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이 내세운 소송자 5명의 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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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7-08-11 13:23 조회6,93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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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재단이 내세운 소송자 5명의 위계
1. 채권자 양기남(1961)에 대하여
양기남(1961‘) 제36광수 최룡해(1951)
1) 양기남의 프로필(고소장 및 진술조서 자료)
1961년 생으로 5.18당시 19세였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섀시공(삿슈공) 생활을 했다 합니다(사건기록 92쪽). 사건기록 제94쪽에는 죄명이 “내란실행”으로 기록돼 있고, 제93쪽에는 당시 군법회의가 발행한 범죄사실이 있습니다. “5.21. 오후 2시경에 조직된 기동타격대 1조 운전수로 활약했다”는 기록입니다. 5.18 당시 나이 19세였던 양기남이 ‘제36광수 최룡해’로 지명된 얼굴이 자기 얼굴이라고 주장합니다.
2) 노숙자담요의 분석
노숙자담요가 최룡해의 얼굴이라고 판독한 얼굴은 3개입니다. 민얼굴, 방독면을 쓴 얼굴 그리고 얼굴에 머리띠를 한 얼굴입니다(사건기록 제75-76쪽), 양기남은 이 세 개의 사진들 중에서 오로지 머리띠를 두르고 카빈총을 소지하고 있는 사진이 자기라고 주장합니다. 노숙자담요는 광주현장의 세 얼굴을 모두 제36광수와 비교분석했고, 심지어는 다리길이, 팔 길이, 키 까지 구체적 과학적 매너로 비교하면서 3인이 동일인임을 증명하였습니다. 반면 신청인들은 아무런 증명 없이 ‘육안으로만 보아도’ 본인임이 확실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3) 위계의 사실 발견
동영상 ‘광주비디오) https://youtu.be/4jFx40RwK_o 의 25분 근방에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제36광수의 얼굴이 나옵니다. 제36광수 주변에는 머리띠와 복면을 한 또 다른 4명의 긴장한 군병들이 집총을 하고 있습니다.
이 5명의 집총한 무리들은 5.21. 무기고를 털면서 곧바로 무기와 실탄을 나누어 갖는 무리들, 부지런히 총의 노리쇠를 후퇴-전진 시키고 방아쇠를 당겨 총기의 작동여부를 확인하는 무리들, 부지런히 트럭에 무장 군병들을 태우고 어디론가 출발하는 날랜 군병 무리들의 한 토막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북한 촬영사가 광주 현장에서 담은 이유는 북한군의 활동상황을 기록에 남기려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군병들의 모습들을 보고 광주의 철부지 20대라 할 사람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 19세의 양기남이 들어 있다는 것은 격과 분위기에 맞지 않습니다. 더구나 양기남 기동타격대 제1조 운전수였다고 군법회의 공식 문서에 기록돼 있습니다. 운전수가 이러한 작전군병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제36광수는 최소한 머리띠와 목도리로 비표시를 한 5명의 무장군병조의 일원인 것이며, 이들은 공격하러 나가는 군병들입니다, 19세 섀시공에도 어울릴 수 없고, 기동타격대 제1조 운전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4) 노숙자담요 영상분석의 순수성
노숙자 담요는 오로지 광주에 왔던 북한특수군의 얼굴을 찾아내기 위해 방독면을 쓴 얼굴까지 시신경을 파괴당해 가면서 3개의 얼굴을 찾아내 이 세 개의 얼굴이 동일인이고 그 얼굴은 당시 31세의 최룡해 얼굴이라고 판독하였습니다. 머리띠를 두른 얼굴만 꼬집어 최룡해라 하지 않은 것입니다. 범의가 없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건기록 제65 내지 83쪽에는 무려 19쪽에 걸쳐 이 세 얼굴과 대조하여 최룡해 얼굴을 과학적 매너로 비교분석한 결과가 실려 있고, 특히 많은 국민들은 그 세 얼굴 중에서도 양기남이 자기라고 주장한 ‘머리띠 두른 얼굴’이 최룡해의 얼굴과 일치한다며 감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양기남은 수사기록 제86-89쪽에 흐린 사진 몇 장 내놓고, 이 얼굴이 “그냥 육안으로만 보아도 바로 나”라 주장합니다. 이는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5) 법관의 육안이 판단의 잣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육안으로 보아도”의 육안이라면 누구의 육안을 말하는 것입니까. 얼굴분석의 기본은 얼굴의 구조, 이미지, 특징분석, 기하학적 분석입니다. 노숙자담요는 영상분석의 교과서에 따라 분석하였습니다. 채권자들의 주장이 인용되려면 최소한 (1) 얼굴의 구조, (2) 이미지 비교, (3)특징분석 (4) 기하학적 분석 결과를 놓고 왜 채권자들의 주장이 인용돼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근거를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1,100년 전 궁예의 관심법 세상도 아닌데, “법관의 육안으로 보니 채권자의 주장이 맞다”는 식의 판단이 어떻게 해서 가능한 것인지 채무자 측은 알지 못합니다.
2. 채권자 박남선에 대하여
박남선은 2017.7.3.자 준비서면에서 밝힌 바와 같이 6개 사항에 대해 허위주장을 하였습니다. (1) 박남선은 제71광수가 자기인데 채무자가 턱 부분을 황장엽 얼굴과 비슷하게 조작했다고 주장하였으나, 채무자측이 이 사진의 원본이 조선일보 사진DB 어느 위치에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허위로 결론났습니다 (2) 제71광수 얼굴에는 보통 사람들에서는 보기 힘든 매우 특이한 특징점이 있습니다. 채권자 박남선은 2017.7.7. 귀원 법정에서 이러한 특징이 자기의 얼굴에는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였습니다. 71광수가 박남선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3) 박남선은 하루에 3-4시간만 잠을 잤고, 잘 때에도 워커를 신고 잤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러나 제71광수가 신은 신발은 워커가 아니라 사제 단화였습니다. (4) 박남선은 한 손에는 M16유탄발사기, 다른 한손에는 소형 워키토키를 들고 현장을 지휘했습니다. 하지만 박남선에게 유탄발사체를 보여주고 조립된 총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무엇이고, 어느 것이 조준용 가늠쇠이고 방아쇠냐를 질문한 결과 자기는 총을 사용할 줄 모르고 그냥 들고만 다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총이 어디서 났느냐 물으니 계엄군과 전투해서 노획한 것이라고 답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계엄군은 당시 M16유탄발사기를 보유하지 않았습니다. (5) 무전기를 어디서 구했느냐 질문한 결과 박남선은 총기들과 함께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답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군용 무전기가 아니었고, 무기고 저장품목도 아니었습니다. (6) 박남선은 1980.5.26.밤중에 비로소 구성된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의 상황실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2017.7.7. 변론조서에서는 광주사태 기간 내내 시민군 총지휘관이었다고 허위 진술하였습니다.
3. 채권자 박선재(22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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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재(당시 22세) 제8광수 최경성
채권자 박선재는 신문조서에서 5.18 당시 “군 입대 전이었다”(226쪽 중간)고 했습니다. 제8광수(최경성)으로 지정된 현장사진은 “5.22. 촬영된 사진인데, 채권자 박선재는 무기회수 책임자로 회수된 총기를 점검하고 있었다“(224쪽 중간)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허위주장입니다.
1) 현장 사진은 무기를 회수하는 사진이 아니라 무기고에서 탈취한 수천의 총기들 중에서 사용가능한 총기를 골라 옆 사람에게 릴레이로 전달하는 ‘시스템이 있는 장면’의 사진입니다. 제8광수는 가장 중요한 노리쇠를 열어 약실상태와 자동연발 기능을 체크한 후 제7광수에 넘겨줍니다. 제7광수는 방아쇠 격발상태를 점검합니다. 그다음 제324광수로 넘겨주고, 324광수는 제26광수에 넘겨주는 사진입니다. 이는 총기를 반납하는 모습이 아니라 사용가능한 총기를 골라내서 광수집단에 나누어주기 위한 전초 작업입니다. 제8광수가 수행하는 일은 총기를 가장 잘 다루는 선임자의 역할입니다. 이런 일을 군대도 가지 않은 22세의 청년이 수행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무기를 회수하는 일은 싸우지 말자는 뜻이고, 무기를 고르는 일은 싸움을 준비하는 행동입니다.
2) 여기 또 하나의 유사한 현장사진이 사진이 있습니다.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437&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310&sop=and
이 사진은 윗 사진과 쌍을 이루는 세트 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탄약을 반납하려는 사진이 아니라 탄약을 탄창에 장입하여 차곡차곡 확보하는 과정의 사진입니다. 급한 상황에서 탄창 속에 이물질이 끼면 탄창의 용수철이 실탄을 약실로 이동시키지 못합니다. 따라서 마구 흐트러진 탄약은 기름천으로 잘 닦아서 차곡차곡 보관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군대를 입대하기 전인 어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사진은 실탄을 사격준비상태로 만들기 위해 탄창에 넣어서 많은 탄창을 박스에 차곡차곡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탄약을 반납하려는 행동이 아니라 싸움을 준비하는 행동입니다. 이상의 상황설명만으로도 박선재의 위계성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3) 제8광수의 얼굴특징은 매우 특이한 입버텅입니다. 입, 코, 눈, 얼굴형, 이미지가 최경성과 영락없이 일치합니다. 아마 100사람이면 99명 정도는 이에 동의할 것입니다. 너무 닮아 제8광수는 네티즌들과 오프라인 사람들이 대표광주들 중 한 사람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아무런 특징도 비교도 기하학적 분석도 내놓지 않고 “육안으로만 보아도 박선재가 바로 제8광수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증명이 없는 주장인 것입니다.
4. 채권자 김공휴에 대하여
김공휴(1963) 제323광수 주규창(1928)
김공휴는 당시 18세 소년으로 나전칠기 공원으로 일하다가 의협심이 발동하여 시위에 참여했고, 문제의 사진은 전일빌딩 앞(사건기록195쪽)에서 1980.5.20. 군부의 폭력사태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참여해달라고 시내를 활보(사건기록196쪽) 하는 순간, 본인도 모르게 촬영당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시민들에게 알리려고 지프차를 타고 다녔다면 그가 타고 있는 지프차에는 확성기가 달려있거나 전단지를 날리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의 현장시진은 그런 일을 하고 다니는 차가 아닙니다. 더구나 5월 20일에는 지프차가 탈취되기 이전이었습니다. 지프차는 5월 21일 오전 8시경에 탈취당했고, 제323광수가 타고 있던 지프차 본네트 위에는 방탄용 모래 마대가 잔득 쌓여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5월 22일 이후에나 가능한 모습입니다. 또한 5월 20일에는 계엄군과 시위대 사이의 충돌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을 때입니다. 함평경찰관 4명이 지그재그로 돌진하는 버스에 치여 즉사했고, MBC, KBS, 세무서, 우체국이 불탔고, 화염병 공격이 절정을 이루었고 휘발유드럼통에 불을 질러 계엄군으로 굴렸습니다. 소방차와 버스 트럭 등으로 계엄군을 향해 돌진시키고 택시운전수들이 경적을 울리며 계엄군을 향해 돌진하고, 광주신역에 제3공수 여단 5개 대대가 수만 시민들에 포위돼 몰살지경에 당하다 실탄보급으로 인해 간신히 전남대학으로 탈출했던 그야말로 살벌했던 날이었습니다. 이 현장사진이 촬영된 분위기는 이에 비하면 목가적으로 보입니다. 이미 폭동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는데 “계엄군이 시민을 죽이고 있으니 시민들은 참여하라” 외치고 다닐 군번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노숙자담요는 5.18부상자회 부회장이라는 그의 영상을 이미 확보하여 비교분석을 하였고, 채무자측은 이를 을제4호증으로 귀원에 제출하였습니다. 김공휴는 제323광수와 같은 얼굴일 수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런 과학적 분석과는 달리 채권자 김공휴는 “육안‘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위계에 해당할 것입니다.
5, 채권자 박동연에 대하여
채권자는 16세 아들 박기현 관을 잡고 우는 사람이 망 박동연이고, 이는 5월 22일 상무관에서 촬영된 사진이라 합니다. 망 박동연의 당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이미지 자체가 제51광수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눈매가 다르고 눈 아랫부분의 주름살이 제151광수와 다릅니다. 가르마가 다르고 볼살의 구조가 매우 다릅니다. 눈썹의 짙고 옅음이 다르고 하관이 각도가 다르고 턱선의 발달 정도가 다릅니다. 특히 박동연의 얼굴은 역3각형입니다. 이 역시 위계에 해당할 것입니다.
결 론
1. 결정문 판단은 ‘증명이 없는 판단’에 해당하고,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한 대법원판례를 무시하기 위해 귀원이 인용한 2개의 대법원판례는 법리오해에 해당할 것입니다.
2. 2017.7.3.자 준비서면에는 5.18에 북한특수군 600명이 와서 저지른 사건이라는 것을 수사기록 등 정부문서에 근거하여 증명하였습니다. 그런데 귀원은 이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채무지는 근거 없는 사진분석에 기초하여 5.18에 북한군이 왔다고 주장한다”는 사실과는 너무 많이 어긋난 판단을 하였습니다. 본 이의신청에는 정부문서들에 추가하여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또 다른 9개 사실을 추가로 제출하였습니다.
3. 개인 채권자들의 주장은 각기 현장사진의 정황과 전혀 일치하지 않고, 얼굴비교에 대한 증명이 없고, 이미지, 특징, 얼굴 구조 몇 개만 뜯어보아도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분석 없는 주장은 ‘증명이 없는 주장’인 것입니다. 2015.10. 내지 2016.3.에 걸쳐 5.18단체들과 광주시가 연합하여 6개월 동안 광주 일대에서 사진전을 열었지만 아무도 나타난 사람 없었습니다. 이에 5.18기념재단이 각 지역에 거주하는 채권자들을 찾아가 무작정 소송에 참여시킨 것으로 이해됩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다 위계에 의한 소송 당사자가 된 것입니다.
2017. 8.1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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