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행세하는 탈북자, 국민감시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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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7-12-04 16:06 조회7,3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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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 행세하는 탈북자, 국민감시 요청한다
위키백과의 장진성,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로 부상돼 있어
장진성은 대한민국으로 망명하여 활동 중인 북한 출신의 작가이다. 북한에서는 평양음악무용대학 졸업, 조선중앙방송위원회 TV총국 문예부 기자,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중앙당 통일전선부 101연락소 근무하다 2004년 망명하였다. 남한 입국 후 2010년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고, 현재는 대북전문매체 《뉴포커스》 발행자 겸 대표이다.
장진성은 한국 작품 사상 1위의 해외판매 기록을 가진 작가이다.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시집으로〈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가 있다. 베스트셀러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는 2009년 일본에서, 2010년에는 미국에서도 번역출판되었다. 그 외 서사시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 수기 〈시를 품고 강을 넘다〉(2012년 5월 17일 일어로 번역출간), 〈김정일 어용시인의 고백〉(일본 문예춘추에서 2013년 12월 출간)이 있다. 세계에 잘 알려진 장진성 작가의 작품은 수기 〈DEAR LEADER〉이다.
장진성 작가는 거액의 해외계약과 판매에서 한국 작가들 중 가장 압도적 1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장진성 작가의 수기 〈DEAR LEADER〉를 세계유명 출판사들인 랜덤하우스가 유럽판권을, 미국 사이먼 앤 슈스트가 북미판권을 계약했다. 2014년 5월 8일 출간 전에 매진되어 2쇄를 찍을만큼 화제가 된 장진성 작가의 수기는 5월 25일 영국 더 타임즈의 주말신문인 선데이타임즈가 북미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 영어권 나라들의 도서판매 종합순위에서 베스트셀러 10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1] 이어 선데이타임즈는 같은 해 12월 "2014년 세계를 깨우친 베스트도서 10"에서 장작가의 수기가 8위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장진성작가는 2012년 5월 29일 한국인 최초로 영국 옥스퍼드 문학상을 받았다. 1610년도에 세워진 워덤 컬러지가 주는 '렉스 워너상'이다.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아이의 꿈", 외 총 6편의 시가 1등상을 받았다.<이상 위키백과>
장진성(본명 위철현)의 허위 프로필
법정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정진성은 1971년 3월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출생했고, 1987년에 평양으로 이사 와서 1994년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에서는 개량 퉁소가 특기였다고 했다. 그가 밝힌 이력에는 졸업 후 조선중앙방송국 기자로 특채되어 2년 동안 근무했고, 1996년부터 노동당 통일전선부 101호 연락소 소속 시인으로 발탁되었고, 거기에서 8년 동안 남한의 민중시인‘김경민’이라는 가명으로 시를 써서 남한운동권에 내려 보내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4년에 탈북했다.
김일성 종합대학 학력이 허위인 이유
“그러면 김일성종합대학은 언제 나왔느냐?” 이 질문에서 그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닐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내놓은 대답은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통전부 101연락소에서 일하려면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 졸업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에서 1997년부터 99년까지 3년에 걸쳐서 위탁교육 형식으로 졸업장을 구해주었는데 위탁교육이라는 것은 학교에 꼬박꼬박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김일성 종합대학은 4년제이며 학사관리가 매우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탈북자에 물어보니 이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한다.
장진성의 발언에 의하면 통전부 산하 101연락소가 김일성종합대학 학위증도 없는 사람을 101연락소에 특채를 했다는 것이 된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한다. 101연락소에 근무하려면 김일성종합대학 학위증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은 장진성도 법정에서 진술했다. 그래서 101연락소가 특권으로 장진성에게 학교에 실제로 다니지 않게 하면서도 불과 3년 만에 졸업장을 받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믿을 사람 남한에도 없을 것이다. 한 김일성대 졸업자는 코웃음을 친다. 이로써 그가 위키백과 학력사항에 크게 부각시켜온 김일성종합대학졸업은 허위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실제 법정에서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에 속한 과 이름조차 제대로 대지 못했다.
통전부 산하 101연락소 근무도 전혀 근거 없어
그는 법정에서 “2001년부터 2004년 1월까지 해군협주단 배우로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로서는 큰 수확이었다. 이 내용은 공개된 적이 없었다. 1996년부터 2004년 1월 탈북할 때까지 101연락소에 근무했다면서 해군협주단에는 어떻게 근무한 거냐고 물었더니 1주에 하루만 나가 근무했다고 한다. 한국의 프리랜서에나 존재하는 꿈같은 이야기다. 김일성대 탈북자에게 “이게 가능한 것이냐?” 물어보니 말도 안 되는 거짓이라고 한다. 101연락소에 근무했다는 것이 허위일 것이라는 의혹이 가는 대목이다.
여기에 또 하나를 보태보자. 2012.5.7. 중앙일보 기사 “"내 딸 100원에 팝니다" 北시장서 직접 목격후”에는 이런 기사가 있다, “96년부터는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 소속 시인으로 일했다. 대남 심리전 담당이었다. 그는 ‘김경민’이란 가명으로 활동했다. 남한에선 민중시인으로 알려진 이름이다. .. 한국 대학가에 떠돌던 상당수 민중시가 통전부 시인들의 작품이었습니다. 99년에 시 덕분에 김정일을 두 번 만난 일이 있는데, 김정일이 자꾸 울더라고요. 권력만 있었을 뿐 매우 외로운 사람이었죠.”
나는 법정에서 물었다. “탈북한 후 증인이 101연락소에서 김경민이라는 이름으로 남한 운동권에게 써 보냈다는 시들이 있더냐? 제목이 뭐냐?” 그는 당황하면서 얼버무렸다. “나는 그런 시 쓴 적 없다”. 101연락소에서 남한의 민중시인 ‘김경민’이라는 이름으로 시를 써서 남한 운동권으로 내려보냈다는 말도 거짓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101연락소에서 일했다는 것도 거짓이 되는 셈이다.
퉁소 부는 음대졸업생이 가는 곳, 해군협주단이겠나, 통전부 공작부서겠냐?
내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장진성은 1994년 24세로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했고,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조선중앙방송위원회 TV총국 기자로 있다가 2001~2004.1월까지 해군협조단에서 일했다. 장진성은 그가 나왔다고 하는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의 과 이름들도 몰랐다. 101연락소에서 가명 김경민이라는 이름으로 선동시를 써서 남한 운동권에 보낸 적도 없다고 했다. 2012년 중앙일보 기사가 거짓인 것이다. 평양음악대학을 졸업했다면 통전부 근무보다는 인민군해군협주단 근무가 어울리고 자연스럽다.
“나의 탈북스토리”, 100% 허위, 국정원의 공모행위 장진성에 의해 들통 나
모든 탈북자들은 2개월 동안 하나원에 머물면서 어릴 때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행적을 쓴다. 한번만 쓰는 것이 아니라 많게는 열 번도 쓴다. 통상 A4지 수백 쪽이다. 4개월 동안이나 풀어주지 않고 계속 개인역사를 쓰고 나온 사람도 있다. 이렇게 엄격한 과정에서 장진성은 어떻게 이렇게 현실과 다르고 전과 후가 다른 거짓으로 똘똘 뭉친 탈북스토리를 인정해 주었을까?
북한에는 특별통행증이 있다. 남쪽 DMZ 쪽으로 가는 통행증에는 빨간줄 2개, 북중 국경지대로 가는 톡별통행증은 푸른색 2줄이다. 그런데 장진성은 붉은 줄 두 개가 쳐진 특별통행증을 가지고 북중국경지대로 갔다고 썼다. 국정원에서 이런 거짓까지 통과시켰다는 것은 아예 장진성을 특별한 손님으로 키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실제로 장진성은 “나는 하나원을 가지 않고 황장엽 안가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3류 글쟁이 장진성, 언행이 천박하고 호전적
‘시를 품고 강을 넘다“에 들어있는 장진성의 글은 3류 글쟁이 정도일 것이다. 그런 글이 세계적인 문학으로 올라 있는 것은 심히 부자연스럽다. 영국 랜덤하우스가 냈다는 책의 한국판을 구해 연구하고 싶다. 그 쓴 ”나의 탈북스토리나 페이스북에 쓴 그 글은 수준 이하다. 법정에 나와 그가 보인 언행은 매우 천박했다. 북한에서라도 정상적인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이 이렇게 천박하고 천방지축일 수는 없다.
그는 증언대에 앉아 시종 뺨을 주먹에 고인 후 탁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입술만 조금씩 움직이거나 아니면 미세한 동작으로 고개를 순간적으로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나는 증언하러 나온 게 아니다. 저 정신병자를 치료하려고 왔다” 100명이 가까운 법정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소리쳤다. 남한의 간첩 급 빨갱이들이 법정에서 피우는 막가파식 소란과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국정원은 이제까지 이런 인간을 세탁해서 국민을 속게 만들었고, 국제무대에까지 그를 위대한 작가로 금맥기 해준 것이다.
남한에서 유명인 행세하는 모든 탈북자, 국민이 직접 감시하자
위 장진성을 통해 우리는 무슨 교훈을 얻었는가? 첫째, 얼굴과 이름 TV에 드러내놓고 북한을 비판하는 척 하는 탈북자들, 대부분이 위장일 수 있다는 기막힌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들의 경력, 그들의 탈북스토리는 처음부터 다시 검증해야 하고, 그들의 행동은 국민이 직접 나서서 감시해야 한다. 둘째 국정원을 의심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우리는 “국정원이 어련히 잘 검증하려고” 이렇게 믿고 안심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김대중이 탈바꿈시킨 국정원’은 북한과 한 통속이고 북한의 대남공작 지부라는 확신이 간다.
2017.12.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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