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도배한 “김사복 빨갱이”와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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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8-12-12 23:13 조회4,9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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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도배한 “김사복 빨갱이”와 그 의미
고소의 대상 글: “택시 운전사 김사복은 빨갱이로 알려져 있다. 더러는 그를 간첩이라고 한다” 이 한 줄을 가지고 KBS까지 나서서 지만원이 곧 구속될 것이라는 분위기를 자아내게 방송했다. 항간에는 지만원이 구속됐다는 소문들이 파다하다. 내가 쓴 위 붉은 글자들은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눈꼽만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 빨갱이들은 성질대로 다 했기 때문에 무너져 내릴 것에 대해 몹시 불안하고 조급증을 낸다.
망하는 것은 지만원이 아니라 나를 고소한 김사복 아들 김승필일 것
2008년 11월 13일, 문근영이 떴다. 사회복지공동모급회에 8억을 기부했고 범민련 남측본부에 5천만원 기부했다, 조선일보가 앞장서서 문근영을 기부천사로 띄웠다. 여기까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회가 멋져 보였다. 하지만 빨갱이 매체들이 떼거지로 나타나 문근영을 ‘엄친딸’로 키운 사람이 문근영의 외조부 류낙진 옹이며 그는 35년 동안 통일운동을 한 대가로 감옥생활을 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니까 문근영을 반듯한 엄친 딸로 키웠다고 선전했다.
나는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을 각오하고, “선행을 앞세워 빨치산을 미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SBS와 존선일보가 앞장 서서 지만원을 공격했다. ”지만원이 말하기를 문근영이 기부를 한 것은 빨치산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물론 소송에서 내가 이기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시기가 되면 조선일보가 가장 먼저 앞장서서 인민공화국만세를 부른 기생신문이라는 것은 내 신조가 됐다.
문근영과 김승필
빨갱이들은 문근영을 이용해 2009년의 대목을 잡으려 했다. 이에 대한 의표를 찌르자 모든 빨갱이들이 다 나섰다. 당시로는 이 지만원이 전 사회적인 매타작을 당했다. 그러나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문근영은 주 무대에서 탈락했다. 문근영을 망친 인간들은 내가 아니라 빨갱이들이다. 나도 가는 곳마다 “왜 문근영이 빨갱이예요?” 공격을 받지만 결국 망가진 쪽은 문근영이다. 그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부정과 비리가 연속 터졌다. 이제 많은 국민들이 이 모금기관에 돈을 내지 않을 것이다. 툭하면 북한에 돈 퍼주는 적십자회에도 성금을 내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런 그림이 김사복의 아들 김승필에 오버랩될 모양이다. 김승필은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여기 저기 강연을 다닌다는 기사들이 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김사복이 빨갱이라는 소문이 온갖 방송 매체들에 의해 전국에 퍼지면서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문근영을 지만원이 빨갱이 집안이라 했다는 언론보도가 극성을 부리지 않았다면 문근영은 지금도 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김사복에 대해 지만원이 빨갱이라 했다는 언론보도가 없었다면 김승필은 아버지의 후광을 계속 받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면 이런 빨갱이 보도가 널리 널리 전파된 이 시점에서 세상사람들이 김승필을 쳐다보는 눈길은 어떠할까? 나는 매우 부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측한다. 김승필은 언론보도로 인해 한때 어깨가 으쓱했을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달팽이 사회인 광주 뒷골목이라는 찻잔 속 태풍이었을 뿐이다. 그 역시 문근영의 뒤를 따르는 인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김승필과 부화뇌동한 1942(?) 생인 지용, 그는 이 나라 반공투사의 영웅반열에 속하는 지갑종씨 친동생이라 한다. 그 역시 나를 고소했지만 그가 그의 집안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궁금해진다. 지갑종씨가 건재하다면 그는 가문을 지키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본다. 내가 볼 때 지갑종씨가 자기 정신을 가지고 있고, 또 이 고소사실을 안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리라고 본다.
빨갱이는 인간 수분 빨아대는 쉬파리
나는 이 글을 재판의 이해관계를 마음에 두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절대로 이 고소사건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내가 쓴 가장 아름다운 글들은 “똑섬무지개”에 있다. 거기를 보면 내가 1997년부터 지금까지 180여건의 재판을 받았다는 사실들이 간단히 소개돼 있다. 내가 법원에 내는 답변서들은 내가 쓴 글들 중 가장 아름다운 서사시들이다. 나는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쁜 판사들을 상대로 그를 깨우치게 하려는 영혼의 울음소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나를 한없이 괴롭히는 부나비들, 언제까지 내 몸에 붙어 습기를 빨고 핥아댈 것인가? 내 눈가에 흐르는 물기를 빨아대는 쉬파리처럼, 이 나라 빨갱이들은 오늘도 기승부리는 쉬파리 떼 되어 내게 남은 마지막 물기를 빨아대고 있다. 지독한 마귀자식들.
이나라 국민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사복과 김승필과 힌츠페터와 함석헌과 장진하와 문세광을,빨갱이들에게 김승필은 쓸모 있는 자산일 것이다. 나를 공격하는 것들은 빨갱이들과 언론들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공격 소재가 바로 김승필이다. 우리는 온 세상에 빨갱이 언론들이 보도한 “지만원이 김사복을 빨갱이라 했다” 이 말을 오히려 널리 널리 더 전파해야 할 것이다.
저 인간들의 정체
지금 이 시각은 2018.12.12. 오후 9시 반이다. 구글에 ‘김사복 빨갱이’를 검색해 보면 아직도 162,000개의 글이 뜬다. 그런데 2018.6.6. ‘김사복 빨갱이’를 검색했더니 185,000개의 글이 떴고, ‘김사복 간첩’이라고 검색했더니 201.000개의 글이 떴다.
http://www.systemclub.co.kr/bbs/board.php?bo_table=12&wr_id=16397&page=15
내가 김사복에 대해 쓴 글은 제목 “‘택시 운전사’ 거짓엔 감동이 없다”였다.
http://www.systemclub.co.kr/bbs/board.php?bo_table=12&wr_id=15320&page=40
“영화의 주인공은 5.18 영웅이 아니라 겨우 택시운전사
영화는 힌츠페터와 순진한 택시 운전사를 두 주인공으로 내 세웠다. 그리고 관객의 분노를 자아낼 소재로는 통역 학생 ‘구재식’의 주검이었다. 택시 운전사 김사복은 빨갱이로 알려져 있다. 더러는 그를 간첩이라고 한다. 그 김사복은 영원히 잠적해 있다. 나오면 영웅이 될 텐데 찾고 또 찾아도 영원히 숨었다. 무서운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간첩(?) 김사복을 순수한 시민으로 세탁했다.
힌츠페터 는 빨갱이 간첩
힌츠페터가 한국에서 취재를 하려면 해외공보원에 취재경로를 밝히고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그는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몰래 광주에 잠입했다. 순수한 기자의 임무가 아니었다. 힌츠페터는 5월 20일 광주로 잠입하였다. 그리고 21일 광주를 빠져나간 후 일본으로 건너가 취재자료를 독일로 송고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21일의 예약을 취소하고 20일에 1등 칸을 타고 추적자들을 따돌린 것으로 묘사돼 있다. 그가 취재한 영상들은 5월 20일 하루 동안의 영상이다. 5월 20일에 발생한 실제 광주의 풍경은 계엄군이 몰살지경에 이르는 상황 밖에 없다. 계엄군이 공격을 가하는 시간대가 아니라 계엄군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시간대이다. 결론적으로 위르겐 힌츠페터가 독일로 송고한 나쁜 영상들은 북한이 광주에 와서 실시간 촬영한 동영상들일 수밖에 없다. 그가 속한 독일 언론사 NDR은 힌츠페터가 촬영한 영상이 아니라 북한이 촬영해 힌츠페터에 전해준 영상일 수밖에 없다. 힌츠페터가 촬영했다고 방영한 영상들은 광주현장을 생생하게 담은 광주비디오 “군사파쑈도당을 반대하는 광주인민항쟁”이다. https://youtu.be/4jFx40RwK_o
21일 동경으로 돌아갔던 힌츠페터는 5월 23일, 다시 광주로 왔다. 이번에는 택시기사 김사복이 아니라 북한 특수군의 안내로 광주에 왔다. 북한 권투의 왕자(조선권투협회위원장) 리용선, 훗날 북한유엔대표부 대표가 된 김왕수 등이 그를 샛길로 인도했다. 그리고 그는 그날 북한의 대남점령 목적군이 벌인 모략용으로 꾸민 무대들을 많이 촬영했다. 하지만 그가 쵤영한 영상보다는 북한 촬영전문가들이 촬영하여 그에 준 것이 더 많았을 것이다. 북한은 광주의 모략용 영상을 북한이름으로 세계에 내보낼 수 없다. 그래서 독일기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그래서 독일기자와 북한 사이에는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광주폭도들은 언론사에 상당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장성으로 무기를 가지러 가던 폭도들이 외국인 기자를 발견하고 차량으로 공격하는 일이 발생했고, 21일 오전 11시경에는 일본인 사진기자 風間公씨가 공사장 건물 위에서 사진을 찍다가 폭도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힌츠페터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대접을 받았다.
함께 모이고 함께 활동한 힌츠페터와 김사복, 한민통, 문세광, 함석헌, 계훈제와 장준하 모두가 빨갱이 아닌가?
나는 힌츠페터가 북한에 고용된 간첩일 것이라는 합리적 의혹을 제기했다.
[출처: 중앙일보] '택시운전사' 김사복, 1975년 장준하 사망 현장 취재도 지원
2018.12.1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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