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벤처 Vs. 일본벤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07-25 16:07 조회4,03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한국벤처 Vs. 일본벤처
2000년 8월 22일 저녁시간, 조선호텔 그랜드볼륨에서 한.일 벤처 파트너십 포럼이 열렸다. 30세 전후의 젊은 사장들이 성황을 이뤘다. 한국사장, 일본사장이 번갈아 가며 단상에 올라 10분씩 자기소개를 했다. 3시간이 지나 포럼이 마감됐다. 일본 벤처와 한국 벤처 사이에 현격한 선이 그어졌다.
한국사장들은 하나같이 회사의 규모와 기술을 자랑했고, 일본사장들은 수줍어하면서 정신적 경험을 간증했다. 알고 보니 그 자리에 나온 일본벤처들은 한국벤처와는 상대가 안될 만큼 부자였다.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정신적 귀족이기를 추구했다는 말을 했고, 한국인들은 물질적 부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자랑했다. 한국인들의 벤처 정신은 두말할 나위 없이 골드러시다. 금광을 발견하여 벼락부자가 되겠다는 꿈이었다. 한국사회 전체가 벤처를 골드러시로 정의했다.
지난 8.24일자 이코노미스트지에는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던 학자들과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이제는 노후를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다룬 기자도, 읽는 독자도 그 뜻을 당연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젊은 벤처인들은 달랐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돈을 벌겠다고 나서는 한국인들이 부끄러워진다. 일본 벤처의 정신은 골드러시가 아니라 "자아실현"이다. 정신적 귀족으로서의 프라이드를 위해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하며 자기방식 대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돈과 물질적 화려함이 행복의 주요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돈을 따라다니는 졸부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새로운 것, 사회에 유익한 것을 추구하면서 열심히 살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부자가 됐다는 것이다. 빌게이츠가 했던 말을 이들도 반복하고 있었다. 돈 잘 벌리는 벤처를 개척하여 수입이 급증하고 있을 때, 후계자에게 단 한 푼의 대가도 받지 않고 넘겨주었다 한다. 그리고 자기는 다른 벤처를 개척하고 있다고 했다. 벤처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들은 유통산업을 예로 들었다. 유통산업은 기존의 자산을 재배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가치가 아니라고 말했다. 남이 가질 수 있는 부를 내가 갖는 것은 벤처 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일본에서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마츠시타고노스케, 아키오모리타 같이 일본 국민 모두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인들이 이미 가르쳐준 정신이다. "이윤을 목표로 하지 말고 개선을 목표로 하라. 이윤은 개선에 열리는 열매다".
"고객만족"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말은 누구나 하지만 아직 멀었다. 고객만족을 대외적으로 자랑하는 한국의 일류 백화점이 있다. 사장의 방침을 알아보니 수익증대, 고객만족 순으로 되어 있었다. 수익과 고객만족이 상치하는 개념이냐, 보완적인 개념이냐를 물었다. 대답은 애매하게 했지만 분명 두 개는 상치되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고객의 불만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A/S, 환불 등에서 고객을 만족시켜주면 제1의 목표인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7층에서 구매한 상품에 하자가 있으면 고객은 7층 점포로 가야 한다. 수익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있는 점원이 반품 요구에 상냥하게 대할 리 없다.
정말로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선진국에서처럼 1층에 고객서비스센터를 운영해야 한다. 7층에서 산 사람도, 4층에서 산 사람도 모두 1층에 있는 고객서비스센터로 가야 한다. 이러한 배수진을 치지 않으면 백화점 바이어가 좋은 상품을 사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리베이트를 많이 주는 업자로부터 구태의연한 상품만 구입한다. 이렇게 함부로 적당히 구매한 상품을 가지고 이윤을 극개화하기 위해서 점원은 밀어내기식으로 판매해야한다. "손님, 요새는 이게 유행입니다". 이는 바뀌어져야 한다. "손님, 유행이 어디 있습니까? 손님의 개성에 맞추셔야지요. 손님께선 어떤 형을 찾으시나요?". 고객으로부터 얻는 가치란 많이 사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고객의 반응으로 미래의 패션을 개척해나가는 데 있다. "고객만족에 최선을 다하며 고객들과 재미있게 어울리다 보니 저절로 수익이 높아졌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제품이 국제경쟁력을 가지려면 모든 국민의 마음속에 "1등 품질"에 대한 열망이 자리해야 한다. 수십 년간 염색공장을 운영해온 기업이 일본의 바이어에게 지적을 받았다. 업체는 과학적 마인드와 품질 마인드가 없기 때문에게 지적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하기보다는 그를 야속하고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일본 바이어의 등을 돌려세운 것이다.
인조 실크로 핸드백을 만드는 소기업이 있었다. 작업 과정을 잠시 들어다 본 일본 바이어가 확대경을 가지고 제품에 섬유가루가 튀어 있는 것을 보여줬다. 재봉틀 몸체를 튼튼하게 고정시켜 바느질할 때 진동이 생기지 않게 하고, 작업대를 자주 청소해주면 좋은 품질을 만들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한국의 제작자는 이 일본인에게 고맙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치사하고 좀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일본인도 등을 돌렸다.
"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일본인들이 입버릇처럼 쓰는 말이다. 한국인들은 유난히 자존심을 상해한다. 이로 인해 한국인들은 개인과 개인간에 그리고 새로운 것에 담을 쌓는 버릇을 키워왔다. 이 페쇄성 때문에 한국인들은 국제 비즈니스 계에서 "아는 체 하지만 아직 멀은 사람들"이라는 트레이드마크를 얻었다. "아는 체하는 병", "있는 체 하는 병"을 고치지 않으면 한국인들은 이웃이나 세계인들로부터 영영 배우지 못할 것이다.
2019.7.25. 지만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