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TV] 제71광수,황장엽 3D얼굴분석영상(2019.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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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2-22 09:19 조회5,29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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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비서 황장엽과 절도-협박의 전과자 박남선의 신분
제71광수(가발) 황장엽 박남선
두 사람의 얼굴특징: 돌출된 S형 근육, 입꼬리, 미릉골(윗 눈섭 눈퉁이)
위 우측 사진은 박남선, 좌측사진은 광주현장 얼굴(71광수), 가운데 사진은 황장엽이다. 박남선은 당시 26세의 화물차 운전수였는데, 지금은 자기가 5.18당시 총사령관이었다고 주장한다. 아래 사진에서 육중한 특수총(유탄발사기)과 무전기를 든 제71광수가 자기라고 주장하면 민형사 소송에 나섰다. 언론들은 박남선의 주장이 맞다고 선동방송들을 한다. 박남선은 광주 민사재판과 서울형사재판에서 "아래 현장사진의 71광수는 자기인데 지만원이 황장엽과 비슷한 얼굴을 만들어 포토샵을 한 것"이라고 허위주장을 했다. 서울재판부에서는 웃음거리가 됐지만, 아직 판결서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광주판사는 무조건 박남선의 주장이 100% 맞다며 8,200만원을 배상하라 판결했다. 박남선은 5.18당시 26세(1954)로 중학교 2년 중퇴(증141, 13쪽)하였고, 1973.에는 절도죄, 1979.에는 협박죄로 각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증141의 1쪽 하단). 2017.7.7.에는 광주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헸고, 2018.6.21.에는 이 사건 법정에 출석하여 박남선 자신이 시위대 총사령관이었고, 1980.5.21. 상황 모두를 자기가 지휘했고, 그날로부터 전남도청에 상황실을 차리고 자기가 시위상황을 총 지휘했고, 광주 현장 사진들에 등장한 주역들을 모두 자기가 지휘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증141. “전교사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 피의자신문조서(1,2회)”를 보면 이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다. 또한 위 71광수에 대한 현장사진과 어울릴 수 있는 기록이 전혀 없다.
증141의 기록을 보면 박남선은 1) 1980.5.20. 계림동 산수동 풍향동 등 소요의 핵심지역이 아닌 변방들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가두시위”를 했고(2쪽), 2) 5.23.1400.경부터 적십자병원에 있는 19구의 시체를 도청으로 운반하는 일에 동원되면서부터 시체를 도청으로부터 상무관으로 옮기는 일에 노력동원을 당한 피동체에 불과했고(3쪽), 3)5.25. 김창길이 위원장을 하는 시민학생수습위원회의 부위원장인 김종배의 제의로 상황실장을 맡기 시작했고(4쪽), 4)별 로 하는 일 없이 45구경 권총을 어깨에 차고 돌아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어린 학생 등을 상대로 산발적인 지시를 하였으며(4쪽), 5)5.26.1800 경, 김창길 등이 자기들을 계엄군에 넘겨주려 한다는 이야기를 김종배로부터 듣고, 회의를 하는 부지사실로 들어가 김창길을 권총으로 협박해 내 보냈고(5-6쪽), 6) 5.27. 새벽 도청 2층 회의실에 있다가 “투항”하여 체포(7쪽)된 행적 밖에 남기지 못했다. 7)그가 지휘했다는 상황실은 “직원이 6명”(8쪽)이라 진술하였다. 한마디로 개념 없는 피라미였다는 뜻이다. 그가 광주법원과 서울 법정에서 진술한 허풍의 내용들은 모두 그 혼자만의 주장인 것으로 그의 허풍을 뒷받침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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