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32)] 김대중을 삼각지 하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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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3-10 00:00 조회9,6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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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32)] 김대중을 삼각지 하늘에
참수리 호 군의관이 본 김대중
박동혁, 6.29 전사자 중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간 용사였다. 그를 살려내려고 많은 노력을 했던 군의관이 이봉기 군의관이었다. 2012.6.26. 조선일보에는 2002년 6월 29일 참수리호 피격 당시 군의관들의 솔직한 토로가 실려 있었다.
이봉기 군의관의 글
당시 전사 장병과 유가족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런 정부를 위해서라면 나 자신도 털 끝 하나 다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드디어 군바리가 가고 민주정치가 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제2연평해전 부상자들을 돌보면서 희생이 뭔지 배웠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군인의 희생이 있기 때문에 내가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도 지난 정권을 떠올리면 이가 갈리고 분통이 터진다. 나 말고도 그 자리에 있던 군의관들 모두 그렇다.
지금 종북 국회의원을 보면 내 세금이 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쓰여야 하나 싶다. 종북 인사들은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모독을 자주 하더라. 우리끼리 일 끝나고 맥주 한 잔씩 할 때마다 제 2연평해전 이야기를 했다. 정말 너무 하지 않느냐고. 나라 지키다가 젊은 사람들 죽어 나갔는데, 국군 통수권자는 축구 본다고 일본에 가서 웃으며 손 흔들고, 이러면서 사건 당시 전사자 빈소에 일반인들 조문 못 하게 막았다. 유족들과 몇몇 군 관계자들만 왔다 갔다.
유가족이 홀대 받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정부를 위해서라면 조금도 다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북한이 그리고 간첩이 원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이 나라 젊은이들이 조금씩 그런 생각 먹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안보가 무너지게 하고 분열되게 하는 것이다.
업 코리아 기자가 본 김대중
아래는 2004년 6월 28일, 네이버 뉴스 ‘업 코리아’ 기사다.
김대중은 대한민국 편이 아니었다.
2003년 7월 10일 자 한 주간지에 실린 고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육필 수기는 김대중 정권의 조국에 대한 배반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02년 7월 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체육관, 6월 29일 서해상에서 북한의 계획된 도발로 사망한 고 윤영하 소령을 비롯, 조철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등 장병 4명의 합동 영결식이 열리고 있었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들과 전두환 전 대통령, 손학규 경기지사, 장정길 해군 참모총장 등 각계 인사 500여 명이 참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국가 최고 지도자이자 군 통수권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김동신 국방장관을 비롯, 국무위원 어느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 중이었다. 6월 29일 서해 교전으로 온 국민이 분노에 떨고 슬픔에 잠겨 오열하고 있을 때, 한가하게 월드컵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30일 오전 서울 공항을 통해 출국한 것이다. 시민들의 분노가 메아리 쳤다.
윤 대통령의 불가사의
우리 사회의 반일 감정은 거의 고질병이다. 반일 정서가 깔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3.1절 연설에서 일본과는 손을 잡고 함께 미래로 가야 한다는 당찬 발표를 했다. 이를 보면 대통령의 판단력이 예리하고 결단과 용기가 대단하다. 그가 민노총과 민주당을 주사파 세력으로 단정하고, 협조의 대상이 아니라 척결돼야 할 세력으로 선언한 것은 많은 애국자들에게 엄청난 희망을 안겨주었다.
더구나 최근 노조에는 간첩이 침투하여 노동폭력을 간첩이 지휘하고 있다는 징후도 포착되고 있다. 이 정도에 이르면 ‘민주’라는 것은 북괴가 조종하는 전위 전투 세력이라는 등식이 가시적으로 성립한다.
전두환도 ‘민주’가 만들어 낸 허상이고, 김대중도 ‘민주’가 만들어 낸 허상일 것이라는 의심 또는 가정이 저절로 우러나올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반역의 살인마 김구를 애국자로 등극시킨 것도 ‘민주’다. ‘민주’가 만들어 낸 역사, 모두가 거꾸로 된 역사일 것이라는 의심을 할 때가 된 것이다. 김구는 끝까지 단독정부 수립을 훼방하면서 1948년 4월 기어이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의 인민 공화국 수립에 찬조 연설까지 해주지 않았던가?
이 나라 애국자들 가운데 김대중을 반역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통령 주위에서는 ‘민주’의 실체가 무엇이고 ‘민주’의 뿌리, 그리고 그 존재의 발판이 무엇인지, 연구해 보고할 의무가 있을 것 같다.
‘민주’의 실체를 인식했으면서도 그 뿌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 불가사의한 일이기 때문이다.
2023.3.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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