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93)] 5.18 진상규명위와 국민 제위께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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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6-18 22:52 조회8,57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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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93)] 5.18 진상규명위와 국민 제위께 드리는 글
5.18 진상규명위원회의 규명목표
5.18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발족한 날이 2020년 5월 22일이다. 발족한지 3년여가 지났지만 아직도 위원회가 달성하려는 목표가 달성되지 못하고 1년을 더 연장하여 마무리를 지으려 하고 있다. 위원회가 달성하려고 하는 목표는 크게 세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북한군 개입은 절대 없었다.
전두환의 발포명령에 의해 광주 시민 전체 사망자 154명 대부분이 총에 맞아 죽었다.
계엄군을 풀어놓아 계엄병력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면서 강간을 했다.
위원장, 부위원장 등 위원회 대부분이 5.18 유공자
위원장과 부위원장 모두가 5.18 유공자들이다. 구성원의 압도적 다수가 광주사람들이다. 이해 충돌의 한쪽 당사자가 이 충돌 사건을 도맡아 조사하는 것은 점잖게 표현하면 제척사유에 해당하고, 알기 쉽게 표현하면 날강도 짓에 해당한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겨 놓은 황당한 현상이지만 5월 세력이 사회를 장악한 처지이고 보니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이다.
5.18 작전을 북괴가 주도한 결정적 증거 42개
학문 세계에는 훈련된 직관이 존재하고, 이 직관이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직관은 증명이 되기 전에는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나는 수학계에서 직관(Conjecture) 하나를 증명하기 위해 2년 동안 초인적 극기를 발휘했다. 5.18이라는 사회 과학 주제에 대해서도 훈련된 직관이 있고, 그것을 증명하는 증명과정이 필요하다.
5.18은 1980년 5월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나는 당시 상황일지 기록을 2003년부터 볼 수 있었다. 상황일지, 그것도 1980년 5월 21일 하루에 발생한 상황기록 하나만 보고서도 5.18은 북한이 주도한 게릴라전이라는 훈련된 직관(Educated Guess)을 갖게 되었다. 이 직관만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5.18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설득시킬 수 있었다. 어깨 300명이 정규 사단인 제 20사단 이동계획을 간첩을 통해 입수해서 광주 톨게이트 근방에서 장애물을 설치 해놓고 매복하고 있다가 정확히 21일 08시에 사단장용 지프차 등 군용차 14대와 군용트럭 35대를 빼앗아 군납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운전해 갔고, 09시에는 또 다른 300명이 합세하여 총 600명이 장갑차 4대와 트럭 374대를 탈취하여 전남 17개 시군에 위장되어 있는 44개 무기고를 단 4시간 만에 털어 2대 연대를 무장시킬 수 있는 총기 5,403정을 탈취했다. TNT를 탈취하여 광주시를 히로시마처럼 날릴 수 있는 2,100발의 폭탄을 순간적으로 조립해 놓고, 교도소에 수감된 2,700명의 인력을 해방시켜 폭동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 야간공격을 5회씩이나 감행한 내용이었다.
이 하루의 작전 내용만 가지고도 군에 다녀온 사람들은 물론 방송사 여성 진행자까지도 “그건 100% 북한 특수군 소행입니다.” 이렇게 반응했다. 위 내용은 내가 21년 동안 모은 42개 중 불과 3개에 해당한다. 북한 스스로가 5.18은 자기네가 주도한 작전이라는 내용을 대남 공작 역사서에 많이 남겼다. 한국에는 5.18 기록영화가 없다. 하지만 북한은 광주시 모든 작전 내용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1980년, 바로 그 해에 기록영화를 만들었다. 광주사태의 촬영 주권이 북괴에게만 있었던 것이다.
광주인들 스스로가 5.18은 북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들도 여러 개가 있다. 원체 방대한 규모라서 증거는 1~2년 사이에 모두 채증될 수 없었다. 그래서 21년이나 걸린 것이다.
42개 증거의 의미
이 42개 증거는 다 뭉쳐야 5.18은 북괴의 소행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42개 증거 하나 하나가 다 홀로 증거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42개 모두를 다른 증거로 부정해야만 “5.18에 북한 개입은 없었다.”는 5.18 진상규명위원회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감옥에 보낸 형사사건의 1심, 2심, 3심 모두가 이 42개 증거 전체를 백안시 했다. “5.18은 이미 민주화운동인 것으로 특별법과 사법부에 의해 그 평가가 종결되었기 때문에 북한군은 절대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억지 판결에 의해 내가 2년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원회는 내가 감옥에 투옥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는 그들의 결론을 내기 위한 증거자료로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위원회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반드시 이 42개 증거 모두를 탄핵해야만 한다. 이 탄핵 절차가 없으면 그들이 작성한 보고서는 휴지조각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다. 모든 애국적 국민은 이를 철저히 감시하고 감독해야 할 것이다.
전두환의 발포명령
5.18 진상규명위원회가 전두환을 발포명령자라고 뒤집어씌우려는 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국가 이름으로 발포명령을 내려 양민을 학살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소멸되어야 할 대상임으로 북조선 공화국에 의해 점령되어야 한다는 여론을 국내외에 확산시키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목적은 전두환이 반인륜적 학살자이기 때문에 그가 휘두르는 국가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광주 시위는 거룩한 민주화 운동이고, 이는 1215년의 영국 마그나 카르타나 1774년의 미국 독립선언에 맞먹는 세계 민주주의의 위대한 이정표라는 것을 선전하고 선동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21년 동안 모은 자료에는 5.18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북한이 살인 기계로 훈련시킨 특수군 600명과 ‘한국은 국가가 국민을 학살하는 존재’라는 것을 입증시키기 위한 이른바 시체장사를 위해 민간인 남녀노소 집단 1,000여 명을 투입시킨 대규모 게릴라전이었고, 심리적 모략전이었다는 증거들이 있다. 이 대량의 민간인들이 올 수 있게 전남 해안을 활짝 열어준 사람은 당시 합참의장 유병현이었다. 이 사실은 [유병현 회고록] 453쪽에 명시되어 있다. 지금 광주인들로 구성된 5.18 진상규명위원회는 바로 북괴의 전쟁범죄를 전두환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한 공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은 5.18 당시 2성 장군에 불과했지만, 보안사와 대역죄를 저지른 중앙정보부의 수장을 겸하고 있어서 김대중이 주도한 어지러운 시국을 안정시키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5.17 전국 계엄 선포시 광주는 시국의 안전지역으로 판단되었기에 광주에는 전북 금마에 주둔중인 7 공수여단 2개 대대만 배치했다. 1개 대대는 조선대에, 1개 대대는 전남대에 배치했다. 병사들은 소풍가는 기분으로 배구공과 장기판 등을 가지고 갔다. 광주의 운동권 인물은 불과 3~4명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모두 도망갔거나 사전에 체포 되었다. 5.18을 주도할 인물이 광주에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광주의 그 누가 20 사단을 습격하고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고, 죽음을 각오한 교도소 야간공격을 5회씩이나 감행 했겠는가?
5월 19일부터 계엄군은 우왕좌왕 했고, 실탄이 없는 빈총만 등에 X자 형으로 메고 매타작을 당했다. 곤봉을 사용한 것은 5월 18일 오후 잠깐이었고 그 이후에는 총알 없이 수적 열세에 밀려 매타작을 당하다가 5월 21일 오후 5시, 광주시를 버리고 도망쳤다.
이 모두가 전두환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전두환은 정보만을 생산했고 작전은 4성 장군인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국방부장관 주영복이 주도했다. 2성 장군이 깡패 두목처럼 4성 장군과 국방부장관을 함부로 부렸다는 선전은 심리적 공작용으로 지어낸 황당한 유언비어일 뿐, 사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마타도어이다. 발포 명령은 작전 계통에서 내리는 것인데, 2성 장군에 불과한 정보 참모가 무슨 수로 작전 명령에 속하는 발포 명령을 내린다는 말인가?
발포의 의미
장교나 병사는 자기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자기 방어 목적으로 총을 발사할 수 있다. 자위권 행사는 일반 형법과 군인복무규율에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2020년 5월 11일, 미국이 한국 정부에 이양한 비밀해제 문건에는 계엄군이 그들에게 허용되어 있던 자위권을 발동하지 않고 끝까지 자제하였으며, 5월 27일 새벽 광주시를 탈환할 때 계엄군이 핀 세트식의 기발한 작전을 폄으로서 희생자 수가 지극히 소수(17명)였다는 내용이 있다.
집결해 있는 계엄군을 향해 버스가 지그재그식의 고속 돌진을 했을 때 대대장이 권총을 뽑아 바퀴에 쏘았다. 타이어가 펑크 난 버스가 가로수를 들이 박고 멈추었다. 북한 문헌과 황석영 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는 이 버스의 차량 번호가 “광전교통 전남 5아 3708”로 기재되어 있다. 이 권총 발사는 자위권 행사다. 5월 19일 고립되어 있던 장갑차 밑에 시위대가 짚단을 불태우다가 다시 불타는 짚단을 장갑차 뚜껑에 올려놓고 계속 태웠다. 뜨거운데다 숨이 막힌 소대장이 뚜껑을 열고 공포를 쏘았다. 이 실탄에 고교생이 부상을 입었다. 이 역시 자위권 행사로 정당한 것이었다.
5월 20일 밤 광주 신역 넓은 광장에 제 3 공수여단 5개 대대 1,000여 명이 수만 명의 시위대에 완전 포위 되었다. 그런데 계엄군에는 빈총만 있고 실탄도, 최루탄도 없었다. 몰살당할 위기에 몰렸다. 전남대에 남아있던 본부 인력이 급히 자위용 실탄과 최루탄(일명 지랄탄)을 싣고 가다가 굴다리에서 시위대에 또 포위 되었다. 포위망을 뚫기 위해 위협사격을 가했다. 가까스로 광주 신역에 포위되어 있던 5개 대대에 일부 실탄을 공급해 주었다. 갇혀 있던 부대원들이 최루탄을 쏘고 공포를 쏘면서 구사일생으로 탈출 하였다. 이 역시 정당방위 행위였다.
5.18 진상규명위원회는 5월 21일 오후 1시경, 계엄군이 애국가를 부르고 난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해 수백-수천 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주장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광주에서 10일 동안 사망한 사람은 통 틀어 154명뿐이다. 이태원에서 사망한 사람의 숫자보다 적은 숫자다. 그 중 85명은 시위대가 무기고에서 탈취한 칼빈 소총에 의해 사망했다. 도청 앞에는 7공수와 11공수, 5개 대대가 집결해 있었다. 이 병력을 향해 장갑차와 대형 트럭이 지그재그로 고속 돌진을 했다. 이 때 공수대원 일부가 가지고 있던 실탄을 장갑차 등을 향해 발사를 했다. 공수대원 1명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깔려 사망했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실탄 역시 하룻밤을 함께 지낸 31사단(광주향토사단) 소속의 한동석 중위가 개인 자격으로 건네준 탄창 세 개 분량의 실탄이었다. 이거라도 가지고 목숨을 부지해 보라는 우정의 표시였다. 이 모든 사격은 5월 19일과 21일 사이에만 있었다. 현장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던 공수부대 장교들이 실탄을 지급해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광주 현장 계엄사령관과 2군 사령관이 이희성 계엄 총 사령관에게 반복 건의한 결과 계엄사는 자위권 발포를 허용했다. 5월 21일 오후 5시였다. 따라서 5월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는 허위로 만들어낸 모략물이다.
발포 명령을 받아서 중대장에 전달한 현지 대대장 있었는가?
광주에서는 자위권 차원의 발포는 목숨을 위협받은 장병들에 의해 순간적으로 발생한 것들만 있었다.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지휘관들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발포는 없었다. 그 발포명령을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내렸든, 전두환이 내렸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내렸다 해도 일선에 있는 병사는 중대장이나 소대장의 입을 통해 사격명령을 받는다. 중대장들은 대대장의 사격 명령을 받아 실시한다. 공수부대 10명의 대대장 중 누가 상부로부터 발포 명령을 받았고 이어서 중대장들에게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그것을 증명해야만 전두환의 발포 명령이든, 이희성의 발포 명령이든 증명이 되는 것이다. 10명의 대대장 중 누가 발포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을 여러 명의 중대장들에게 하달했는지, 그들의 관등성명을 대지 못하면 시위 진압용 발포 명령은 없는 것이다. 막연히 전두환이 철권을 가지고 대통령이고 계엄사령관이고 다 지휘 했다는 마타도어를 가지고 ‘시위 진압 목적의 집단 발포 명령’이 있었고, 그 명령은 전두환이 내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식한 망언일 뿐이다. 발포 명령을 받아가지고 중대장들에게 명령을 전달한 현장 대대장 10명과 그 명령을 수행한 중대장들의 관등성명이 확보되지 않으면 ‘집단 발포’ 명령은 없었던 것이 된다.
‘도청 앞 발포’는 북괴군이 금남로 옥상에서 벌인 살육전을 숨기기 위해 지어낸 유언비어
좌익들이 도청 앞 집단 발포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증거가 전혀 없다. 5월 21일 새벽 00시부터 24시간 동안 광주에서 사망한 사람은 모두 61명, 사망한 장소와 사망 원인을 분석 해보면 도청 앞 사망자는 불과 8명뿐이다. 이 8명 중 M16 총상 사망자는 4명, 나머지 4명은 칼에 찔려 죽은 자상사 1명, 둔기로 맞아죽은 타박사 1명, 칼빈 소총 사망자가 2명이었다. 이 4명은 계엄군과 무관한 주검이다. 61명 중 8명을 뺀 나머지 53명, 이 중 40명은 금남로 빌딩숲에서 사망했고 13명은 도청과는 거리가 아주 먼 곳에서 사망했다. 이 역시 계엄군과는 무관한 주검들이었다. 5월 21일 정오경, 금남로의 주요 건물 옥상은 칼빈 총, M16 소총, M16 유탄 발사기를 소지한 무장 괴한들이 배타적으로 점령하고 있었다. 북괴 작전관이 장갑차 1대를 도청 정문에 집결한 계엄군을 향해 고속 질주 시켜 계엄군이 장갑차를 향해 발사하게 만들어 놓고, 그 총소리가 나는 짧은 시간에 이웃 금남로 옥상에서 발 디딜 틈 없이 밀집한 광주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도록 했다. 40명이 죽고 또 다른 4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5월 단체가 그동안 선동용으로 이용해 왔던 꼬마 상주 조천호가 들고 있는 영정 사진의 아버지 조사천은 금남로 깊숙이, 도청 쪽 입구로부터 300m 떨어진 카톨릭센터 옥상에서 70도 각도로 내려다보고 쏜 칼빈 총탄에 머리-턱-가슴 순으로 가격당해 사망했다. 이를 놓고 광주 단체들은 지금 이 순간 까지도 계엄군이 M16소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거짓 선동을 해 온 것이다. “도청 앞 집단 발포” 그리고 “도청 앞 대량 학살”은 자기가 저질러 놓은 범죄를 타인에게 뒤집어씌우는 공산당의 생리적 수법 그 자체다. 도청 앞에서 총소리가 나도록 유도해 놓고 그 총소리에 숨어 금남로에서 대량 학살을 저지른 것이다.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주장들
2018년 10월 31일자 서울신문은 5월 19~21일 사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계엄군에 의해 광주 여성들이 집중적으로 강간을 당했다는 보도를 냈다. 2023년 5월 8일 뉴시스는 5.18 진상조사위원회가 확인한 결과라며 강간당했다는 제보가 51건인데 이 중 24건에 대해 조사를 마무리 했다는 기사를 냈다. 기사를 보면 계엄군 2명 이상이 집회에 참여했던 여고생과 여대생을 백운동 인근 뒷산에 끌고 가 강간을 했다고 했고, 새벽 언니 집에 다녀오다가도 강간을 당했다는 등 이치에 맞지 않는 제보를 “사실로 공식 확인 했다”고 했다. 기사 제목은 “5.18 진압 계엄군, 집단 성폭행 사실 등 공식 확인” 이었다.
5월 19일부터 21일, 계엄군이 시 외곽으로 도주하기까지 계엄군은 수적으로 10배나 넘는 시위대로부터 공격을 당했다. 대열을 조금만 이탈하면 누구 손에 죽는지 모르게 죽는 판이었다. 그런데 대열을 이탈해 삼삼오오 한가하게 개별 행동을 하면서 계엄군이 있지도 않았던 백운동 뒷산에 가서 강간을 했고, 새벽길을 걷는 여성을 데려가 강간을 했다고 주장한다. 상황과 조금도 일치하지 않는다. 군복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공수부대 군복, 20사단 군복, 예비군 군복 등이다. 참깨 방송에는 몸을 씻게 하지 않아 냄새가 진동하는 북괴군, 북한말을 쓰는 인간들한테 성폭행을 당했다는 한 여성의 제보가 있었다.
만일 백운동 뒷산에서 당했다면 그것은 공수부대용 군복이 아닌 다른 군복을 입은 북괴군이나 예비군복을 입은 광주 청년일 수는 있어도 계엄군일 수는 없다. 공수 부대원이 새벽에 부대를 이탈해서 길가는 여학생을 강간할 정도라면 그 부대는 당나라군대보다 더 후진 군대일 것이다. 이처럼 5.18 조사위원회가 내놓는 거의 모든 발표 내용은 증거가 아닌 전라도 사람, 광주 사람들의 제보들뿐이다. 공수부대원들의 강간 사실을 증명하려면 개별 행동이 가능했었는가를 입증해야 한다. 현장 대대장 10명과 수많은 중대장들 중 누구라도 개별 행동이 가능 했었다는 진술을 해야만 한다.
조사위의 불법 난잡한 행위
5.18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미는 거짓들도 난잡하지만, 그들의 임무수행방법은 강간행위보다 더 난잡하다. 518 당시 실제로 북한 특수군 신분으로 침투대장의 호위병 직책을 가지고 광주에 왔었다는 정명운의 이야기를 [보랏빛 호수]를 통해 실감나게 소설식으로 엮은 이주성씨가 있다. 5.18 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이 이동욱은 2021년 4월 어느 날 정명운을 성남의 한 모텔로 불러 4시간 동안 딸의 영상 관련 직장을 약점 잡아 공갈협박하고 회유하여 자기가 이주성 작가에게 제공한 [보랏빛 호수] 내용이 모두 꾸며낸 이야기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그리고 자기의 독립적인 뜻에 의해 진술한다는 진술서를 받아 냈다. 그 다음 2021년 4월 14일 밤 10시, 이동욱은 이주성 작가를 또 성남시 인근 모텔로 불러 내 1시간 동안 거짓말을 해가면서 공갈, 협박, 회유했다. 이에 이주성 작가는 저항하면서 녹음을 했다. 이 녹음 내용은 목소리와 문자로 보존되어 있다.
위원장인 송선대는 2022년 5월 4일 19세의 김종철 군이 제1광수라는 내용으로 방송을 했다. “김종철 군은 당시 광주시 남구 송암동 주택가에서 계엄군에 의해 체포되어 즉결처분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도 시신이 수습되지 않았는데 그가 바로 제1광수이고, 곧 방송에 등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망한 사람이 환생했다는 황당한 방송이었다. 그러더니 5월 12일에는 당시 20세였던 차복환이 제1광수라며 KBS 등 거의 모든 매체를 통해 보도했다. 영상분석 전문가 노숙자담요는 제1광수가 북한의 농업상을 지낸 김창식이라고 발표하면서 얼굴에 나 있는 백반지도까지 대조하고 눈꼬리, 눈알의 생김새 등 얼굴 특징을 자세히 분석했지만 송성대는 그런 얼굴 분석 없이 무조건 차복환이 제1광수라고만 주장했다. 그런데 2022년 5월 12일자 한국일보는 심층취재라면서 차복환의 주장을 기사화 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지내다가 도청에서 군복과 군화를 받아 갈아입고 페퍼포그 차량에 잠깐 앉아 있던 순간에 찍힌 사진이 영화 [김군]에 등장하는 제1광수 사진이라는 것이다. 한번, 잠시 앉았다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 시위에 나오지 않았다는 기사다. 그런데 광주 현장 사진들에는 제1광수가 7번 등장한다. 장소와 자세가 모두 다른 7개의 사진인 것이다. 이 7개 장면 중 1개가 영화 [김군]의 모습이다. 그러면 나머지 6개 장면에 나타나 있는 제1광수는 또 누구들이란 말인가?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쳐도 무식이 난잡하게 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나를 이곳 감옥에 보낸 2심 판결문 중 한 구절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려 한다. 지만원과 노숙자담요는 일심동체라는 것이다. 혼자서 2인 역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만원을 감옥에 보낸 판결문 요지
2023년 6월 9일 조선일보 오피니언에는 ”이런 大法 전원합의체는 처음 본다“는 제목의 칼럼 [최재혁의 사회부장]이 있다. ”김명수 대법원 전합은 장년 작년 말까지 100여건 정도를 처리했다. 문제는 정치사건, 노동사건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지금 전합(전원합의체)은 우리 법 연구회, 인권법 연구회, 민변 등 소위 진보인사가 과반(7명)을 차지한다.“
나를 최종 심판한 대법원 제2부에는 노정희와 이흥구가 있다. 노정희는 이미 지독한 좌파임이 알려져 있다. 이흥구는 1985년 깃발 사건으로 투옥되어 1심에서 징역 3년을 받은 바 있었던 국보법 위반자이며 김명수가 권순일 대타로 대법관에 임명했는데 그 임명 과정에서 편법이 있었다는 기사가 지난 2월 이틀 동안이나 조선일보에 연재됐다. 이흥구의 대법원 판결문은 불과 7줄이었다. 반면 2심 판결문은 65쪽이었다. 2심 재판부 역시 국제인권 법 멤버이고 김명수 추종자들이었다. 2심 역시 [42개 증거]를 기피했다.
북한이 5.18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려면 재판부는 [42개의 결정적 증거] 모두를 다른 증거들에 의해 무력화 시켜야만 한다. 그런데 2 심은 [42개 증거]를 무조건 기피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판결문을 썼다.
“5.18은 이미 사법적으로 역사적으로 그 평가가 민주화운동인 것으로 종결됐다. 따라서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허위다. 광주 현장을 촬영한 사진 속 주역들은 모두 광주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광수의 얼굴이 자기 얼굴이라고 주장한 15명의 고소인들이 사진 속 얼굴이 자기 얼굴이라고 주장하면 무조건 진실한 사실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비록 알리바이가 맞지 않고, 얼굴의 어느 부위가, 어느 특징이 일치한다는 주장이 없어도 광주인이 자기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진실로 보아야 한다.피고인이 사진 속 얼굴을 북한의 39세 A라고 특정한 것은 곧 광주의 19세 B를 특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노숙자담요는 얼굴에 점을 찍고 선을 그어 두 얼굴이 한 사람의 얼굴이라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작업 일지를 내놓지 않았고, 본 재판부가 육안으로, 촬영 장소, 촬영 시점, 시선, 자세, 복장, 두발 상태를 놓고 판단해보니 노숙자담요의 분석은 신빙성이 없다.비록 광주시민 15명은 광수 얼굴이 왜 자기 얼굴이냐에 대한 분석과 설명이 없지만 본 재판부가 육안으로 판단해 보니 15명의 주장은 진실로 보인다.”
“5.18은 북한이 저지른 게릴라전”이라는 표현은 2008년 내가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이라는 1,720쪽 분량의 4부작 책을 내면서부터였다. 이 책에 대해 5월 단체들이 고소를 했지만, 1.2.3심 끝에 이 책은 학문 목적의 책이지 명예훼손을 목적으로 한 책이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을 극복하고 나를 옭아 넣기 위해, 5월 단체가 광수를 가지고 사법부가 결탁하여 무죄를 유죄로 뒤집은 것이다. 노숙자담요가 3년 동안 눈을 혹사해가면서 찾아낸 광수의 수는 661명이다. 이 중 15명만 자기 얼굴이라고 나선 것이다. 15명의 대부분은 당시 구두닦이, 식당보이 등 10대 아이들이다. 그러면 나머지 646명은 광주인이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
조사위와 당해 판사들의 무식 무도성
2023년 5월 11일, 동아일보는 신한은행이 최초로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아무런 증명서나 통장 없이 데스크 앞에 앉는 것으로 입출금 업무를 볼 수 있게 했다는 뉴스를 전했다. 쌍둥이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컴퓨터는 알아내는 것이다. 2023년 4월 4일 조선일보는 보안업체 에스원이 99.9%의 정확도를 가지고 얼굴을 인식하는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서 조선일보는 2023년 4월 12일 자 보도에서 칠흑 속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여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맞히는 확률이 99%라는 뉴스를 전했다. 얼굴의 극히 일부만을 가지고도 칠흑 속에서 그가 누구인지 찾아낸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의 결제 서비스로 돌아가 보자. 편의상 신한은행의 고객 수가 100만 명이라 하자. 고객이 돈을 출금하고 싶어 은행 직원 앞에 앉았다. 얼굴이 CCTV에 찍힌다. 컴퓨터가 이 CCTV 얼굴을 가지고 어떤 절차를 거치기에 그가 어느 고객인지, 주민번호가 무엇이고, 계좌번호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까? 100만 명 고객의 주민등록증 사진이나 그 외 사진이 은행의 사진 DB(데이터베이스)에 이미 입력돼 있다. 컴퓨터는 CCTV에 찍힌 고객의 얼굴이 100만 고객 중 누구에 해당하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사진 DB에 실려있는 100만 명의 얼굴을 다 검색 대조한다. 그래서 같은 얼굴을 찾아낸다. 그러면 사진의 크기도 다르고, 헤어스타일도 변했고, 세월이 흘렀는데 컴퓨터는 무슨 논리로 10년 전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같은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내는가?
에스원은 얼굴 특징을 컴퓨터가 인식하게 프로그램을 짰다고 했다. 5년 전의 구글은 얼굴 각 포인트와 포인트를 연결하여, 기하학적 도면을 그려서 두 도면이 일치하는가의 여부를 가지고 99.996%의 정확도로 얼굴을 인식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면 노숙자담요는 광주 현장사진 속 벼룩만 한 얼굴을 가지고 어떻게 그 얼굴이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냈겠는가? 신한은행의 프로그램과 같은 로직으로 작동하는 얼굴인식 컴퓨터 프로그램이 찾아낸 것이다. 벼룩 크기의 얼굴을 특수 컴퓨터로 확대하고 그 얼굴이 통일부가 유지하고 있는 북한 인물사진 DB에 있는 얼굴들 중 어느 얼굴에 해당하는지를 컴퓨터로 하여금 찾아내게 한 것이다. 신한은행 컴퓨터가 고객을 찾아내듯이, 노숙자담요의 컴퓨터도 똑같은 방법으로 북한 얼굴을 찾아낸 것이다. 아무리 영상 전문가라 해도 육안으로는 불가능할 작업인 것이다. 노숙자담요는 일단 컴퓨터가 찾아낸 얼굴을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얼굴의 특징, 생김새, 각 점들 간의 거리와 각도, 사마귀, 흉터, 기형, 턱 등 특징들을 알기 쉽게 영상으로 분석해 주었다.
이런 로직을 이해하는 두뇌를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신한은행 결제 시스템의 로직을 이해하는 분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4~5년 전, 중국은 5만 명이 입장한 콘서트홀에 들어간 사람들 중에서 여러 해 전에 도망간 경제사범을 찾아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 프로그램을 수입해 쓰는 말레이시아 경찰은 13억 인구 중에서 범인 한 사람 찾아내는데 불과 3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보도들에 의하면 중국은 지금 은행 결제뿐만 아니라 밥값, 버스 요금, 지하철 요금도 모두 얼굴로 자동 결제하고 있다 한다.
5.18 조사위와 광주판사, 우리법 판사들에 묻는다.
5.18 조사위 사람들, 광주판사들, 우리법연구회 판사들, 국제인권법 판사들, 주사파 판사들에 묻는다. 그대들에게 사진 한 장을 드릴 테니 비슷한 사람을 한 사람 찾아낼 수 있느냐고. 백년이 가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컴퓨터만이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5.18 조사위 위원장 송선태에 묻는다. 차복환 얼굴에 백반지도가 그려져 있는가를. 제 1광수 얼굴에는 백반지도가 그려져 있다. 나도 노숙자담요가 알려주어서 1광수 얼굴에 백반지도가 있는 줄 알았다. 누가 봐도 얼토당토않은 네모난 얼굴을 내놓고 럭비볼 형상을 한 제 1광수라고 KBS등 모든 TV매체에 방송하는 무식한 행동을 어떻게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감히 할 수 있는 것인가? 차복환은 한국일보 심층취재에 응할 때, 추리닝 옷을 군복으로 갈아입고 딱 한번 페퍼포그 차량에 올라앉았다가 금방 내려와 집으로 달려간 후 다시는 시위현장에 오지 않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광주에서 제 1광수의 모습은 7개 장면이나 찍혀 있다. 도청 안에서 부대원을 지휘하는 모습도 있고, 캘리버 50 기관총 사수로 찍힌 사진도 여러 장소, 여러 장면이었다. 도대체 상식 자체도 없는 이런 사람이 5.18진상규명 위원장이라니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노숙자담요는 누구인가?
배움이 적은 사람들이 말한다. “노숙자담요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으면 그의 영상분석은 증거 능력을 상실한다.”라고. 그의 분석 로직과 영상분석 과정에 과학이 있으면 신뢰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 갈릴레오의 얼굴을 보아야만 지동설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인가?
컴퓨터로 찾아낸 얼굴을 놓고, 일반인이 알기 쉽게 설명한 것을 놓고, 작업일지가 없어서 믿지 못하겠다는 판사들이나, 지만원과 노숙자담요는 같은 사람이라는 판결문을 쓰는 무식한 판사들에 의해 내가 2년 형을 받고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숙자담요는 2013년, 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박근혜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을 나보다 빨리 내놓은 정보요원이다. 2015년 그는 내게 다음과 같이 그의 신분을 밝혔다.
“저는 미 정보기관에서 멕시코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마약 밀수범을 색출하기 위한 얼굴분석 임무에 오랫동안 종사해 온 이민 1.5세대입니다. 최근에는 중국이 저의 존재를 알고 스카웃하여 저와 8명의 전문가를 초청하였습니다. 중국 정부의 얼굴인식 프로그램 제작 사업을 하청 받아 작업하고 있습니다. 저는 박사님의 영원한 참모입니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탈북자들 중 51명이 광수다. 만일 그들 중 한 사람이 “나는 광수가 맞다.” 이렇게 공표하면 그 사람은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처럼 제거될 것이다. 왜냐하면 탈북자가 스스로를 광수였다고 인정하면 북괴가 당장 전쟁범죄 집단으로 UN에 내몰리게 된다. 이한영보다 더 가혹하게 사라질 것이다. 이런 마당에 만일 661명의 광수를 찾아낸 노숙자담요가 얼굴을 드러내보라. 바람처럼 제거될 것이다. 이러한 성격의 문제를 놓고, 왜 노숙자담요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느냐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사리 판단력이 전혀 없는 부나비 인생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전두환을 영원히 난자해야 하는 이유
전두환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에 비견되는 애국자이자 출중한 경영 지도자다. 그의 업적과 경영학적 족적은 [전두환 리더십]에 잘 정리돼 있다. 한마디로 그가 없었으면 오늘의 늘 푸른 한강도, 오늘의 경제도 없었다. 1980년 그는 일본에 방위 무임승차비로 100억 달러를 요구했다. 그는 이에 대한 타당성을 1980년 1월에 레이건 대통령에 설명했다. 1983년 일본 수상 나카소네가 전두환 대통령을 찾아와 60억 달러를 마련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 하면 수상의 자리가 위태로워 40억 달러 밖에 마련하지 못했다며 선처를 빌었다. 전두환은 그 40억 달러 중 10억 달러를 헐어내 오물 덩어리인 한강을 오늘날처럼 아름답고 거대하게 창조해 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신 분 과연 이 땅에 몇 분이나 계실까?
고금리, 고환율, 고유가라는 3고 시대에, 물가는 44.2%, IMF 직전이었다. 그는 기발한 경제 실력과 아이디어와 뚝심으로 1986년의 물가를 2.3% 내렸다. 그가 개척한 전화 시스템은 지금도 일본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IT산업, 반도체산업, 한국형 원자로를 지금처럼 도약시킨 그의 리더십은 전설에 가깝다. 박정희 대통령이 진입시킨 문명의 나라를 그는 문화의 나라로 입국시켰다. 그를 찍어 내리기 시작한 사람은 노태우와 김영삼이었다. 그리고 김영삼은 노태우로부터 받은 비자금 3천억 원을 숨기기 위해 전두환과 노태우를 5.18살인마로 몰았다. 자기에게 쏟아지는 여론을 전두환-노태우로 전환한 것이다.
뜻밖의 횡재를 만난 광주 세력은 북괴가 주도한 5.18을 자기들의 영웅적 의거인 것으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자기들이 이긴 자가 되려면 진 자가 있어야 했고 진자는 악마 그것도 힘이 무척 센 악마가 되어야만 한다. 결국 5.18이 영웅적 의거가 되기 위해서는 전두환은 영원히 악마로 매도돼야만 하는 운명의 희생자가 돼야만 하는 것이다.
5.18 세력이 반국가 세력인 이유
군은 외침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거룩한 존재다. 세계 1등 국인 미국은 군을 애국의 상징으로 정중히 모신다. 그런데 이 땅의 좌익들은 군을 ‘군발이’라고 멸시하고 증오한다.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국군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이 깍두기에 밥 한 공기로 연명한다는 뉴스가 떴을 때 좌익들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죽였기에 저런 훈장을 받았겠느냐”라며 멸시했다. 좌익은 이 나라에서 살 자격이 전혀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국군의 최정예 부대가 공수부대다. 가장 위험한 곳에 투입돼 싸우는 부대들이기 때문에 훈련 강도가 극기 수준이다. 국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공수부대를 5월 세력은 살인마 집단이고 강간이나 일삼는 집단이라고 매도해왔다. 아무런 물적 근거고 없다. 오로지 군을 살인마 집단, 강간집단으로 매도하기 위해 광주 사람, 전남 사람들의 거짓 증언들을 수집하고, 거짓 증언들을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정신이 어떻게 헌법정신이라는 말인가?
대통령은 제복 입은 영웅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제복 입은 영웅들을 살인마 집단이요, 강간을 일삼는 집단으로 마타도어 하는 5월 세력을 어떻게 헌법 세력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5월 단체 선언: “5.18 정신은 건국 정신과 배치한다”
5.18 정신은 헌법 정신이 아니라 반국가 정신이다. 5.18정신이 반국가 정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분명한 증거가 두 개 더 있다. 2008년 8월, 당시 대통령 이명박은 그 해의 8월 15일을 건국절로 기념하기 위해 광주 5.18 묘지와 4.19 묘지에 많은 돈을 들여 거대한 ‘건국60주년 조형물’울 설치했다. 그런데 5월 단체들로부터 당장 철거하라는 항의를 받고 즉시 철거했다. 그 이유가 매우 심각하다. “건국 개념은 5.18의 숭고한 이념에 정면 배치된다.”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그해 계획했던 건국절 기념행사는 전면 취소됐다. 대통령 위에 5.18이 군림하고, 국가 위에 5.18이 있는 것이다.
5.18 정신은 조선인민공화국 정신
이보다 2년 전인 2006년은 노무현 집권기였다. 2006년 6월 14일부터 17일까지 3박 4일 동안 광주는 조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 땅이었다. 6.15 정상회담 6돌을 기념한다는 행사에 북한 조평통 간부 등 대남사업 관계자 김영대와 안경호 등 148명이 왔다. 일본에서 김대중과 함께 반국가 단체인 한민통을 결성한 베트콩과 곽동의까지 날아왔다. 입국이 금지됐던 반국가 인물들이 대거 해외로부터 들어왔다. 남쪽 인물은 김대중, 백낙청, 이종석 그리고 한총련 인구가 800명이었다. 이적 단체인 범민련 간부들이 북쪽 사람들과 마음껏 접촉했고, 충성 맹세가 담긴 문건을 전달하는 장면이 발각되기도 했다. 미군을 몰아내고 우리끼리 통일하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북쪽 인원 148명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도 5.18묘지에 대형 탁자를 마련해놓고 풍부한 꽃다발을 올려놓고 한동안 묵념을 했고, 김대중은 5.18영령들이 지금 이 자리를 내려다보고 기뻐하실 것이라는 연설도 했다. 방명록에는 “5.18 정신이 곧 6.15 정신”이라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정신이 곧 헌법 정신이라는 것인지 현 정부에 묻고 싶다.
결론
5.18 진상조사위의 조사목적의 90%는 5.18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는 것이다. 조사위는 결국 ‘연구능력이 없는 광주-전남인들’을 모아가지고 지만원의 연구결과를 탄핵하기 위해 결성된 것이다. 지금처럼 광주-전남인들을 수만 명 모은다 해도 21년 동안 수학적 두뇌를 가지고 연구한 결과를 탄핵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핵심은 지만원이 펴낸 [5.18 작전 북이 수행한 결정적 증거 42개]에 수록돼 있는 42개 증거 모두를 다른 증거들에 의해 무력화 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 42개 증거는 광주-전남인들 수십만이 달려든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성격의 것들이다. 결국 게임의 승패는 42개 증거를 무력화시키느냐에 대한 여부, 이 한 가지에 달려있다. 이를 제쳐두고 하는 모든 말들은 다 요설에 해당된다.
전두환이 발포명령을 내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방법도 오직 하나다. 광주 현장에 투입된 공수부대 대대장 10명과 그들이 거느렸던 중대장들이 발포명령을 받았고, 그 발포명령을 이행했는지에 대한 물적 증거를 확보하는 길, 이 하나뿐이다. 광주와 전라도의 무명인들을 아무리 구워 삶아 증언을 시켜도 이는 증거가 될 수 없다.
공수부대원들이 2명 이상씩 조를 짜서 부대를 이탈해 개별행동을 하면서 강간을 일삼았는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런 개별 행동이 가능했는지에 대해 당시 투입됐던 10명의 대대장과 그 예하 중대장들의 공식 확인이 필요하다. 당시 공수부대원들은 수적으로 중과부적의 열세에 놓여, 목숨을 부지하기 조차 힘들었다. 그런 개별 행동을 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부대를 이탈하면 누구에게 죽는지도 모르게 사살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리 저리 몇 명씩 몰려다니며 강간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름도 없는 여성들이 함부로 발산하는 말을 ‘진실한 사실’이라고 발표하는 5.18조사위의 자력이 심히 의심스럽다. 무학자들만 뽑아다가 국가예산을 4년씩이나 탕진시키고 있는 것이 5.18조사위의 임무인 것인가?
결론적으로 지난 3년 이상에 걸쳐 조사위가 벌여온 작태를 보면, 5.18 조사위는 세기의 코미디로 막을 내릴 것만 같다.
2023.6.1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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