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88)] 지만원 족적[4] 4.육사 1년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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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5-26 23:46 조회9,01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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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88)] 지만원 족적[4] 4. 육사 1년 선배
1년 선후배는 원수지간
사관학교에서는 2학년의 1학년의 적이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2학년들 중에는 심성이 고약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각 학년은 200명이 채 안됐다. 이 200명을 8개 중대로 나누다보니 각 중대에는 1, 2, 3, 4학년이 각 20~25명씩 혼합돼 있었다. 3, 4학년은 1학년생들을 예뻐해주지만 2학년은 1학년을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삼는 듯 했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8시~10시 까지 정해져 있는 자습시간이 이어졌다. 식사 후 8시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그런데 2학년들은 이 자습시간에 1학년들을 괴롭혔다. 덩치가 좀 크거나 좀 뻣뻣해보이는 후배에게 트집을 잡았다. 자유시간에 자기네 방으로 불러 주먹으로 샌드백 치듯이 배를 때리고(후크를 치다) 엎드려 뻗쳐, 원산폭격을 시키거나 완전군장을 꾸려 지고 오라고 했다. 원산폭격은 침대에 발을 올려놓고 거꾸로 엎드리는 것이다. 이것을 하면 배가 떨리고, 가슴이 떨리고, 팔이 떨렸다. 그리고 땀이 비 오듯 했다. 이는 개별 기합이고, 단체기합도 있었다.
생도들이 내무생활을 하는 공간을 생도대라 불렀다. 20여개 계단으로 높이 지어진 식당이 가운데 있고, 그 아래 넓고 길게 뻗친 광장이 있다. 광장 양쪽에는 ‘ㄷ’자형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이 두 개씩 지어져 있었다. ㄷ자 건물의 한쪽은 1중대, 다른 한 쪽은 2중대, 이런 식으로 8중대까지 배열돼 있었다. ㄷ자 광장에는 굵은 왕모래가 깔려있었다. 1년 선배 몇 사람이 조를 짜서 기합주기를 기획하는 것이 일상화 돼 있었다. 주먹을 쥐고 엎드려 뻗쳐를 하면 손등에 각이 진 왕모래가 박혀 피가 흘렀다. 오래 엎드려 있다보면 힘이 빠져 배가 모래 위를 스쳤다. 그것이 발각되면 추가로 더 기합을 받았다. 어떤 2학년은 대검 끝을 배에 대고 엎드리라고 했다.
육사 생도대는 3면이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토요일 어느 날, 여러 명의 2학년들이 외박을 나가지 못하게 한 후, 1학년 25명을 야산에 몰아넣고 토끼몰이를 했다. 2학년에 잡히면 마구 얻어맞기 때문에 맞지 않으려고 가시에 찔리고 가지에 긁히고, 얼굴은 가재를 구워놓은 것처럼 새빨갛게 익었다. 그리고는 3, 4학년 선배들에게 눈치채이면 또 기함을 주겠다며 절뚝거리지도 못하게 협박을 했다. 이는 그야말로 인간성의 문제였고 행패에 불과했다. 이런 선배는 나이 80이 넘은 지금도 싫다. 길에서 스쳐도 아는 체 마저 하지 않을 것 같다. 20%정도가 이런 선배들이었다.
형제같았던 1년 선배
반면 형제같은 1년 선배도 있었다. 내가 3학년이었을 때 4학년 선배였다. 그는 털털하고 상급생 티를 내지 않았다. 그는 가끔 나를 찾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나에게는 3학년 겨울방학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있다. 꿈같은 데이트 이야기다. 그 선배는 데이트 이야기에 한동안 포로가 돼 있었다. “야 지만원, 궁금해서 참느라고 혼났다 야, 어제 그 얘기 계속해봐”
영화마을 구둔
‘구둔’이라는 분지형 동네가 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지였다. 나는 강원도 횡성군의 한 산골에서 출생해 강보에 싸인 채 거치고 거쳐 구둔에까지 와서 뜨내기 신세로 살았다. 구둔은 지금까지도 문명의 손톱이 닿지 않은 옛날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김문수 도지사 시대에 구둔은 ‘영화마을’로 지정됐다. 동서남북 사방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에는 산자락을 따라 중앙선 철로가 이어져 있었다. 북쪽 터널에서 나온 검은색 기차는 높은 언덕을 올라갈 때에는 검은 연기를, 내려갈 때에는 흰 연기를 뿜어냈다.
기차역에서 내려 약간씩 비탈진 언덕길을 내려가면 큰 동네가 있고, 동네 가운데는 초등학교, 내가 졸업한 ‘일신초등학교’가 있다. 내가 살던 집은 그 마을을 통과하여 소로를 따라 한참 가야 나오는 언덕 위 외딴집이었다. 머리카락이 위로 뻗치는 고목 두 그루를 지나고, 돌다리가 놓인 개울을 건너 고래산 자락의 언덕길을 밤에 올라간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나는 선배에게 마을 약도를 그려주면서 학교의 위치를 설명했다.
“야~ 동네가 꽤 목가적이네~”
“집에 가려면 이 학교 운동장을 통과해 가거든요, 후문으로 들어섰는데 동네 형을 만났어요, 어려서부터 학교일을 보았는데 매너가 매우 깔끔해요. 저를 보더니 이야기를 시키는 거예요. 몇 마디 주고받던 중 여선생님 한 분이 교실에서 탁구를 치고, 탁구채를 들고 나오더라고요. 지나쳐가려 하는데 형이 선생님을 멈추게 했어요. 선생님, 인사 나누시지요. 여기 지만원 생도가 이 학교 출신이고, 이 동네에 삽니다. 아~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수줍어하면서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들어갔으니 끝났지요.”
“야, 지만원, 너 눈을 보니까 더 있어. 말해봐.”
의자를 가까이 끌어당기면서 이야기를 재촉했다.
“집에 가서 간단히 연애편지를 썼어요. 그리고 수업에 들어가 있는 시각에 부엌 안 방문 앞에 잘 놓고 왔지요.”
“연애편지? 뭐라 썼는데?”
“마음 그대로 썼지요. 선생님을 보는 순간 마을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선생님이 지나가신 공간에 제 동공이 한동안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냇물 소리가 피아노소리 같았고 발에 부딪치는 오솔길 풀잎들이 감미로웠습니다. 여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동경했던 환상의 대상이었습니다. 수요일 밤, 학교 돌담에 어두운 그늘이 지면 바람을 가르면서 달려가겠습니다. 대강 이렇게 쓴 것 같아요.”
“야, 지만원, 너 어떻게 그런 문학적 글을 쓰냐? 그런 글 내가 읽어도 감동받겠다, 야, 너 옛날부터 글 쓰다 육사 왔냐?”
“선배님. 선배님은 1,2학년 때 여름에 훈련받으면서 진흙에서 구르고, 땡볕에서 그을리면서 무슨 생각 하셨어요?”
“어유, 지겨워. 빨리 끝났으면 하고 생각했지.”
“저는요, 머릿속에 늘 시를 썼어요. 소설의 주인공도 상상하구요. 그러다 보니 정서가 가꾸어 지더라고요. 제 친구 하나가 제가 쓴 편지가 문학적이라며 모으고 있대요.”
“그래서 그 날 찾아갔어?”
“그럼요.”
인생 첫 데이트
“6.25때 일본이 지은 폼 나는 학교가 불에 탔어요. 피난에서 돌아와서는 흙담집을 지어 교실로 사용했어요. 바닥은 진흙, 울퉁불퉁했지요. 가마니를 한 겹 깔고 앉아 공부를 했지요. 이번에 가 보니까 옛날 건물과 비슷한 건물이 들어섰고 흙담집은 구들을 놓아 외지에서 온 남녀 교사들이 숙소로 쓰고 있더라고요. 엉성한 부엌문을 열었더니 선생님이 군물을 때고 있더라고요. 옆방에 들킬까봐 아주 낮게 인사를 했지요. 그랬더니 ‘잘 됐어요. 저도 감기약을 사려고 역전 약방에 가려던 참이었는데요. 코트 입고 나올게요.‘ 하더라고요. 불은 어떻게 하고요, 물으니 ’깊숙하게 장작을 밀어 넣으면 이상이 없을 거라‘ 하더군요.”
“마을 한 가운데로 나 있는 길을 걸었지요. 가끔 어깨가 가볍게 부딪칠 때도 있었고요.”
“와~ 짜릿했겠다. 그래서?”
1차 위기
“집을 나간 막내가 늦어도 안 오니까 저보다 13살 위인 둘째 형이 광솔 불을 켜들고 역전 길로 올라오는 거예요.’만원아, 만원아. ‘”
“와~ 큰일 났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저는 망설이고 있고, 형은 점점 더 가까이 오니까, 여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낚아채면서 뚝 밑에 납작 엎드리게 하더라고요.”
“와~ 그래. 위기에서는 여성의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형을 따돌리고, 약을 산 후, 학교 쪽으로 갔지요. 춥기도 하고.”
“그래서 학교로 곧장 갔어?”
“아니요.”
“그럼 그 추운 밤에 어디를 가?”
2차 위기
“마음 놓고 얘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냇가를 걷기로 했지요. 눈빛도 밝고 동네 전체가 희뿌연 영화공간같이 시야가 멀리까지 비치더라고요. 조금만 더 가면 개천이 나오는데, 앞에서 누가 플래시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오더라고요. 외딴 길인데 들키면 소문이 나고, 소문이 나면 시골은 무서워요.”
선배가 더 긴장했다.
“그래서?”
“마침 커다란 논두렁이 있어서 그 뒤로 숨었지요. 비탈진 논두렁 위에 누웠지요. 그 사람이 지나가고 나서 보니 나는 눈 위에 하늘을 향해 누워있고, 그녀는 나를 감싸고 엎드려 있는 거예요.”
“와~ 짜릿하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다. 그래서?”
섬섬옥수
“일어나 저를 잡아당겨 일으켜 세우더니 마치 해방이라도 된 듯 성큼성큼 꽃 걸음을 걸으면서 심호흡을 하더라고요. 하루 종일 누구랑 대화를 나눴겠어요. 집안 사정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자기 집 이야기도 하고. 손이 시리다면서 내 손을 자기 코트 주머니에 넣고 꼬옥 잡더라고요. 그런데 그 손이 뼈마디가 하나 없이 보드랍더라고요. 그런 손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선배는 의자를 조금 더 당겼다.
“그, 그래서?”
“개천이 보였지요. 얼음이 여기저기 누더기처럼 얼어 있는데 그 얼음들이 왜 그렇게 아름다워요? 물소리가 은방울 구르는 소리처럼 들리고. 옛날에는 늘 보았던 그림인데 와~ 그 순간은 개울이 시보다 아름답더라고요. 옛날에는 모래벽을 만들어 송사리 떼를 가두어놓고, 한동안씩 바라보았거든요. 지구가 나를 위해 돈다는 느낌?”
“야, 야, 지만원, 방향 틀지 말고 본론으로 돌아와. 그래서?”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더라고요.’야! 눈 온다.‘ 하더니 노래를 한 곡 불러 달래요. 왜 있잖아요. 안다성 노래. 눈이 나리는데 산에도 들에도 이거요.“
노래를 끝까지 부를 것 같으니까 선배는 안달이 났다.
”야. 노래 그만 부르고 본론으로 돌아가.“
”자기도 이 노래 좋아한다면서 처음부터 다시 합창하재요. 나는 유행가처럼 부르는데 그녀는 교실 스타일로 불렀어요. 하모니 좋았죠. “
”노래 끝나고, 그 다음은? “
”추위가 느껴지더라고요. 헤어지기는 해야 하는데 일단 집까지는 데려다 주어야 하잖아요.“
”야, 지만원. 여기가 끝이야? 뽀뽀는 안했어?“
”당연히 안했지요. 그런거 생각조차 안했어요.“
”에이~ 바보“
형이상학
”선배님, 우리 매일같이 침대에 누우면 솔베이지송 틀어주지요? “
”그래, 그래서? “
”언제 들을 때가 가장 좋았어요? “
”글쎄~ 생각 안 해봤는데? “
”저는 한겨울에 들을 때가 가장 좋았어요. 살얼음이 살짝 진 찬 공기를 타고 흘러온 선율이라야, 크~ 제 맛이 나지요. 둘이서 개울가 흰 눈을 밟으며 걷는 순간, 솔베이지 송이 환청처럼 들리더라고요. 저는 우리 두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 속 영상으로 띄워놓고, 그 모습에 취해 있었지요. 1차 장면은 현실이고, 2차는 형이상학, 이런 거지요.“
”야, 야, 지만원, 너 언제부터 차원이 그렇게 높아졌니?“
”선배님, 혹시 주홍글씨 읽어 보셨어요?“
”아니, 그건 왜 갑자기 물어?“
”단편 소설이라, 원서로 틈틈이 읽었거든요. 읽다가 밤 10시 취침나팔이 불면 침대 속에 누워야 하잖아요. 여주인공의 가련한 모습이 상상되는 거예요. 여주인공 헤스타프린이 옆에 아른거리면서 눈물이 흘러 베개가 젖는 거예요. 나뉴브강에 잔물결이 일고 두 남녀가 강변의 초원을 걸어가는 모습도 상상되고, 바닷가 바위에 모자를 쓰고 홀로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는 여성 실루엣도 상상되고, 저는 언제나 현실을 상상 속에 먼저 그리는 습관이 생겼어요. 여성이 손을 내밀지 않는데 남자가 손을 내미는 건 안 좋은 그림이잖아요. “
”와~ 이건 달콤한 연애이야기가 아니라 철학이네. 그래서? “
3차 위기
”추우니까 자연 걸음이 빨라졌지요. 숙소인 진흙 건물에 도달하면서 발소리, 숨소리 다 죽이기 시작했지요. 눈 밟는 뽀드득 소리 있잖아요. 숙소 건물 맞은편 가까이에 교장님 자택이 있거든요. 문만 열었다 하면 바로 보이지요. 벽에 등을 붙이고 특공대가 접근 하는 것처럼 발을 수직으로 올렸다 살며시 내리면서 접근 했지요. 바로 이때 바람이 한번 불더니 교장님 사택 앞에 서 있는 나무 위에 두껍게 쌓였던 눈덩이가 쿵~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거예요. 순간 교장님 사택의 문이 열리는 거예요. 숨을 멈추고 정물처럼 얼어붙었지요. 어휴~ 내다보더니 문을 얼른 닫더라고요. 추우니까. “
”와~ 긴장 된다 야~ “
”방으로 들어갔지요. 들어서자마자 그녀가 내 입을 손바닥으로 덮는 거예요. 와~ 손바닥이 너무 부드럽더라고요. 그리고 입을 귀에 바짝 대더니 부스럭 소리까지 옆방 남자 선생한테 다 들리니까 조심하세요. 하더라고요. “
”그 다음은? “
선배가 이야기를 재촉했다.
”요와 이불을 깔더니, 파자마를 입게 돌아서 있으라 하더라고요. 말로 하는 게 아니라 판토마임으로요. 파자마를 들어 올려 보이는 거예요. “
선배가 다그쳤다.
”그래서? “
”돌아서 있었지요. 자기가 먼저 옷을 갈아입고는 다른 잠옷을 제게 내주면서 돌아앉더라고요. “
”그, 그래서? “
”이불을 덮고 그 속에서 갈아입었지요. “
”그, 그 다음엔? “
연필 뺏기
”요에 나란히 엎드리게 하더니 종이와 연필을 꺼내가지고 쓰기 시작하더라고요. 애인 있으세요?, 쓰더니 연필을 넘겨주더라고요. 없어요, 하고 썼지요. 다시 연필을 뺐더니,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쓰더니 연필을 주더라고요. 오늘 내내 황홀했어요, 영혼이 맑고 아름다우세요, 이렇게 썼지요. 얼어서인지 코에서 콧물이 흘렀어요. 얼른 두루마리 휴지를 돌돌 말더니 제 코를 눌러 짜 주더라고요. 어릴 적 이야기, 집안 식구 이야기, 서로 연필을 뺐어가면서 많이도 썼어요. 나중엔 지쳐서 잠이 오더라고요. 벽에는 창문이 있어요. 유리가 아니라 한지인데 푸른 노가지 나무 틈을 뚫고 들어온 바람이 창호지를 막 때리는 거예요. 와~ 아늑하고, 낭만적이고, 서로 행복해하면서 보고 손잡고 있다가 스르르 잠들었어요. “
”야~ 멋있다~ 야, 그런 연애 나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와~ 아름답다. “
어미 새와 아기 새
”아침에 눈을 뜨자, 저 혼자 있더라고요. 아침이면 정해진 시각에 여 선생님은 교장님 사택에 가서 식사를 하나 봐요.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미안하다면서 사이다, 밀크, 빵을 주고 가더라고요. 그리고 수업이 끝날 때마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더라고요. 마치 어미 새가 아기 새 궁금해 하듯 퇴근 때까지 그렇게 하더라고요. 저녁 식사도 교장님 사택에서 하고 와서는 또 미안하대요. 이야기도 나눌 수 없고. 어둠이 깔리자 두 사람은 또 탈출을 했지요. 어디 갈 데가 있나요, 어제 밤 그곳이지요. “
”그래서? “
”다음 날 마치 한 몸이 된 것처럼 정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날은 제가 집에 들어가야 하잖아요. 나는 무서움을 많이 타서 더 늦으면 집에 못 간다고 했지요. 집 가는 길이 좀 으스스 하거든요. 그랬더니 못 헤어지겠나 봐요. 물론 저도 그랬지요. 우리 조금만 더 있다가자 응? 내가 업어줄게. 이튿날은 서로 말을 놓게 되더라고요. “
”그 다음은? “
겨울밤의 드라마
”매일 저녁을 먹으면 저도 모르게 또 달려가는 거예요. 창 뒤에 가서 다뉴브강의 물결을 휘파람으로 부르면 그녀가 나오고, 나오는 동안 저는 운동장 건너편에 서 있었지요. 매일 추운 개울가에서 사랑을 나눴어요. 가끔 업어도 주고요. 휴가가 금방 끝나니까 서로 울게 되더라고요. “
”와~ 지만원, 한 편의 영화다 영화, 부럽다. “
그 후 선배는 가끔 찾아와 ”야~ 지만원 편지 왔냐?, 뭐라고 왔냐?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 선배하고는 친형보다 더 친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까지 그 선배는 가끔 나를 장안평 식당으로 초청해 인연을 이어갔다. 지금도 가끔은 보고 싶어진다.
2023.5.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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