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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세월! 속절없이 허송하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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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22 19:40 조회3,5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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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세월! 속절없이 허송하는 한국인


우리는 지금까지 일본을 증오하고 무조건 미워만 했다. 1900년대 초만 해도 세계는 약육강식 철학이 지배했다. 그 시대에 일본은 강자였고, 우리는 못난 약자였다. 지금처럼 당파 싸움만 하다가 망한 것이다. 우리가 못나서 당해놓고 우리는 잘났던 일본을 지금까지도 원망하고 증오한다. 왕건이라는 드라마를 보자. 그리고 6.25를 상기해 보자.

지난 수 천년간 우리 민족이 동족상호간에 저질렀던 만행 중에 일본인 이상으로 가혹했던 사례들이 없었던가. 일본이 우리보다 야만적이냐 아니냐, 잘났느냐 못났느냐는 지금의 일본인과 지금의 한국인들을 보면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증오로부터는 창의력이 나오지 않는다. 일본을 이길 수도 없다. 오죽 못났으면 약육강식 시대에 일본에게 먹혔을까부터 참회해야 한다.

세계 최초로 원자탄의 실험대상이 됐던 일본인들은 미국을 무작정 증오하지는 않았다. 전후 그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공장 문 밖을 기웃거렸다. 그들보다 잘난 미국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미국인들은 그런 일본인들을 멸시했다. "일본인들은 죽었다 깨나도 미국을 따라올 수 없다. 문을 활짝 열고 다 보여줘라".

1957년 당시 덜레스 미국무장관이 수많은 군중을 향해 미국의 우월감을 표현했다. "일본은 기술면에서 영원히 미국과 경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 매우 훌륭한 손수건과 훌륭한 파자마를 생산하고있습니다. 왜 그런 것들을 미국에 수출하려 하지 않습니까?". 감히 미국을 흉내내겠다며 공장문을 기웃거리는 꼴사나운 모습들을 멸시하는 연설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세계 GNP의 54%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생산기지가 미국에 있었고, 세계의 신제품은 모두가 "MADE IN U.S.A" 였다. 미국인들의 우월감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했다. 그들은 미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모든 제품을 쓰레기로 멸시했다. 이를 NIH 증후군(Not Invented Here Syndrome)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모욕을 무릅쓰고 일본인들은 미국으로부터 선생님들을 불러들이고 미국을 견학하면서 미국을 모방하려 애썼다. 일본인들은 "미국을 모방하자"(Copy the West 목표를 세웠다. 일단 모방한 다음에 그들의 목표는 "미국을 따라잡자"(Catch up with the West)로 바뀌었다. 1980년대 초. 드디어 일본이 생산 기술과 품질관리에서 미국을 앞섰다.

1982년, 덜레스 미국무장관의 조롱 섞인 연설이 있은 이후 20여 년만에 승용차에 대한 미국인의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일본 승용차가 나란히 1,2,3위를 차지했다. 반면 미국 차는 겨우 7위를 차지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차는 미국 차가 아니라 일본 차였던 것이다. 우리는 잘난 사람을 못 봐주는 성격들을 가지고 있다. 일본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 최근에는 미국까지도 미워하는 사람 수가 늘고 있다. 잘난 사람을 못 봐주는 마음, 증오하는 마음은 우리를 파괴한다. 잘 난 사람을 적으로 돌리면 누구로부터 배운단 말인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자기 발전을 하지 못한다. 오직 황폐한 삶을 살 뿐이다.

가까운 북한을 보자. 일본을 미워하고 북한을 미워하는 마음이 가장 심한 곳이 북한이다. 그들은 누구로부터 배우는가? 주체사상이 거의 전부다. 그들이 못 사는 이유는 그들보다 잘 난 사람들을 배척하고 증오했기 때문이다. 증오심을 부추기면 단합은 시킬 수 있어도 발전은 할 수 없다. 정말로 무서운 사람들은 증오심에 불타는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증오심을 배움으로 승화시켜 끝 내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일본사람들이다. 증오심을 버리고 잘 난 사람들로부터 배워야만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있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기업 정신이다. 1920년대에 일본 동경에는 두 사람의 대표적인 기업인이 있었다. 마쓰시타고노스케와 미야모도였다. 마쓰시타고노스케는 애국심을 가지고 기업을 했다. 당시 지금의 손전등용 전구와 같은 작은 전구를 만들었다. 촛불대용으로 사용되는 문명의 이기였다. 그 문명의 이기를 가급적 많은 국민들에게 전파하고 싶었다. 가격은 반으로 내리고 제품 수명은 2배로 늘리자는 목표를 세웠다. 모든 사원들이 이에 반대했다. 품질이 올라가면 가격도 올라가야 하지 않느냐고. 고노스케가 말했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고. 그는 스스로 진두에 나서서 일했다. 품질이 오르면 원가가 올라야 한다는 통념이 깨진 것이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미야모도씨가 비웃었다. "비지니스는 자선사업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무슨 돈을 버느냐". 후각이 발달한 미야모도는 돈 되는 새 제품을 찾아내 독점권을 확보했다. 바가지 가격으로 일확천금을 벌었다. 그 후 불과 7년만에 미야모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마쓰시타고노스케는 비록 초등학교 4학년 중퇴의 학력을 가지고도 오늘날의 송하전기(National, Panasonic)를 이룩해냈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인이자 사상가로 입신했다.

안에서 창조하려는 선진기업과, 밖에서 쉽게 얻으려는 한국기업을 비교해 보자. 선진기업들은 환경비용을 정확히 문다. A/S와 클레임을 잘 받아준다. 고객과 근로자에게 인격적인 대접을 한다. 전신이 살아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기업들은 오페수를 방류한다. 남을 속이고, 바가지 가격으로 판매하며, 정경유착으로 쉽게 돈을 벌려고 했다. 정신이 타락한 것이다. 선진기업들은 모든 비용을 물어 가면도 국제경쟁력을 갖췄다. 한국기업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비용을 절약하면서도 경쟁력에서 밀렸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우리는 어떤 결론을 얻는가? 돈은 창의력과 건전한 정신으로 버는 것이지 남으로부터 쉽게 빼앗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 일본에서 배울 것은 "배우는 방법"이다. 1950년 일본은 미국이 낳은 품질이론의 대가 "데밍"박사를, 1954년에는 쥬란 박사를, 1958년에는 파이겐바움 박사를 초치하여 경영의 과학화에 눈을 떴다. "모든 의사결정은 냉철한 통계자료에 의해서 하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해서 그렇게 하지 마라. 경험이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지 마라. 오직 통계자료의 분석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라. 통계자료 없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경영자는 오직 神뿐이다".

"근로자들의 정신력을 강화하여((spiritualism)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키려는 것은 화살로 전투기를 쏘아 내리게 하려는 것만큼 무모한 짓이다. 인간의 힘은 시스템의 벽을 넘지 못한다. 개선을 하려거든 시스템부터 개선하라". 이것이 1950년대 초에 일본에서 최고경영자들에게 유행했던 분위기였다. 이미 50여 년 전에 일본 기업들은 의식개혁(Spiritualism), 신바람(Emotionalism)으로부터의 고별을 고했다. 시스템적 접근방법, 통계학적 품질관리라는 냉엄한 과학적 어프로치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일본 제품을 선호하면서도 일본인이 어떠한 노력이 오늘날의 품질 1등 국가를 이룩해놓았는지에 대해 전혀 연구하지 않았다.

의식개혁! 지금도 이 의식개혁에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경영자들이 많다. 일본인들이 50년 전에 버린 쓰리기를 다시 주워 가지고 보물처럼 애지중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낳고 내 손으로 키운 자식의 의식 하나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지금 수많은 타인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누가 누구의 의식을 감히 개혁한다는 말인가. 지금의 의식이 세모로 생겼는지, 네모로 생겼는지 그려내지도 못하면서, 또한 바꿔야 할 목표 의식이 맥주병처럼 생겼는지 항아리처럼 생겼는지에 대한 스펙(specification)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의식을 바꾼다는 말인가. 이처럼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에 우리는 지난 20년간이나 허송해 왔다.

의식은 시스템의 산물이다. 의식을 바꾸려면 시스템을 가꿔야 한다. 시스템이 의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사례를 보자. 세 대의 공중 전화기가 있다. 한국인들은 세 줄을 선다. 가장 짧은 줄을 골라서 섰지만 그날은 재수가 안 좋아 오래 기다렸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할까. "일찍 와야 소용없다. 줄을 잘 서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회 곳곳이 이처럼 요행에 의해 차례를 배분한다면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요행의식이 자랄 것이다. "요행"이 차례를 배당해주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저축하겠는가. 운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기에 과학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점쟁이에게 가서 풀려고 한다. 교회에 가서 하느님을 찾는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에 과학이 자랄 리 없다.

반면 선진국 사람들은 한 줄을 선다. 맨 앞에 서있는 사람이 먼저 끝나는 전화를 차지한다. 일찍 오면 일찍 차례가 온다. 예측도 가능해진다. 사회 곳곳이 이렇게 논리에 의해 차례가 배분된다면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논리의식이 자란다. 논리는 과학의 전부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과학이 자란다.

동대문과 종로통은 상가 밀집 지역이다. 짐차들이 부지런히 다니면서 짐을 날라야 경기가 활성화된다. 뉴욕같이 복잡한 도시도 대형차가 상점 앞에 20분 간 정차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상가에는 이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가끔씩 단속반이 나와 있으면 용달차들이 짐을 부리지 못해 수십 바퀴를 돌면서 눈치를 살핀다. 시간, 자원, 공해상 엄청난 낭비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성의 파괴다. 눈치보는 습관이 길러지는 것이다. 한국 국민의 의식은 선천적으로 못난 것이 아니다. 바로 이렇게 눈치를 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이 의식과 행동은 시스템의 산물인 것이다.

의식개혁 운동을 통해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그들이 선진 사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시스템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설사 모든 이들의 의식이 천사처럼 깨끗하게 개혁됐다 해도 의식 자체로 시너지를 낼 수는 없다. 시너지는 반드시 시스템이라는 기계를 거쳐야만 나오는 것이다.

의식개혁이 한참이었던 1992년 초, 사회적 저명인사들이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국가가 있습니다. 국민 각자가 각기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어찌 국가가 잘 안 되겠습니까. 회사가 있습니다. 모든 사원이 각자 서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어찌 회사가 잘 안되겠습니까". 이런 식의 말들을 했다. 이는 거의 모든 국민에 의해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일반 상식이 과학적 진리와 어긋날 때가 있다. 심지어는 기업체 간부들의 상식이 경영학적 진리에 어긋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각자 서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안 될 게 없다"는 우리의 상식은 경영학적 진리에 사뭇 어긋난다.

첫째, 인간의 힘은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둘째, 우리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시스템은 선진국 시스템에 비해 너무 열등하다. 시스템 자체가 열등한데 그 속에서 인간들이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한들 우리의 시스템이 선진 시스템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이다. 국제경쟁력을 가지려면 시스템 자체가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이렇듯 시스템적으로 보면 틀린 말을 우리 한국인들은 진리라고 믿어온 것이다. 나중에 다루어지겠지만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진리로 신봉해온 "이윤극대화 정신"도 알고 보면 한국병의 가장 큰 병균이었다. 인습과 통념이 과학적 진실에 의해 끝없이 도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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