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장(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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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03-26 07:50 조회4,97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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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소 장
고소인: 지만원
서울 서초구 방배로
피고소인 박지원 (국회의원)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1 국회의원회관
상기 고소인은 국회의원 박지원을 다음과 같이 고소합니다.
고소취지
1,박지원은 1) 2019.3.20.에는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2) 2019.3.21.에는 3회에 걸친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를 통해, 3) 같은 날 11시12분에는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고소인에 대한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날조하고, 사실여부에 대한 확인 절차를 생략한 채, 1) 고소인에 대한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고 2) 19년에 걸친 연구내용을 창작이 아닌 권력으로부터 전달받은 공작물이라는 취지로 모략하였습니다. 위 표현만으로는 피고소인이 저지른 범죄의 성격이 다 설명되지 못하였습니다.
2. 고소인은 2002.8.16. ‘5.18에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동년 10.24. 광주검찰이 안양에 소재한 고소인의 거소에 난입하여 고소인에 수갑을 뒤로 채우고, 6시간동안 광주로 압송하면서, 내내 린치를 가했고, 광주교도소에 101일 동안 수감시켰습니다. 이후 고소인은 5.18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1996.부터 시작된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관련 수사 및 재판 기록들을 이양우 변호인으로부터 빌려 그 내용을 근거로 하여 2008년,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이라는 제목의 1,720쪽(4권)의 5.18역사책을 발간했습니다. 이 책이 오월단체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5.18부상자회’ 회장 신경진 등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만 4년 동안 재판으로 고통 받다가 2012.12.27.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1,2,3심 모두 무죄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고소인은 2003.부터 지금까지 평균 400쪽짜리 5.18역사책을 모두 9권 저작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오월단체들은 2015년부터 4건의 민사 및 5건의 형사소를 제기해 전략적 봉쇄소송을 가하고 있습니다. 박지원은 이 연장 선상에서 고소인에게 고통을 주려고, 허위사실로 언론을 도배케 하였습니다.
3. 이와 같은 가사밭길에서 피와 눈물로 이룩한 고소인의 역사적 대업을 단지 피고소인이 속한 집단의 이권을 침범한다는 이유로 폄훼하였습니다. 고소인의 저작물은 고소인 나이 60으로부터 근 20년간의 인생 황금기를 광주사람들과 오월단체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수없이 당하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법관들로부터 박해를 당하면서 이룩한 금자탑과 같은 창작물입니다. 영달과 안락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이런 가시밭길을 19년 동안 걷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고소인의 열과 성을 다해 저작한 이 책은 안보와 역사의 진실을 담아 낸 것으로 현대사 문헌들 중 가장 우뚝 솟은 기념비적 존재이며 이 나라에서 보호받는 그 어느 보물보다 더 귀한 존재라는 것이 고소인의 신념이요 프라이드입니다. 피고소인은 아무런 근거 없이 이 귀중한 가치를 파괴하고, 아울러 고소인 일생의 업적을 쓰레기 정도로 폄훼한 악질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피고소인의 허위사실 공표내용
1. ‘고소인은 MB 정부로 부터 5.18관련자료 모두를 입수하여 5.18을 왜곡 날조했다’는 요지의 표현.
1) “지만원씨는 MB정권 때 받은 북한 자료, 통일부, 보안사, 국정원의 기밀자료, 수사기록을 받아 가공해 5.18을 왜곡했다" (증1, 2쪽 ‘가’/ 증2, 2쪽 ‘가’ )
2)“민주평화당은 21일 이명박 정부 시절 지만원 씨가 국가기관으로부터 자료를 입수해 5·18을 왜곡, 날조했다는 의혹과 관련, 극우논객 지만원 씨를 긴급체포, 구속 수사하라고 촉구했다”(증3, 3쪽 ‘가’)
2. ‘고소인은 김영삼 정부 때 제주부지부장을 하다가 2008.초 김대중 정부로부터 축출당했다는 송영인 등 여러 사람과 초기에 3억 4천만원과 이후의 자금을 조성하여 조직적으로 5.18을 왜곡하기 위한 공작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고소인의 왜곡은 MB정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는 요지의 표현.
1)"(지씨가) 모 단체를 조직하고 전 정보부 요원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초기에 3억4천만 원, 그 후에도 계속 자금을 조성해서 조직적으로 5.18 왜곡 등 공작활동을 해왔다“(증1, 2-3쪽 ‘나’)
2)“지만원 씨가 모 단체를 조직하고 전 중앙정보부 제주지부 부지부장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초기에 3억4000만원…”(증2, 3쪽 ‘다’)
3) “5.18왜곡에 거액이 투입됐다”(증2, 2쪽 ‘나’)
4) “박 의원은 ‘(지만원씨가) 국정원 전 제주부지부장과 함께 그런 일을 했다’며 ‘(MB 정부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증4, ‘나’).
3. ‘고소인의 망언(왜곡)은 고소인의 창작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수사하고 조사한 자료를 받아 거기에 왜곡적 가필을 한 것이다’는 요지의 표현.
1)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이 21일 이명박 정부와 지만원씨의 결탁 의혹을 제기하며 ‘(5·18 망언은) 지만원씨의 창작력에서 나온 게 아니라 최소한 이명박 정부의 수사·조사자료들을 가지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지만원씨가 MB 정부에서 자료를 받아서 5·18 문제를 폄하하기 시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증4, ‘가’)
4. ‘탈북군인연합회 회장 임천용도 고소인의 왜곡공작의 도구였다’는 요지의 표현.
1)“박 의원은 또 ‘임모 씨 등 탈북자 일부가 방송강연에서 자신이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에 침투했다고, 전국은 물론 미국에서까지 (이 사실을)유포한다는 사실도 아느냐’고 지씨의 '5.18 왜곡 공작' 의혹도 제기했다”(증1, 3쪽 ‘다’)
소 결
종합하면 박지원의 주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고소인은 MB정부와 결탁했다.
2) 고소인은 북한자료, 통일부, 보안사자료, 국정원 기밀자료, 수사기록 모두를 MB정부로부터 제공받았다.
3) MB 정부가 수사하고 조사한 결과를 받아 거기에 왜곡을 위한 가필을 하였기 때문에 고소인의 왜곡물은 고소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MB정부의 작품이다.
4) YS때 제주부지부장을 하다가 DJ 정부 1개월만에 축출된 송영인 및 또 다른 안기부 전직 직원들과 함께 3억 4천만원을 가지고 5.18왜곡을 위한 공작활동을 공동했다.
5) 고소인은 연구를 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작성한 자료를 받아 전 국정원 직원들과 함께 막대한 자금을 들여 불법왜곡과 불법전파 등 공작활동을 했다
6) 고소인은 이명박 정부의 하수인으로 공작금과 공작자료를 받아 전 국정원 간부들과 함께 5.18을 왜곡하는 공작활동을 해왔다.
7) 탈북군인 임천용도 고소인의 공작 도구 중 한 사람이다.
허위에 대한 반론
1) 고소인은 MB정부로부터 받은 자료는 단 1점도 없다.
2)전 정권들로부터 3억4천만 원을 받은 바 없다.
3)고소인이 저술한 9권의 5.18역사책을 포함한 수많은 팸플릿과 전단지들은 다 고소인이 19년 동안 창작한 저작물들이다.
4)고소인은 연구하는 데에는 사무실과 노력만 필요했지, 목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5) 송영인은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 제주도 부지부장을 하다가 김대중 정부에서 숙청당한 사람이다. 숙청에 대한 한을 안고 반 김대중 투쟁을 하다가 고소인에 접근했다. 고소인이 2011.6. 500만야전군을 창설하자 ROTC 5기생 2명과 6기생 1명을 이끌고 500만야전군에 참여했다. 그는 자금과도 무관했고, 5.18연구와도 무관했다. 적만 걸고 있다가 분란을 일으켜 2012.3. 500만야전군 총회로부터 그가 끌고 왔던 ROTC 장교출신들과 함께 제명당했다. 그는 MB정부와 연결된 사람도 아니고 5.18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능력자도 아니고, 연구한 바도 없고, MB정부로부터 가지고 온 것이 아무 것도 없다. 2011.6.이라는 시점은 고소인이 발행한 총 9권역 역사책 중 7권을 이미 발행한 시점이었다.
6) 500만야전군은 대한민국을 대청소하기 위해 고소인이 설립한 단체로 5.18과 4.3역사 연구, 해방이후의 현대사 일반에 대해 연구-계몽해왔고, 정치-경제-사회-교육 등에 대한 시국을 진단하여 매월 1회씩 ‘월간시국진단’을 발행해왔다.
7)고소인과 이명박 사이, 고소인과 박근혜 사이는 객관적인 적대관계였다. 고소인은 2007.8. 이명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이명박으로부터 2007.8.에 고소당해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던 사람이며, 박근혜에 대해서는 “김정일과 놀아난 빨갱이” “차라리 자결해라”는 공공의 글을 썼을 정도의 비호의적인 평론을 가했던 사람이다. 2014년, 박근혜는 당시 10개월 전에 이미 무혐의처분을 받았던 게시글에 대해 조광환 검사를 동원해 재조사를 시킨 일이 있다. 이 모든 것이 뉴스와 기록들로 증거 돼있다. 박지원의 발언은 이 모든 팩트들과 배치된다.
8) 고소인의 연구는 창작이지 공작이 아니다.
9)임천용은 고소인의 공작도구가 아니었다.
10)증5는 2019.2.8. 국회공청회 발표자료다. 이 내용은 살인기계로 훈련된 600명과 그들의 정체를 은폐해 주고, 국가를 살인집단으로 모략하기 위해 북한으로부터 데려온 각계의 엘리트-부녀자-노인-아이들로 혼성된 대형 공작 무대를 꾸며 시체장사를 하는 등 또 다른 수백 명의 공작집단이 존재했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고소인의 연구가 허위라는 것을 밝히려면 피고소인은 최소한 증5의 내용이 왜 허위인가를 석명해야 할 것이다.
고소인
피고소인은 고소인의 연구결과가 서기 1,600년 갈릴레오가 주장했던 지동설과 같이 ‘새로운 발견’이라는 데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데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고소인을 장삼이사 정도로 생각하면 고소인의 연구결과에 대해서도 ‘평가절하’하고 싶을 것이고, 고소인이 일반인들로서는 따를 수 없는 특별한 내공을 쌓은 비범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연구결과에 대해서도 존중하려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한마디로 고소인은 함부로 평가절하 되거나 무시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비범한 사람입니다.
서기 1,600년 시대의 갈릴레오는 기원전 600년대로부터 시작된 과학의 세계에서 무려 2,200년 동안 진실로 인정돼왔던 천동설을 뒤집고 지동설을 주장해 과학의 이단아 취급을 받았습니다. 고소인은 지난 38년 동안 이 사회에 고정관념으로 자리해온 “민주화역사”를 부정하고 ‘북한게릴라역사’라는 전혀 새로운 역사를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고소인 역시 이 시대의 이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5.18을 민주화를 믿는 국민보다 북한의 폭동이라 인식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고소인의 생각입니다. 학문을 아는 사람은 피고소인처럼 경솔한 행동 하지 않습니다.
뉴턴은 서기 1,700년에 걸쳐 있던 과학자였습니다. 수천-수만 억의 인구들이 사과가 낙하하는 것을 보았는데도 그 낙하하는 현상이 만유인력의 법칙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스 과학이 태동한 이후 2,300년 동안 세상 사람들이 모르던 것을 뉴턴 한 사람이 깨우쳐 주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과학적 발견과 발명은 수억의 인구가 협동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천재가 하는 것입니다. 고소인은 서기 2,000년에 걸쳐 있는 사람입니다. 육사를 나와 곧바로 베트남전에 파병되어 44개월 동안 게릴라와 싸웠습니다. 사관학교 졸업 9년 만에 미해군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에 선발되었습니다. 전군에서 단 1명을 뽑는데 고소인은 영어시험 100점 만점에 97점으로 기록을 깨면서 뽑혔습니다. 전투를 하면서도 철모에 영문소설책을 넣고 다녔습니다. 생사를 가르는 전쟁터에서 이런 노력 하는 사람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문과 석사에서 응용수학 박사과정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미해군대학원은 스탠포드나 하버드보다 학비가 2.5배나 비싼 귀족학교입니다. 미국전역의 대학 순위에서 1,2,3등을 차지하는 대학이 육해공군 사관학교입니다.
미국은 해군의 나라입니다. 해군이 전체 국방예산의 60%를 소화합니다. 해군이 엘리트 석-박사과정을 만들어 미 육해공군 장교들과 극히 일부의 연합국 장교를 받아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킵니다. 그래서 한국 육사를 나온 고소인이 그런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고소인은 미해군대학원 창설 70년 이래 최초로 문과석사에서 이과박사로 전환한 유일한 전설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피타고라스 이래 2,600 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동안 아무도 창조해내지 못한 새로운 수학공식 2개와 새로운 수학정리 6개 그리고 미 해군함정들이 90일 작전을 나갈 때 선박의 창고에 싣고 나가야 할 각 수리부품 수량을 계산해 내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박사논문에 실었습니다. 이처럼 고소인은 새로운 것을 탐구할 수 있는 과학적 훈련이 돼 있는 사람입니다. 갈릴레오와 뉴턴 등은 2,000년 이상 유지돼온 세계인들의 고정관념을 뒤집었는데, 어째서 다수의 수학공식과 수학정리를 발명한 능력을 가진 고소인이 불과 38년 된 고정관념 하나 ‘깨서는 안 된다’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합니다.
이 대한민국에서 5.18 현장을 기록한 상황일지들, 검찰 및 법원 기록 18만 쪽을 19년 동안 연구한 사람은 오로지 고소인 한 사람뿐입니다. 그 어느 돈키호테가 먹고 살기에도 바쁜 각박한 세상에서 이런 위험한 물건에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고소인만이 한 것입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연구를 혼자 했다는 것이 범죄행위로 매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5.18 기록들에 대해서는 수많은 기록자들이 있고, 그 기록들을 부분부분 나누어 검토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모두를 혼자서 10여 년에 걸쳐 살피고 정리하고 자간을 음미한 사람은 오로지 고소인 한 사람뿐입니다. 판사도 검사도 조사관도 모두 다 시간에 쫓겼지만 고소인은 느긋한 매너로 차근차근 조사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고소인만이 갖는 연구 스케일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코끼리 구성품 하나씩만 만져보았지만 오로지 고소인만 코끼리 전체를 만졌던 것입니다. 이후 지금까지 고소인이 발행한 저서는 400쪽 짜리 분량으로 9권입니다. 원고의 경력과 학문 수준은 피고소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릅니다. 누구든 고소인이 박사과정을 통해 수학계에서 천재성을 증명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런 두뇌를 가지고 2002.부터 무려 19년 동안 연구한 내용들을 두꺼운 책 9권에 수록해 놓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고소인의 연구결과가 ‘그들의 증명되지 않은 고정관념’과 다르다 하여 고소인을 이토록 처참하게 파괴하고 매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고소인에 대한 피고소인의 마구잡이식 공격행위들은 과학의 존엄성을 짓밟는 비문명적 폭거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게릴라들과 44개월 동안 전투한 고소인은 게릴라의 성격과 생리를 알고 있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5.18현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소인은 5.18사건기록과 상황일지를 연구했지만, 피고소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베트남에서 3년 가까이 정글을 기었고, 1년 동안 상황장교를 했던 고소인은 5.18상황일지를 보자마자 그것이 게릴라 활동이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피고소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피고소인은 고소인의 어느 연구내용이 무슨 이유로 근거가 전혀 없는 거짓의 뭉치들이라 매도하는 것인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강력범을 잡는 민완형사(민첩한 수완을 가진 형사)에게 날카로운 직감(Intuition)이 필수이듯이 전투를 하는 사람,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도 예리한 직관이 필수입니다. 남다른 직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직관을 사실로 증명하는 과정이 피를 말리고 진을 빼는 극기와 몰두의 작업인 것입니다. 5.18은 북한이 게릴라부대와 심리전 부대를 내려 보내, 전라도와 대한민국을 이간질시켜 남남갈등을 유발하고, 그것이 확대되면 남침을 하려고 기도했던 고도의 게릴라전이었다는 것이 고소인의 연구결과입니다. 이것이 고정관념에 어긋난다 해서 피고소인이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다르면 갈릴레오도 교수목(hanging tree)에 매달고 뉴턴도 단두대에 올려야 하는 것입니까.
모든 과학적 사실의 발견은 ‘가정’(Assumption)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가정’이 없으면 발견도 없습니다. 고소인이 새로운 수학공식들과 새로운 수학정리들을 발명한 것도 ‘가정’이라는 '훈련된 직관'(Conjecture)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 훈련된 직관을 사실로 증명하는 데 2년 이상의 각고의 몰입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동 중에도 문제를 풀고 잠을 자면서도 꿈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몰입’의 경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학문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남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학자들의 기본 매너입니다. 고소인은 지금도 밤새 5.18을 꿈꾸고 수학풀이 하는 꿈을 꿉니다.
30대 후반에 고소인은 위장병을 극기로 극복하면서 응용수학계 최정상에 올랐던 사람입니다. 위장병 때문에 책상에 앉으면 몸이 무겁고 졸렸습니다. 다리가 저려서 차라리 잘라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실 침을 얻어다 배에 30개 이상 꽂았습니다. 배가 고슴도치처럼 보였습니다. 위와 장은 좋아지고 있었지만 체력이 빠져나가 잠이 쏟아졌습니다. 엉금엉금 2층 계단을 내려와 비틀거리며 뛰었습니다. 하루를 거르면 열흘을 거릅니다. 그래서 비가와도 뛰었고, 새벽 2시에도 뛰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극기라는 것입니다. 미 해군 장교촌에서 고소인은 해병대로 소문 나 있었습니다. 뛰는 시간에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수학 문제를 머리에 담고 뛰었습니다. 이렇게 훈련된 머리는 커다란 칠판 같았습니다.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수학기호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이러하기에 잠을 자면서 마지막 해결 고리를 찾았고 곧바로 일어나 꿈속에서 풀었던 답을 노트에 기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것이 극기이고 몰두-몰입의 경지인 것입니다. 정신을 연구하는 인물들은 이를 신의 경지라 합니다. 아마도 피고소인은 고소인이 조깅을 할 때에나 잠을 잘 때에 아래의 수학공식 부호들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머리속 칠판에 써가면서 논리를 전개하는 몰입의 세월을 보냈다는 이 말도 황당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고소인과 피소인은 분명 쌓은 것이 다릅니다.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고소인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시스템공학 박사 학위증 경영학 석사 학위증
아래 사진은 1980.10. 고소인이 미해군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순간입니다. 얼른 보면 색다를 게 없어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한 장의 사진은 엄청난 역사와 감동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980.10.26. 이날 미해군대학원은 500명 정도의 석사를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오직 고소인 혼자였습니다. 머리 좋은 이스라엘 스웨던 미국 캐나다의 수재 4명이 고소인과 함께 이 날의 축복을 함께 하려다 “논문에 새로운 것”을 발명하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그들의 가족들이 고소인을 붙들고 울었습니다. 담당 교수가 원고가 무엇을 발명했고 미해군에 무슨 선물을 주었는지에 대해 한동안 설명했습니다. 그 지역 교포들이 몰려와 단상에 홀로 서 있는 한국 학생을 바라보면서 눈물들을 흘렸다 합니다.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는데 대한 고마움의 눈물이었고, 고소인이 이룩한 경이로운 업적에 감동한 눈물이었습니다.
1990년에는 세계 최대 방위산업업체인 로키드마틴사가 1990.에 고소인에게 국빈대접을 했던 적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보내 준 앨범 책에서 사진 몇 장을 제시합니다. 전투기를 제작하는 세계 최대의 방위산업 업체 중역들이 정신병에 걸려서 고소인을 이토록 특별 초대하여 외국의 수뇌들에나 제공하는 이 엄청난 예우를 해주고, 사진을 찍고 앨범을 만들어 보내주었겠습니까. “군이 전투기를 살 때에는 전투기 대수(Number of Fighter)를 사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는 시간 즉 ‘체공시간’(Time in the Air)을 사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분석 요령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고, 여기에 고소인이 박사논문에서 발굴한 ‘가동도’(Availibility) 계산 공식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고소인이 쌓아올린 공든 탑은 남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닌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그리고 고소인의 저서들을 통해 고소인을 아는 국민들은 고소인을 존중하지 이렇게 함부로 짓밟지 않습니다.
소령-중령 시절, 박사학위를 받아가지고 귀국하자마자 고소인은 1980-81. 중앙정보부에서 북한의 생태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초급장교시절에는 정보장교를 하고, 영관장교 시절에는 대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군 연구소(국방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을 하면서 군의 방어 상태와 무기체계 조달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대한민국 높은 고지에는 공군 레이더 기지와 방공포 부대가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고소인은 그 80%의 고지들을 방문하여 작전능력을 평가했고, 해안 레이더 기지들을 방문해 취약점을 분석하여 윤성민 당시 국방장관에 직보하였습니다. 애국심 없으면 임무 외로 이런 어려운 일 하지 않습니다. 고소인만 나타나면 모든 군부대가 극도로 긴장했고, 그래서 각군에는 ‘지만원 대책반’이 구성돼 있었습니다. 공기나 물처럼 자유재로 인식됐던 모든 군수물자들에 관리책임자를 정해주고, 회계 처리되도록 시스템을 설치했습니다. 이는 군 전체에 비용의식을 불어넣은 일대 혁명이었습니다. 고소인으로 인해 모든 독립부대에는 ‘자원관리참모’가 새로 생겼고, 부대마다 전산기가 들어갔고, 전산 인력이 들어갔습니다. 군의 모양이 바뀐 것입니다. 국가예산이 절약된 것입니다. 국방자원관리 상의 이 혁명은 모든 행정관서로 파급되었습니다. 1987.2.에 대령으로 예편하자마자 도미하여 1987-89. 3년 동안 미해군대학원에서 교수직으로 봉직했고, 이후 귀국하여 국가와 기업에 시스템을 심어야 한다며 프리랜서로 방송, 기고, 저술, 강연 활동에 매진하다가 나라가 좌경화되면서 반공운동의 한 축을 형성해 투쟁해오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튀었고, 바람이 일었습니다. 이런 고소인을 놓고 피고소인은 망언자, 악독한 공작꾼, 협작꾼 정도로 매도한 것입니다.
5.18과 같이 복잡한 사건을 분석하는 데에는 수만 명의 재래식 분석가들, 게릴라를 모르고, 북한을 모르고, 군 작전체계를 모르는 분석가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학문을 통해 고단위 분석력을 훈련한 사람이 필요하고, 게릴라전과 북한의 생리에 대한 기본정보를 동시에 터득하고 있는 특수한 분석가 한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에디슨은 1900년에 걸쳐 있던 인물입니다. 그 사람 혼자 제공한 미국의 일자리가 미국전체 일자리의 6%였습니다. 수억의 인구가 발명할 수 없었던 것들을 그 혼자 발명한 것입니다. 5-6공 당시 정보기관 분석관들은 5.18이라는 거대한 덩이를 한 사람의 눈으로 장기간에 걸쳐 연구한 것이 아니라 각기 조각조각의 편린들을 맡아 분석한 후 이를 합철하였기 때문에 석가래를 한 개씩 본 사람은 많아도 집 전체를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5.18은 규모와 그 성격이 복잡해서 사법부에서 ‘판단’ 방식에 의해 그 실체를 발견해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5.18에 대한 진실을 탐구하는 것은 오로지 학자의 연구영역인 것입니다. 학자가 연구한 것을 자세히 분석해보지도 않고 “지만원의 주장은 근거가 전혀 없는 망언이고, MB정부가 조사해 작성해 준 것을 이리저리 조합해 왜곡목적으로 공작목적으로 사용했다고 폄훼하고, 정권과 결탁한 범죄자라며 함부로 매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중범죄 행위입니다. 고소인이 내놓은 9권의 책 중 단 1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악의적으로 짓밟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 론
박지원의 위 행위는 악의적인 범죄행위입니다. 고소인이 고이 그리고 힘들게 가꾸어 온 명예를 함부로 훼손하였고, 19년 동안의 인생을 투신하여 이룩한 “일생의 업적”을 망언, MB정부로부터 받은 공작물로 폄훼했습니다. 국가의 안녕과 매우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기 위해 19년 동안 천대받고 집단 린치와 집단폭행 그리고 소나기식 소송들에 시달려가면서 “오리를 가든 10리를 가든 오로지 이 한길 밖에 없다는 종교적 신념‘으로 이룩한 역사적 창의물을 놓고 MB정권으로부터 거금을 받고, 전직 국정원 간부들과 함께, MB정권이 조사해서 제작한 완성된 공작 자료를 공급받아, 거기에 가필을 한 불온문서라 매도하였습니다. 법이 허용하는 한 죄고의 형량을 부과해 주시기 바랍니다.
증거자료
증1. 박지원 페북, 노컷뉴스 연결 2019.3. 20. “박지원 "지만원, MB정부 지원받아 5.18 왜곡 공작"
증2. 박지원 페북, JTBC연결 2019.3.21. “지만원 5.18왜곡, MB정부가 지원. .”
증3.박지원 페북, 전남일보 연결,
증4. 경향신문 2019.3.21. “박지원 ‘지만원 5.18망언, MB 정부 자료 받아 시작’
증5. 국회공청회 발제집
2019.3.27.
고소인 지만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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