 쪽으로 화염과 연기를 내 뿜으면서 바람을 타고 불이 계속 타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엄청난 열과 연기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하늘에서는 이글거리는 뜨거운 태양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을 태우듯 뜨거운 열을 내 뿜으면서 수색 중대원들을 괴롭혔다.
글자 그대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와 불지옥을 연상케 했다.
권 병장은 물 한 수통을 아끼지도 않고 단숨에 벌컥벌컥 다 마셔 버렸다.
다른 작전 같으면 물을 무척이나 아껴 먹는다.
목으로 넘기지 않고 입속에 머금고만 있다.
다음 보급헬기가 보급품을 싣고 올 때까지 물 한 수통은 비상용으로 남겨놓는 것이 철칙인데, 이앙케 전투에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물을 아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 몇 초 사이에 생과 사가 갈리는 전쟁터였기에, 혹시 죽더라도 피보다 더 귀한 물이라도 실컷 먹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에 한 시간도 안 되어서 가지고 있던 물 세 통을 다 마셔 버리고 말았다.
첨병인 권 병장 뒤를 따라오는 중대원들은 물 한 모금 못 먹은 상태라 더욱 더 견딜 수 없는 갈증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권 병장은 뒤 따라오는 중대원들보다 물을 세 통이나 더 많이 마셨는데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입에 침이 다 말라붙고 있었다.
이른바, ‘피의능선, 죽음의 고지’라고 불렀던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638고지 좌측에 있는 무명고지 뒤쪽 목표지점을 향해 첨병과 첨병분대가 통과하였다.
첨병소대가 통과할 즈음, 638고지 8부 능선에서 월맹군들이 기습공격을 해 왔다.
수색 중대원들은 침이 말라붙는 심한 갈증에 너무나 지치고 기진맥진해서 그 자리에서 일어 설 힘조차 없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린 채 무아지경 속에서 반사적으로 사격만하며 버티었다.
저 아래쪽으로부터 화염과 연기가 바람을 타고 계속 불이 타 올라오고 있었다.
638고지 8부 능선 위에서는 월맹군들이 A K-47자동소총을 쏘며 기습공격을 해 오고 있는 터라 사면초가 신세가 된 수색중대는 한 가운데서 완전 포위되다시피 된 상황이었다.
완전히 퇴로가 막혀버려 진퇴양난이었다.
이 순간 어떻게 모면해야 될지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막막한 절망뿐이었다.
이제는 저승사자가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휘여 잡는 것 같았다.
수색 중대원들은 일어서지도 못하였다.
사면초가 된 중대원들은 기다가 뒹굴면서 이 생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치며 안간힘을 다 하고 있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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