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의 붉은 신분증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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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04-15 23:30 조회4,78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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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의 붉은 신분증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조갑제 지음, 1987.2. 한길사
위 책은 조갑제가 1987년 2월에 내놓은 책이다. 내가 국방연구원에서 대령으로 예편함과 동시에 연구소를 떠나 미국으로 출발했던 바로 그 때 조갑제는 반정부 반독재에 맞서 민중의 편에 서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독재정권으로 규정한 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 책에서 묻어나는 조갑제의 색깔은 반국가 민주화 운동의 붉은 색깔이었다.
“조갑제는 민주화운동에 동참하여 반정부-반독재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민중세력의 억울함을 대변했던 기자”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을 고문과 조작을 일삼는 경찰을 수족으로 사용했다는 의미에서 책 제목을 무섭게 붙여 위 3개정권을 파괴해야 할 독재정권으로 몰아갔다. 이때는 김동길 교수도 반독재-민주화를 외치는 철부지 투사였고 조갑제와 한편이었다.
1980년대에 조갑제는 이미 민중사상에 물들어 있었고, 훈련돼 있었다
1980년대에 조갑제는 반정부 기자로 낙인찍혀 수난을 받은 바 있다. 그가 1987년 2월 25일 발행한 책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고문에 의한 인간파멸과정의 실증적 연구-"(한길사)을 살펴보았다. 줄거리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의 한국경찰이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이라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증거를 수집하기보다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생사람을 고문하여 고문후유증으로 요절케 하는 등 반인권적 행위를 자행하였다고 고발했다. 그 사례로 민중 계급인 김기철씨 등 몇 가지 억울한 케이스를 취재했고, 이 과정에서 조갑제는 자신을 정의의 사도로,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을 악으로 규정하였다.
고문과 조작은 이조시대에도 있었고, 미국에서도 있었다. 그것은 시대의 산물이지 정권의 산물이 아니었다. 이 나라 최고의 애국대통령을 진흙탕에 넣고 밟는데 조갑제가 앞장섰다
경찰은 반공의 이름으로 수많은 고문을 가했으며 이러한 고문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때로는 어린이를 살해한 사람이 따로 있는데 억울한 사람들을 줄줄이 불러다 고문을 하고 반공의 이름으로 박종철 경우처럼 수많은 희생자를 냈으며, 이런 억울한 고문에 대한 하소연이 개별차원에서만 맴돌다 사회적 관심사로 확산된 것은 박종철에 대한 고문치사 사건부터였다고 진단한다.
조갑제는 이러한 고문과 조작기술을 일본경찰에서 전수받은 것으로 진단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경찰에서 복무하던 친일 경찰을 가지고 한국경찰을 만들었기 때문에 고문과 조작이 횡행했다고 진단한다. 일제 경찰출신들이 이승만을 동대문 갑구에서 이기게 하기 위해 경쟁자인 최능진을 악랄하게 탄압하여 이승만으로 하여금 무투표로 당선되게 했고, 급기야는 최능진이 조작의 결과로 사형까지 당했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한 존재가 바로 경찰이라고 진단했다. 일제의 잔재인 악랄한 경찰을 권력의 시녀로 부린 정권이 바로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이며, 그래서 이 3개 정권이 다 같이 독재정권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런 논리는 당시의 운동권 논리 그대로였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고교출신 조갑제가 감히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참새가 붕을 알 턱이 없는 것이다.
조갑제의 이런 한가한 이론과는 달리 현실은 다급했다. 빨갱이들이 우글거리는 상황에서 이승만은 경찰에 빨갱이 색출을 독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념은 숨겨져 있다. 빨갱이들과의 전쟁 상황은 다급하고 문반 고기 반이라는 표현처럼 빨갱이 반 양민 반인 상황에서 빨갱이 사냥을 하자면 억울한 희생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승만 시대를 앞에 놓고 이승만과 조갑제의 처지는 하늘과 땅치이로 달랐다. 이승만은 1950년 전후 시대를 통치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조갑제는 1987년에 겨우 고등학교를 나와 이리저리 떠도는 42세의 애송이였다. 그런 실력으로 역사를 민중의 시각과 민중의 이념으로 감히 이승만 박사를 단죄한 것이다.
그 누가 이승만의 말을 믿지 조갑제의 말을 믿겠는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경찰을 이렇게 격려했다. “빨갱이들이 우글거리고 이들이 국가 대세를 잡아 흔드는 다급한 상황에서 경찰들이 열심히 빨갱이를 잘 잡아내고 있다”
고문과 조작은 일제의 전유물만은 아닐 것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도 고문과 조작을 아주 많이 했다. 아마도 일본보다 더 했을지 모른다. 조선 왕실의 역사는 고문과 조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문과 조작은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존재한다. 이는 시대적 현상이지 특정 정권의 현상이 아니다. 그 어느 정권이, 어느 대통령이 경찰더러 어린아이의 살해사건에 대해 아무나 잡아다가 고문하고 조작하라 지시를 했겠는가? 그건 경찰의 문제요 검찰과 판사들의 문제인 것이고,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만일 조갑제가 위의 책을 고문과 조작을 시정하고 경찰과 검찰의 수사문화와 수사시스템을 개선하자는 순수한 뜻에서 저술했다면 이는 순수한 인권차원에서 쓴 것이라 매우 칭찬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는 고문과 조작 사례를 반정부활동, 반독재 투쟁에 이용했다. 그래서 조갑제는 최근에도 아래와 같은 취지의 말들을 했다.
아래의 조갑제 글에서 나는 골수간첩 그 이상의 붉은 마각을 본다
“오늘의 민주화운동은 정상적인 민주화운동이며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민주화 역사를 위해서는 박대통령은 잘 제거됐다”
“전두환 등에 대한 죄는 청문회와 수사과정을 통해 의문점 없이 깨끗하게 밝혀졌다. 전두환은 쿠데타로 불법 집권했고, 5.18민주화운동은 반공차원에서 이루어진 진정한 민주화운동이다.”
“전두환은 월남전에서도 양민을 학살한 부대의 연대장이었다”
전두환이 광주에서만 학살을 한 것이 아니라 월남에서도 양민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 거리가 너무나 먼 망언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고등학교 교과서만큼만 벌어진 눈을 가지고 함부로 입을 놀린 것이다. 조갑제가 이 책을 발행했던 때는 내가 육군대령으로 홍릉 국방연구원에서 국방비의 낭비를 지적하면서 장군들과 싸우며 지내다가 예편을 결심하던 때였다. 필자는 1987년 2월 28일 대령진급 2년 5개월 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예편했다, 바로 이 때 조갑제는 전두환 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민주화 대열에 서 있었다. 나는 체제 속에서 개선을 추구했고, 조갑제는 체제를 부정하는 운동을 한 것이다.
조갑제는 북한식 민중주의 사상에 훈련돼 있었다, 조갑제는 책의 앞머리에서 말했다
“박종철의 죽음은 2.12 총선과 함께 한국인의 민권수위를 한 단계 올려놓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80년간 쌓인 한의 응어리가 얼마나 깊고 큰지는 박종철 사건에 대한 ‘민중’의 폭발적 반응이 잘 말해 주고 있다”
조갑제의 입에서 ‘민중’(민중=인민)이라는 용어가 나온 것이다. 당시 '민중'이란 용어는 운동권 용어였다. 당시의 민중이란 기층세력 즉 무재산계급을 의미했다. 그가 다룬 고문 조작 사례 역시 김기철 고숙종 등 무재산 기층에 치우쳐 있다. 돈 없고 백 없는 무소유인들의 억울함을 대변한 것이다.
남북한 대결이 없는 사회였더라면 조갑제는 좋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좌파운동이 기층세력을 앞에 세우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저들은 5.18폭력시위에 앞장 선 사람들의 80% 이상이 불쌍한 기층세력이라는 것을 내세운다. 좌익들은 민중민주주의를 앞세운다. 민중이라는 것은 북에서 말하는 인민이며 인민은 곧 기층세력이라는 뜻이다.
민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 주사파들의 운동지침, 조갑제가 그들 편이었다
조갑제의 책 역시 기층세력이 당하는 억울함을 눈물과 분노의 표현들로 극화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는 좌익들이 기층세력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던 그런 시대다. 조갑제의 위 책은 기층세력의 억울함과 서러움을 대변해 주는 작품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왔던 그런 시대에 나온 책이다. 한국판 TV드라마 '에덴의 동쪽'도 바로 그런 작품이 아니었던가? 조갑제는 빨갱이 체제에 가입돼 있었고, 그들과 호흡을 함께 했으며, 사상훈련이 돼 있었다.
빨갱이들이 천지를 이뤘던 시대에 그들을 사냥한 용감한 경찰에 나는 이승만이 그들에 보낸 그 찬사를 복창한다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에 국보법과 관련하여 고문을 당하다가 숨졌다. 박종철 사건은 당시 정부를 전복하기에 충분했던 386주사파들의 쓰나미에 맞서 국가공권력이 힘겹게 대항하던 과정에서 발생했다. 빨갱이들이 일으키는 파도는 국가를 삼킬 듯 무섭게 밀어닥치고 경찰력은 부족하고, 갈 길은 바쁜 그런 다급한 상황에서는 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박종철 사건은 김기철 사건이나 고숙종(여인) 사건 등 여타의 일반 범죄사건과는 다르다.
참고로 조갑제가 쓴 위 책은 한길사에 발간됐으며 한길사는 맑스 등 이념서적의 발행사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송건호·강만길·이영희 등 50인 좌익)도 한길사의 생산품이다. 조갑제가 지은 ‘유고’ 등 당시의 책들도 한길사에서 발행한 모양이다. 위키백과 사전에는 조갑제가 "4.19, 6·3 사태,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의 6월 항쟁을 근본적으로 반공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하며, 이 운동 속에 소수의 좌익이 끼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대세를 이루지 못했고 주도권도 잡지 못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과거의 간첩들과 국가파괴자들에게 재심 논리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조갑제
1987년 이른바 '6월항쟁'은 386주사파들이 일으킨 폭동이었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갑제는 주사파들에 의한 폭동들을 옹호하는 기자요 '민주화기자'라 정의할 수 있다. 조갑제가 1987년에 만든 두 개의 빨갱이 용어 “고문과 조작”, 이 두 단어, 과거의 간첩들과 반국가 국보법 위반자들에게 민주화열사라는 면류관을 씌워주는 수많은 재심사건 판결문들에 천편일률적으로 쓰이고 있다. ‘고문과 조작’이라는 판결문으로 모든 재심사건에 지불되고 앞으로도 지불될 총 국가예산은 2조를 넘을 것이다.
이상의 이유들만으로도 나는 조갑제와 그를 추종하는 영혼 잃은 아류들을 위장한 빨갱이들이라고 정의한다.
2019.4.15.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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