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개(節介)와 타협(妥協)이 없는 사막같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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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토함산 작성일14-07-07 18:45 조회1,614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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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일생을 살아가다 보면,어떤 일에 대하여,
신념,신의를 굽히지 않고 굳게 지키는 경우와...
서로 양보하여 협의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를 절개(節槪,介)또는 지조라 하고,
후자를 타협(妥協)이라 부른다.
절개와 타협의 선택 여하에 따라 자신의 인생 전체가
뒤 바뀌는 경우가 많다.
역사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충신 열사들 중에 절개
와 지조로 일관한 사람들도 있지만...
타협으로 국가 발전에 공헌한 인물들도 많다.
사회생활 역시 공존과 공멸의 법칙이 있고,
절개와 타협의 원칙이 있다.
절개와 타협의 약점은 다 있지만..생략하겠다.
단지..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자신의 불의에 대해서..적당히 타협한다면 이는 자신
을 속이는 일이고 자신을 능멸하는 수치다.
때문에,스스로 자신의 매서운 스승 노릇을 해야한다.
그래야..세상의 불의와는 타협할 일이 없을 것이다.
-겨우 3세 때 어머니가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 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
-(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는...시를 읊은
천재 신동이라 불리운 매월당 김시습(1435-1493).
5세때 세종에게 불려 가 총명함을 시험 치르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매월당 김시습...
훗날 세조조"에 그의 절개만 꺽었다면 최고의 벼슬과
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는 일신의 영화를 버린,생육신으로 그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있다.
결국은,거지처럼 일생을 살다가 결국 무량사(無量寺)
에서 한많은 생을 마쳤다.
반면에,매월당보다 15년여 일찍 태어 나, 천재라 일컫은
서거정(1420-1488)은 6대의 임금을 섬기면서 6조판서와
대제학,좌찬성을 거친 조선조의 정치와 학문발전에 지대
한 공헌을 세운 인물이였다.
과연,어느 선택이 더 휼륭한 길인가는 각자가 판단할게다.
김시습과 서거정의 절친한 우정은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는 기이할 정도였다 하니....
두 천재의 가는 길은 달라도 그 우정은 한 마음이였다.
김시습은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이 仁義와 道理
에 어긋 난 것으로 보았고...
서거정은 仁義보다는 國利가 우선이라 보았을 것이다.
--오늘날 이 나라 정치계는 절개도 아니요 지조도 아니며..
그렇다고 타협은 더 더욱 아닌,개난장판으로 보면 정확타.
--조선이 세조"로 부터 500년 역사의 기틀을 잡았다면..
대한민국은 박정희로 부터 60년...비로소 국가의 근간과
기틀을 잡았다 할 것이다.
500년과 60년..
겨우..건국 역사 60년에 나라가 비틀거리는 이유는 무엇
인가?
바로 생각의 차이에 이념 사상이 끼어 들었기 때문이다.
김시습은 이념이 아니라,원칙을 무시한 세조에 대한 반감
과 단종에 대한 의리였으니..이를 잘못되었다 할 순 없다.
서거정은 세종조에 이미 벼슬길에 올라 세종의 부국강병
철학을 배웠고,무엇이 나라를 반석위에 올려 놓을 수 있는
가를 깨쳤기 때문에 어린 허수아비 단종보다 세조의 웅지
를 따랐던 것이다.
조선조의 두 거인,梅月堂과 四居亭(서거정의 호)은,
신념과 타협의 장단점을 확실하게 설명한 큰 인물이다.
이념과 사상으로 나라를 흔들어 놓은 김대중,노무현을
주군으로 섬기는 犬節介꾼 정치인과는 천양지 차이다.
지금 이 나라는 타협과 상생이 절박하게 필요한 시대다.
좌파들은 타협을 부르죠아 산물이라 비하하고,
고립을 절개라 자위하는 무식의 극치가들이라 할 것이다.
대체 무엇이 의리고 무엇이 절개인지 모르는 허수애비들
말이다.
---현정부는 절개도 없고,타협도 없는 날라리다.
그 수장인 박근혜는 천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먹통고집
이다.
많은 객님들이 매일이다 싶이 아주 자세히 그녀를 해부하고
있으니 이 사람은 첨가할 말이 없다.
늘 긴 글루다가 객님들의 눈을 피로케 하여 송구스러운 마음
으로 물러간다.
댓글목록
운선님의 댓글
운선 작성일
### '여적의 장군들'ㅡㅡㅡ
루터한 지음,,,
"남침땅굴"의 무지로 부터,,,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