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메시지(25)] 귀순한 박승원 상장, 행방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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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3-02 22:54 조회6,80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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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메시지(25)] 귀순한 박승원 상장, 행방을 찾자
1980.5.21. 상황만 보고도 북한소행 단정한 방송진행자들
1997년 국정원보다 황장엽을 먼저 중국에서 접촉한 사람이 있었다. 전 월간조선 편집장 김용삼이었다. 1993년 1월 초 TV조선과 채널A가 나를 초대해, 5.18 발언에 대해 무거운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들 했는데 어떻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느냐며 이야기 좀 들어보자고 했다. 나는 책들을 많이 안고 나가 보여주면서 1980년 5월 21일 상황 몇 개를 이야기 해 주었다. 그랬더니 이은경 등 진행자들이 나보다 먼저 “그거는 양아치 계급이나 대학생들이 절대로 저지를 수 없는 행동이다. 북한군 아니면 그런 일처리를 사람 없습니다.” 치고 나갔다. 2013년 4월 22일, 김용삼은 1998년 어느날, 국정원의 방해를 무릅쓰고 황장엽과 김덕홍을 인터뷰한 결과를 TV조선 신율의 ‘시사열차’에 출연하여 발표했다.
황장엽: “광주 학생 문제도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북 공명주의자들이 책임을 남한에 전가한 것이다.”
김덕홍: “조선노동당 대남부서에 소속된 사람들 상당수가 광주 민주화 운동 끝난 후에 일제히 훈장받았다.”
박승원 상장 귀순은 100% 확실
2015년 7월 1일 경, 박근혜는 북에서 매우 높은 고위급 간부가 귀순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한국 청와대 역사상 처음 대통령 신분으로 손수 국정원으로 달려갔다. 보고만 받았으면 됐지, 구태어 손수 국정원에까지 멀다면 먼 길을 달려간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 귀순자의 얼굴을 보러 간 것이다. 7월 3일 동아일보가 박승원이라는 현역 3성장군이 귀순했는데 곧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이어서 7월 4일 채널A가 박승원 사진까지 내보내면서 곧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고 신이 나서 보도했다.
이어서 프리엔케이(FreeNK)가 박승원이 광주에 왔다간 사실을 보도했다. 그 이전인 7월 1일에는 뉴스타운 호외지1호에 ‘노숙자담요’가 박승원을 제37광수로 지정한 사실을 보도했다. 또 그 일주일 전에는 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시스템클럽에 박승원이 제37광수로 발표돼 있었다.
박승원 상장의 5.18 경력
FNK가 보도한 박승원의 5.18경력은 매우 구체적이다.
(1) 5.18때 대남연락소 전투원 소속으로 광주에 남파됐다.
(2) 1980년 10월 평양인민 문화궁전 1층에서는 ‘전국영웅대회’가 열렸고, 지하에서는 ‘대남영웅대회’가 열렸는데 박승원은 ‘대남영웅대회’에 토론자로 출연하여 5.18 참전의 위훈담을 증언했다.
(3) 5.18 참전 대남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김정일 지시로 제작된 ‘무등산의 진달래’ 노래 제작에도 기여한 인물이다.
이 정보는 37광수라는 정보와는 전혀 다른 별도의 독립적인 정보인 것이다.
박근혜, 동아일보, 채널A가 망령 들었는가?
시스템클럽을 보았는지, 뉴스타운 홈페이지를 보았는지, 아니면 7월 5일경 보도된 FreeNK의 구체적인 기사를 보았는지 알수는 없지만,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박근혜의 공언은 즉시 차단이 됐고, 박승원은 사라지고 없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헛것에 홀려 박승원 상장의 귀순을 대서특필했는가? 박근혜가 상기된 표정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해 했던 ‘북한 고위급 간부’는 어디로 가고 없는것인가? 박근혜가 몽유병에 걸려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말이고 동아일보와 채널A는 귀신에 홀려 박승원 상장을 연이어 보도했다는 말인가?
당시 국정원장 이병호의 팔을 비틀자
확실해지는 것은 박승원이 분명히 귀순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디엔가 감금돼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박승원이 5.18에 광주에 왔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광주에 그가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세상이 뒤집어진다. 그게 싫어서 박승원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나는 5.18을 북한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21년동안 이 고생을 하고있는데, 박근혜는 연구도 하지 않고 그 빼박 증거가 저절로 굴러 들어왔는데 왜 이것을 꼭꼭 숨기기로 했는가?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헌법파괴 행위가 아닌가?
윤석열 대통령에 간절히 바란다. 탈북어민 두 사람을 본인들의 의지에 반해 북으로 떠밀어 보낸 자들을 반인륜적 범행을 저지른 자들이라며 기소하고 있다. 그러면 남한으로 귀순해 온 3성장군을 이렇게 감추고 감금시켜 놓는 행위는 정당한 행위인가? 대통령은 박승원의 안부에 대해 보고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박승원이 광주에 참전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전두환 대통령이 영웅이 된다. 박근혜는 전두환으로부터 과분한 신세를 졌으면서 전두환이 최태민을 견제했다는 이유 때문인지 전두환에 대해 무서운 오뉴월 서릿발을 발산해왔다. 박승원을 감추기로 최종 결심한 사람은 박근혜다. 그리고 그 수족이 국정원장, 육사19기 이병호다. 이병호가 아직도 옥에 있는지 나갔는지는 모르지만, 모든 애국인들은 그를 보거든 반드시 국가를 위해 양심선언을 하라고 압박해야 할 것이다.
무등산의 진달래
김정일 지시로 박승원이 관여했다는 노래, ‘무등산의 진달래’는 광주에 가서 떼죽음(무리죽음)을 당한 북한 특수군에 대해 애통해 하는 노래다.
제1절
광주라 무등산에 겨울을 이겨내고/연분홍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네/
동강난 조국땅을 하나로 다시 잇자/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잊어/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제2절
광주라 무등산에 봄철을 부르면서/새빨간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네/
찢어진 민족혈맥 하나로 다시 잇자/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잊어/젊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김정일의 지시를 받아 작사·작곡했다는 이 노랫말에는, 광주에서 동강난 조국땅, 찢어진 민족혈맥을 하나로 통일시키기 위해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을 당해 북에 부모형제를 두고 무등산의 넋이 되었다는 애타는 의미가 절절히 묻어난다. FreeNK의 보도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몇 명이 무리죽음(떼죽음) 당했는가?
475명이다. 600명의 특수군 중 475명을 교도소 공격에서 떼죽음시킨 것이다. 475명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① 1982년 조국통일사가 펴낸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제 591쪽 14~16줄에 기재된 글이다.
“광주시 도청 지하실 한 곳에만도 얼굴을 알 수 없도록 화염방사기에 그슬리고 찢긴 475구의 시체가 쌓여져 있는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놈들의 살육만행이 얼마나 참혹하였는가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이다.” 참고로, 광주시 전체에서 사망한 남한사람은 154명뿐이다.
② 1985년 북한노동당출판사가 발행한 [광주의 분노] 제86쪽에 기재된 글이다. “민주투쟁위원회는 공정대놈들이 도청 지하실에 감추어 놓았던 475구의 봉기군 시체를 꺼내다가 도청 분수대 앞에 안치하여 놓았다.”
③ [조선기록영화촬영소]가 1980년 바로 그 해에 편집한 기록영화 [군사파쑈도당을 반대하는 광주인민항쟁]에는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피로 물든 광주는 참혹한 인간도살장이 됐고 피의 목욕탕으로 변했다. 하루에 475명이나 도청지하실에 끌어다 죽였다.”
④ 1980년 6월 5일, 일본 도쿄에서 ‘천주교 정의평화 위원회’가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찢어진 깃폭, 어느 한 목격자의 진술]에도 475명이 기재돼 있다.
“그들은 시신을 도청 지하실에서 꺼내 밖으로 내오기 시작했다. 지하실에 내려가 475구의 시체를 보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불에 탄 것도 있어 시민들은 다시 한 번 분노에 치를 떨었다.”
모두가 대통령에 요청하자. 박승원 찾아달라고.
박근혜는 입을 열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 충성했던 이병호는 ‘주군’의식에 사로잡혀 대의를 실천할만한 그릇이 못된다.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노조를 때려잡는 정의감과 결단력을 가진 윤대통령에게 호소하는 방법일 것이다.
“박승원 상장 행방을 찾아주세요!” 박승원만 찾아주면 5.18 게임은 끝난다.
2023.2.2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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