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모습 단 한번이라도 보여주고 죽었으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04-11 02:03 조회6,161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이런 모습 단 한번이라도 보여주고 죽었으면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잉글리드 버그만과 케리쿠펴가 주영하는 영화였다. 이 때 나는 사관학교 4학년이었다. 영어 교수가 리버럴했다. 모두가 시내에 가서 영화를 관람하고 감상문을 발표하라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말했다. ‘인생을 72시간에 응축한 영화였습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72시간의 사랑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의 교수가 나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너 혹시 어느 평론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눈치였다. ”생도 그 감상은 보통을 뛰어 넘는 감상인데 혹시 평론을 읽은 것 아닌가?“ 나는 기분이 몹시 상했다. ’내 감수성 지수가 얼마인데, 내 독서량이 얼마인데‘ 그래도 나는 그 교수 밑에서 영어점수 1등을 받았다.
영화 ‘아미스타드’, 제2의 교훈
스틸스버그 감독의 영화 “아미스타드”,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다 보았다. “아미스타드”는 아프리카에 가서 흑인을 잡아다 노예로 파는 스페인 선박 이름이었다. 건강해 보이는 남녀 흑인들을 욕심껏 배에 싣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항해시간이 지연되었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싣고 가던 노예 일부를 버릴 필요가 있었다. 노예의 발목에 쇠사슬을 매어 줄줄이 바다에 쳐 넣었다. 이러한 광경을 목격한 미 해군 함정이 이 노예 선을 미국으로 나포해갔다. 일단 흑인들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 스페인 노예 상들을 재판에 회부했다.
이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젊은 변호사가 지혜를 짜냈다. 아프리카에서 왔다지만 지역마다 언어가 달라 잡혀온 노예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손가락을 펴고 접어가면서 하나, 둘, 셋, 넷을 발음하게 한 후, 이를 외워 가지고 시장에 다니면서 하나, 둘, 셋, 넷을 아프리카 말로 소리 지르고 다녔다. 시장을 보러 나왔던 흑인들 중에 이 말을 알아듣는 흑인을 찾아냈다. 통역을 시켜 가장 뛰어난 청년으로부터 흑인들이 끌려오게 된 전말을 파악하게 됐다. 이들의 억울한 처지에 공분을 느낀 젊은 변호사가 법정에서 열변을 토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나라에 이런 변호사 있는가? 이 나라에는 왜 이렇게 예술적인 변호사가 없는 것인가?
국회가 열리면 맨 뒷좌석에서 잠을 자는 ‘윌리엄 해리슨’ 상원의원, 반대파 의원들로부터 야유를 받지만 그는 소신껏 코를 곯았다. 젊은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그 윌리엄 해리슨의 힘이 절실했다. 청년 노예 지도자를 데리고 윌리엄 해리슨 저택을 찾아갔다. 해리슨은 쇠사슬로 묶여진 채 자기에게 안내돼 온 노예 청년을 풀어 주라 했다. 그를 데려온 경찰은 규정 위반이라며 풀어주기를 거부했다. 해리슨이 즉시 풀어 주라 고함을 쳤다. 쇠사슬이 풀려지는 순간 그 청년노예의 눈에서 우정의 불꽃이 튀었다.
해리슨의 마음이 감동됐다. 그가 무거운 노구를 이끌고 노예청년을 변호하기 위해 법정에 나섰다. 거대한 몸집의 노구를 이끌고 절룩절룩 법정을 왔다 갔다 하며 변론을 했다. 그것은 무거운 연설이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동등하게 태어났다.(all human beings are created equal). 이는 미합중국의 독립정신이며 헌법의 전문입니다. 우리는 이 인권의 대원칙을 존중받기 위해 전쟁을 했습니다. 이 원칙, 우리에게만 중요하고, 저기 저 아프리카 오지에서 죄도 없이 잡혀온 나의 친구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그런 것입니까?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이 한 장의 종이는 대법정 저쪽 벽에 금박이 프레임으로 포장돼 걸어진 헌법전문과 똑같은 글씨들입니다. 지금 내 앞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는 ‘나의 아프리카 친구’를 해방시켜주지 않는다면 저 벽에 걸려있는 금박이 문장도 파기돼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를 품위 있는 모습으로 정중하게 찢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워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재판장은 노예들을 즉각 해방하라고 명령했다. 평등해질 수 있는 권리란 곧 자유였다. 남이 나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듯이 나 역시 저 흑인의 자유를 박탈 할 수 없다는 것이 평등의 요체였던 것이다.
그 후 그는 미국 제 9대 대통령이 됐다. 이 영화를 보는 나 역시 “인생을 사는 동안 저런 감동의 모습을 한번만이라도 연기해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1841년, 지금으로부터 178년 전의 일이었다.
2019.4.11 지만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