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 미디어워치 기자
우파가 정치·이념적으로 분화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과거 한나라당의 우파 정체성을 사실상 포기하고 친박 성격의 협소한 정당으로 탈바꿈하자 더 이상 우파세력의 광범위한 욕구를 담아낼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구체적 계기는 새누리당 공천갈등에서 비롯됐다. 이번 공천이 과거 ‘친박 학살’에 대한 보복공천이자 박근혜 비대위원장 대권가도를 위한 사심공천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친이계 공천탈락자들을 중심으로 신당 필요성이 적극 대두되고 있다.
진성호 새누리당 의원은 8일 “새롭게 정치를 하겠다는 명분만 선다면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신당 창당을 강력 시사했다. 진 의원은 이날 오전 SBS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 출연,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있다. 다음 주에는 진도가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며 “박근혜 위원장이 사적인 공천을 하기 때문에 반발이 많다. 이제는 단순히 공천반발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진 의원은 이어 “새로운 정치세력이 탄생하는 데는 명분이 중요하다”며 “생각이 맞고, 명분이 있는 현역의원들이 굉장히 많다. 이런 분들이 모인다면 원내교섭단체 수준까지도 세력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무소속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무소속 연대는 힘이 약할 것”이라며 “신당 같은 정치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특정정당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간은 충분히 있다”며 “이제는 마음을 열고 한번 새로운 정치를 하고 싶은 분들과 함께 손잡고 새로운 정치세력을 등장시킬 때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정가에서는 공천 탈락한 친이계 세력이 모여 신당을 창당할 경우 만만치 않은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의 거취 여부에 따라 신당 영향력이 극대화 될 수도 있다. 이 의원은 현재 공천을 받았지만 당 공천위를 향해 각을 세우고 있고, 최종입장은 공천 발표가 완전히 끝난 후 밝히겠다며 여지를 남긴 상태다.
친이계가 신당을 만들 경우 친이계 구심점인 이재오 의원이 상황에 따라 신당 중심축으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친이계 중심 범우파 신당이 나오면 당에 남아 있는 친이계가 총선 전후로 합류해 새누리당은 사실상 분당 수준의 세력 분화가 일어날 수 있다.
조갑제 “새누리당, 행동적 보수 인사 배제를 신념으로 삼나”
우파세력의 분화 모습은 계파 기준으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념에 의해서도 갈라지고 있다. ‘우파의 아이콘’을 자처하며 이념 최전선에서 좌파와 싸워온 전여옥 의원은 9일 새누리당 탈당과 함께 국민생각 합류를 전격 선언했다.
전여옥 의원이 이날 내세운 탈당 명분은 이념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새누리당은 보수를 버렸고, 이번 공천은 완벽한 보수학살극”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또 “제주해군기지가 해적기지가 되도록 만들 수 없고, 한미FTA를 지키기 위해 탈당하는 것”이라며 “또한 우리 아이들을 전교조의 인질로 둘 수는 없고, 포퓰리즘과 맞서기 위해 일해야 할 때라고 결단했다”고 강조했다. 그런 판단에서 나온 선택이 국민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박세일 신당’으로 불렸던 국민생각은 당초 좌우를 아우르는 합리적 진보와 보수를 표방했지만, 좌파진영 인사였던 장기표 전 공동대표와의 결별로 사실상 중도우파정당으로 당 정체성을 가닥 잡았다. 박세일 대표는 현재 안상수 전 새누리당 대표,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 친여권 인사와 구(舊)민주당 우파 성향 인사 영입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전여옥 의원 합류는 그간 정체돼 있던 국민생각 인물 영입작업에 물꼬를 트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된 셈이다. 그간 명분과 의욕에 비해 다소 미미한 존재감에 그쳤던 국민생각은 이날 전 의원의 입당 선언으로 당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포털사이트에서는 각종 관련 기사가 오르내리는 등 폭발적 관심을 불러 모았다. 전 의원 단 한명의 참여로 단숨에 인지도를 급상승 시킨 셈이다.
게다가 전 의원은 각종 집회와 토론회 등 활발한 소통을 통해 정통우파세력의 고른 지지를 얻고 있다. 전 의원이 합류함으로써 국민생각은 정통우파세력의 관심과 지지를 받을 중요한 계기도 마련하게 됐다. 실제로 전 의원 입당 소식이 전해지자 트위터 등에서는 국민생각을 지지하겠다는 글과 호기심을 보이는 글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정통우파진영 중심인 조갑제닷컴에서는 ‘보수는 박근혜를 거부해야 산다! 우리는 대통령병(病) 환자의 노예가 될 수 없다!’란 제목의 네티즌 글이 메인 상단에 게재됐고, 조갑제 대표도 “전여옥 의원은 박(朴) 위원장과는 사이가 나쁘지만 한미(韓美)FTA 적극 지지자이고 보수적 가치를 위하여 투쟁하다가 폭행까지 당한 투사이다. 해당의원이 아니라 충성의원”이라며 “그런 전(田) 의원을 무리하게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해당(害黨)의원을 우대하고 충성의원을 홀대한 것은 박(朴) 위원장의 사심(私感)이 개재된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심(私感)이 아니라면 행동적 보수 인사 배제를 신념으로 삼는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비판했다.
“보수는 분화(分化)하면 안 되나”
그간 막연히 우파 분열을 걱정하던 언론의 태도 변화도 감지된다.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은 6일 ‘보수(保守)는 분화(分化)하면 안 되나’란 제목의 칼럼에서 “보수는 ‘하나’이면서 정치전쟁에서 이긴 것도 별로 없다”며 “이런 처지에 제2의 보수적 정당이 고개를 들라치면 으레 ‘보수 분열’로 뭇매를 가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김대중 정권은 DJP의 ‘연합’으로, 노무현 정권은 정몽준씨의 사퇴에 따른 ‘단일화’로 탄생한 정권이었다”면서 “보수정당의 집권 실패는 항상 그 역(逆)으로 보면 됐다. 단일화도, 연합도 못 하거나 안 하는 독불장군, 오만무쌍 정당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때마침 미국에서도 제3당 운동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공화 양당체제와 그들의 독점적 정치장악에 식상하고 실망하고 분노한 사람들이 제3당의 출현을 거론하고 있다”면서 “세계의 여기저기서 두 정당 끼리끼리 해먹는 독점체제를 허용치 않아 연립정부가 태어나고 있다.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분화(分化)일 수도 있다. 독식(獨食)이 아니라 나눠먹고 상황에 따라 연대하는 방식”이라고 결론지었다. 새누리당이 우파 지지층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다양한 우파세력이 등장할 수밖에 없고 이는 역사적 필연이라는 결론인 셈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장은 “우파정당으로서 이념적 가치를 내세워 대중의 지지를 받았던 정당이 이념적 가치를 잃고 사당화 되고 있다면 세력 분화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니 오히려 대단히 건강한 현상에 가깝다”면서 “마치 스포츠경기처럼 ‘닥치고 승리’를 외치며 ‘무조건 하나’를 주장하는 태도야말로 민주정치의 본래 정신에서 멀어지는 길이다. 우파의 모토인 경쟁을 통해 대한민국 우파정치가 발전해가도록 견인해나가는 게 가장 건강한 태도”라고 조언했다. [박주연 미디어워치 기자: phjmy97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