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작전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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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12-03-12 00:10 조회8,577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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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작전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이 길이 이승에서 마지막 길이라고 생각하니, 특공대 임무수행에 회의감이 몰려왔다.
올라가고 싶지도 않고 두렵기도 하였다.
다시 한 번 월남 땅에 발을 디딘 게 정말 후회막급이었다.
어느 정치인의 말과 같이 자의 반 타의 반, 목숨은 운명에 맡기기로 하였다.
‘까짓것 될 대로 되겠지’
‘어차피 인생은 한 번 살다 가는 것이다.’
‘여기서 죽으나 고국에서 죽으나 언젠가는 한 번은 죽어야 하는 목숨, 이왕이면 멋지게 죽자’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차출된 특공대원들은 무거운 발길을 638고지를 향해 억지로 옮겨 놓고 있었다.
이 길은 이제 모면할 수 없고, 벗어 날 수도 없는 우리들의 기구한 운명의 길인 것을 …….
수색중대가 있는 무명고지에서 638고지에 있는 적들의 벙커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250-300m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었다.
짙은 새벽안개가 주위를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뿌옇게 끼여 있는 저승길로 들어가는 관문에 서있는 심정이었다.
특공대원들은 발걸음이 무거워 자주자주 쉬면서 638고지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가슴에 밀려오는 열패감에 젖어 인생의 덧없음을 맛보는 것 같기도 하였다.
특공대장 김 종일 하사를 비롯한 특공대원들은 잔뜩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모두들 아무 말 없이 약 5m쯤 올라가다가는 앉아 쉬었다. 다가오는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일, 이 길로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죄지은 것도 없는데 무슨 죄목으로 이곳 저승으로 데려왔느냐고 따지고 들며 우리는 너무 억울하다고,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호소라도 하기 위해 당신의 구면 업경에 비춰보시라고 간청해볼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죄지은 것이라곤 이곳 월남 땅에서 적에게 총구 겨눠 피 흘리게 한 죄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
억지로 일어나서 몇 발자국 올라가다가 또다시 앉아 쉬었다. 수통에 물을 마셨다. 그들은 단순히 목이 타 들어와서가 아니었다.
죽음을 향하여 서서히 내딛는 발걸음이 특공대원들을 갈증 나게 했을지 모른다.
멀리 뒤처져서 억지로 따라 올라가던 김 영진 병장의 뇌리에, 그때 그 사건이 자꾸만 클로즈업 되어왔다. 저 위쪽에 도사리고 있는 적들의 벙커 앞에 접근하게 되면 놈들의 기관총에 자신의 몸뚱이가 벌집이 될 것 같은 두려운 환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른 곳으로 도망을 쳐 버릴까?'
‘여기서 도망을 친다고 해서 살아남을 보장이 있을까?'
‘아니야! 재수 없으면 적들에게 포로가 되어 북한으로 끌려갈지도 몰라!'
김 영진 병장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상념이 다 떠올랐다.
자신을 괴롭혀 오는 통에 갑자기 온 몸에 현기증을 일으키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왔다.
그는 땅에 철석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겠어!”
“나는 죽어도 못 가겠어!”
지금까지 못된 짓과 지은 죄가 엄청나서 저기에 올라가게 되면 틀림없이 그 죗값으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그는 겁에 질려 울먹이면서 올라가지 않겠다고 꽁무니를 빼려 했다.
이때였다.
맨 후미에서 뒤 따라가던 권 병장도 김 병장 옆에 가서 주저앉았다.
“그럼 올라가지 말자”고 맞장구를 쳐 보았다.
“그래! 무슨 죄를 그리도 많이 지었기에 김 병장 너 답지 않게 이렇게 약한 소리 해가며 사시나무 떨듯이 공포에 떨고 있느냐?”
“사실은 이승에서 못된 짓을 많이 한 꼴통들과 말썽꾸러기들은 저승으로 빨리 데려가지 않는다고 하더라.”
“왜 그런가하니, 못된 짓을 많이 한 꼴통들과 말썽을 부리던 중생들을 저승에 데려다 놓으면 저승에서도 이승에서 하던 못된 짓과 말썽을 피우던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목격한 염라대왕이 저승사자에게 엄명을 내렸다.
다시는 저런 못된 짓을 많이한 꼴통들과 말썽꾸러기들은 젊은 을 때는 절대 데려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늙어서 힘없을 때 데려와야 조용할 거라고 하였다. 때문에 못된 짓을 많이 한 젊은 중생들은 절대로 죽지는 않을 거라고 하였다.”
“그 무슨 못된 짓과 꼴통 짓을 얼마나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김 병장 너도 젊었으니까 이번에는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고 위로를 하였다.”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새빨간 거짓말로 위로를 하는데 넘어가, 이 새빨간 거짓말이 진실인 줄 알고
금방 생기가 돌며 안심을 하는 순진함을 보였다.
“빨리 따라 올라오지 않고 여기서 뭣하고 있어!”
먼저 올라갔던 특공대장 김 종일 하사가 되돌아 내려오면서 짜증스럽게 역정을 냈다.
김 병장이 무슨 말인가 대꾸하려고 할 때, 옆에 있던 권 병장이 얼른 말을 가로막으며 김 병장이 배가 아파 설사가 심하여 대변을 자주 보는 바람에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고 슬쩍 둘러댔다.
그 이후부터는 특공대원들 중, 한 명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행동을 같이 했다.
어차피 죽음을 같이 맞이할 운명 공동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서일까?
김 병장과 권 병장은 설사 핑계를 대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서 이승에서 생명을 부지하는 시간을 연장해 보려는 듯 몸부림을 쳐 보았다.
하지만, 이승에서 저승문턱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흘러, 벌써 638고지 8부 능선에 이르렀다.
어느덧 새벽의 짙은 안개는 환히 걷히고, 뜨거운 햇살이 특공대원들 머리위에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이 숨을 죽여가면서 적들의 벙커 앞 약 30m까지 접근하였다.
숲 속에서 적의 동태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적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적들의 벙커만 입을 딱 벌린 채, 음흉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공대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아무도 더 이상 전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로들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특공대장 김 종일 하사가 뒤로 물러서라는 수신호에 따라 대원들은 뒤로 약 20-30m 쯤 물러섰다. 특공대원들은 작전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모두 말없이 서로 끔벅끔벅 눈치를 보며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
“좋은 의견이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말해봐 했다.”
특공대장 김 종일 하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나지막한 소리로 무슨 묘안이 없느냐고 물었다.
“지금 공격하면 성공하기 어려운 게, 이 처럼 밝은 대낮에 적들의 벙커에 가까이 접근하면 쉽게 발각될 것은 불을 보듯 번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임무수행도 달성하기 전에 적들에게 발각되어 개죽음만 당할 게 분명해”
권 병장이 망설이다가 어렵게 말했다.
지금까지 특공대를 수십 차례 보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모두 다 실패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특공대원들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전철은 밟지 말자고 하였다.
그러면서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밤에 공격하는 것이 좋겠다.” 고 하였다.
권 병장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김 종일 하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동의하였다.
그러면서, 공격 지연작전에 대한 모든 책임은 특공대장인 자신이 다 지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의 두둑한 배포와 리더십에 특공대원들은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순순히 명령에 따랐다.
결국, 제2소대 특공대원들의 생명은 오늘 밤까지는 연장되는 셈이었다.
지구의 적도에 가까운 베트남의 하늘에서는 이글거리는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에 바짝 달구어진 대지에서 올라오는 지열에다 638고지 8부 능선은 그늘이 없는 소 정글이라, 정오의 태양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야 할 만큼 견디기 어려웠다.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사실은 출발 할 때 가지고 온 물도 벌써 다 떨어졌다.
목과 입술이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견딜 수 없는 갈증으로 수색중대 제2소대 특공대원들은 쓸데없는 체력소모를 하지 않으려고 꼼짝없이 숲 속에 가만히 드러누워만 있어야 했다.
더군다나, 자꾸 움직여서 땀을 많이 흘리게 되면 갈증이 더 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움직이지 않고 숲 속에 가만히 드러누워 있는 게 제일 상책이라고 본 것이다.
- 계속 -
댓글목록
새역사창조님의 댓글
새역사창조 작성일결정적 순간에 판단을 잘 한 것 같습니다.
안케님의 댓글
안케 작성일
새역사창조님 댓글 감사합니다.
어느 전자제품 광고에서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 한다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특공대들은 순간의 판단이 평생을 좌우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onsense1님의 댓글
commonsense1 작성일잘 읽었습니다 추천!
안케님의 댓글
안케 작성일
commonsens님 댓글 감사합니다.
추천도 고맙습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람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