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백지 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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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8-08-12 10:41 조회5,8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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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백지 구형
정대협이라는 여성단체가 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약자다. 위안부와 정신대는 차원과 성격이 전혀 다른 존재들이다. 정신대는 일본 방위산업업체들에서 중노동을 착취당한 피해자들인데 정대협 간부들이 정신대를 위안부로 착각할 수 있도록 단체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것도 시정돼야 할 대상이다. 위안부를 위한다는 정대협, 이들은 무슨 일을 하는 여성단체인가? 빨갱이들이 5.18을 성역화 시켜놓고 무소불위의 세도를 부리듯이 정대협에 모인 빨갱이들은 반일의 상징 ‘위안부’라는 또 다른 성역화 된 이름을 내걸고,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면서 공공연히 반국가활동을 해오고 있다. 위안부의 권익과 명예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1992년에 단체등록을 해놓고는 그 후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국가를 적으로 여기면서 반미 반일 종북 반국가활동을 해온 것이다. 많은 애국국민들이 정대협의 이런 불순하고 위험한 행동을 지적하다가 민사 및 형사 소송을 당해 패소를 당하며 울분을 삼키고 있다.
일본에 의해 점령당했던 아시아 국가들은 12개국이었지만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반일감정이 높은 것은 바로 이 정대협의 정열적인 선전-선동 전에 기인한 것이다. 전교조가 젊은 세대의 시각을 붉게 세뇌시키는데 성공에 성공을 거듭해 왔다면 정대협은 이 나라 국민들을 반일 반미 종북사상으로 물들게 하는데 성공에 성공을 거듭해 왔다. 반일 감정을 확대 재생산해 내는 것은 우리나라 안보의 대들보 역할을 수행하는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체제를 파괴하는 행위다. 꽃밭을 만들고 정원을 가꾸어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이 땅에 보기 흉한 소녀상을 전봇대처럼 많이 세우는 것은 위안부의 권익을 위한 것도 아니고 위안부의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위안부를 정치적 앵벌이로 하여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위안부의 나라로 인식되게 하는 해국행위일 뿐이다. 겨울이면 이 위안부 소녀들은 목도리와 스카프와 고급 담요로 치장된다. 이를 바라보는 여식 아이들은 “엄마, 나도 위안부 될래” “엄마 우리 할머니도 훌륭한 위안부였지?” 참으로 기막힌 정서가 자라난다. 대한민국 땅을 밟는 외국인들은 웬 한국에 위안부가 천지로 깔렸느냐며, 나이든 한국의 할머니들을 일본군 위안부 정도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9월 1일자 격주간지 ‘미래한국’은 정대협의 정체를 소상하게 밝혔다.
●윤미향 상임대표의 남편, 1994년 남매 간첩단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김삼석 씨
● 손미희 대외협력위원장 남편 한충목씨, 맥아더동상 철거집회 등 각종 반미투쟁 주도하다 실형
● 손미희 대외협력위원장은 40여 차례 방북, 통진당 해산 결정 반대 시위, 김정일 조문 주장
“한신대 출신의 윤미향 현 상임대표는 1992년 1월 정대협의 첫 정기 수요 집회 때부터 간사로서 실무를 담당한 정대협 역사의 산 증인이자, 최근 정대협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주관하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2007년부터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런데 윤미향 대표의 주변 인물 가운데 세 명이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바 있다. 윤미향 대표의 남편은 지난 1994년 남매 간첩단 사건으로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선고 받은 김삼석 씨다. 한국외국어대 출신인 김 씨는. . 1993년 일본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금품을 수수하고, 북한 공작원 지시에 따라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한 혐의 등으로 국가안전기획부에 체포됐다. . . 김삼석 씨와 함께 남매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를 받았던 여동생 김은주 씨, 그리고 김은주 씨의 남편, 즉 김삼석 씨의 매제이자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의 시매부인 최기영 통합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 정책기획실장은 일심회 사건으로 체포돼 2007년 12월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 . 윤미향 대표와 함께 정대협 초기부터 수요 집회 등 실무에 적극 참여한 손미희 정대협 대외협력위원장의 남편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차례 구속된 바 있다. 특히 한 대표는 지난 2004년 인천 맥아더 동상 철거집회 등 각종 반미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정대협에 동참하는 단체들 대부분이 종북단체들이고, 정대협 간부들 대부분의 배우자들이 간첩이거나 국보법 위반으로 중형을 받은 자들이고, 이들 부부들은 분업체제로 반국가 반미 종북운동을 해왔다. 북한을 많게는 40여 차례 방문하고 북한조직과 공동으로 반일 운동을 전개하며 통진당 해산 반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사드 반대,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은 남한의 자작극, 북한 유도탄은 인공위성, 김정일의 사망에 애도한다며 조문을 주장하는 등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차마 눈을 뜨고 보지 못할 종북 이적행위를 저질러 왔다. 매주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벌이는 모임은 대부분 종북 이적 반국가적 성명서를 내놓는데 악용돼 왔다.
아이러니 하게도 빨갱이들의 우상인 김대중은 오히려 일본에 충성했다. 그는 1972년 일본에서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이라는 이적단체를 구성했다는 혐의로 1980년 사형선고를 받았다. 일본에서 북한의 인물들과 어울려 반국가활동을 했다면 일본의 정보기관이나 언론사들에게 많은 약점이 잡혀 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추측이다. 나를 만난 일본 언론인들 몇 사람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김대중은 일본에 많은 충성을 했다. 1989년 1월 9일 구는 몰래 일본 대사관에 차려진 히로히토 국왕의 분향소를 찾아가 90도 각도로 고개와 허리를 숙여 정치성 참배를 했다.
그가 주도한 ‘신한일어업협정’은 1999.1.22.부터 발효됐다. 이전까지 독도수역은 우리 대한민국만의 배타적 수역이었다. 그런데 김대중이 날치기 매너로 이 넓은 수역을 일본과의 공동수역으로 협정해 주었다. 그 결과 독도 바위 밑에 금덩이가 있어도 일본과 함께 꺼내야 하고, 독도 바위에 앉아 낚시도 할 수 없게 돼 있다. 반일감정이 부채질 된 것은 노무현 이후부터다. 2004년 말 노무현이 느닷없이 한국의 균형자론을 들고 나오면서부터 반일감정 반미감정에 불을 지폈다. 2005년 3월 4일, 빨갱이들은 한승조 교수를 매개로 하여 반일감정을 극도로 끌어올렸고, 그 이후 개념 없는 두 대통령 이명박과 박근혜가 정대협 놀음에 놀아나면서 반일감정은 아무런 브레이크 없이 상승일로를 달려왔다.
2016년 12월 28일, 한일 간에 위안부합의가 서명되었고, 일본이 합의금 10억 엔을 내놓는 것으로 양국은 위안부 문제를 종결하기로 했다. 이에 2017.5.10.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서 한일위안부협정을 파기하겠다 일방적 선언을 하면서 정대협의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 졌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전문성이 없는 정부는 정대협에 질질 끌려 다녔다. 정대협의 반일운동 폭주를 견제할 우익 단체도 없었다. 많은 국민들이 5.18의 세도와 전교조의 세뇌활동에 대해서는 익히 그 위험성을 통감하고 있지만, 정대협에 대해서는 그 위험성을 깊이 느끼지 못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반일정서의 순풍을 타고 확대일로를 질주해왔다. 반일 감정은 좌익 우익 가릴 것 없이 한국인들의 문화적 정서로 고착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 잡으려면 우익진영 사람들이라도 반일감정을 극일문화로 승화시켜야 할 터인데 독서 없는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사색과 각성 능력으로는 장구한 세월을 요할 것이다. 정대협의 망국적 세도를 가장 빨리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정대협이 벌이고 있는 이적-반국가 행위들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는 반-정대협 운동일 것이다.
2016년, 나는 인터넷을 통해 정대협의 반국가 활동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위안부를 앞세워 반국가 종북활동을 하고 있다는 요지였다. 같은 때에 나와 육사 22기 동기생인 이상진 박사도 비슷한 글을 썼다. 그리고 인터넷신문 뉴스타운이 이 두 사람의 글 여러 개를 신문에 게재했다. 이에 정대협 대표 윤미향이 좌익계의 거물 변호사 심재환을 내세워 민-형사 소를 제기하고 나섰다. 심재환은 법무법인 향법, 변호사들 10명을 총동원하여 법률싸움에 앞장섰다. 심재환 변호사는 이정희의 남편, 이정희는 전 통진당의 대표, 이석기를 품었던 통진당은 헌법재판소가 위헌정당으로 심판하여 2014년 말에 해산됐다. 심재환은 1987년 북한이 김현희를 시켜 저지른 만행, KAL858기 공중폭파가 안기부의 공작이라고 끈질기게 모략해온 인물이다.
매우 기이한 것은 같은 소송사건인데도, 형사재판은 피고인들에 대한 관할권을 가진 서울북부지법에서 원칙대로 담당하고 있는 데 반해, 민사재판은 피고들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을 관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고 정대협의 주소지 관할법원이 바로 서부지법이다. 나는 서울서부지법에 사건이송을 요청했지만 기각됐다. 정대협이 이만큼의 ‘금수저’ 대우를 노골적으로 받고 있는 것이다.
소송 서류에 기재된 윤미향의 주장은 이러했다. “고소인들은 피의자들이 공모하여 윤미향 상임대표의 남편 김삼석씨는 1994년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간첩이었다. 손미희의 남편 한충목씨는 맥아더 동상 철거집회 등 각종 반미 투쟁을 주도하다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는 인물이다. 정대협이 벌이는 위안부 놀음은 간첩의 처이자 정대협의 상임대표인 윤미향이 꾸려가고 있다. 정대협 지휘부는 북한과 간첩에 깊이 연루돼 있는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 정대협을 움직이는 간부들 대부분이 사상적으로 북한에 경도돼 있다. 윤미향의 남편은 김삼석, 김영삼 시절에 걸려든 남매간첩단 사건의 오빠다. 와 같은 취지의 허위기사를 기재하여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고소인 단체(정대협)와 그 대표인 윤미향을 종북좌파로 매도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구실로 삼아 종북활동을 하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고소인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이 주장에 대해 형사사건을 관할한 서울북부지방법원은 2016년 12월 27일 피의자들에는 명예훼손 및 모욕의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심재환은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를 했고, 서울고검 역시 항소를 기각했다. 심재환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냈고, 서울고법 김용빈 판사는 2017.8.17. 아무런 논리 전개 없이 서울북부지검에 “공소제기를 명한다”는 명령서를 발행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주일 후인 8월 24일 그는 춘천지방법원장으로 출세해 갔다.
김용빈 판사
이에 힘입어 사건이송 요청을 기각하면서 그리도 쌀쌀맞던 서울서부지법 최연미 여성 판사는 2018년 2월 13일, “피고들은 1,3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지금 항소심에 계류돼 있다. 이후로도 나는 윤미향과 그 남편 김삼석의 반국가활동에 대해 많은 자료를 찾아냈다.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열심히 답변서들을 써냈다. 6월 4일, 검찰은 재판부의 명령에 의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2018년 7월 4일은 변론을 종결하고 검사가 구형하는 날이었다. 이날 검사는 구형량을 결정하지 못했으니 심리를 한 번 더 열어 달라 판사에 요청했고, 판사는 2018년 8월 10일 오후 2시에 결심공판을 열기로 했다. 드디어 8월 10일에 공판이 열렸다. 그런데 검사는 구형을 포기했다. “재판장님께서 법대로 처분해 주십시오” 검사로서는 처벌을 해 달라 요청할 수 없으니 재판부가 알아서 하라는 백지구형인 것이다. 재판을 150여 건 받아봤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 겪어 본다. 재판장이 “피고는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고, 나는 아래 최후 진술서 1부를 재판장에 건네준 후 아래처럼 읽었다. 아래 내용은 서부지법에도 제출될 것이다.
최후 진술서
사건2017고단3684
피고인 지만원
대한민국 헌법 제5조와 제39조는 국방과 안보에 대한 국민적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대협은 조선위안부의 명예회복과 권익보호라는 공공의 목적을 내걸고 1992년에 출범한 공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구성원들의 면면과 활동의 족적들은 국가안녕에 매우 위험한 신호를 발산해 왔습니다. 정대협은 국민으로부터 감시돼야 할 확실한 존재인 것입니다.
피고인이 가장 위험하게 여긴 것은 정대협이 위안부문제라는 공적 명분을 내걸고, 반국가 및 종북 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17년 9월 14일자 한겨레 등의 보도내용들은 실로 눈을 의심케 합니다. 윤미향이 위안부 노파들을 동원하여 주한 베트남대사관 앞에서 스스로 피켓을 들고 베트남을 향해 ‘주월한국군’이 베트남에서 만행을 저질렀다고 고발했습니다. 위안부’노파인 김복동·길원옥 씨를 내세워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20년 넘게 싸워오고 있지만, 한국 군인들로부터, 우리와 똑 같은 피해를 당한 베트남 여성들에게 한국국민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고 밝혔다 합니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양민을 마구 학살했고, 여성들을 무자비하게 성폭행을 한 사실에 대해 윤미향이 한국위안부 이름으로 사과를 한다는 것입니다. 시위에 그치지 않고 곧 대표단을 구성해 베트남으로 가서, 한국군이 과거 일본군과 똑 같은 만행을 저지른 데 대한 사과행진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국군은 정대협이라는 여성단체에 사과해 줄 것을 위탁한 바 없습니다. 한국군은 미국을 위시해 호주,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참전하였지만, 특히 한국군의 활약상이 세계적인 모범사례가 되었습니다. 베트콩에게 따이한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민간인들에게는 친절한 천사였습니다. 민심을 얻기 위해 대민심리전을 적극 수행했습니다. 교량, 유치원, 노인정 등을 건설해 주고 잔치를 베풀며 먹거리를 제공해주고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이는 한국군만 벌였던 독특한 대게릴라 전법이었습니다. 민심을 얻어야만 베트콩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채명신 사령관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지는 한이 있어도 단 한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매우 유명한 전설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1952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혹평했던 바로 그 런던 타임즈가 그로부터 14년만인 1966년 5월 29일자 특집에서 "한국군이 월남전을 맡았거나, 미군이 한국군 전술을 채택했더라면 벌써 승리로 끝냈을 것"이라며 한국군을 극찬했습니다. 한국을 불신했던 IMF의 전신 ‘서방11개국 금융클럽’이 1966년에는 "월남전을 보니 한국은 희망이 있는 나라다" 하면서 27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습니다. 주월한국군으로 인해 천막회사에 불과했던 현대, 한진, 새한 등이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베트남의 뜨거운 기후에 훈련된 병사들이 중동의 모래사막에 가서 ‘중동특수’를 이룩해 냈습니다. 이로부터 한국경제는 매년 13%의 고공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객관적인 기록입니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윤미향이 무슨 자격과 실력으로 위안부 할머니 두 사람을 내세워, 5천명이 전사하고 16만 이상이 고엽제로 신음하면서 이룩한 자랑스런 한국군 역사를 부끄러운 역사로 왜곡하는 것이며, 한국을 범법 국가로 매도하는 것인지 실로 놀랍습니다. 세계 모든 국가의 국민들은 자국의 명예와 격을 높인 사람들에 환호하고, 국가에 충성한 사람들에 눈물 흘리며 고마워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유독 정대협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목숨 바쳐 충성한 군인들을 적대시하는 것이며, 다른 국민들이 목숨 바쳐 높이 쌓아 올린 국가의 명예와 국가의 격을 이리도 적극적인 방법으로 격하시키고 파괴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오로지 하나, 대한민국이 정대협의 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대협이 위안부를 앞세워 반국가활동, 국가파괴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실 이상으로 어떻게 더 설명할 수 있는지 피고인은 알지 못합니다.
정대협은 북한의 카운터파트인 ‘조대위’와 공동하여 1991.5.부터 2004.6.까지 13년 동안 9회의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했습니다. 이들 남북한 사람들은 공히 “위안부”라는 간판을 내세워, 정치활동과 통일활동을 하였습니다. 위안부활동이 자주통일의 전초작업이라 선언하였습니다. “분단은 식민지 지배의 연장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공정한 해결 없이는 식민지 지배의 청산과 자주성 회복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공감하였다.”는 공동성명도 냈습니다. 북한에 연루된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집단과 함께 반일 반미 통일을 주제로 하는 정치활동을 벌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적으로 여기는 정대협이 북한과 함께 자주통일 활동을 벌여왔다는 이 사실, 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 집니다.
고소인측은 윤미향의 남편 김삼석이 설사 간첩이라 해도 정대협의 구성원이 아닌 관계로 정대협의 업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정대협의 업무와 윤미향 배우자인 김삼석의 정체성을 결부시키는 것은 악의적인 행위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김삼석은 정대협 업무에 매우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김삼석은 2005.에 ‘수원시민신문’을 등록하였습니다. 이 신문은 2007년부터 지금 현재까지 정대협의 기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수원시민신문’에서 검색어‘정대협’을 치면 2007.2.12.부터 2018.6.22. 현재까지 무려 115개의 ‘정대협 관련 기사’가 뜹니다. 김삼석 기자가 쓴 글도 다수이고, 윤미향이 ‘시민기자’의 신분으로 게시한 글도 31건이나 됩니다. 정대협과 윤미향과 김삼석이 3위일체가 되어 정대협 활동을 공동하고 있으며 김삼석이 운영하는 ‘수원시민신문’이 사실상 정대협의 기관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와 같이 윤미향과 그 남편 김삼석은 부부의 관계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활동도 공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김삼석이 하는 일은 그 어느 비밀간첩도 수행하기 어려운 막강한 해악을 국가를 향해 분출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김삼석의 어록들이 담긴 2005년의 통일뉴스 기사 7개를 제출했습니다. 이 7개 기사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과거청산의 핵심 대상은 미국이어야 하고, 군 입대는 미국의 노예가 되는 길이다. 한국군은 미국의 노예군이자 미국의 용병이고, 민족반역자들이 가는 대피호다. 미국은 미국의 말을 잘 듣는 군인들을 장군, 총장으로 임명했고, 서울의 절반이 미국의 재산이 되었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민족의 주권을 찾는 정치이고, 2018.6.12. 싱가포르 북미화담은 미국이 북에 굴복한 회담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빨리 폐기해야 한다. 한미일 동맹은 통일을 방해하는 대북 적대의 군사장치다” 청년들에게 군대에 가지 말 것과 군에 충성하지 말 것을 종용합니다. 국보법을 빨리 철폐하고. 한미일 공조체제를 깨자고 설득합니다.
김삼석은 2005년에 활동무대를 통일뉴스에서 ‘수원시민신문’으로 옮겨, 지금 현재까지도 반일 반미 반국가 종북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고소인측은 김삼석이 국보법 철폐, 미군철수를 주장한 바 없다고 강변합니다. 여기에 미래한국 등에서 밝힌 정대협의 면면과 활동 그리고 수많은 수요집회에서 발표한 반일 반미 반국가 종북 관련 성명서들을 합치면 정대협은 국민으로부터 그 어느 때보다 더 밀착된 감시를 받아야 마땅한 매우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피고인은 본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이 최초로 발행한 ‘불기소처분 이유서’가 대법원 판례에 부합하는 명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본 재판을 편한 마음으로 받게 관리해 주신 재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 8.10.
피고인 지 만 원
서울북부지방법원 형사 제8단독 귀중
베트남대사관 앞, 윤미향(2017.9.14.)
정대협의 활동에 대해서는 범국민적으로 반드시 강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이번 재판에서 내가 지게 되면, 정대협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많은 우익들이 곤란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대협은 더욱 더 가혹하게 반대자들을 탄압해가면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위안부’라는 존재는 5.18세력과 함께 대한민국 위에 군림해왔다. 위안부 문제, 반일문화에 관한 한, 국가기관들을 사실상 호령해 온 것이다. 정대협 말고는 그 어느 국가기관도 반일 감정을 이처럼 대량으로 생산해 낼 수 없다. 내가 최근에 추가로 밝혀낸 정대협-윤미향-김삼석에 의한 반국가활동 내용들이 많은 이념 투사들에 의해 적극 활용되기를 바란다. 이 재판 선고는 10월 5일 오전에 하기로 예정돼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재판의 결과가 궁금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받아 온 재판, 받고 있는 재판에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판의 주제들과 판검사들의 행태들이 중요한 것이다. 정대협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일에 많은 국민이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5.18에 대한 재판은 민사와 형사가 진행되고 있다. 민사재판은 모두 광주가 불법으로 가로 채다가 도깨비놀음을 하고 있다. 나를 고소한 5.18측 사람들은 모두가 소송사기에 해당한다는 증거들을 다 제출했는데도 광주판사들은 눈 감고 판결문을 써왔다. 다행이 형사사건은 서울법원이 관할하고 있다. 제1심 재판 결과는 아마도 2018년이 가기 전에 나올 것 같다. 사건번호 2016고단2095, 고소인이 무려 25명이다. 6개 고소사건들이 병합돼 있다. 이 사건에서 내가 이기면 광주법원이 주도한 민사판결들은 대법원에서 보두 뒤집힐 것으로 생각한다.
2018.8.12.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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