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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88)] 지만원족적[4]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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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5-29 16:32 조회12,7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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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88)] 지만원족적[4] 6~7

 

6. 소위가 치른 베트남전(2)

 

적 본거지로의 침투

 

작전지역에는 피의 계곡이라는 별명이 붙은 계곡이 있었다. 밑변이 없는 정삼각형, 양쪽 빗변이 능선이고 삼각형의 정점이 솟아있는 지형인데 모두가 돌로 이루어진 계곡이었다. 그곳이 유명한 베트콩의 요새였다. 이 지역에 있던 해병대가 정점을 향해 돌격했다가 양쪽 계곡과 정점으로부터 집중 사격을 당해 계곡을 피로 물들였다는 바로 그 요새였다. 이 요새에 침투하라는 명령을 바로 제3중대가 받았다.

 

헬기가 이 계곡과는 많이 떨어진 산자락 밑에 중대를 내려놓았다. 멀리 멀리에서 침투시켜야 베트콩이 눈치를 채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산은 바위산이었다. 앞에 가는 병사가 바위 하나를 오르면 후에 오는 병사를 끌어올려 주어야 했다. 그런데 한 병사가 손을 내려주지 않고 총을 내려주었다. 뒤 병사가 총의 잘록한 부분을 잡는다는 게 방아쇠를 잡아 오발이 생겼다. 그래서 앞서 바위 위에 있던 병사의 팔을 관통했다. 중대장은 지혈을 지시했다. 그런데 그는 헬기, 지금의 닥터 헬기를 부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대장 마음에는 군에서 중시하는 기도비닉만이 이 작전 최고의 가치였다. 헬기가 오면, 우리의 위치가 적에 발각될 것이고 적에 발각되면 작전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앞서가는 병사들에서 계속 요청이 왔다. “후송시키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중대장은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명령했다. 조금 더 버틴다고 뾰족한 수도 없었다. 헬기가 밧줄로 들 것을 내려 매달고 간다고 해도 머나먼 계곡에서 눈치 챌 정도도 아니었다. 결국 그 병사는 사망했고, 사망한 병사는 어쩔 수 없이 헬기가 와서 실어 가야 했다. 이것이 당시 장교의 인권 의식이었다. 이 광경을 이국종 교수의 생명 살리기 투쟁과 대조시켜야 한다. 병사에 대한 장교들의 인권 의식, 나는 지금도 발전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군사 문화는 언젠가는 새롭게 창군한다는 거대한 생각으로, 천지개벽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직도 시들지 않은 내 생각이다.

 

적의 요새 깔고 앉아 이틀 밤새워

 

높은 산, 능선을 타고 몇 시간 동안 행군했다. 그리고 요새의 능선을 타고 내려가 요새를 위로부터 덮었다. 요새의 바위 위를 차지한 것이다. 집채만 한 바위들, 바위 위에는 3중대 병력이, 바위 밑 동굴에는 베트콩이 숨죽이고 있었다. 베트콩이 바위틈에서 총을 내밀고 사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가 초긴장하고 있었다. 그곳은 악명 높은 요새였기 때문에 더 긴장들을 많이 했다. 이틀 밤, 삼일 낮을 그렇게 지냈다. 나는 이게 무언가하는 생각이 들어 중대장에게 말했다. “중대장님, 우리 쇼 한 번 하시지요.” 의외의 말에 중대장이 물었다. “무슨 쇼를 해?” “장갑차를 몰고 와 요새를 향해 사격하는 척하고 병력이 장갑차로 철수하는 척하면, 적은 우리가 철수한 걸로 알고 바위 밖으로 나올 거 아닙니까. 그때 몇 명이라도 잡지요. 이대로 가면 억울하잖아요.”

 

그는 만화 같은 생각을 다 한다면서 시큰둥해했다. 그런 후 몇 시간이 흘렀을 때, 중대장이 나를 힐끔 보더니 혼자 웃음을 지었다. “, 너하고 똑같은 사람 한 사람 더 있다.” “?” “대대장님이 네가 한 말 그대로 하신다.” 당시 대대장은 허만기 중령, 훗날 서울지역 보안대장을 하신 분이었다.

 

한바탕 쇼를 했다. 포 사격으로 계곡 앞을 뒤집어 놓고, 포 사격이 멈추자마자 장갑차가 불을 뿜고, 1개 분대가 철수했다. 그리고 나머지 병력은 바위 위에서 밤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밤이 되자 베트콩 여러 명이 계곡으로 물을 뜨러 나왔다. 병사들이 사격했지만 실패했다. 그때는 아깝고 아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실패하자 다음 날 나머지 중대 병력은 곧바로 철수했다.

 

꽃 봉투 소대장의 죽음

 

월남에는 전략 마을이 매우 많다. 거의 모든 마을이 전략 마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을은 거의 예외 없이 빽빽한 가시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열대에서 자란 나무들이라 줄기도, 가시도 다 억셌다. 군데군데 총을 내밀고 쏠 수 있도록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헬기가 한 평야에 우리 중대를 내려놓고 갔다.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전투기의 폭격 장면이었다. 앞에는 두 개의 전략 마을이 50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었고, 마을 A와 마을 B 사이에는 벼가 자라고 있는 논이 물을 가득 담고 있었다. 전투기 몇 대가 거의 70도 각도로 내려 꽂히면서 마을 B를 폭격했다. 나뭇등걸과 건물 조각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입이 저절로 벌어지게 하는 일대 장관이었다.

 

폭격이 끝나자 장갑차들이 중대 병력을 B 마을로 태워 갔다. 중대장과 나는 장갑차 속에서 뚜껑(해치)까지 닫고 이동했다. 그런데 제2소대장은 뚜껑 위에 상반신을 내놓고 뒤따라오는 장갑차들에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A 마을에서 날아온 총탄에 목을 맞아 전사했다. 먼저 B 마을에 도착한 중대장은 침울했다. 2소대장을 대신할 중대 부관 백 중위를 출동시켰다.

 

사실 고인에게는 결례되는 말이지만, 그가 장갑차 위에 상체를 드러낸 행동은 장교이든 병사이든 해서는 안 되는 제스처였다. 소대장이라면 장갑차에 승차하기 전, 병사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으로 교육해야 했다. 이는 지휘자로서는 범하지 말아야 할 태만이고, 소 영웅적 행동이었다. 마을에 들어간 중대의 분위기는 납덩이 그 자체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모기떼가 극성을 부렸다. 모기약을 얼굴, , 전투복 위에까지 다 발라도 모기는 그 촘촘한 정글복을 뚫었다. 판초 우의로 몸을 감싸니 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잠이 쏟아져 저항하기 힘들었다.

 

담당 소대장들이 있지만 나는 야간에 적의 침투에 대비할 초소 위치를 일일이 확인하고 밤중에 발생할 상황들에 대한 신호 방법을 재확인하고 다녔다. 이렇게 해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밤중에 베트콩 3명이 포복으로 기어와 마을로 침투했다. 이를 발견한 병사들이 세 명을 다 사살했다.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그다음 날 중대는 사망한 제2소대장을 풀밭에 쉬어 놓고, 철수용 헬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목이 마른 병사는 높은 나무에 매달린 야자 덩이를 총으로 쏘아 떨궈서 야자수를 마시기도 하고, 시장기를 참지 못해 배낭에서 C-레이션 깡통을 따서 요기들을 했다. 죽은 자는 누워있더라도 산 사람은 먹어야 했다. 이것이 전쟁이었다.

 

2소대장이 전사했다는 실감은 철수한 이후부터 들기 시작했다. 그는 나와 한 천막에 나란히 있었다. 내 옆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전과를 세운 덕분에, 고국에 특별휴가를 갔었다. 그때 여고생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은 이후 매일 꽃봉투를 많이 받고 있었다. 기지에서는 오후 다섯 시에 식사했다. 오후 다섯 시면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이었다. 간단한 양식으로 적당히 식사를 때우고 나면 곧바로 침대로 왔다. 그리고 그는 꽃편지를 읽었다. 꽃편지를 읽을 때마다 아마도 영웅이 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18번은 문주란의 돌지 않는 풍차, 그 노래 말고는 아는 노래가 전혀 없는 듯했다. ‘사랑도 했더, 미워도 했더~’ 음도 틀리고 박자도 제멋대로인데 두 팔과 고개로 펼치는 퍼포먼스는 영웅의 포즈였다. 이제 그런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주인 잃은 침대에는 매일 같이 꽃봉투가 쌓였다.

 

그의 침대 밑에는 노란색 강아지가 늘 있었다. 주인 잃은 강아지는 식음을 전폐했다. 병사들이 데려다 쓰다듬어 주고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 주어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바로 근방에 있는 모래 언덕 위에 숨져 있었다. 많은 병사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제2소대장에 대한 기억화 흔적은 마치 바닷가 모래 위에 써놓은 글씨처럼 금세 파도에 쓸려갔다.

 

아나콘다와의 결투

 

그 어느 면으로 보나 베트콩이 있을 것 같지 않은 평야에 중대가 공수됐다. 사방이 논이고, 강이었다. 오로지 중대가 타고 앉은 고지만 딱 하나 솟아있었다. 높이는 10m, 나무는 단 한 그루도 없고, 새빨간 진흙 산이었다. 비가 오면 찐득거리고 건조하면 돌처럼 단단한 붉은 흙이 경주 고분처럼 혼자 누워있었다. 병사들이 호를 파고 그 위에 1인용 텐트를 쳐 주었다. 바닥에는 고무 베드에 바람을 넣어 깔아주었다. 쏟아지는 잠을 가눌 수 없어 상의와 하의를 접어 머리맡에 놓고 잠을 잤다. 자는 동안 땀이 온몸을 흥건히 적셔놓았다.

 

잠에서 깬 나는 바지를 입기 위해 바지를 털었다. 혹시 벌레가 들어가 있을지 몰라서였다.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바지를 입는 순간 정강이가 칼날에 베이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순간적으로 바짓가랑이를 엎어 탈탈 털었다. 그런데~ 커다란 전갈 한 마리가 떨어졌다. 참으로 아찔했다. 전갈에게 물리면 헬기 안에서 곧바로 죽는다고 했다. 천운이었다. 전갈이 스쳤던 정강이는 그 후 수십 년 동안 검은 줄이 처져 있었다. 그 전갈은 모기약 세례를 받고 불에 타 죽었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에 병사들이 산 밑에 있는 작은 호수를 바라보며 와~ ~ 탄성을 질렀다. 내려다보니 구렁이가 아니라 거대한 아나콘다에 가까웠다. 수면 위로 올라온 머리 부분이 2m는 족히 되었다. 머리를 높이 들고 물을 가르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병사들이 호수의 사방을 에워쌌다. 아나콘다는 호수 가운데서 움직이지 않았다. 몇몇 병사가 겨우 팔뚝 길이의 막대기를 구해 그것을 들고 물속으로 조금씩 발을 옮기면서 막대기로 위협을 했지만, 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발 한 발 들어간 거리가 상당히 되었을 때 괴물이 잠수했다. 물로 들어갔던 몇 명의 병사들이 겁에 질려 막대기를 좌우로 저으면서 뒷걸음질 쳤다.

 

나는 호수의 반대편에 있는 병사만 남기고 내가 있는 쪽에는 공간을 비우라고 했다. 괴물이 사람 많은 쪽에서 사람 없는 쪽으로 이동하기를 유도한 것이다. 병사에게 야전 전화기 줄을 10m 길이로 절단해 오라고 했다. 그리고 목을 묶어 잡아챌 수 있게 커다란 고리를 만들라 했다. 한쪽 끝을 기다란 막대기에 단단히 묶으라 했다. 굴렁쇠보다 더 큰 고리를 괴물에 던졌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괴물의 목이 올가미 안에 들어왔다. 힘차게 잡아채라고 소리쳤다. 힘차게 잡아당기니까 괴물의 목이 졸렸다. 막대기를 들고 한 병사가 뛰었다. 그런데 괴물이 매우 빨랐다. 막대기 길이가 줄의 길이보다 짧아서 뛰는 속도가 뱀보다 느리면 물리게 되어 있었다.

 

이 병사, 저 병사가 농수로 둑 위를 바톤터치 하면서 달렸지만, 괴물의 속도를 당해낼 수 없었다. 나는 막대기를 버리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뱀도 병사도 자유로워졌다. 괴물이 돌무덤으로 들어갔다. 꼬리 부분만 조금 남아 있었다. 서운함을 느낀 나는 병사들에게 두꺼운 소가죽 장갑으로 꼬리를 잡고 당겨보라 했다. 일부의 병사가 말했다. “소대장님, 뱀은 비늘 때문에 절대로 뒤로 빠지지 않습니다.” “, 해봐, 여럿이 잡아봐.” 하나~ ~ 셋 하면서 당기니까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이제 뱀의 가슴이 나올 차례였다. 계속 잡아당긴다면 뱀에게 물릴 수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꼬리에서부터 돌무덤에 걸쳐 있는 뱀의 몸 전체를 군화로 촘촘히 밟고 있으라 했다. 하나, , 셋 하면 아주 조금만 잡아당기고, 노출된 뱀의 온몸을 얼른 밟으라 했다. 드디어 목 부분이 나왔다. 그러자 두꺼운 소가죽 장갑, 가시에 찔려도 안전한 장갑으로 뱀의 목을 움켜쥐었다. 뱀이 입을 넓게 벌렸다.

 

위생병이 핀셋을 가지고 이를 뺐다. 피가 줄줄 흘렀다. 그리고 10여 명의 병사들이 뱀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중대장이 이 사진을 연대에 보고했다. 부연대장인 고참 중령이 헬기를 보내 실어 갔다. 창경원으로 보내질지 알았더니 이가 빠지면 죽는다고 했다. 훗날 들으니 보신용으로 쓰였다고 했다. 이것도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무용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7. 동양의 진주, 사이공

 

거리의 풍경

 

베트남은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사이공은 그 수도였다. 프랑스답게 도시 구획이 깔끔하고 건물들이 우아하고 컬러풀했다. 하얀 벽에 붉은 지붕, 꽃 넝쿨과 정원수가 하얀 벽을 가리고 있어 어디를 가나 그림이었다. 도로는 육중한 가로수 잎에 덮여 햇볕이 들지 않았고 도로들은 온종일 오토바이 행렬로 붐볐다. 여성들은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었다. 아오자이는 얇은 천으로 지어진 옷인데, 허리에서부터 앞과 뒤가 갈라져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위에는 긴 머리가 날리고 밑에서는 치맛자락이 날렸다. 한마디로 사이공 거리는 그림의 거리였다. 공산당들이 없으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었을까.

 

장군들의 파티문화

 

주월 한국군 사령부 지휘부는 3성 장군인 사령관, 2성 장군인 부사령관, 1성인 참모장 그리고 수많은 대령 참모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령 참모들은 REX호텔에 기거했고, 세 명의 장군은 옛날 1, 2, 3 왕비들이 살던 저택들을 서열에 따라 한 채씩 배당받아 공관으로 사용했다. 나는 1성 장군의 부관이었기에 제3공관에 기거했다. 1층 로비도 파티장 겸용이라 매우 넓고, 바닥에는 아름다운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로비의 한 코너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간이침대와 미니 책상 하나가 수용된 골방이었고 에어컨은 상시로 켜져 있었지만, 양쪽 출입구에는 문이 없었다. 2층에는 장군의 침실과 응접실이 있었다. 1층과 2층 사이에는 달팽이 모양을 한 곡선 계단이 품위 있게 연결되어 있었다. 사령부 주인공들의 생활은 파티 생활이었다. 한국-월남-미국 장교들이 자주 어울렸고, 특히 한국군의 경우에는 고국에서 늘상 오는 높은 손님들 때문에 파티 없는 날이 거의 없었다. 예하 부대에서 1성 장군들이 사이공 파티에 오면 참모장 공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날이면 장군들은 2층 응접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전속 부관들은 내 골방 침대에 걸터앉아 수다를 떨었다. 부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괴팍하지 않은 장군이 별로 없었다. 멀리 나트랑에 근무하는 한 부대장은 밤에도 전속 부관을 계속 불러대는 바람에 전속 부관은 군화를 벗지 못하고 쪽잠을 자면서 노이로제 상태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장군 권총은 사치품

 

하루는 장군들이 2층에 있는 동안 전속 부관들이 장군들이 벗어놓고 간 권총 요대에서 권총을 뽑아 구경했다. 그들은 부하들로부터 선물로 받은 권총을 차고 다녔다. 보석이 박히고 예술적으로 디자인이 되어 있었다. 리볼버 총의 약실은 6, 실탄을 새로 장입할 필요 없이 연속 6발이 돌아가면서 장전되는 시스템이었다. 만약을 위해 방아쇠가 잘못 눌러졌다 해도 총알이 나가지 않게 하려고 첫 구멍에는 실탄을 넣지 않고 비워놓았다. 체구가 작은 전속 부관은 팔뚝 크기의 리볼버 권총을, 장군은 손바닥보다 작은 권총을 사치품처럼 차고 다닌 것이다.

 

권총 오발사

 

모든 리볼버 권총은 한 발을 쏘면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연발 상태가 된다. 그런데 그 유난스러운 장군의 권총은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그걸 모르고 내가 그 권총을 천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 총이 발사된 것이다. 콘크리트 건물이라 총성이 크게 증폭되어 울렸다. 2층에서 장군들이 뛰어나와 제비들처럼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았다. “, 뭐냐?” 사실대로 말하면 그 장군의 전속 부관은 총 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이유로 두고두고 고문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순간적으로 뛰어나가면서 거짓말을 생각해냈다. “. 아무것도 아닙니다. 벽에 기대놓은 탁구대가 미끄러지면서 넘어갔습니다. 죄송합니다.” 장군들은 금세 안심하고 , 깜짝 놀랐다, ~” 하면서 들어들 갔다.

 

탁구대, 낮에는 병사들이 탁구를 치고, 탁구 놀이가 끝나면 접어서 벽에 세워두었다. 파티가 있으면 다시 탁구대를 펴서 큰 테이블보를 깔면, 리셉션 파티의 테이블이 되었다. 벽의 한쪽 코너에는 칵테일 제조에 사용되는 양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오발사가 귀중한 교훈

 

이 오발사의 경험은 내가 몇 개월 후 포대장직을 수행할 때 매우 유용하게 응용됐다. 보초를 설 때는 탄창을 총에 꽂는다. 안전장치만 풀면 발사가 가능한 상태다. 보초 임무가 끝나면 탄창을 제거하고 총 가에 진열하고 곧바로 취침한다. 자다가 눈을 부비고 일어난 다음 병사가 자칫 이웃 병사의 총을 들고 나갈 수 있다. 여기에서 오발사가 발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격발에 특별한 규칙을 만들어 반복 연습을 시켰다. “격발할 때는 기도하는 자세로 하라. 개머리판을 어깨 위로 올려라. 총구를 하늘로 향하게 하라. 그리고 하나, , 셋을 세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겨라.” 병사들은 이를 쑥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생활화했다.

 

장군의 애완견 치와와

 

여러 달 전, 누군가가 장군에게 치와와 한 쌍을 선물했다. 암놈은 미미’, 수놈은 끼끼였다. 장군이 퇴근하면 당번병은 즉시 두 마리를 안고 장군 방으로 갔다. 장군은 강아지를 매우 좋아했다. 하루는 하사가 지프차를 후진하다가 미미를 깔아 죽였다. 그 하사는 장군의 처남이었다. 사실 처남이 공관으로 오기 전까지 공관병들은 분위기가 좋았었다. 그런데 친척이 한사람 오면서 공관에는 알력들이 생겼다. 일반기업에도 회장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들어오면 직원들의 충성심이 증발한다.

 

그 처남 하사는 나에게도 뻣뻣했었다. 그런데 사고를 친 다음 나에게 와서 고개를 숙이고 도와달라 했다. “, 애를 데리고 시장에 나가 미미와 비슷한 놈 하나 사와”,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군이 퇴근하자 당번병은 끼끼한 마리만 데려갔다. 내가 뒤따라갔다. “, 미미는?” 당번병의 얼굴이 금세 새빨개졌다. “그놈이 설사가 심해서 병원에 데려다주라 했습니다.”, “~그래?, 왜 그럴까?” 하고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며칠 만에 암놈 한 마리를 사 왔는데 날씬하지 않고 뚱뚱했다. 나는 미미라고 부르면 꼬리를 치게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새 미미끼끼를 장군에 데려갔다. 장군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옛날처럼 애교를 부리지 않고 꼬리도 별로 치지 않았다. “, 이 미미가 왜 이렇게 똥똥해졌냐?” 당번병의 얼굴이 또 빨개졌다. “, 병원에서 살이 많이 쪄서 좀 둔해진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추궁이 없었다. 그 당번병은 지금도 나를 자주 찾아온다.

 

하루는 고국에서 김성은 국방부 장관이 갑자기 온다고 했다. 긴급 연락을 받은 장군은 밤 1시에 REX호텔에 기거하는 대령 참모 여러 명을 지정하면서 회의를 할 테니 모셔 오라고 했다. 운전병을 찾으니 운전병이 몰래 외출하고 없었다. 그대로 보고하면 나도 혼나고 운전병도 혼이 날 판이었다. 나는 1966년 양평에서 야외 훈련을 할 때 운전병을 꾀어서 트럭 운전을 배운 적이 있었다. 지금은 1969, 3년 전 실력으로 미제 시보레 세단을 몰아보기로 했다. 차고에 있는 세단에 시동을 걸고 앞으로 조금 갔다가 뒤로 조금 갔다가 하면서 작동법을 익혔다. 그리고 그 차를 몰고 REX호텔로 갔다. 대령들을 깨워 차에 태우고 공관으로 왔다. 내리고 나서야 대령들은 운전자가 지 대위였음을 알아차렸다.

, 지 대위, 아니 자네가 어떻게 운전을 다~”

운전병이 무단 외출을 했습니다. 참모장님 몰래 제가 차를 몰았습니다.”

사정을 파악한 대령 참모들은 더 이상 내색하지 않았다. 바로 이 대령 참모들이 참모장을 설득해 임시 대위에 불과했던 나를 경쟁률 높은 포대장 자리로 내보내 주었다.

 

2023.5.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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