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교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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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07-16 12:33 조회7,59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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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교수 연구
위키백과의 김동길
그는8년 10월 2일,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났다. 연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고 1954년에 미국유학을 떠났다. 1960년부터 연세대학교 전임강사, 1961년부터 연세대학교 교수를 지내며 신랄한 풍자와 해학으로 인기를 얻었다. 1962년에는 연세대 교무처 처장을 지냈다.
유신 시대에는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에 《내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수필을 발표, 대통령이 된다면 부모도 섬기지도 않던 놈들이 청와대에 가서 아부하며 각하 각하 하는 것들을 차라리 모두 잡아다가 서해의 무인도에 보내 아첨도라 하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중앙정보부에 연행, 고문을 받기도 했다.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다. 혐의는 제자인 김영준·김학민 두 학생에게 "긴급조치 1호로써 박정희 씨는 스스로 묘혈을 판 것이다."라고 말하여 긴급조치를 비방하고, "학생 시위를 치밀하고 대담하게 전개하여 박 정권을 타도하라."고 격려하여, 내란을 선동하였다는 것이었다. 한승헌을 변호인으로 선임했으나 윤보선, 지학순, 박형규, 김찬국 등과 함께 배후지원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1975년 9월에는 양일동, 백기완과 함께 장준하 장례식을 주관하고 추도사를 낭독하였다. 그 뒤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 연루되어 7.17 밤중에 구속됐다. 1991년 정치 참여를 선언하고 새한당을 창당한 뒤 정주영이 대선에 참여하기 위하여 만든 통일국민당에 합류했고 1992년에는 총재에 선출되었다.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1973년 12월부터 '인민혁명당과 조총련, 일본공산당, 혁신계 좌파'의 배후조종을 받아 민중혁명을 통해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혐의로 180여명이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김동길과 황장엽의 형제 같은 관계
김동길 교수는 황장엽을 최고의 애국자이며 통일을 위해 넘어온 하늘의 천사라고 극찬을 했고, 황장엽은 김동길, 조갑제, 서정갑을 최고의 애국자라고 극찬하고 다녔다. 김동길은 황장엽이 죽자 “박관용, 강영훈, 이회창”과 함께 ‘황장엽비서 공동장의위원장’을 맡았다.
2006~07년 김동길은 조갑제 서정갑과 함께 캐러반(Caravan) 부대를 만들어 전국 순회를 하면서 차기 대통령은 이명박이 돼야 하고 박근혜는 안 된다 역설을 했다. 이 중 한 사람이 “이명박은 이념의 태양”이라 외쳤다. 막상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자 이명박은 자기는 중도라 선포했습니다. “이명박은 이념의 태양”이라는 조씨의 말이 거짓이 됐다. 그리고 이들은 이명박을 무능하고 나쁜 인간으로 매도했다. 2010년, 김동길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라는 시리즈 칼럼을 계속해서 많이 섰다. 1,200회 이상이었다. 그토록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 사람 아니면 대한민국이 망한다’ 해놓고 이제 와서는 ‘이명박은 엉터리 같은 존재다’ “대통령의 개떡 같은 정치” “정치판은 개판” “민주당 집권 기회도 있다” 이렇게 돌변했다. 그를 따르던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사과의 말이 없이 구렁이처럼 넘어갔다.
이들은 이명박을 ‘이념의 태양’이라고까지 숭앙하면서 대통령을 만들어 놓고도, 국민여론이 이명박에 비판적일 때마다 이명박을 비판한다. 이런 행위는 속보이는 장사꾼 행위처럼 보인다. 자기들이 밀었던 사람이 국민에게 실망을 주면 자기들의 저지른 죄부터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이 도리다. 4월 24일 아침 모 신문에는 호주의 킨 교수가 ‘호주 집값이 폭락할 것이“이라는 예측을 내놓았었지만 사실은 집값이 폭등했다고 한다. 그 교수는 자기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200km가 넘는 거리를 도보로 행진하여 고행을 치렀다고 한다.
황장엽 군단
황장엽이 거느린 장수들은 조갑제, 이동복, 서정갑, 김동길, 김진홍, 전 흥사단간부, 미국교포 남신우 등이고 여기에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김영환이 이끄는 386주사파 부대가 있고, 정치목사들이 있었다. 황장엽은 지난 정권 창출과정에서도 이들을 이끌고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깊이 관여했다
이들은 이재오, 김진홍, 인명진, 원희룡, 김문수 같은 빨갱이 전력자들과 어울리며, 과거에 김종필이 김대중의 색깔을 세탁해주었듯이 이들의 색깔을 세탁해 주었다. 2010.2.23. 매체들의 기사들은 서정갑을 대서특필했고, 특필의 내용을 보면 서정갑이 정치계의 프리마돈나 정도로 화려하게 데뷔했다는 소식이다. 원희룡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출판기념회(책명 ‘사랑의 정치’)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는 정권실세 6인회(이재오, 이상득, 박희태, 최시중, 김덕룡 등)가 참석했고, 이들은 3,0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원희룡을 서울시장으로 밀어주자는 결의를 했다고 한다. 아래는 서정갑의 축사 내용 일부다.
“보수에서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 김진홍 목사를 빨갱이라고 부른다. 원 의원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된다. 보수 일각에서는 원희룡 의원을 좌파로 평가하는 분들이 계신데, 제가 직접 만나보니 이 부드러운 분을 누가 그렇게 평가하나 싶어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됐다. 오늘 출판기념회를 통해 많은 분들이 젊고 유능한 정치지도자를 발견했다"
2010년 조갑제가 김문수를 띄우는 내용의 책이 나왔다. 이 책에 곧장 이어서 2010년 4월 22일, 김동길의 ‘김문수용비어천가’가 나왔다(김동길 홈페이지). 김문수와 김동길은 민청학련의 동지 사이였다. ‘김문수용비어천가’는 이렇게 표현됐다.
“80여 년을 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정치인, 사업가, 학자, 교육자,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내가 만난 그 많은 사람들 중에는 가난뱅이도 있었고 부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난 그 다양한 인물들 중에 항상 기억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몇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 5·16의 주체이고 박정희 정권 하에서 총무처 장관을 지낸 바 있는 이석재 씨입니다. 그가 없이는 5·16이 없었을 것이라고 잘라서 말하는 사람들도 여럿 만났습니다. 내 눈에 비친 이석재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의 두 눈은 언제나 빛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땅에서 장관을 지내고도, 벌어놓은 재산이 없어서 허술한 셋집에 들어 사는 이는 이 장관뿐이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군사 쿠데타에 반대한 사람이고 그 사실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내가 5·16 군사 쿠데타에 경의를 표하는 까닭은 그 혁명주체에 이석재가 끼어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서슴지 않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슨 부탁이라도 있으면 가져오세요. 그러나 돈만은 가져오지 마세요.” - 그렇게 말한 어느 도의 도지사가 있습니다. 나는 그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날을 학수고대합니다. 그의 이름은 김문수!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0/04/22/2010042200080.html
김문수는 지독한 위장취업자였고, 지독한 친북-반미-반한 활동을 했다. 1986년 5월 3일 그는 인노련(인천노동자)과 서노련(서울노동자)을 모두 장악하는 노동계의 별이 되었다. 5월 3일 인천 주암에서 6만명 규모의 격렬한 폭동이 있었다. 그는 리어카에 베니어판을 깔고 올라가 일장 연설을 했던 대단한 선동가였다. 그는 빨갱이 강령을 내세운 민중당의 노동위원장이었다. 그런 그가 최근 갑자기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을 찬양하고 다닌다. 필자는 이를 위장이라고 본다. 전향을 하려면 감언이설로만 하는 게 아니다. 박정희처럼 자기가 행했던 죄과를 고백하고, 자기와 함께 일했던 조직을 폭로하고 동지들을 폭로해야 한다. 그런데 김문수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김대중이 죽기 얼마 전에 중국으로 가서 김대중과 한 호텔(켐핀스키호텔)에 묵으면서 대북시각을 조율했다. 그리고 이명박을 향해 앞으로 통일정책은 경기도가 앞장서겠다는 기막힌 말을 했고, 김대중이 죽자마자 김대중 대통령은 가장 위대한 정치지도자라고 극찬했다.
10년째 원희룡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인명진 목사는 서평에서 “서평보단 인평을 하겠다. 우리 정치가 얼마나 어렵나. 우리 정치가 왜 이렇게 된 줄 아느냐. 제대로 된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이렇게 연설했다. 원희룡이 최고라는 것이다.
원희룡은 누구인가? 그는 방송에서 필자에게 스스로를 좌파라고 소개한 사람이다. 서정갑과 조갑제는 강연을 할 때마다, 그리고 ‘천원도 좋다, 만원도 좋다 애국은 지갑으로 하는 것’이라며 광고를 낼 때마다 6.15선언을 김대중의 반역행위라고 질타했다. 그런데 원희룡은 6.15를 국가기념일로 정하자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국회활동에서 원희룡은 서정갑이 말했듯이 빨갱이로 인식될만한 행동을 많이 보였다. 골수 빨갱이 인명진이 10년간 키워온 인물이 바로 원희룡인 것이다.
1993년 9월 15일자 세계일보는 원희룡에 대한 기사가 올랐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15일 술에 취해 길가에 방뇨하다 이를 나무라는 주민을 집단폭행하고 인근 파출소 기물까지 부수며 30여분동안 소란을 피운 사법연수원생 박준선(27) 원희룡씨(29)등 2명을 공무집행방해및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입건조사 중. 경찰에 따르면 박씨와 원희룡씨는 15일 0시10분쯤 서울 성북구 정릉1동 132의73 가게 앞 도로에서 방뇨하다 이를 나무라던 가게주인 최동철씨(50)를 주먹으로 얼굴 등을 마구때린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연행된 정릉1동 파출소에서 『우리 사법연수원생들을 우습게 보느냐』며 전화 책상 등을 부수며 소란을 피웠다는 것.”
서정갑은 한나라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대표 후보였던 이재오를 남민전 빨갱이라는 광고를 내서 이재오에게 실패를 안겨주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그는 세종문화회관에서 1인당 3만원짜리 뷔폐를 대접하면서 1,000여명의 참석자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서정갑의 기조연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재오 의원과 김진홍 목사는 훌륭한 분들이다. 누구든 이 두 분을 좌익으로 매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들을 의심해야 한다”
이재오가 누구인가? 골수 빨갱이다. 에누리에 에누리를 반복해서 빨갱이 활동으로 10.5년 감옥살이를 했다, 김진홍은 누구인가? 대한민국 주민등록증과 북한의 주민등록증을 동시에 보유한 유일한 존재요 골수 빨갱이다. 조갑제는 김진홍을 적극 지지해왔다. 경선시절 이명박을 '이념의 태양'이라고 칭송했었다.
2010년, 김동길-서정갑-조갑제는 남사당식 캐러반을 형성하여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그리고 나경원 여인 같은 인기인을 초청하면서 신명나는 무당처럼 흥행 행사를 벌였다. 국가적 비극을 즉각 흥행행사로 이용한 것이다. 서정갑에 초청된 나경원, 그녀는 마냥 행복한 듯 온몸을 흔들면서 화사한 웃음으로 천안함의 비극에 물타기를 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에 대한 김동길 시각
김동길은 박정희에 대해 말했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인정할 수 없다" 고, 썼다. 12.12는 전두환의 쿠데타이고, 전두환은 5.18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라고 썼다. 위선적 강남좌파 류의 지식인이라는 것이 조우석의 평가다. 좌파에게 가장 중요한 대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영혼은 지금도 민청학련 운동권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조우석 칼럼
https://www.youtube.com/watch?v=udyIIoOMoPg&t=1520s
황장엽의 정체
http://www.systemclub.co.kr/bbs/board.php?bo_table=12&wr_id=17603&page=10
결 론
김동길은 역사학자로 역사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역사의 진실을 해석할 줄 모으고 중요한 반공 정보를 생산해 내지 못한다. 조갑제 서정갑 등과 어울려 다니며 정치 브로커 노릇을 했다. 그의 능력은 만담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우 가볍게 다녔고, 가볍게 어울렸고, 가볍게 입을 열어왔다.
2019.7.1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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