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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슬픈 박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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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20 12:15 조회22,1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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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슬픈 박흥주


박흥주는 범행가담 동기를 이렇게 진술했다.


1호차 가방에 둔 독일제 9연발 38구경 권총을 꺼내 7발이 장진돼 있는 것을 확인하고 허리에 찼다. 시간이 좀 있어서 부속실에 들어가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하니 너무 뜻밖의 일이었다. 부장의 위치로 보아 나 모르게 이미 계획을 준비해놓고 있다가 오늘 기회가 포착되자 갑자기 거사를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명령을 내릴 때, 워낙 무서운 얼굴로 해서 나는 아무 말도 묻지 못했다. 육군총장과 2차장보를 식당 집무실에 대기시켜 놓고, 결심한 듯 아주 강력한 태도로 경호원 살해를 지시하는 것으로 보아, 나 모르게 육군총장 등과 모든 결탁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았다. 각하를 살해하면 변란이 되고, 김재규 세상이 된다. 그가 성공했을 때, 만일 내가 가담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반역으로 몰려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고, 공을 세우면 출세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범행에 가담키로 작정했다.


“가담을 거절하면 틀림없이 반역으로 몰려 살아남기 어렵고, 성공하면 출세의 혜택이 있을 것이다”바로 이 마음이 김계원의 마음이었을 것이고, 정승화의 마음이었을 것이고, 최규하의 마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것을 벌써 알아차렸을 국무위원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박흥주를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고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김재규의 수행비서 박흥주는 육사18기의 현역 포병대령, 당시 41세로 부인과 1남 2녀를 두고 있었다. 그는 중위시절인 1964년 8월부터 1년간 제6사단장이었던 김재규의 전속부관이 된 이후 1969년 3월부터 만3년간 보안사에 근무했고, 1978년 12월부터 사고당시까지 김재규 수행비서관이었다. 1979년 10월28일, 그는 합수부에서 참으로 슬픈 진술을 했다. 그리고 1980년 3월 6일, 42세의 꽃다운 나이로 경기도 소래의 한 야산에서 총살에 의해 생을 마감했다.   


02시경, 육군 1등병이 오더니 누가 좀 보자고 하여 따라갔더니 헌병 대위 한명이 ‘상부의 지시에 의해 무장해제 한다’하기에 권총과 무전기를 제출했다. 이 때, 경호조장 홍대위와 경호원 1명이 나처럼 불려가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오며 ‘이제는 다 틀렸구나’ 생각했다. 부장차를 타고 남산순환도로를 거쳐 한남동 주택가에 정차시킨 후 심정이 착잡하여 1시간 30분간 차안에 있었다. 04시 30경, 행당동에 있는 나의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처가 나오기에 문밖에서 ‘일이 있어서 급히 간다’ 했더니 처가 ‘아빠, 무슨 일이예요’하고 놀라기에 더 이상 말하기기 싫어 차로 달려와 강변도로로 해서 잠실아파트에 세우고 운전수 유석문과 같이 쉬다가 07시경, 뉴스를 들었다. ‘김재규가 차지철을 살해하여 계엄사에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27일 오후 3시경, 보안사 수사관들에 연행됐다.



               △ 1979년 12월 군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선고공판에서 김재규를 비롯한 피고인들이 사형선고를 받고 있다. 김재규와 박선호는 1980년5월24일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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