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학 칼럼 박근혜 정부의 미나리와 장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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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승학 작성일14-07-04 22:26 조회1,937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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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학 목사 |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일세! 철을 잊은 호랑나비 오락가락 노닐나니 제철가면 어이놀까 제철가면 어이놀까”
이는 조선의 19대왕 숙종 15년 저잣거리에서 유행하던 노래의 가사이다. 당시 28세의 숙종은 22세의 인현황후에게 후사가 없고 31세의 궁녀 장옥정이 아들 을 낳자 서둘러 원자로 삼겠다고 했다. 당시 숙종은 영악한 장희빈의 치맛속에 빠져 정상적 판단력을 잃고 있었다.
이때 우암 송시열은 왕비가 아직 젊으니 시기상조라 반대 상소를 올리니 장희빈의 원한을 사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고 다시 소환을 받는다. 광양에서 배에서 내려 수레를 거절하고 맨발로 걸어 상경하다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사사(賜死)된다.
우암 송시열은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과 더불어 조선을 대표하는 지성의 거목이었다. 그는 숙종의 부왕 헌종과 조부 효종의 스승(사부)이였고 ‘항상 곧을 직(直)자를 행실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 가르쳤던 성리학자요 주자학의 대가였다.
83세인 1689년 6월 8일 금부도사에게 사약을 받을 때 제자 권상하에게 “오늘 같은 세상을 사는 것은 죽는 것만 못하니 나는 웃으며 지하에 들어갈 것이라.” 하며 의관을 정제하고 무릎을 굻고 사약을 마셨다. 당시 실록에 보면 “한양 우수대에 수천 명이 모여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곡했다.” 기록되어 있다. 우암 송시열은 조선 역사상 가장 당쟁이 극심했던 시대를 살았던 뛰어난 성현이며 당대의 사표였다.
노 충신에게 사약을 내려 사사한 사건은 숙종의 가장 큰 실수였고 평생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야만 했다.
이와 같은 왕권시대는 누구라도 의관을 정제하고 왕이 있는 곳을 향하여 무릎을 굻고 사약을 받는다. 우암 선생이 얼마나 덕망이 높은 충신이요 애국자요 국민의 추앙하는 거목이라도 왕의 권위 앞에 충신의 충의나 인권 같은 것은 언감생심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기서 군주제도의 폐단을 보면서 자유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행운으로 여겨야 한다.
그런데 지난 문창극 총리사건을 보면서 이 나라에서 전제주의 왕권과 폭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국가의 부조리를 청산하겠다는 명분으로 새로 지명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가 꼭 그렇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고르고 골라 스스로 심사숙고 검증을 거친 후 지명, 발표한 문창극 후보를 말도 안 되는 조잡하게 편집 왜곡된 선동에 의한 여론조사가 두려워 사약을 내리는 것처럼 그를 버렸다.
정권을 흔들려는 불순한 세력들의 집단 여론을 두려워 6.25시절 인민재판처럼 친일파, 반민족주의자 등 몰매를 맞고 매도당하고 있는 자신이 선택한 후보자를 안고 가지 않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않고 약사발을 내려 버렸다. 그리고 “청문회에 가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대통령은 국가의 절대적 지위와 권한이 주어졌지만 제왕이나 군주가 아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고 국민들 개개인의 주권과 인권을 무시하고 짓밟는다면 그는 폭군이 분명하다.
이번 문창극 사태로 좌파들은 낄낄거리며 좋아 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수많은 애국 보수층들은 분노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얼마나 추락할지 모른다. 이래서는 안 된다.
국정을 파탄내려는 사악한 ‘장다리’ 집단의 거짓여론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나라의 미래와 대통령의 성공을 염원하는 문창극같은 ‘미나리’ 보수층의 충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14년 6월 28일 칼럼리스트 박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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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산호초님의 댓글
산호초 작성일문창극씨의 동영상은 청소년들과 20대들을 위해 학교교재로 삼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