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453] 12명 탈북자들에 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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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1-29 20:22 조회4,80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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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453]
12명 탈북자들에 강은 없었다.
같은 강인데 왜 탈북자마다 다른가?
2019년 2월, 하태경이 인솔하여 나를 고소한 12명의 광수 탈북자들에 압록강과 두만강은 없었다. 12명에게 압록강과 두만강은 탈북의 장애물이 아니었다. 한의사 가족 6명은 안기부가 탈북시켰고, 정광일과 안명철 역시 안기부가 기획 탈북시켰다는 정황이 농후하다. 이들이 남한에 와서 털어놓은 탈북스토리는 말할 때마다 다르고, 현실적 사리에도 부합되지 않은 황당한 소설이다. 우선 12명의 탈북자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북중 국경선인 압록강과 두만강의 도강과정을 보면 12명 모두가 다르고, 강변 경비에 대한 묘사가 다 다르다. 도강 달력의 순서대로 간단히 정리해본다.
12명의 도강스토리
김용화 :1988년 7월, ‘혜산에서 압록강을 건넜다’는 표현만 있다. 1989년 조선족 장춘선을 만나 살림을 하다가 95년 급습당해 베트남으로 갔다가 1995년 6월에 중국 산동에서 노 젓는 0.5톤짜리 쪽배를 타고 70시간에 걸쳐 태안에 도착했다고 했다.
2. 이민복 : 1990년 8월에 남조선 삐라를 산에서 줏어 호기심에 압록강 북중 국경선을 넘어 중국이 잘 사는 모습을 관찰하고 돌아와 90년 11월에 탈출을 목적으로 압록강을 건넜다가 중국 공안에 잡혔다. 91년 6월에는 철조망이 2~3겹으로 쳐져있는 압록강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다 떠내려가 표류한 곳이 러시아라 했다. 세 차례 도강했는데 북한 경비대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3. 강철환 :1992년 8월, 여행증을 보유하고 혜산까지 갔다. 혜산의 조폭대장과 친해졌고, 그를 매개로 경비대 대장을 만나, 경비원들에 술을 왕창 먹여놓고 새벽 2시에 압록강을 건넜다.
4. 안명철 :1994년 9월 17일, 차를 두만강 강변에 댔다. 강변에는 철조망도 경비병도 없었다.
5. 김성민 : 1995년 9월 30일, 국경을 넘어 중국에 갔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 온성에서 평양으로 압송 도중 유리를 깨고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 뛰어내려 1996년 4월 다시 강을 건넜다. 강은 그에게 장애물이 안된 듯 그냥 ‘건넜다’는 표현으로 일관돼 있다.
6. 최주활 : 1995년 중국에 외화벌이 출장을 나갔다가 동남아를 경유해 한국에 왔다.
7. 장인숙 : 1997년 9월, 브로커가 돈을 주어, 경비 중대장과 초소장이 경비를 서지 못하게 해주어서 3남과 4남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넜다. 당시는 국경을 4m만 벗어나도 무조건 총살시키라며 살벌했다.
8. 박세현 : 1997년 11월, 정광일이 브로커 역할을 하여 박세현과 부모를 중국 심양에까지 데려다 안기부 직원에 인계했다.
9. 김영순 : 1997년 여행증을 가지고 무산에서 강을 건너 연길 사촌집을 방문했다. 굶주려서 중국 방문이 묵인됐다. 2001년 1월, 다시 강을 건너 북으로 돌아와 아들과 함께 여행증과 침대칸 표를 사가지고 보위부 지도원에 500원 뇌물을 주어서 보위부 지도원이 언 강위를 전지불 들고 건네주었다.
10. 이순실 : 1997년~ 2007년까지 압록강을 9번 건넜다. 경비도 철조망도 없었다. 8번 붙잡힌 것은 중국 공안에 의해서였다. 북한 경비는 1997~ 2007, 11년 동안 없었다.
11. 정광일 : 2003년 4월, 두만강을 쉽게 건넜다. 경비병도 철조망도 없었다. 순찰만 가끔 돌았다.
12. 김정아 :2006년 6월, 두만강 건너가 곧장 인신매매 당했다. 두만강 건넌 과정이 생략돼 있다.
정 리
1991년 6월, 이민복은 압록강에 철조망이 2~3겹으로 쳐져있었다 한다.
1992년 압록강을 건넨 강철환은 여행증과 뇌물을 써서 혜산까지 갔고, 경비대에 술을 왕창 먹여 잠들게 해놓고 새벽 두 시에 강을 건넜다.
1994년 강을 건넌 안명철은 두만강변에 철조망도 경비병도 없었다고 했다.
1995년 김성민은 국경을 두 번씩이나 들키지 않고 넘었다고 했다.
1997년 장인숙은 당시 국경을 4m만 이탈해도 무조건 총살이라는 명령이 있어서 브로커가 경비 초소장에게 뇌물을 써서 초소장이 세 식구를 건네주었다.
1997년 11월, 한의사 박세현은 브로커가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업고, 박세현과 어머니, 세 식구를 두만강을 건너 심양에까지 데려다 안기부 직원에 인계했다. 안기부 요청으로 브로커 역할을 했다. 그 브로커가 정광일이었다.
2001년 김영순은 여행증을 끊어 혜산까지 갔고, 보위부 지도원에 500원 뇌물을 주었더니 지도원이 불을 밝혀주면서 강을 건네주었다. 불을 켜고 건넜는데도 중국 경비원에 들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1년 동안 이순실은 압록강을 9번 건넜다. 8번 붙잡힌 것은 모두 중국 공안에 의해서였다. 북한쪽 경비와 철조망이 없었다고 한다.
2003년, 정광일은 경비도 철조망도 없어서 두만강을 쉽게 건넜다고 했다. 순찰만 가끔 돌았다고 했다.
2006년, 김정아. 두만강을 쉽게 건넜다고 했다.
결 론
북한에서는 군(郡) 경계선을 넘으면 여행증을 발부받아야 한다.
특히 북중 국경지대인 압록강과 두만강 지역으로 가는 여행증은 보위부가 직접 관장하여 공적 임무를 띠고 가는 사람에게만 발부하여, 북한에서 가장 발부받기 어려운 ‘특별통행증’이다.
그런데 이 12명 중 국경연선지대로 가는 특별여행증(푸른 줄 2개)을 발부받은 사람은 없다.
1991년 강을 건넜다는 이민복은 철조망이 2~3중으로 쳐져있다고 했고, 1992년 압록강을 건넜다는 강철환은 경비대에 술을 왕창 먹여 곯아떨어지게 해놓고 새벽 2시에 유유히 강을 건너 중국 무도장에 가서 춤 구경을 했다고 했다.
이후 1997년부터 2007년 11년에 걸쳐 압록강을 9번 건넜다는 이순실은 압록강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고, 경비도 없었다고 했다. 2003년 두만강을 건넜다는 정광일은 경비도 철조망도 없었다고 했다.
1차 탈북에 실패한 이민복, 김성민, 이순실은 모두 북한 경비병에 의해 체포된 것이 아니라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고 했다.
12명의 탈북 과정이 모두 현실 세계에서는 발생하기 어려운 무협지 소설들이다. 12명 모두 탈북스토리가 환상 세계다.
안기부가 개입해서 기획 탈북한 탈북자가 3~4명 있다. 나머지도 다 안기부 작품일 것이라는 의혹이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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