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의 5.18재판 사후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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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7-10-14 16:19 조회8,1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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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의 5.18재판 사후정리
지난 12일, 5.18 형사재판이 5시간여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광주-전남에서는 6명이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중 목포에 사는 88세의 여인 김진순은 거동을 못한다며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있었습니다. 검찰이 먼저 증인에게 묻고 그 다음 우리 변호인이 질문을 던지고, 저는 환등기에 각 질문에 대한 사진들을 올려놓으면서 의사소통 이 잘 안되는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였습니다. 검사가 증인을 신문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 측을 도와주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불참한 노파 김진순은 소송사기 행위 범해
거동도 할 수 없는 목포 노파를 5.18기념재단이 소송에 동원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교도소를 공격하다가 죽은 이용충의 모친입니다. 노파는 1980.5.23. 전남도청에 진열돼 있는 한 관을 붙잡고 우는 여인(리을설)이 자기라고 사기를 쳐서 고소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완전 사기입니다. 한겨레신문 보도와 5.18기념재단 사이버공간 자료에 의하면 이 여인은 집 나간 아들의 시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다니던 6월 30일, 경찰서로부터 당신 아들 시체사진과 유품이 경찰서에 진열돼 있으니 와서 확인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경찰서에 가서 사망한 아들 사진과 옷가지와 시계 등을 보고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5월 23일 관을 붙잡고 우는 여인이 자기라 하니 어이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짓 하는 인간들이 5월 단체들인 것입니다.
5.18 쌈닭 김양래
천주교 광주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는 이 이름으로 1987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이라는 화보집을 냈습니다. 그 화보집에는 비참하게 으깨진 얼굴사진들이 15개 실려 있고, 이를 공수부대의 작품이라며 대한민국을 모략하였습니다. 이어서 1990년 한민전 평양대표부가 “아! 광주여!”라는 제목으로 역시 똑같은 시체사진을 실어 대한민국을 모략하였습니다. 그런데 광주와 북한이 실은 이 15구의 얼굴사진들 중 5개가 1982년 삐라에 실려있습니다. 저는 이를 놓고 광주와 북한이 공모공동하여 대한민국을 모략하였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김양래와 신부 정형달, 남재희, 안호석 이영선 등이 이름을 밝히면서 그 사진들을 편집했다며 저를 고소하였습니다. 김영래는 2016년 5월 19일 저를 집단폭행한 주모자였습니다. 이번 신문에서 그는 "아래 동그라미 쳐진 사람이 김양래 증인 맞지요?"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북한이 내려 보낸 으깨진 시체사진들을 화보로 만들어 공수부대 모략
통일부에는 김영래가 편집했다는 이 1987년 화보가 ‘북한원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통일원전이라는 기록은 그냥 실수로 한 기록이 아닌 것입니다. 김양래가 상임이사로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5.18사이버추모공간’에는 광주에서 죽은 광주사람 154명의 이름과 얼굴사진들이 정리돼 있습니다. 우리는 김양래에게 “당신이 편집한 15구의 얼굴사진은 이 154명 중 누구누구에 해당하는지 확인했느냐”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역정을 내면서 공수부대가 한 짓이 확실한데 무엇 때문에 대조를 하느냐“ 했습니다.
이 15구의 시체 얼굴은 광주사람으로 판명되지 않은 사진이라는 뜻입니다. 공수부대의 작품이라는 것도 확인되지 않은 얼굴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얼굴들은 북한에서 날아온 얼굴인데, 이를 광주신부들이 받아 화보를 만들어 계엄군을 모략한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광주시민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들을 북한에서 받아 계엄군을 모략한 이 행위는 절대 용서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입니다. 특히 공수부대 출신들은 물론 모든 군츨신들은 군의 명예를 위해 광주신부들의 이 엄청난 반국가적 범죄행위를 집요하게 추궁해야 할 것입니다.
문: 도청 지하에 TNT로 폭탄조립한 사람 광주사람인가?
답: 모른다.
문: 5.18시위를 주도한 지휘자가 왜 없는 것인가?
답: 광주시민 모두가 나섰기 때문에 지휘자가 따로 없다
문: 톱으로 얼굴을 자르다 만 이 시체사진도 공수부대가 만들어 낸 것인가?
답: 톱이 아니라 총알에 의해 패인 자국이다
문: 5월 23일 촬영된 이 사진에 경찰관이 보인다. 당시 전남도청에 경찰이 이럴 수 있었나?
답: 당시 경찰은 시민들과 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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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기 이상한 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 있는데 이 상복이 당시 광주사람들의 상복이었나?
답: 당시는 상복과 관이 모자랐다
문: 여기 겨울 교복을 입은 학생이 보이는데 5월 23일 당시 학생이 겨울교복을 입고 도청에 올 수 있았나?
답: 당시 어린 학생들이 많이 죽었다
문: 이 사진은 계엄군을 모략한 유명한 사진인데 이 사진이 계엄군 사진인가?
답: 연극용으로 찍은 무대사진 같다.
문: 아래 복면한 사람들, 총을 거꾸로 멘 사람들, 지휘체계를 유지하고 도청을 점령한 후 일반시민을 도청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훈련된 전투프로들이 보이는데 이들이 다 광주사람들인가?
답: 전두환이 시위에 투입한 편의대다.(주: 남한특수군이라는 뜻, 옛날 중국에서 유래한 특수게릴라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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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타임라인에 “5,22.15:08 서울서 온 대학생 500명 환영식 거행”이라고 쓰였는데 서울에서 500명 학생이 왔는가?
답: 기록들이 틀려 다 바꿀 것이다.
문: 시체들은 대부분 옷을 입은 그대로 관에 넣었는가?
답: 그렇다
문: 합동장례식은 언제 했는가?
답: 5월 29일 했다
문: 5월 19일 처음 시체가 발생했는데 11일동안 그 시체들은 어떻게 관리했는가?
답: 모른다.
문: 아래 사진의 시체를 포장한 장소가 아닌가?
답: 시신을 확인하는 장소다.(주: 시신 확인에 왜 하얀비닐이 널려있는가?)
나주 거주의 박선재(당시 22세, 군 입대 전)
문: 아래 8번광수가 박선재라는 말인가?
답: 그렇다
문: 5월 22일, 총기를 들고 있는 이유는 무기를 반납하기 위해 들고 있었다는 말인가?
답: 그렇다.
문: 여기 이 동그라미 쳐진 사람도 증인인가?
답: 그렇다.
문: 위 2개의 사진을 보면 증인은 노리쇠를 검사하고 그 옆 사람은 방아쇠를 격발하여 검사하고 있다. 윗 사진에서 증인이 들고 있는 총은 M1이고, 밑에서 들고 있는 사진은 카빈총이다. 아닌가?
답: 모르겠다
문: 1982년 군에 입대했는가?
답: 그렇다
문: 총기검사를 밥 먹듯이 하는데 위의 장면들은 사용할 총기를 고르는 사진이다. 무기를 반납하기 위해 회수하려면 무기를 한 아름씩 안고가면 되는 것 아닌가?
문: 바로 앞에서는 탄약을 골라 탄창에 장입하고 장입된 탄창들이 큰 박수에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이 사진들의 장면은 전투를 준비하는 장면이지 총기를 반납하는 장면이 아니지 않는가?
답: 반납하는 장면이다.
문: 여기 또 다른 사진들이 있다. 사용가능한 총기를 렐레이식으로 서서 트럭을 탄 군병들에 전달해주는 장면들이다. 그래도 이 장면이무기를 반납-회수하는 장면인가?
답: 그렇다.
문: 기록을 보면 5월 25일 밤중에 김종배 박남선 등이 무기반납을 주장하는 온건파인 김창길을 총으로 위협하여 쫓아냈는데 5월 22일 무슨 수로 도청 안에 들어가 무기를 반납했다는 말인가?
답: 그건 모르겠고 여튼 나는 무기를 반납하고 있었다.
문: 피고인측은 8광수 얼굴이 북한 상장 김경상과 같은 얼굴이라는 걸 영상분석기법으로 증명했는데 당신은 무슨 근거로 당신얼굴이 제8광수 얼굴이라 주장하는가?
답: 눈으로만 척 보아도 단번에 나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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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재(22세) 제8광수 북한상장 최경성
강진에서 농사짓는다는 김규식, “내가 42광수다”
문: 이 두 개의 사진에서 제42광수와 동그라미 쳐진 사진이 증인이라는 갓인가?
답: 그렇다.
문: 언제 찍힌 사진인가?
답: 5월 19일, 도청 앞에서 시위를 구경하다가 찍힌 사진이다.
문: 강진에서 19일 광주에 왔다가 그날로 내려갔는가?
답: 그날 밤 9시 쯤 내려갔다.
문: 5월 19일이면 광주로 통하는 모든 길이 다 막혀 있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는 말인가?
답: 그렇다. 19일은 뚫려 있었다.
문: 증인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구경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총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다. 총기는 5월 21일 나왔고, 이 사진은 5월 22일경에 찍혔다. 5월 19일에는 이런 사진이 나올 수 없었다.
답: 이제 생각해보니 내가 다시 올라왔던 것 같다
문: 다시 올라왔으면 5월 20일 이후에 왔을 것 아닌가? 영화 택시드러이버를 보았는가? 5월 20일 광주시가 얼마나 봉쇄돼 있었는지?
답: 시위대 차량을 여러 번 바꿔 타고 왔다
<1> 김규식(53년생) <2> 42광수 <3> 42광수 리병삼(인민군상장)
문: <2>번사진과 <3>사진 모두가 증인인가?
답: 그렇다
문: 증인의 콧날은 날카롭고 <2> <3> <4> 얼굴은 콧날이 둔한데 왜 같은 얼굴인가?
답: 그 때는 이마도 뭉툭했다
문: <2> <3> <4> 얼굴의 좌측 입술 위에는 돌출된 살점이 있다. 그런데 지금 증인의 얼굴을 보니 그런 살점이 없다.
답: 무 응답
당시 17세의 중국집 배달했던 김선문
문: 증인이 아래사진에서 제165광수라는 것인가?
답: 그렇다.
문: 무엇을 하고 있었나?
답: 5월 22일, 도청 현관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문: 총 쏘는 방법은 알고 있었나?
답: 보초 서던 날은 몰랐고, 그 다음날 배웠다
문: 경비를 서는 대상은 계엄군인가?
답: 상황실 출입을 통제했다
문: 옆 사람은 40대로 보이는데 17세인 증인이 함께 1개 조로 경비를 섰다는 것인가? 옆 사람은 누구인가?
답: 모른다. 같이 서 있을 뿐이었다.
문: 누가 증인에게 상황실 경비를 서라 했나?
답: 상황실장 박남선이다.
문: 박남선이 살황실장이 된 것은 5월 26일 새벽이다. 5월 22일에는 박남선이 도청에 얼씬도 못했다.
답: 횡설수설
문: 상황실에는 누가 드나들었는가?
답: 유가족과 기동타격대 요원들이었다.
문: 5월 22일에는 기동타격대가 생기지 않았다. 기동타격대는 5월 26일 새벽에 생겼다.
답: 그건 모르겠다
<1> 김선문(17세) 제65광수 서대하(인민군 중장)
문: 제65광수와 서대하 사이에는 코, 산근(눈 사이의 코의 출발선), 눈 사이의 상대적 위치와 수치가 일치하는데 증인 역시 그러한 분석 방법으로 제65광수가 증인임을 설명할 수 있는가?
답: 눈으로만 보아도 척 보면 내가 65광수다
문: 증인은 사진만 보면 누구나 육안만으로도 증인이 제65광수라는 사실을 알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두 사진의 눈 하나만을 보더라도 두 눈이 비슷하다고 느낄 사람 없을 것 같은데, 증인은 눈이 닮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답: 그런건 전문가에 물어보라
문: 산근(코의 뿌리)의 형태를 보면 증인은 눈 부분에서부터 곧바로 능선이 튀어나와 있는 반면, 제65광수는 눈 부위에서 낮게 시작해 활처럼 휘어 올랐는데, 그래도 코와 산근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답: 전문가를 데리고 오라
문: 콧구멍의 형태를 보면 증인은 V자 형인데 반해 제65광수는 갈매기(거꾸로 놓은W) 형태로 서로 다르지 않는가?
답: (짜증을 내고 눈을 부라리며} 그런 거 자꾸 묻지 말라
문: 인중을 보면 증인은 짧고 제65광수는 길지 않는가?
답: 나중 사진은 살이 찐 사진이고 경비를 설 때는 삐쩍 말라서 그렇다
문: 얼굴형을 보면 증인은 동그란 편이고, 제65광수는 길고 뾰족한 형인데 동그란 얼굴과 길고 뾰족한 얼굴이 어째서 같다는 것인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답: 아,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겄소. 살이 찌고 안 찌고 차이 아니겄소?
문: 증인에게는 법령선(코에서 입가로 흐르는 계곡선)이 뚜렸한데 반해 65광수와 서대하에게는 범령선이 없는데 왜 그런가?
답: 내 얼굴이 확실한데 왜 자꾸 물어쌌는가?
망 백용수 신부 조카 백성남
광주에서 진행됐던 민사재판에서 거짓임이 들통 남
<1> 광주 백용수 신부 <1> 뱍용수 <2> 제176광수 <3> 북한 김진범(1945 적십자)
결 론
10월 12일 멀리에서부터 오신 모든 분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오셔서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노심초사 해주신 모든 애국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비록 오시지는 못하셨지만 재판에 애를 태워주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저는 이날의 재판에서 질문사항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3개월 정도 고치고 또 고치면서 증인들의 약점을 캐내려 노력했습니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5시간을 지켜보는 판사, 검사, 질서유지원들, 심지어는 광주에서 올라온 광주인들도 새로운 사진들을 보면서 5.18은 북한특수군이 저질렀고, 고소에 나선 사람들은 사기로 나섰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죽 다급하면 도청과 거리를 장악한 무장군병들의 모습을 보고 “전두환이 시위에 투입시킨 편의대”라 둘러댔겠습니까?
다음 재판(11월 30일 오후 2:30)에는 4명의 중인이 더 나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탈북자 장진성(본명 장철현)입니다. 혹시 열의가 있으신 분은 장진성의 탈북 동기를 분석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 점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2017.10.1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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