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차관 서주석은 골수좌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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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8-02-11 17:49 조회6,86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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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차관 서주석은 골수좌익
서주석이라는 사람이 현 정부의 국방차관으로 임명됐는데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광주로 내려가 5월 깡패들 앞에 허리를 많이 그리고 한참 굽혀 사과를 하고 절을 했다. 빨갱이들이 몸에 밴 것이 국가를 대신해서 빨갱이들에 사과하고 절하는 일이다. 그는 왜 광주에까지 날아가 대한민국 제1급 조폭들 앞에 머리 숙여 사죄했는가?
서주석의 프로필
서주석은 1958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그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딴 후 1987년 국방연구원(KIDA)에 채용되어 당시 정책팀에서 연구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송영선도 그 팀에 있었다. 내가 1987년 2월에 KIDA를 떠났으니까 서주석은 내가 떠난 직후에 채용된 것이다. KIDA에서 15년 정도 근무했을 당시 그는 노무현에 발탁되어 청와대서 일했다. 그리고 노무현이 청와대를 비우면서 다시 KIDA로 돌아와 책임연구위원이 되었다. 이어서 문재인이 들어서자 국방부 실세로 등장한 것이다. 이 정도 되면 그가 이념적으로 어느 라인에 선 사람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5.11연구위원회란?
한마디로 KIDA 입사 2년차의 초년생으로 5.11위원회에서 문서정리 시다 노릇한 것이 지극히 부끄럽다는 것이다. 5.11위원회? 최근 국방부특조위가 구성되면서부터 5.11위원회라는 명칭이 마치 저주받아야 할 군조직인 것으로 매도되고 있다. 그러나 5.11위원회의 정식명칭은 5.11연구위원회다. 이는 상시조직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구성됐다가 해체된 TF였다. 1988년 5월 11일에 구성이 되었는데 그 구성을 보니 정치색이 전혀 없는 불과 14명의 군 실무요원들로 채워져 있었다. 보안사 요원도 없고, 국정원 요원도 없었다.
동원예비국(서기관1, 사무관2)
법무관리관실(중령1)
작전국(중령1)
700부대(중령1, 문관1) -통신감청부대-
육군민사처(대령2, 중령3)
KIDA(연구원2. 그 중 1명이 서주주석)
계: 6개 부서에서 14명 차출
서주석은 도대체 무슨 일로 사과를 했는가?
KIDA에서의 5.18관련 연구는 내가 연구소를 나온 다음에 시작됐고, 1988년 5월에 ‘보고서’를 냈다. 언론들이 밝힌 보고서 표지에는 “광주”라는 글자만 남기고, 앞 글자들도 지우고 뒷 글자들도 지웠다. 지운 것으로 보아 제목에는 빨갱이들이 싫어하는 문자들이 들어있을 것이다. 광주사태를 ‘폭동’으로 보는 문자가 들어 가 있을 것 같고, ‘진압의 당위성’이라는 문자도 들어가 있음직하다. 당시 정서를 가지고 보고서 제목을 달았다면 아마 “반역의 광주사태 진압의 당위성” 정도로 했음직하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03551 (안 열리면 긁어서 검색창에 복사)
KIDA가 5.18의 주요 쟁점들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냈던 바로 그 순간에 맞춰 ‘511연구위원회’가 구성됐다. 글자 그대로 1988년 5월 11일에 구성됐다. 따라서 KIDA 보고서 내용은 이들 ‘5.11연구위원회’의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KIDA 연구보고서를 내기까지에는 서주석이 말단 연구원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아마 선임연구원 또는 그 위 계급의 책임연구위원이 지휘하는 3명 정도의 과제팀에서 몇 개월 동안 연구에 참여했을 것이다. 연구에 참여했기에 그가 5.11연구위원회에 시다 자격으로 파견됐을 것이다.
5.11연구위원회 구성의 당위성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시기다. 5공특위가 형성된 것은 1988년 6.28일, 광주특위는 보름 후인 7.13일에 국회에서 구성됐다. 그리고 이어서 5공청문회가 시작됐고, 바로 이어서 광주청문회가 전개됐다. 이때는 국회가 정권을 잡았고, 국회의 주인은 빨갱이 집단이었다. 그리고 물태우는 빨갱이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해주는 바지였다.
이러할 때 국방부는 청문회에 매일 불려나가야 했을 것이고, 국방부 장관으로서는 5.18에 관한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는 군이 반드시 해야 할 정당한 업무였다. KBS가 보도한 위 자료에는 5.11보고서 내용들이 드문드문 있다. 상황일지다. 이를 놓고 KBS는 조작이라고 보도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조작이 아니다.
1988년의 5.11보고서가 쎈가 1995년의 민-군 검찰이 공동작성한 수사보고서가 쎈가?
조작 조작 조작, 빨갱이들이 5.18에 대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그러나 조작은 1996년 김영삼 패거리들이 했다.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었던 “집권시나리오‘를 조작해 전두환에 뒤집어 씌운 것이 용서받을 수 없는 조작이다. 5.11보고서와 KIDA보고서가 5.18을 조작했다면 어째서 국방부 특조위가 6개월간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증명하지 못한 채 빈손 털고 해체됐는가? 5.11 보고서 내용은 이미 서울지검과 국방부검찰부가 합동으로 조사하여 1995.7.18.짜 보고서 ”5.18관련사건수사결과“에 용해돼 있다.빨갱이들은 조금이라도 떠들 건수가 있다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걸레처럼 흔들어 보이면서 침소봉대해 사회를 선동한다. 공산주의식 노이즈마케팅인 것이다. ”거짓말도 100번 하면 참말이 된다“ 국민들은 언론을 빨갱이로 간주해야 국가를 살릴 수 있다.
5.18진상규명특별법이 시동되면 그동안 5.18을 싸고 돌던 인간들은 북한군과 놀아난 반역자로 몰릴 것
서주석은 “무척 부끄럽게 생각하고 광주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올린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것도 모자라 광주로 날아갔다. 5·18기념재단 사무실을 찾아가 김양래(5.18기념재단), 정춘식 (5·18유족회장), 김후식(5·18부상자회장) 등 천하 사기꾼 같은 조폭들과 1시간 가까이 면담했다. 이것도 모자라 그는 특조위 조사 내용 등을 파악해서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서주석이라는 자는 빨갱이들이 말하는 “쓸모 있는 바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중이다.
2018.2.1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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