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 (52)] 군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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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4-04 11:46 조회7,87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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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 (52)] 군인과 의사
외로웠던 의사 이국종
2011년, 해군 작전명 ‘아덴만의 여명’에서 심하게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을 기적적으로 살려낸 의사 이국종 교수로 인해 중증외상이 어떤 것인지 세상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1995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2년에 그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3년에는 미국 UC 샌디에이고 대학 외상 센터에서 연수를 받고 2007년에는 영국의 로열런던병원 외상 센터에서 연수를 했다 한다. 그는 이 연수과정에서 한국에서라면 사망할 수밖에 없는 중증외상 환자들을 어떻게 살려내는가에 대한 시스템을 체험했다.
한국에도 그런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며 백방 노력했지만, 그는 늘 외면당했다. 의료계, 행정부, 국회 등을 통해 노력한 결과 그래도 몇 개 권역에 중증외상 센터를 설치하는 업적을 남기고, 2020년 1월 50대 초반 그는 외로움과 고통에 지쳐 직장을 떠났다 한다. 떠나면서 2002~2013년에 이르는 12년 동안의 경험을 [골든아워]라는 제목의 2부작에 다큐로 남겼다.
중증외상환자의 대부분은 주로 하층 인구들이 차지한다.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가 차와 충돌해 창자가 튀어나온 환자, 조폭끼리 싸우다 칼로 난자당한 환자, 건설 현장에서 뼈가 박살이 난 환자들이 대부분이라 한다. 이런 환자 한 사람을 살려내는 데에는 고난도의 대규모 수술을 해야 하는데, 비용은 많이 들고, 의료 수가가 낮아 영업을 해야 하는 병원으로서는 많이 할수록 적자를 본다. 따라서 이국종 교수는 병원 측으로부터 늘 불청객 대우를 받았던 모양이다.
현장 닥터 (On Spot Dr.) 이야기
1982년, 나는 국방연구원에 근무하다가 맹장에 걸려 화곡동 국군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넓은 병실 저쪽에서는 수많은 병사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좀 더 빨리 후송돼왔으면 좋았을 것을! 이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이듬해인 1983년, 41세 때 나는 미국 연구소들의 운영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보름 동안 연구 출장을 기획할 때 월터리드 병원을 견학했다. 하루 종일 두 명의 안내자가 내가 궁금해하는 점들을 설명해 주기 위해 나에게 봉사했다. 첫 질문은 월터리드 병원이 미국 최고의 병원이 되게 하는 운영시스템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 질문은 병사가 전방에서 많이 다쳤을 때 재빨리 수술을 할 수 있는 미국 시스템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월터리드 병원은 중상자들을 빨리 살려내기 위해 현장 의사라는 과목을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중증 환자의 생명은 시간의 함수이기 때문에 의대에 현장 학과가 새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현장 닥터가 헬기를 타고 사고 현장에 날아가, 환자를 태우고 날으면서 기체 내에서 응급조치를 취하고, 지상 병원에 수술 항목을 미리 통보해,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본격적인 수술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한국에서는 중상을 입은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을 노크하고 다니다 길바닥에서 사망하던 시절이었다. 전방 병사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한 시스템 속에서 희생당하던 시절이었다. 미국에서는 1983년에 운용된 닥터헬기, 한국에서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오리무중인 것이다.
미 육군 연구소의 시간전쟁 연구
월터리드를 방문한 후 나는 미 육군 연구소를 들렸다. 연구소장이 내게 해준 말은 실로 충격이었다. 그는 양 300마리를 산에다 풀어놓고 포탄을 마구 쏘았다고 한다. 그리고 부상 부위별로 사망하는 속도를 측정하여, 이것을 기준으로 전쟁터에서 중상자들 중 어떤 환자부터 수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매뉴얼을 작성했다고 한다. 과학이 있느냐 없느냐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학습자세가 있는 사회냐, 없는 사회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월터리드 병원은 왜 1등 병원 되었나?
월터리드 병원 의사들은 왜 시간이 갈수록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 내 이 질문에 월터리드 병원은 아래와 같이 설명해 주었다. 월터리드 병원은 3개 섹터가 있다. 진료, 학교, 연구실이다. 매 2년 단위로 의사는 연구실, 교수, 진료를 순번으로 순환한다. 연구실에서 연구한 것을 진료에 응용하고, 진료 경험과 연구 내용을 가지고 다른 의사나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래서 날이 갈수록 능력이 향상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역시 시스템의 산물이었다.
군인과 의사
의사는 엄청난 공부를 하고 가혹한 훈련을 쌓는다. 단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수술실에서 사투를 벌인다. 반면 전쟁터에 선 지휘관들은 순식간에 수백, 수천 명의 목숨을 값없이 잃게 한다. 그런데 지휘관들이 의사들처럼 많이 공부하고 수련을 쌓는가?
군에는 수많은 단기 과정의 코스들이 있다. 이는 계급에 따라 알아야 할 교리일 뿐 사색하는 연구 과정이 아니다. 외워서 시험만 보면 그걸로 끝이다. 장교들은 끝없이 전쟁에 대해 상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장교 사회에는 사색 문화가 없다. 생각하는 것 자체를 골치 아프다고 말들을 한다. 골프문화, 술자리 문화는 있어도 독서와 사색 문화가 없다. 이런 생활이 이어지다가 전쟁이 나면 병사들의 목숨을 지켜주기 위한 명령을 내릴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싸워봐야 안다.” 이는 틀린 말이다. 내일 이기기 위해 지휘관은 오늘 싸워야 한다. 부단한 가정을 세우고 각 가정 시나리오에 대해 궁리를 하는 지휘관만 전투에서 이길수 있는 것이다.
2023.3.3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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