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모의 5.18 방송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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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05-12 16:54 조회6,2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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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모의 5.18 방송에 대해
세뇌탈출 328탄(2019.2.18.)
오늘 카톡으로 보내온 세뇌탈출 328탄(2019.2.18.) “정규재, 허수아비와 사랑에 빠졌다”라는 제목의 동영을 들었다. 정규재의 주장과 지만원의 주장을 대비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정규재 주장은 잘 파악하고 있는데 지만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파악이 거의 안 돼 있다. 5.18에 대해 정규재는 내놓은 콘텐츠가 유튜브 방송 2개 정도다. 이에 반해 지만원이 내놓은 콘텐츠를 파악하려면 최소한 ‘5.18분석 최종보고서’와 ‘5.18영상고발’ 이르는 두 권의 책은 정독해야 한다. 그런데 뱅모가 발언한 것을 보면 그는 이 두 개의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 읽지 않은 내용에 대해 그는 그 자신이 상식적으로 품고 있던 내용을 지만원의 주장이라고 소개했다. 이는 위험한 일이고 성실한 행동이 아니다.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정규재에 대한 뱅모의 비판
뱅모의 논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북한군이 어떻게 개입했는가의 과정 즉 침투과정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다양할 수 있지만, 다양한 시나리오 중 단 한 개의 시나리오를 문제 삼아 북한군 개입이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강도를 당한 것은 사실인데 그 강도가 침입한 경로에 대한 의견 한 개가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강도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옳은 지적이다.
둘째는 5.18을 성역화시키는 것은 매우 잘못 된 것이며 성역화 되기에는 교도소 공격, 비포장 도로를 통해 전남지역 곳곳에 있는 무기고 수십 개를 단 4시간 만에 턴 행위, 카빈총을 뒤에서 쏘아 시민들은 살해한 행위 등등이 풀어야 할 의혹이라고 지적했다.
지만원이 하지 않은 말 했다고 소개
논리전개 과정에서 뱅모는 내가 내놓지 않은 엉뚱한 이야기를 지만원이 한 이야기인 것으로 발언했다. 내가 600명의 특수군병이라고 발표한 것은 맞다. 이는 2014.10.25. 문헌연구에 종지부를 찍은 책 “5.18분석 최종보고서”에 내놓은 결론이다. 그 후 8개월, 2015.5.5.부터 새롭게 시작된 영상분석 결과는 살인기계로 훈련된 600명의 만능 맥가이버들 이외에 또 다른 1,200명의 혼합그룹이 침투했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논이 빛나고 행동들이 예사롭지 않은 600명의 전사들을 위장시키기 위해 무녀자 노인 아이들이 필요했다.
정치공작에 필요한 북한 각계의 엘리트 집단, 로열패밀리, 노인, 부녀자 아이들까지 골고루 해안을 통해 대규모(사진 상의 군중규모로 판단해 보면 1,200명 이상)로 데려왔다는 또 다른 하나의 결론을 보탰다. 이 두 개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헛소리를 하게 돼 있다. 공산진영의 특수작전 게릴라작전, 북한의 공작 수법 등에 대한 깊은 지식 또는 그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기 생각만이 정답인 것으로 내세우면서 진실을 호도하기 쉽다.
정규재에 비하면 분석평가의 패러다임은 훨씬 고급이지만 평가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실 파악 안 해
뱅모는 이 연구 패러다임에 대해 전혀 접속이 없었다. 연구는 연구차원에서 분석한 후에 일반에게 통역을 해야 정당하고 성실한 것이다. 내가 내놓은 전투요원 600명은 내가 함부로 예측해낸 수치가 아니고 염두로 판단한 수치가 아니다. 검찰보고서, 안기부보고서, 군 황일지, 518재단 기록, 광주에 세워진 역사조형물,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 등 모두 8개의 객관적 증거에서 따온 것이다. 특히 북한이 발행한 광주의 분노에는 제35쪽에 600명이 전남지역 무기고를 오후 4시까지 다 털었다고 기록돼 있고,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제595쪽에는 600명의 별동 시위대가 도청을 지키고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사실이 이와 같음에도 뱅모는 자기생각으로 이 600명은 오버해석해낸 수치이고, 자기 생각으로는 100명 미만의 공작요원이 침투했을 것이라고 했다. 자기의 추측을 가지고 객관적 기록을 대체한 것이다. 그것도 무술군인이 아니라 전라도 토박이 말을 할 줄 아는 극소수의 공작원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장삼이사의 의견이지 연구가 아니다.
침투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뱅모는 내가 하지 않은 말을 내가 한 것으로 소개했다. 뱅모는 내가 북한군 침투로를 내륙산길이었다는 시나리오를 썼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주장한 바 없다. 10.26직후 잠수정들로 침투하고, 태백상-문경새재 경로를 통해 소규모로 침투한 후, 막강한 간첩 실력을 이용해 목포-영광 지역 해안을 텅 비게 만들어 대형선박이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게 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썼다. 실제로 조갑제닷컴이 소개한 바에 의하면 유병헌 당시 함참의장이 이 해안지역 경계-방어 부대들을 북쪽 변산반도로 이동시켰다고 증언했다.
뱅모에게 알려주고 싶은 내용: 장진성 이야기
마지막으로 뱅모는 장진성에 대해 거론했다. 장진성은 매우 훌륭한 사람인데 그가 9살 때 광주에 왔다고 주장하니 누가 믿겠느냐, 미국의 영상기술기관도 40년 전후의 사진을 비교분석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비교분석에 사용된 얼굴들은 30년 전후의 얼굴들이지 40년이 아니었다. 3년 내지 10년 전후의 얼굴들도 비교됐다. 이런 것을 보면 뱅모는 나를 경솔한 사람으로 다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상기술에 대한 뱅모의 설명은 좀 의도적인 것 같다. 뱅모는 해골을 가지고 “만일 이 해골의 소유자가 살았다면 이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라는 미국 일각의 연구를 내걸어 나의 영상분석 분야 자체를 폄훼했다.
“9살짜리 특수군이 어디 있느냐?” 장진이 나를 공격하기 위해 널리 퍼트린 말이다. 이 말을 매우 널리 알린 사람이 차기환 변호사다. 여기에 뱅모가 또 가담한 것이다. 아레에 2015년에 방영한 SBS의 짦은 영상보도가 있다. 우리도 6.25때 8세 소년을 훈련시켜 북파공작원으로 보낸 적이 있다. 6.25때 미군이 가장 애를 먹은 것이 어린이 부녀자들을 앞세우고 그 뒤에서 포복해오는 인민군이었다. 이로 인해 노근리 사건도 발생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hJ1Ih-RtYQ
뱅모, 과학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듯
뱅모가 범한 또 한 가지 오류는 북한군 참투가 있었느냐의 여부는 북한이 해방이 돼서 비밀자료가 나와 봐야 판명된다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학문이 무용지물이 된다. 모든 과학은 예측을 위해 존재한다. 판사의 판단도 ‘여러 가지 사실과 정황들을 가지고 판단해 보면 이렇게 생각된다’는 식의 판단이다. 의사도 판단한다. 판단에는 언제나 불확실성이 있다. 그래도 그것을 극북하는 것이 과학이다. ‘정확’리는 단어는 말로만 존재하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수치는 다 ‘근사치’(Approximation). 일반 수학자들로서는 접근조차 어려운 고등 통계수학의 존재이유는 그 근사치를 찾는 것이다. 이를 법학에서는 “사실로 믿을만한 근거‘라는 말로 원용한다.
뱅모에게 판단을 구하고 싶은 사항, 광주교도소
뱅모는 5.18을 성역화하기에는 의혹들이 많다고 했다. 그 중의 하나를 교도소 공격이라 했다. 교도소는 5회 공격당한 것으로 대법원 판결서에 기록돼 있다. 그런데 뱅모는 3차례 정도였다고 했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뱅모는 적당히 들은 내용들을 가지고 역사연구를 진단한 것이다. ‘북한군개입 여부’에 대해, 나는 뱅모에게 판단해 보라고 주문하고 싶다. 1) 대법원은 “광주교도소를 무장시민이 5회 공격했다. 그 교도소는 제3공수여단이 방어하고 있었다“고 판결했다. 2) 광주시장 윤장현과 5.18기년재단 등 5월 단체들은 ”광주시민은 절대로 교도소를 공격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뱅모 판단을 기대한다. 교도소를 공격한 주체는 국군인가 북한군인가? 이 사실을 가지고도 ”북한군 개입여부는 오로지 북한 캐비넷을 열 때까지 알 수 없다“이렇게 말할 것인가?
통계학은 단순한 사건 사실들, 좌표 공간 상에 찍힌 수많은 점들을 여러 가지 수학정리, 공식을 이용하여 근사치를 이끌어내는 학문이다. 한-두 개의 현상, 몇 개의 점들으로부터 뽑아내는 예측치에는 불확실성이 크다. 통계학적 용어로 편차(Variance)가 크다는 것이다. 편차가 크다는 것은 정보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북한군 개입이라는 결론을 내기에 30개 이상의 Smoking Gun를 발굴했다. 그러나 뱅모 등은 이 모두에 대해 읽어보기조차 안 한 사람들이다.
뱅모에게 장진성 바로 알려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뱅모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장진성이 자기를 광수로 지정했다는 사실에 대해 나를 고소했다. 그가 고소를 했기 때문이 피고인인 나는 그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1)김일성종학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2) 그는 대남사업부 예하 제101연락소에서 남한 운동권과 대학생들에게 시를 써서 보냈다고 자랑했다. 3)그는 탈북스토리를 두 차례 썼다. 하나는 2009년에 탈북자동지회 게시판에 연재했고, 이어서 2001에는 조갑제닷컴을 통해 “시를 품고 강을 넘다”라는 책으로 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울었다. 그에 대한 수많은 인터뷰 자료들이 있다. 나는 130시간 정도를 내서 이 모두를 현미경식으로 분석하고 패러다임 측면에서 분석했다. 그리고 2017.11.30.에 그를 법정에 불러 5시간 동안 신문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아래와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1) 정진성은 김일성종합대학 나오지 않았다. 2) 장진성은 대납사업부 제101연락소에서 근무하지 않았다 3) 장진성의 탈북스토리는 가짜로 쓰였다 4) 장진성의 본명을 그는 장철현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은 위철현이다 5) 그는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부인과 아들 위금성을 두고 왔다.
그는 모든 언론에서 귀빈으로 대접받아 왔다. 그런데 내가 이 사실을 공개하고부터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서슬 퍼렇게 내놓은 그의 학력과 경력 그리고 수많은 국민을 감동시킨 탈복과정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오랜 시간 연구할 엄두를 낸 사람, 이 나라에 있었는가? 없었다. 오로지 지만원 혼자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진실을 밝혀냈다. 누구의 서랍에서 비밀문건을 꺼내다가 밝혀낸 것이 아니다. 수학적 분석능력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대한민국에서 20만쪽 이상의 수사기록, 북한문헌, 5.18재단의 문헌들을 가지고 5.18의 진실을 다 밝히겠다고 작정했던 사람 그 누가 있었는가? 이 역시 오로지 나뿐이었다. 이를 함부로 대하고 평훼하는 사람들은 학문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모르는 건달일 것이다.
내 앞에 영상과학 출현
문헌연구에 종지부를 찍은 순간으로부터 8개월이 지났다. 한 인터넷 청년이 제1광수를 찾아냈다. 광주 현장사진에서 페퍼포그 차에 기관총을 거치하고 무전기를 사용하고 워키토키를 보유하고, 뜨거운 기관총 총열을 갈아 끼는데 사용되는 특수장비인 석면장갑을 착용한 채, 매 눈보다 더 예리한 눈매로 어딘가를 쏘아보는 그 얼굴이 평양의 얼굴과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2010년 5월 17일, 연합뉴스가 한장의 평양사진을 보도했다. 평양에서 가장 큰 건물인 노동자회관에서 5.18 30주년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로열 석에 나란히 앉아있는 세 사람 증 한 명이 바로 광주현장 사진 속 매 눈의 소유자와 닮았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영상분석 전문가를 찾았다. 이때 노숙자담요가 나타났다. 그는 이 두 얼굴이 어째서 동일인의 얼굴인지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분석해 30년 전후의 두 사진이 한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네티즌들이 열광했다. 자료검색에 능한 분들, 영상 인식에 능한 분들이 나타났다. 비슷한 얼굴들을 찾아 노숙자담요에 분석을 의뢰했다. 노숙자담요는 ‘그렇다 아니다’를 자세히 분석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노숙자담요가 이끄는 8명의 분석팀이 발굴한 광수는 총 661명이다.
뱅모는 광주 현장 사진들을 보았는가?
나는 이 661명의 광수들 중 일부를 담아 제9번째 책인 “5.18영상고발”이라는 제목의 대형 화보책을 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결론이 들어 있다.
첫째, 광주의 현장사진들의 주역들이 절대로 광주시위의 주력이라는 20세 전후의 사회불만계급 계급 즉 구두닦이 껌팔이 양아치들이 아니었다. 몸매가 단련된 주역들이 지휘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경찰방호복을 유니폼으로 착용하고, 소총으로부터 중기관총에 이르기까지의 총기를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장갑차, 페퍼포그차, 군용트럭, 대형화물차, 대형버스 등의 차량운전에 훈련돼 있었다. 총을 북한식으로 거꾸로 메고, 인민군식으로 팔을 흔들고 다녔다. 수건 등을 목이나 머리에 둘러 자기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도록 비밀표시를 하고, 복면을 하였다. 다이나마이트와 수류탄 더미에서 순식간에 2,100발의 폭탄을 조립하고 있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런 모습은 광주 시민들이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고도의 군사작전 모습들이었다.
둘째, 옛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영상고학의 출현으로 인해 광주현장 사진의 주역들이 북한에서 출세한 사람들의 얼굴과 일치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중국에서는 영상기술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ATM 현금 인출기에서 비밀번호 대신 얼굴로 돈을 찾는다. 공항도 얼굴로 출입하고, 기차, 버스를 탈 때에도 얼굴로 차비를 지불한다. 5만 관중이 모인 콘서트홀에서 CCTV에 의해 해묵은 범인이 검거되었다. 우리나라 정부청사에서는 공무원들이 얼굴로만 출입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알지 못한 채, 영상분석 기법을 아직도 낯설어하거나 무시한니다. 이들이 아무리 영상과학을 외면해도 우리가 찾아낸 광수는 분명 영상과학의 산물이다.
마지막으로 뱅모에 질문한다. 위 장진성 얼굴에 그려진 기하학적 도면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는가? 사물을 인식하는 뱅모의 시각은 그 프레임이 정규재-조갑제 부류와는 달리 매우 균형돼 있다. 그러나 사실파악에 대한 성실성이 부족하고 과학에 대한 펀더멘털이 좀 부족한 것 같다. 하나 더 보탤 말은 정규재와 조갑제의 논리가 매우 황당하다는 것을 지적해 준 데 대해 감사한다.
2019.5.1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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