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특수군 증거, 600명 증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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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05-31 19:50 조회4,91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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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북한군 증거들
1. 1995.7.18.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검찰부가 14개월 동안 조사하여 발표한 “5.18관련사건 수사결과”가 있습니다.
이 문서의 제92~93쪽은 아래와 같습니다. 군사전문가는 이 9줄의 문장으로부터 북한특수군의 냄새를 금방 맡지만 그렇게 못한 사람들은 이 글을 그냥 재미 없는 글로 인정하고 넘어갑니다. 1980년 당시의 수사관들이 그러했고, 당시 군의 정보 및 작전에 봉사했던 장교들이 그러했습니다.
아래 보고서 페이지에는 ‘광주 어깨 300명이 부대이동에 대한 극비정보 즉 5.21.08:00에 제20사단 지휘부 차량이 광주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알아가지고 공단입구에 매복해 있다가 습격하여 사단장용 지프차를 포함 14대의 지프차를 탈취하여 인근 군납업체인 아사이자동차 공장으로 질주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09시에는 또 다른 300명과 합세하여 도합 600명이 회신형 바퀴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56대(주: 356의 오타로 보임)를 탈취하여 시내로 질주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돼있습니다.군의 이동계획은 극비 중 극비인데 광주 어깨 300명이 이를 미리 알아가지고 매복해 있다가 감히 현역사단을 공격하는 것이 1심 유죄판결을 받은 283명의 어린 양아치 계급이 할 수 있는일인 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300명이 09시에 아시아자동차에 집결하였습니다. 600명의 어깨들이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00여대를 탈취하여 운전하고 시내로 나갔습니다. 간첩이 없으면 부대이동계획을 어찌 알아냈겠습니까?
2. 1985. 안기부가 작성한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에는 600명이 여러 차례 기록돼 있고 5.21.12부터 16:00까지 전남 17개 시군에 숨어 있는 38개 무기고가 털렸다는 통계를 낼 수 있는 원천자료가 나열돼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 책 ‘광주의 분노’가 추가로 더 기록한 6개의 무기고를 보태 44개 무기고인 것으로 계산된 것입니다. 아래 안기부 보고서에는 사망자 이름과 나이 사망원인이 기록돼 있습니다. 164명중 12명이 신원불상이고, 85명이 카빙소총 등 무기고 총기에 의해 마망했다는 사실을 카운트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안기부 문서 전체를 불 수 있는 두 개의 파일 주소를 제시합니다. 같은 내용들이 1982.3. 육군본부가 발간한 계엄사에도 잘 정리돼 있습니다.
3. 현장사진의 얼굴-몸매-활동은 세계 최정상급 특전활동
광주 현장 사진들에는 10대~20대 초반의 무산계급(구두닦이 넝마주이, 껌팔이, 목공, 철가방, 구두공 등)이 아니라 나이 들고 단련되고 조직화되고 총기에 익숙해있고, 총을 북한군 식으로 거꾸로 메고. 지휘체계가 확립돼 있고, 총기-수류탄의 기능 여부를 점검하고, TNT를 조립하고, 북한식 제식동작을 보이고, 비표식을 하고, 유니폼을 입고, 장갑차를 몰기도 하고 유도하기도 하고, 중기관총을 장착하고, 차량을 타이어로 요새화하고 질주하는 등의 모습은 광주의 어린아이들이 낼 수 있는 동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광주사람들은 아래 사진들의 모습들은 광주시민들의 모습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전두환 편의대"(게릴라)라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주장은 최근 뉴스 매체들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전두환이 또 다른 군부대 요원들을 차출하여 민간복을 입혀가지고, 이동 중인 제20사단을 공격히게 했고, 예비군과 경찰이 지키고 있던 무기고들을 탈취하면서 경찰과 31사단 병력에 사격을 가하게했고, 도청을 지키는 공수부대를 공격하게 했고, 교도소를 지키는 공수부대를 공격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사람 오로지 광주사람들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사진 속 어깨들이 북한군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상황기록 속의 행동을 북한군이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주사람들에는 팩트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2019.5.3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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