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법관들이 벌이는 무법천지를 국민 모두에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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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7-08-12 20:40 조회8,5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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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법관들이 벌이는 무법천지를 국민 모두에 고발합니다
고발제목 : 광주법원의 5.18관련사건 재판금지
5.18관련 재판을 광주지방법원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증명된 것도 무시하고. 법규를 마음대로 해석하고, 새로운 법도 만들어내면서 “증명이 없는 판결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재판이 아닌 무법천지의 난장판을 벌이고 있으니 시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1) 민사소송법 제2조 (보통재판적) 소는 피고의 보통재판적이 있는 곳의 법원이 관할한다.
2) 민사소송법 제18조 (불법행위지의 특별재판적) (1) 불법행위에 관한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행위지의 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
3) 형사소송법 제15조(관할이전의 신청) “검사는 다음 경우에는 직근 상급법원에 관할이전을 신청하여야 한다. 피고인도 이 신청을 할 수 있다. (1) 관할법원이 법률상의 이유 또는 특별한 사정으로 재판권을 행할 수 없는 때 (2) 범죄의 성질, 지방의 민심, 소송의 상황 기타 사정으로 재판의 공평을 유지하기 어려운 염려가 있는 때”
1. 전두환측과 지만원측이 신청한 사건에 대한 이송신청, 광주지방법원이 각하
1) 광주단체들과 10여명의 광주-전남지역 주민들이 전두환 회고록과 지만원의 “5.18영상고발” 화보에 대하여 발행-배포중지 가처분신청과 손해배상 소송을 광주지방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2) 다른 사건도 아닌 5.18관련사건을 광주지방법원이 관할하는 것은, 민사사건의 관할권 규정에 대한 위반이고, 형소송법 제15조의 법정신에 비추어 정당하지 않습니다. 이에 전두환측과 지만원측은 광주지방법원에, “광주지역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역정사가 강하게 작용하는 곳으로 지역적 연고가 적은 법원에서 관할하는 것이 정당하다”며 관할이송을 신청하였습니다. 하지만 광주법원은 (1) 민사본안소송이 광주지방법원에 이미 제출되었고, (2) 지역정서는 이송사유가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각하하였습니다(증1, 전두환결정문 4-5쪽).
3) 그러나 실제로 광주법원 법관들은 (1)지역정서가 매우 강할 뿐만 아니라 (2) 5.18단체들이 상습적으로 행사하는 폭력과 협박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어 양심에 따른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2. 광주 검사-법관-경찰요원들이 체포 및 재판 과정에서 드러낸 공포의 지역감정
지만원은 2002.8.12. 동아일보 의견광고에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었다”는 표현을 하여 안양 주거지에서 광주검찰에 체포되어 수갑을 뒤로 채인 채, 6시간 동안 광주로 압송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들 벌되는 광주 검찰과 경찰(김용철, 이일남, 박찬수, 이규행)로부터 온갖 언어폭력과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구타를 당했습니다. 매우 무서운 지역정서의 발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최성필 검사실에 도착하니 검사는 저를 때릴 듯이 노려보며 고함을 쳤고, 이웃 여성 검사는 “이 자가 박사랑가~” 비아냥거렸고, 뒤로 채인 수갑을 2시간 동안 더 풀어주지 않으면서 조사를 받게 했고, 조사관은 마구 딱딱거렸습니다.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광주 부장판사 정경현(45세)은 아버지 벌되는 이근우(66세) 광주변호인을 향해 왜 서울사람 변호를 맡았느냐며 탁자를 치며 소리를 쳤습니다. 이것을 놓고 어떻게 광주법원에 지역정서가 없다고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후 저는 곧바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101일 동안 감옥생활을 한 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나왔습니다(증2, 광주법원 판결서).
그러나 지만원은 출소하자마자 5.18관련 재판 수사-재판 기록 18만 쪽을 모두 입수하여 분석한 후 4권(1,720쪽)짜리 역사책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을 펴내면서 그 머리말에 위 표현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표현을 넣어 인터넷에 게시하였습니다. 2008. 1. 24. 이었습니다.
“필자는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하며,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되어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 불순분자들이 시민들을 총으로 쏘는 것은 물론 제주 4.3사건에서처럼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러놓고, 이를 군인들에게 뒤집어씌우는 소위 모략전을 반복적으로 구사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으로 굳혀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는 내전’이 바로 5.18.이라고 생각한다.”, “고위 탈북자 김명도의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에서부터 수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유언비어는 북한 대남사업부 전문가들이 내려와 만들어 뿌린 것으로 추측된다...일반 시민이나 학생들이라면 이런 기상천외한 유언비어를 만들지 못했다고 본다.”
광주법원에 대한 여론이 나빠 있었던 터여서인지 다행이도 이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에 이송되었습니다. 안양검사는 피의자인 저를 구속하지도 않았고, 수갑을 채우지도 않았습니다. 불구속 기소를 한 것입니다.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과 서울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 모두가 다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증3, 판결문 참조). 이 역시 광주검찰과 광주법원에 지역정서가 매우 강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는 사례일 것입니다. 또한 아래에서 석명하겠지만 이번 전두환 및 지만원을 피신청인으로 한 가처분사건 결정문을 보면 이 결정문은 증명된 사실들까지 무시하면서 막무가내식 판단들을 감정적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안에 광주법원이 있다는 것이 공포입니다.
3. 5.18단체의 폭력과 협박을 이겨낼 광주법관 없을 것
1) 5.18유공자심사위원 전원을 총사퇴시킨 5.18관련자들의 폭력성
2016.10.28. 중앙일보는 광주사람들이 5.18유공자가 되기 위해 5.18유공자 자격을 부여하는 심사위원회 및 심사위원 개인을 상대로 인신공격 등 집요하게 행패를 부려 심사위원 10명 전원이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며 총사퇴를 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심사 때마다 몰려와 농성. . 과도한 재심청구” “법령.양심 따라 심사할 수 있어야”(증4). 5.18 유공자를 심사하는 심사위원 10명 전원을 총사퇴시킬 정도의 폭력이 5.18관련자들의 폭력입니다. 더구나 5.18단체들은 광주-전남 일대에서 ‘5.18조폭’으로 불리는 무서운 폭력집단입니다. 2002.8. 5.18부상자회 회장 김후식은 검은 유니폼과 군화로 복장한 12명의 어깨들을 데리고 서울 충무로 소재의 지만원 사무실에 와 집기를 부수고 5층 건물에서 사무를 보는 수백 명에게 공포감을 주었고, 이내 안양 지만원 주거지로 몰려와 승용차와 철문을 마구 파괴하고 수백 명의 아파트 주민들에게 무력시위를 보였습니다. 서울 중부경찰서와 안양경찰서 경찰관은 말리는 척만 하였습니다. 이런 폭력 앞에 광주 법관들이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과 같은 말일 것입니다.
2) 5.18단체가 서울 소재의 2개 방송사에 폭력행사
2013년 1-5월, 종편방송국 채널A와 TV조선이 5.18의 진실을 규명하는 방송을 경쟁적으로 전개하자, 5.18단체들이 상경하여 2013.6.10. 집단폭행을 감행했습니다. 방송사를 지키는 경찰들에 밀가루를 뿌리고, 건물 유리에 계란과 토마토를 뿌리고 철제 기물과 발로 유리창을 타격했습니다. 5.18의 명예를 훼손하는 방송사들을 즉시 처벌하고, 전두환의 재산을 몰수하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도 이들의 주장은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채널A와 TV조선 담당 간부 8명이 감봉이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대국민 사과를 하였습니다. 전두환의 추징금 압수가 가속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서울에서도 5.18단체들의 파워가 이 정도인데 하물며 광주법관들이야 어떠하겠습니까.
광주 MBC 촬영 뉴스
(3) 5.18단체 서울중앙지법 법정에까지 와서 집단폭행
2016.5.19.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제525법정에서는 5.18단체들과 5.18유공자들이 고소한 형사사건 첫 공판이 열렸습니다. 광주에서는 버스가 대절돼 오고 다른 지역 5.18관련자 40여명이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김양래의 인솔 하에 공판정을 차지하고 있다가 심리가 끝나고 퇴정하는 지만원을 향해 갑자기 집단폭행을 20여분 동안 가했습니다. 서초 경찰서 강력계는 12명의 폭행혐의자를 찾아내 광주지검에 송치하였습니다.
4) 대형교회인 ‘서울교회'도 5.18단체에 무릎 꿇어
2008년, 대치동 대형 교회인 ‘서울교회’ 담임목사(이종윤)님이 5.18과 4.3에 대한 견해를 설교했다는 이유로 광주의 5.18단체들이 한 때 주일마다 올라와 술을 먹고 행패를 부려 결국 교회장로들이 5.18묘소를 예방하고 사과함으로써 종결되었습니다(증5). 교회까지 5.18단체들의 폭력 앞에 무릎을 꿇는 판인데 하물며 광주 법관들이야 어떠하겠습니까?
4. 난장판 판결내용들
1)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마구잡이 판단 사례
(1) 기총소사:
1994
(1) 기총소사: 1994-95 14개월 동안 -군 검찰이 합동 조사한 내용을 2016년 한 국과수 요원의 애마하고 과학성이 결여된 ‘의견’으로 뒤덮는 판단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1995.7.18.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 검찰부가 공동으로 14개월 동안 조사하고 정리하여 발표한 “5.18관련사건 수사결과”(증6)가 있습니다. 제197쪽부터 216쪽에 이르는 20쪽에 걸쳐 검찰은 광주가 끈질기게 주장했던 핵심 쟁점 7가지에 대해 특별히 수사하여 그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그 제4번째가 “헬기 기총 소사 여부”이며 “모든 것을 조사해보니 헬기기총 소사는 없었다”고 207~210쪽에 걸쳐 상세히 기록해놓았습니다. 그런데 광주법원은 이를 모두 부정하고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밥관이 곧 법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검찰이 새롭게 조사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36년이 지난 시점에서 내놓은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소) 요원이 어설프게 작성한 “헬리콥터가 호버링 상태에서 발사되었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추정됨”이라는 감정서 한 장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탄흔은 전일빌딩 10층 사무실의 벽과 천장 바닥에 골고루 나 있습니다. 탄환이 곡예비행을 하지 않는 한, 창에서 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헬기가 총을 쏘아 만들어 낼 수 없는 탄흔이라는 것 정도는 과학적 개념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다 공감을 할 것입니다. 또한 전일빌딩 10층에 나 있는 150여개의 탄흔 중 상당수가 결정문이 인용한 그대로 5.56미리 M16소총의 탄흔입니다, 헬기는 M16을 발사하지 않습니다. 헬기는 500MD의 경우 한번 방아쇠를 당기면 20미리 벌컨포 실탄이 수천 발 날아갑니다. 더구나 당시 상황일지(“수사기록으로 쓴 12.12와 5.18”에 요약)를 보면, 5월 27일, 전일빌딩에서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45명의 시위대와 30명 규모의 계엄군 특공조 사이에 100분에 걸친 치열한 교전이 있었습니다. 충분히 조사해보지도 않고 광주판사는 36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 국과수요원이 낸 비과학적 소견서 달랑 한 장 가지고 1994-95년 민군합동 검찰조사결과를 뒤집었습니다. 광주판사의 이 판단은 ‘증명이 없는 판단’입니다. 판사의 권한을 남용한 것입니다. 전두환은 이런 검찰자료에 터 잡아 회고록을 썼는데 그것을 강압적으로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일인지 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2)현행법 무시하고 법전에도 없는 “별개 유형의 불법행위죄”를 새로 만들어 재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규명해 주십시오.
사자에 대한 모욕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전두환 회고록에는 “ 목사가 아니라 가면을 쓴 사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일 뿐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표현을 놓고 광주판사는 모욕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현행법에는 사자에 대한 모욕죄가 없습니다. 이에 광주판사는 오로지 5.18단체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들었습니다. “명예훼손과는 별개 유형의 불법행위”라는 것입니다(증1, 12쪽 6줄). ‘명예훼손죄’도 아니고 ‘모욕죄’도 아닌 새로운 유형의 범죄라 합니다. 광주판사가 새로운 유형의 범죄를 창조한 것입니다. 이런 막무가내의 판단은 광주가 아닌 다른 법원에서라면 아마도 생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조비오의 직계를 훨씬 넘어 그 조카에 대한 범죄행위라는 것입니다.
(3) 독재사회의 검열(censorship)이 합법화되어야 하는 것인지 규명해 주십시오.
광주법원이 ‘불법적 표현’으로 지정된 33개 표현(증1, 19~28쪽)이 과연 국가가 “금지의 글”로 지정할 수 있는 것인지 검토해 주십시오. 모두가 양심적 표현이고 수사기록에 근거하여 쓴 의견이고 역사관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광주시민들과 5.18에 대한 비판을 해서는 안 되고, 광주의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해서도 안 된다는 국가명령이 어떻게 해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규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지역의 법관들이라면 이런 판단 못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 뉴스타운 호외지 발행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에 나타난 난장판 판결들
지만원은 2014.10. “5.18분석 최종보고서”를 냈고, 거기에는 5.18은 북한군 600명이 와서 주도한 국가전복 목적의 폭동이었다는 확실한 결론이 표지에까지 표현돼 있습니다. 그 후 6개월 후인 2015.5.5부터 이른바 ‘광수’ 열굴들이 분석돼 나왔습니다. 광주 현장 속 얼굴들이 북한의 핵심계급의 거물들이라는 분석 내용들이 네티즌들로부터 엄청난 박수를 받았습니다. 인터넷 신문 뉴스타운이 이 내용들을 4쪽짜리 호외지에 담아 호외1호, 2호, 3호를 발간하였고,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사회 일각에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이에 5.18단체들이 직접 소송에 나섰고, 4명의 주민들을 내세워 “제 62번 광수가 바로 나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게 했습니다. 형사사건은 다행이 서울법원으로 이송돼 왔지만, 가처분사건과 손해배상 사건은 굳이 광주법원이 해야 한다며 이송요청을 거부하였습니다.
(1) ‘위계에 의한 소송자’로 증명된 사람들에 무조건 승리 안겨줘
5.18 4개 단체들과 박남선 심복례등은 2015.9.23.에 가처분신청을 광주법원 제21민사부(이창한 부장판사)에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광주재판부는 피신청인인 지만원과 뉴스타운대표에게 통지조차 없이 신청접수 3일 만인 9.25.에 인용결정을 냈습니다. 지만원과 뉴스타운은 도둑재판을 했다며 법관기피신청을 냈고, 이의신청을 했습니다. 그 후 판사는 김동규 부장판사로 바뀌었지만 결과는 여전했습니다. 사건은 광주고등법원에 가 있습니다. 2016.9.7. 결심공판을 연 후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결정 선고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2개월이 다 되도록 결정문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난장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본안사건인 손해배상 청구소에서 제1심은 원고 1부 승으로 피청구인들에 8,200만원을 선고하였습니다(증12). 신청인들의 신청사실들을 모두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인용판결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판결입니다. 한마디로 피신청인에 의한 증명은 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피신청인들이 증명한 사실들 중 아래에 몇 개만 제시하고자 합니다.
가. 박남선의 경우: “내가 제71광수-황장엽이다” 위계의 주장
박남선은 민-형사 소송에서 자기가 제71광수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나 이는 사기였습니다. 2017.7.3.자 준비서면(증7)에서 밝힌 바와 같이 박남선은 6개 사항에 대해 허위주장을 하였습니다. (1) 박남선은 제71광수가 자기인데 채무자가 턱 부분을 황장엽 얼굴과 비슷하게 조작했다고 주장하였으나, 채무자측이 이 사진의 원본이 조선일보 사진DB 어느 위치에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허위로 결론났습니다 (2) 제71광수 얼굴에는 보통 사람들에서는 보기 힘든 매우 특이한 특징점(입, S자형 근육, 사마귀점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남선은 2017.7.7. 광주법정에서 이러한 특징이 자기의 얼굴에는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였습니다. 71광수가 박남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3) 박남선은 하루에 3-4시간만 잠을 잤고, 잘 때에도 워커를 신고 잤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러나 제71광수가 신은 신발은 워커가 아니라 사제 단화였습니다. (4) 제71광수는 한 손에는 M16유탄발사기, 다른 한손에는 소형 워키토키를 들고 현장을 지휘했습니다. 하지만 박남선에게 유탄발사체를 보여주고 조립된 총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무엇이고, 어느 것이 조준용 가늠쇠이고 방아쇠냐를 질문한 결과 자기는 총을 사용할 줄 모르고 그냥 들고만 다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총이 어디서 났느냐 물으니 계엄군과 전투해서 노획한 것이라고 답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계엄군은 당시 M16유탄발사기를 보유하지 않았습니다. (5) 무전기를 어디서 구했느냐 질문한 결과 박남선은 총기들과 함께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답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군용 무전기가 아니었고, 무기고 저장품목도 아니었습니다. (6) 박남선은 1980.5.26.밤중에 비로소 구성된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의 상황실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2017.7.7. 변론조서에서는 광주사태 기간 내내 시민군 총지휘관이었다고 허위 진술하였습니다. 이렇게 법정에서 위증을 했고, 주장 모두가 사실이 아니라 위계였음이 명백하게 증명되었는데도 “판사가 볼 때는 박남선의 주장이 맞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실어증이 걸릴 정도의 만행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나. 심복례의 경우: 9월에는 ‘내가 제62광수다’ 10월에는 ‘아니다 나는 제139 광수다’ 위계의 주장. 관 앞에 울고 있는 제139광수 사진은 5.23.에 촬영, 하지만 이전의 증언기록들을 보니 심복례가 해남에서 남편 시신을 보기 위해 광주에 도착한 말은 5.30. 이런 사기 주장을 광주판사들이 100% 맞다고 인용. 법관이 아니라 ‘네로’
가운데 여인이 심복례 제62광수 심복례 제139광수(홍일천)
심복례는 매우 희극적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심복례는 2015.9.23. 가처분신청서에 자기가 제62광수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광주판사 이창한은 2015.9.25.에 이 주장을 인용해 주었습니다(증13). 그 후 심복례는 이 인용내용을 부인하였습니다, 자기는 제62광수가 아니라 제139광수(김정일 첫부인)이라고 주장을 변경하였습니다. 1심 이의신청 사건을 맡은 김동규 부장판사는 “심복례는 제139광수가 맞다”고 변경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주었습니다(증14). 그런데 제139광수 사진은 1980.5.23.에 촬영되었습니다. 5.18은 5.27. 진압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자 증거들(증8,9)을 보니 심복례가 광주에 도착한 날은 5.30.이었습니다. 알리바이 자체가 틀리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판사들이 대한민국 그 어느 법원에 또 있을 것인지, 살이 떨립니다.
이런 허무맹랑한 거짓 주장들을 모두 증명했는데도 광주판사들은 광주사람 전남사람이 아닌 타지역인들이 증명한 것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광주사람들은 1995년의 검찰기록을 부정합니다. 재판기록도 부정합니다. 광주 사망자가 166명이라고 검찰이 확인해 주었는데도 5.18단체들은 북한이 ‘광주비디오’에서 주장하는 그대로 사망자가 2,000여명이라고 주장합니다. 광주 법관들이 재판을 하는 과정 역시 이와 같습니다. 광주사람들이 주장하면 거짓도 참말로 판단하고 타지역사람들이 주장하면 증명이 있어도 무시하는 것입니다.
3) ‘5.18영상고발’ 발행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에 나타난 난장판 판결들
(1) “형사사건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 대법원 판례는 민사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광주법원만의 새로운 법리(증11, 6~7쪽)
광주판사는 결정문 제6쪽에서 ‘법인이 명예훼손을 당한 경우에는 손해배상 및 처분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일반적 내용을 담은 대법원 판례 ‘선고 96다17851 판결’을 들어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 판례가 이 사건에는 적용될 수 없다 판단하였고, ‘설사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였는지 여부는 별개의 관점에서 검토하여야 한다’는 특수 내용을 담은 대법원 판례 ‘선고 2006다6713 판결’을 인용하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네로식의 판단입니다,
하지만 이 2개의 판례를 가지고는 ‘대법원 2003. 9. 2. 선고 2002다63558 판결’을 뒤집을 수가 없습니다. ‘선고 96다17851 판결’의 [판시]는 민법 제764조에 규정된 '명예'의 의미 및 민법 제764조 의 규정이 종중 등 법인 아닌 사단에도 적용되는지 여부(적극)에 대한 것으로 그 판결요지는 이러합니다. [1] 민법 제764조 에서 말하는 명예라 함은 사람의 품성, 덕행, 명예, 신용 등 세상으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말하는 것이고 특히 법인의 경우에는 그 사회적 명예, 신용을 가리키는 데 다름없는 것으로 명예를 훼손한다는 것은 그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것을 말하고 이와 같은 법인의 명예가 훼손된 경우에 그 법인은 상대방에 대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 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청구할 수 있고, 종중과 같이 소송상 당사자능력이 있는 비법인사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선고 06다6713 판결’은 동료형사가 덩치 큰 어깨에 공격당하는 것을 본 다른 형사가 공포를 쏘았는데도 소용이 없자 실탄을 발사하였는데 그 총탄이 우측흉부에 맞아 사망한 경우를 재판한 매우 특이한 경우를 판단한 것입니다. 판결에 대한 논란들이 분분했던 사건입니다. 형사사건에서는 경찰공무원에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민사사건에서는 경찰관이 다리 등 비치명적인 부위를 쏘았어도 상황이 진정될 수 있었는데 흉부를 쏘았다며 경찰관 과실을 40%로 인정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전자의 판례는 법인단체와 비법인 단체가 명예훼손을 당한 경우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 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당위성 판례인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경찰관이 직무수행상 총을 쏘았다 해도 생명에 치명적인 부위를 쏘아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한 판시입니다. 이런 성격의 판례를 여기에 적용시키는 것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법조인 드물 것입니다.
전자의 판례나 후자의 판례는 모두 피해를 당하는 단체 및 개인이 일개 객체로 특정되어 있는 경우에 대한 판례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명예훼손의 대상이 하나의 집단이나 하나의 인격체로 분리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지만원은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연구한 바를 발표한 것이지 5.18단체나 개인을 지명한 바 없습니다. 이처럼 명예훼손을 당하는 대상(5.18역사)이 그 규모가 원체 커서 피해를 보았다고 볼 객체가 특정될 수 없다는 것이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 판례의 핵심인 것입니다. 지만원은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했고, 광주현장의 얼굴들이 북한의 고위층 인물이라고 했지, 5.18단체나 광주-전남지역 개개인을 거명한 바 없습니다. 개인 또는 단체들은 5.18역사와 동일시 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5.18관련하여 개인 또는 단체를 특정하지 않은 사건에 대하여 피해대상이 특정된 판례를 적용시킨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대법원 2003. 9. 2. 선고 2002다63558 판결’에는 아래와 같은 판시가 있습니다.
[판시사항1]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적 사실적시가 집단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명예훼손으로 인정되기 위한 기준: 이른바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그러한 방송 등이 그 집단에 속한 특정인에 대한 것이라고는 해석되기 힘들고 집단표시에 의한 비난이 개별구성원에 이르러서는 비난의 정도가 희석되어 구성원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 이르지 않으므로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봄이 원칙이지만, 다만 예외적으로 구성원 개개인에 대하여 방송하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구성원 수가 적거나 방송 등 당시의 주위 정황 등으로 보아 집단 내 개별구성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때에는 집단 내 개별구성원이 피해자로서 특정된다고 보아야 하고, 그 구체적 기준으로는 집단의 크기, 집단의 성격과 집단 내에서의 피해자의 지위 등을 들 수 있다.
(2) “판사가 직접 판단해 보니 노숙자담요의 광수분석은 전혀 신빙성이 없다”는 궁예식 판단(증11, 13쪽)
“노숙자담요가 작업한 작업방식, 작업시간, 구성원 등에 대한 주장을 입증할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과, 5․18민주화운동 당시 촬영된 사진과 이 사건 화보집에 수록된 북한군 소속 인물들 사진의 촬영 시점, 촬영 장소, 사진 속 인물들의 시선, 얼굴의 형상과 인물들의 자세, 착용한 의복, 두발형태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채무자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이 사건 화보집에 수록된 5․18민주화운동 현장 사진 속 인물들과 북한군 고위관료들이 동일인이라는 채무자의 주장을 신빙할 수 없다” (증11, 13쪽)
가. 이 판결내용에는 첫째 사실오인이 있고, 둘째 영상과학 전문가의 전문분석 결과를 아무런 입증증거 없이 법관이 순발적인 생각과 편견으로 무시한 반헌법적 반민주적 처사가 들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법관이 왕이다. 어쩔래” 이런 식의 매너입니다.
나. 피신청인 측에서 제출한 준비서면을 읽지도 않고 무조건 무시하였습니다. 결정문의 기초사실 1-나(증11, 제4쪽)에는 “신청 외 노숙자담요는 이 사건 홈페이지에 2015. 6. 13.부터 2016. 5. 17.까지 4차례에 걸쳐 별지2 기재와 같이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글(이하 ‘이 사건 게시글’이라 한다)을 작성하였다.”는 기재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 네 개의 게시물에는 “노숙자담요가 작업한 작업방식, 작업시간”등에 대한 입증이 완벽하게 증명돼 있습니다. 노숙자 담요는 기초사실 기재내용과 같이 최소한 “2015. 6. 13.부터 2016. 5. 17.까지” 11개월 동안에 걸쳐 그의 작업방식을 그 네 개의 게시물을 통해 충분히 입증하였습니다. 얼굴 특징들을 분석했고, 기하학적 분석을 하였습니다. 이는 영상분석의 교과서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분석 기간도 기초사실 내용과 같이 최소한 2015. 6. 13.부터 2016. 5. 17.까지 11개월 이상입니다. 노숙자담요가 게시한 4개의 글은 아래와 같고, 광주법관은 이 4개의 글을 삭제하라 명령했습니다.
(1) ‘계엄군에 체포된 최룡해 제36광수 비교분석’(2015.6.13.)
(2) ‘제323광수 국방위원 12명 전원 5.18참전(2016.2.10.)
(3) ’5.18광수 북한침략군 집단광수 입증증거‘(2016.3.2.)
(4) 황장엽과 박남선의 입모양과 입술 인중의 비교(2016.5.17.)
위 4개의 게시물을 보면 작업방식이 확실하게 제시돼 있습니다. 또한 노숙자담요의 영상분석 방법은 도서목록1(5.18화보)의 제179-103쪽에 매우 자상하게 증거 돼 있습니다. “광수영상자료의 중요성”(화보 제179쪽), “여기에 사용된 영상분석 기법과 능력”(화보 제180쪽), “황장엽을 대상으로 한 영상분석 사용 사례”(화보 제184-188), “장진성의 얼굴을 모델로 한 영상분석 사례”(화보 제189-193).
이상과 같이 광주법관이 삭제하라고 명령한 4개의 게시물은, 그것을 본 대부분의 국민들이 찬사와 감탄을 아낌없이 보냈던 글들입니다. 분석방법에 감탄한 것입니다, 이에 더해 지만원 측은 소을4호증에서 김공휴의 얼굴과 제323광수(주규창)의 얼굴을 과학적 매너로 정밀하게 분석하여 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이 이상 어떻게 영상분석 작업의 방법을 더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또한 법원이 인정한 작업기간만 해도 11개월 이상입니다. 이렇게 작업방법과 작업시간이 웅변적으로 제시돼 있는데 어떻게 해서 그런 것이 ‘입증돼 있지 않다’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촬영된 사진과 이 사건 화보집에 수록된 북한군 속 인물들 사진의 촬영 시점, 촬영 장소, 사진 속 인물들의 시선, 얼굴의 형상과 인물들의 자세, 착용한 의복, 두발형태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채무자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이 사건 화보집에 수록된 5․18민주화운동 현장 사진 속 인물들과 북한군 고위관료들이 동일인이라는 채무자의 주장을 신빙할 수 없다”는 판결은 광주법관의 순발적인 판단이 노숙자담요의 분석보다 월등하기 때문에 법관의 판단이 영상분석의 전문성을 충분히 증명한 노숙자담요의 분석결과와 분석방법을 덮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광주판사가 볼 때 노숙자담요의 분석은 틀렸다” 과연 이러한 판단이 법관의 판단 범위 안에 있는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솔직히 지금부터 무려 1,100여년 이전인 후고구려의 왕 궁예의 관심법과 무엇이 다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4) 역사적 사실에 대해 20년 전에 법원이 판단한 내용, 전두환이 당시에는 몰랐던 내용, 국방장관-국무총리가 모르는 내용, 미국정부가 37년 전에 몰랐던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학문적 연구도 하지 말고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말라는 판결이 있을 수 있는지 규명해주시기 바랍니다.
1997.대법원 판결, 5.18특별법을 위시한 5.18관련법, 2013.5.국방장관과 정홍원의 발언, 1980.5.9. 및 6.6자 미CIA문서, 2016.5.신동와의 인터뷰에 응한 전두환 부부의 대화내용을 종합하면 5.18은 순수한 민주화운동이고 북한군 개입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확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뒤집는 어떠한 표현도 정당화 될 수 없다(증11, 10~11쪽).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전근대적이고 광폭적인 판단이 나올 수 있는지, 여기에 공산주의 사회인지, 전율을 느낍니다.
(1) 지만원측은 1980.7.3.자 준비서면(증7, 10~31쪽)에서 “4. 북한개입의 증거”라는 제목으로 무려 22개 쪽을 할애하여 5.18을 북한특수군이 주도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증명하였습니다.
가. 5.18사건 제37년이 지났는데도 그것을 지휘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고
나. 1995.7.18.자 검찰의 “5.18관련사건수사결과” 제92-93쪽의 9개 줄 등에 도저히 광주사람으로는 볼 수 없는 외지인 600명의 존재와 그 족적이 확인돼 있는데다 5.18기념재단 공식 홈페이지 타임라인(상황일자)에는 5.22.15:08에 서울에서 온 대학생 500명에 대한 환영식을 거행했다고 기록돼 있다.
다. 1985.5. 안기부작성의 ‘5.18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자료에는 5.21. 12시부터 오후4시 사이에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숨어 있는 38개 무기고가 불과 4시간 만에 털려 5,403정의 총기를 탈취했다는 기록이 있고
라. 5.18-21.까지 광주인들은 시위의 주역이 아니었으며, 광주인이 주역이었던 시기는 계엄군이 물러간 5.22.부터였다. 5.22. 오전 9시경 광주유지들이 도청에 모여 시작한 일은 시국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무기반납 등을 놓고 갑론을박 하는 일이었다.
라. 1980. 당시 가장 객관적인 수단에 의해 확인된 바로는 총상 사망자 116명 2중 85명(75%)가 카빈총 등 무기고에서 나온 총기에 의해 사망했던 사실이었고.
마. 5회에 걸쳐 무기고를 공격한 사실이 1997대법원 판결문에 기록돼 있음에도 광주시장과 5.18기념재단은 ‘광주시민은 절대로 무기고를 털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써 5.18을 대표하는 두 인물이 교도소는 광주인들 모르게 외지인이 공격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바. 도청에 조립한 폭탄 2,000여발을 해체한 사람들은 있는데 조립한 사람이 없다.
사. 자가용운전시대도 아닌데 광주에는 어떻게 장갑차 4대, 군용트럭 370여대, 버스, 트럭 등 일반차량을 포함해 도합 882대의 차량을 몰 수 있는 인력이 광주에 있었겠느냐
아. 1997.대법원 판결문에는 20개의 판시사항이 있는데 그 중 5.18이 순수한 민주화운동이었느냐에 대한 항목을 들어 있지 않았고,
자.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한다는 것은 당시 국민화합을 대 명제로 하던 시기에 정치인들이 타협하고 절충한 것일 뿐, 1997 대법원 판결에서도 판결한 바 없고, 그 어느 연구기관에서도 연구한 바 없으며, 공안사건으로 취급되어 별도의 조사가 이루어진 바도 없다. 이상 10개였습니다. .
(2) 이렇게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가지고 북한군 개임에 대한 증명을 하였는데도 광주법원은 이를 모두 무시하고 “5.18에는 북한특수군이 절대로 오지 않았다” 판단했고, 그 근거로 위 5개 항을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5개항은 사실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을 만큼의 구체성과 논리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증명이 없는 판결인 것입니다.
20년 전의 대법원 판단에서 판단하지 않았으면 북한특수군이 오지 않은 것이고, 정치인들이 서로 타협하고 절충하여 5.18특별법에 광주시위를 민주화운동이라 정해놓으면 북한특수군이 오지 않은 것이고. 국방장관도 몰랐고, 미CIA도 몰랐고. 전두환이 몰랐던 일이면 그 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막가파식 판단이 어떻게 가능한지 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광주법원은 결정문(증11) 제12쪽 3에서 “③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무자는 이 사건 화보집에서 5․18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촬영된 인물들의 사진과 현재 북한군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의 사진을 비교한 결과 이들이 모두 동일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는 주장과 함께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의 사진과 북한군의 사진들을 나란히 수록하였고, 이를 전제로 ‘5․18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선언문’, ‘5․18 당시 친국가적이었던 광주, 북한공작 결과 반국가적으로 변해’, ‘광주에서 촬영된 폭동 현장의 얼굴들은 대부분 북한의 고관들’ 등의 제목 아래 5․18민주화운동은 광주시민들이 주도한 시위가 아닌 북한 당국이 투입하여 광주에 소재하던 북한특수군이 주도한 침략전쟁이었다는 취지의 내용을 서술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지만원 측이 제출한 위 10개 사항에 대해 광주법관이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는 것을 임시하는 내용의 판단입니다. 지만원측이 제시한 위 10개 항은 화보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들이고 정부의 공식 문서에 입각한 자료입니다. 그런데 광주판사는 지만원이 오로지 화보에만 근거하여 5.18을 북한군이 저지른 침략행위였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엉터리 기재를 하였습니다. 이는 사실의 왜곡을 넘은 법관의 폭력입니다.
가. 5.18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결론은 2014.10.에 채무자가 발간한 ‘5.18분석 최종보고서’에 Q.E.D.(이상으로 증명되었음을 표시하는 수학용어)의 표현 즉 종지부를 찍었다는 표현으로 내놓은 결론입니다. 영상고발은 덤(redundancy)인 것입니다.
나. ‘5․18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선언문’은 영상분석 결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1997.대법원 판결이 6개의 사실오인을 했다는 것을 증명한 글입니다. 지만원측이 제출한 2017.7.3.자 준비서면(증7)에는 ”4. 북한개입의 증거“라는 제목 하에 제10쪽으로부터 31쪽까지 무려 22쪽에 걸쳐 영상분석과는 전혀 관계없이 정부의 공식 문서와 톱-레벨의 5.18유공자들이 5,18기록 문서에 증언했던 내용들을 가지고 5.18은 북한군이 일으켰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연구결과를 요약하여 제시한 것입니다. 이런 분명한 사실을 놓고 광주법원은 5․18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선언문‘이 순전히 화보를 전제로 하여 작성되었다 판단하였습니다. 준비서면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입니다.
다. 광주법원은 또 ‘5․18 당시 친국가적이었던 광주, 북한공작 결과 반국가적으로 변해’ 라는 채무자의 글 역시 화보를 근거로 하여 작성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는 3개의 사진이 주 내용을 이루는 아주 짧은 글입니다. 광주의 어린 여식들이 계엄군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사진 1매와 계엄군이 거리를 청소해주는 모습이 담긴 사진 2매입니다. 이 사진들을 놓고 지만원은 “5.18당시에는 광주가 친국가적이었는데 북한의 계속적인 심리전에 의해 반국가적으로 변했다”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 광주와 전남은 전두환에 대해 높은 지지율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광주법관들은 이 사진의 글마저 읽어보지도 않고, 이 사진의 글이 광수화보를 근거로 한 글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읽을수록 부아가 솟구칩니다.
5) “육안으로만 보아도 내가 제 몇 번 광수다”라는 주장을 100% 인용하는 야만적 조폭식 판결이 이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광수라고 주장하는 광주-전남 사람 5명이 정말로 피해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본안사건인 민사사건에서 정밀히 규명돼야 하지만 일단은 이 5명이 자기가 광수라고 주장하니 이 5인에 관련 게시 글은 다 삭제해야 한다” (증11, 15쪽) 증11 결정문 제15쪽의 기재입니다. “다만, 채권자들은 이 사건 신청원인 중 하나로 이 사건 화보집에서 채무자에 의해 거론되는 제36광수, 제71광수, 제8광수, 제326광수, 제151광수가 채권자 양기남, 박남선, 박선재, 김공휴, 망 박동연과 각각 비교․분석됨으로써 각각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바, 이 사건 화보집에서 거론되는 이들 각 인물들과 위 채권자 등의 동일성 여부, 이로 인한 인격권 침해 여부 및 그 정도 등은 추후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친 본안판단을 통하여 명확하게 규명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위 부분에서 채권자 5명이 신청서에서 주장한 것은 과학적 분석에 의한 주장이 아니라 모두가 다 “육안으로만 보아도”였습니다. 그런데 광주법관은 결정문 15쪽에서 “제36광수, 제71광수, 제8광수, 제326광수, 제151광수가 채권자 양기남, 박남선, 박선재, 김공휴, 망 박동연과 각각 비교․분석됨으로써 각각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기재하였습니다.
이는 노골적인 사실의 왜곡입니다. 신청서의 그 어디에도 채권자 각각은 그들이 주장하는 해당광수와 비교분석한 바 없습니다. 그들이 제출한 신청서의 키워드는 “육안으로만 보아도”입니다. 본인과 해당 광수의 얼굴을 나란히 놓고 비교분석한 바 없는 것입니다. 채권자 5명은 달랑 오래 된 사진 몇 개 내놓고 “육안으로만 보아도 내가 제 몇 광수다” 이렇게 주장하였습니다. 채권자 각각은 “육안으로만 봐 달라”고 진정하였는데 어째서 광주법관은 채권자들의 얼굴과 광수의 얼굴들이 비교분석 되었다는 허위사실을 기재하고 그 허위사실에 터 잡아 무조건 관련 글들을 삭제하라 명령하는 것인지 공포감마저 듭니다. 광주법관들이 타지역 국민들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기 전에는 이런 비인격적인 마구잡이식 권력을 휘두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긴급성을 요하는 사건이라 해도 최소한 각기 주장의 타당성 여부 정도는 짚고 가야 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라나 광주법관은 “사실관계는 모르겠는데 채권자들이 주장하니 일단 채권자들의 주장을 법원이 강제로 집행한다”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생각할수록 살이 떨리고 가슴 떨리는 악몽입니다.
5. 북한이 비디오로 세뇌시킨 5.18 내용이 광주의 종교
지만원은 광주의 피해가 북한군에 의해 발생했다는 연구결과를 냈습니다. 이 결론이 어째서 광주의 명예를 훼손한 죄가 되는 것입니까? 그 후 5.18 현장사진 속 얼굴들이 북한사람들이라는 영상분석 결과를 냈습니다. 이전의 연구결과를 시각적으로 보강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현장의 얼굴이 북한의 얼굴이라 했는데 왜 광주가 이를 죄악시하는 것입니까? 북한의 불법을 응징하고 앞으로 북한에 속지 말자는 공의로운 목적에서 16년 동안이나 연구했는데 왜 그 지역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 법관들까지 나서서 제게 재갈을 물리려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를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전두환과 공수부대를 저토록 증오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980년대 386들은 “전두환을 찢어죽일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 맹세들을 했습니다. 그 후로 악마인 북한을 추종하는 인구들을 폭증했습니다. 1980년부터 광주-전남사람들이 은밀히 모여 관람한 ‘광주비디오’라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1980년, 광주사태가 종결되자마자 ‘조선기록영화촬영소’가 “군사파쑈도당을 반대한 광주인민항쟁”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현장을 이렇게 속속들이 촬영할 수 있는 한국 매체는 없었습니다. 북한만이 광주 현장에 와서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1980.5.27. 광주사태가 종결되었습니다. 그 9일째인 6월 6일, 일본 토쿄에서는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가 “찢어진 깃폭-어느 목격자의 증언-”이라는 단편소설 사이즈의 서류를 공개했습니다. 그 내용들은 ‘광주비디오’와 같은 것이었고, 1985년에 황석영 이름으로 발행된 ‘넘어 넘어’의 내용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조직적인 모략작전이 눈에 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2011년, 신동아가 황석영에게 왜 북한 책 2권(광주의 분노,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표절했느냐 추궁했습니다. 이에 황석영이 고백했습니다. “그 책은 내가 직접 쓰지 않았고, 광주의 모 단체가 원고를 주면서 가필해 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도 광주사람들은 이 책이 유일한 ‘5.18의 바이블’이라며 얼마 전 증보판까지 냈습니다. 여기에는 북한이 제작한 모략내용만 있고 팩트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책이 광주사람들의 바이블이고 종교인 것입니다. 검찰 수사자료, 공판자료, 탈북자들의 증언들은 모두 가짜라는 것입니다. 이 지경인 광주가 5.18관련 재판들을 배타적인 권력으로 독점 주도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것인지 국민 모두에 여쭙고자 합니다.
결 론
1. 5.18은 좌-우 이념이 충돌하는 역사이고, 호남 대 비호남의 정서가 충돌하는 역사입니다. 이런 재판을 광주법원이 독점하고 ‘광주법관 맘’으로 재판하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법체제의 본질은 아닐 것입니다. 가장 합리적인 해결방법은 법원이 여기에서 손을 떼고 ‘공론의 장’에서 시장원리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사건에 대한 진실을 사법부가 나서서 법관판단으로 규명한다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할 언어도단이기도 하지만, 국민전체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 모두를 억압하는 악의 축이 될 것입니다.
2. 지금 광주법원으로 인해 사법부 전체의 기율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사법부에 어른이 없는 것입니다. 전에 저는 대법원에 질서를 잡아 달라 탄원한 적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광주법원을 옹호했습니다. 대법원은 광주법원의 일탈행위를 제어해야 하고 교통정리를 해야 합니다. 5.18관련 사건에 대한 관할법원은 전라남북도 소재 법원 이외의 법원으로 한다는 확실한 기율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국회법사위는 속히 질서를 잡아 주시고 특별법을 제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증거자료
증1. 전두환 회고록 결정문
증2. 2002년 광주지방법원 판결문
증3. 2011-12 안양지원-서울고법-대법원 판결
증4. 5.18유공자심사위원 전원사퇴 보도한 중앙일보
증5. 서울교회가 5.18단체들로부터 당한 수난 보도
증6. 1995 검찰의 ‘5.18광련사건수사결과’
증7. ‘5.18영상고발’ 가처분사건에 제출한 지만원 측 준비서면
증8. 5.18추모공간에 있는 심복례의 증언
증9. 구글에 기록된 심복례 증언
증10. 박남선 심복례 등의 법정 증언 속기록
증11. 5.18영상고발 가처분사건, 지만원에 대한 결정문
증12. 손해배상 소송 판결 보도
증13. 이창한 부장판사의 결정문
증14. 김동규 부장판사 결정문
2017.8.1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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